극우 정당 막겠다더니 ‘우클릭 전략’에 발등 찍혀…주류의 오판, 유럽 극우 판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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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오른쪽 사진)과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왼쪽)는 모두 극우의 확산을 막겠다는 목표를 내세워왔다. 메르츠 총리는 2018년 기독민주연합(CDU) 대표 경선 당시 독일대안당(AfD)의 득표율을 절반으로 낮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마크롱 대통령도 2017년 대선 당시 “앞으로 5년 동안 유권자들이 극단주의 정당에 투표할 이유가 더 이상 없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 두 나라에서 극우는 어느 때보다 강해졌다. AfD는 지난 6일 작센안할트주 선거에서 43.8%를 득표해 2021년보다 두 배 이상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반면 메르츠 총리가 이끄는 CDU는 17.2%에 그쳤다. 프랑스의 국민연합(RN)은 2017년 이후 득표 규모가 세 배 이상 늘었고, 내년 봄 대선을 앞두고 여론조사에서도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집권 초 극우를 따라가는 전략에 선을 그었지만, 2019년 이후 이민·치안 문제와 이슬람 정치 세력 등을 겨냥한 정책을 잇달아 추진하며 우경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23년 통과된 이민법에도 이중국적자 국적 박탈, 출생에 따른 자동 시민권 취득 제한 등 RN의 주장과 맞닿은 내용이 포함됐다. 당시 RN은 이를 “이념적 승리”라고 평했다.
메르츠 총리 역시 AfD로 빠져나가는 보수층을 되돌리기 위해 이민 문제를 전면에 내걸었다.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CDU와 기독사회연합(CSU)이 연방의회에 제출한 강경한 이민 결의안이 AfD의 찬성으로 통과된 사건은 상징적인 장면으로 꼽힌다. 전후 독일 정치에서 주류 정당과 극우 정당의 협력을 막아온 이른바 ‘방화벽’이 흔들린 것이다. 당시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가 메르츠 총리를 공개 비판했고, AfD는 이를 “역사적 순간”이라고 환영했다. 메르츠 총리는 최근 독일에 거주하는 시리아인의 약 80%가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마크롱 대통령과 메르츠 총리의 전략을 “질식 전략”이라고 표현했다. 극우가 내세우는 이민과 치안 문제를 주류 정치가 직접 다뤄 극우가 설 자리를 없애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극우와 같은 경기장에서 경쟁하는 상황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르몽드는 “상대가 만든 영역에서 싸우는 것은 오히려 상대를 강화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탈리아와 영국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마테오 렌치 전 이탈리아 총리는 극우와 포퓰리스트 세력이 독점하던 의제를 정부가 가져오는 이른바 ‘정부 차원의 포퓰리즘’을 시도했다. 그러나 극우 세력의 확산을 막지 못했고, 몇년 뒤 극우 세력이 집권할 정치적 공간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키어 스타머 전 영국 총리의 노동당 정부는 극우 성향의 영국개혁당 압박 속에서 이민 문제를 앞세웠지만, 이 과정에서 되레 극우 의제를 키우고 기존 진보 성향 지지층의 이탈을 초래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럽 극우의 본격적인 시험대로 꼽히는 내년 프랑스 대선을 앞두고 RN은 전략을 바꾸고 있다. 이민·치안·정체성 등 유권자의 불안을 자극하는 핵심 의제는 계속 전면에 두면서도, 극우 정당의 급진적 이미지를 완화하는 ‘악마화 탈피’를 추진하고 있다.
유럽 주류 정치권에선 극우의 의제를 따라가기보다 정치적 경쟁의 틀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프랑스 진보 성향 싱크탱크 테라노바는 르몽드에 “주류 정당이 극우가 던진 의제만 좇는 방식에서 벗어나 기후변화, 기술, 노동, 민주주의 등 미래의 큰 의제를 선점하는 ‘문화적 전투’를 벌여야 한다”고 말했다.
피해자는 형사재판의 당사자가 아니다. 형사소송의 주체는 법원, 검사, 피고인이다. 법원은 재판을 진행해 판결을 내린다. 검사와 피고인은 소송당사자다. 피고인의 변호인, 대리인 등 소송관계인이 형사재판에 관여한다. 피해자는 이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이런 구조는 국가가 형벌권을 독점하고 피해자의 사적 제재를 금지한 결과물이다. 국가가 적법한 절차와 제도를 통해 정의를 세워주겠다는 일종의 ‘약속’을 한 데 따라 피해자는 법적 당사자 지위를 갖지 못하게 됐다.
하지만 현실에서 피해자는 이런 구조가 정당하다고 느낄까. 특히 물증이 남기 어려운 성폭력 재판에서는 ‘피해자 진술’에 대한 검증이 엄격하게 이뤄진다.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를 심판하는 재판’이라는 비판이 나올 정도다. 성폭력 재판 결과는 피고인뿐 아니라 피해자의 일상·명예 회복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럼에도 피해자가 재판에 제출된 증거를 확인하거나 재판부에 사실관계에 대한 의견을 제출할 통로는 막혀 있거나 제한적이다.
경향신문 여성 서사 아카이브 플랫은 성폭력 사건의 ‘사실상의 당사자’이자 ‘직접적 이해관계자’인 피해자가 실제 재판에서 어떤 구조적 장벽을 마주치는지 들여다봤다. 이들은 방청석에서 피고인과 증인의 진술, 재판부의 선고를 지켜봐야만 한다. 가해자의 주장 중에는 피해자에게 모욕적인 것도 있고 피해자가 쉽게 반박할 수 있는 허위사실도 있지만 당사자가 아닌 피해자에게는 발언 기회가 제한된다. 말하고 싶은 피해자에게도 말할 기회가 제도적으로 없고, 이들의 목소리는 판결문에 담기지 못한다.
“피고인에겐 거짓말을 할 기회가 끝없이 주어졌어요. 지켜보는 내내 사지가 녹아내리고 얼굴이 짓이겨지는 것 같았어요.” A씨는 왜 자신의 피해를 증명하는 과정에서 ‘정신적 구타’를 당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A씨는 5년 전 평소처럼 수면제를 먹고 자고 있던 상태에서 당시 교제 중이던 남성에게 피해를 입었고, 그를 준강간치상 혐의로 고소했다. 재판은 4년간 이어졌다. 증인신문에 두 차례 응했고, 증인 신분이 아닐 때도 한 차례 법정에 가서 발언을 했다. 증인으로 출석한 것이 아닌 이상 피해자는 다른 제3자들과 마찬가지로 방청석에 앉아 재판을 지켜봐야 한다. A씨도 방청석 가운데에 앉아서 손을 들고 “저는 피해자인데요”라고 이야기해야 했다. 법정에 피해자의 자리가 없다는 것은 피해자가 절차 속에 있지 않다는 점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자신의 피해에 대한 재판이지만, 피해자가 접근할 수 있는 정보 수준도 제3자와 별반 다르지 않다. A씨는 1심에서 무죄가 나오고 나서야 피고인이 제출한 의견서와 증인들의 증언을 받아볼 수 있었다. 피의자가 경찰-검찰-법원으로 이어지는 형사절차의 전 과정에서 자신이 낸 자료를 포함해 피해자가 낸 자료, 수사 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것과 달리, 피해자는 법원에 신청해 허락을 받을 경우에만 열람·등사를 할 수 있다. 자신이 제출했던 자료를 다시 받아보고 싶을 때에도 마찬가지다. 피고인의 방어권을 보장하고 피해자의 진술오염과 증거조작을 막는다는 명분(수사밀행성) 때문이다.
문제는 그러면서 피해자가 중요한 흐름을 놓치고 피고인의 허위 주장을 반박할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된다는 점이다. A씨는 자신을 제외한 ‘형사재판의 당사자’들 사이 어떠한 주장과 자료가 오갔는지 모르는 상태로 2시간짜리 증인신문을 두 차례 받았다. 불리한 사실도 솔직하게 답하라는 조언에 따라 성실히 답했지만, 피고인 쪽에서 무슨 자료를 보고 어떤 의도로 질문하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여대 나왔죠?’, ‘낙태(임신중지)에 대해 여자가 결정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한 적 있죠?’ 등과 같이 사건과 무관한 질문부터, ‘평소 (성관계할 때) ○○자세를 좋아했다면서요?’, ‘예전에 ○○에서 한 성관계 좋아했다는데 기억 나나요?’ 등의 물음이 그에게 날아들었다. 사실은 강간이 아니라 피해자가 원한 성관계였다고 주장하기 위해서였다. 재판부는 “상관있는 것만 얘기해달라”고 경고하긴 했으나 피고인 변호인의 질문을 실제로 막지는 못했다.
성폭력 재판에서는 이처럼 피고인 방어권을 명분 삼은 2차 가해성 질문들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A씨는 “그건 질문이 아니라 비아냥이었고 피해자의 인격을 말살하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며 “너무 두려웠고 재판부에 잘 보여야 된다는 생각에 부담스러웠다”고 했다. 피고인은 최후진술에서 “피해자는 평소 자기가 여성인권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앙심을 품고 고소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페미니즘과 성폭력 피해자를 향한 편견을 동시에 이용해 피해자의 순수성을 공격한 것이다. 피해자에게는 최후진술과 같은 별도의 발언 기회도 없다.
사건의 중요한 증거인 피해자의 발언권을 막아놓은 채로는 사실관계에 대한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기도 어렵다. A씨의 상처를 본 산부인과 의사는 ‘○○라는 기구를 쓴 것 같다’는 의무기록을 남겼는데, 이를 두고 피고인 측은 “피해자가 자위기구를 사용하다 다쳤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기구는 남성이 사용하는 종류이고, 의사가 해당 의무기록을 남겼던 이유도 피고인에 의한 상해로 추정된다는 뜻이었다. 피해자는 증인신문을 받을 때 그 기구가 무엇인지 몰라 대응하지 못했다. 결국 이 주장은 2심까지 이어진 재판에서 바로잡히지 못했다.
그의 사건은 2심에서도 무죄로 결론났다. A씨는 상고를 원했으나 검사가 상고하지 않으면서 그대로 끝났다. 2심을 앞두고 수면제와 다른 약을 섞어 먹으면 약효가 더 강하게 나타난다는 취지의 감정서를 비롯해 피고인 주장의 모순을 입증하는 여러 근거를 재판부에 의견서로 제출했으나, 2심 판결의 근거는 1심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A씨는 “판결문이 가해자에게 무죄를 주기 위한 꾸밈서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본인이 사건의 피해자인데, 재판과 판결 과정에 피해자인 자신의 주장이 개입될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2심 재판부에 참고인 신분으로 낼 수밖에 냈던 의견서는 판결에 반영되지 않았다. 그는 “검사가 공식적으로 제출한 게 아니기 때문에 재판부가 읽지 않은 것 같다”며 “피해자 말은 읽어볼 이유도 없다는 것 같아 좌절했다”고 말했다. 그는 “피해자와 피해자의 변호인에게도 재판에서 발언할 기회가 주어졌더라면, 재판부에 직접 상고 의견을 전달할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판 내내 피고인이 아니라 피고인을 대변하는 재판부와 싸우는 느낌이었어요. 참고인 및 증인의 진술이 피고인에 의해 오염됐다는 정황이 명백하게 있었고, 제가 검사님을 통해 자료를 제출했는데도 반영이 안 됐거든요.”
B씨는 무죄 선고에 무너졌다. 실제로 법원을 나오며 혼절했다. 2년 전 그는 직장동료였던 남성에게 준유사강간치상 피해를 입었다는 취지로 고소했다. 함께 술을 마시고 취한 그의 신체에 피고인이 손가락을 넣어 상처를 냈다는 것이 사건요지였다. 준강간죄가 성립되려면 사건 당시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어야 한다. ‘사건 당시엔 의식과 행위통제능력이 있었으나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 뿐’인 경우엔 혐의가 성립되지 않는다.
판결문을 보면 사건 전후 피해자를 목격한 업주와 종업원들은 ‘피해자가 술이 깬 것 같은 느낌이었다’, ‘취한 것 같으면서도 안 취한 것 같았다’고 진술했다. 이는 ‘객관적 제3자 진술’로 판결에 인용됐다. 이외 여러 정황을 근거로 1심과 2심은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였다는 것을 부정하고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B씨가 판결을 납득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피고인은 사건 후 B씨와 갔던 식당 등을 방문해 업주들을 만났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B씨는 경찰이 “나를 꽃뱀 취급하는 게 뭔가 이상해서” 식당을 찾아가 물어봤더니 이미 피고인(당시에는 피의자)이 경찰보다 먼저 다녀간 상태였다. B씨는 피고인이 강제추행으로 억울하게 신고당했다며 도움을 요청했음을 확인했다. 피고인은 한 가게 주인과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고, 경찰이 갔을 땐 이미 폐쇄회로(CC)TV 영상이 대부분 삭제된 상태기도 했다. B씨가 만난 업주와 종업원들은 “남자분이 와서 억울하게 신고당했다고 하니 아무 일 없었다고 진술할 수밖에 없었다”는 취지로 말했다. 하지만 증인들의 말은 피해자가 확보한 증인 진술서 내용과 상충됐다. ‘피해자가 취하지 않아 보였다’는 내용으로 진술한 사람이 정작 B씨에게는 “(그 때) 많이 취했었다. 기억 못 하시죠?” “남자분이 (피해자에게) 이제 너무 취했다고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렇게 확보한 사실관계는 재판부에 닿지 않는다. 피해자는 수사의 참고인이자 공판의 증인으로, 사법기관의 요청에 의해 진술할 기회를 갖는다. 헌법 제27조5항은 “형사피해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당해 사건의 재판절차에서 진술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하위법인 형사소송법과 형사소송규칙은 피해자 의견진술권의 범위를 ‘피해의 정도나 처벌에 관한 의견’으로 한정한다. 범죄사실의 유무 및 입증, 즉 사실관계에 관한 사항은 제외된다.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는 재판부에 의견서 정도밖에 낼 수 없다. 자신이 제출한 의견서를 판사가 읽어봤는지 피해자는 알 수 없다. 판결문을 보고 짐작할 뿐이다. B씨는 “판결을 보면 재판부가 진술의 신빙성을 따로 조사하지도, 진술 오염을 입증하는 자료를 읽지도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가 재판부에 제출한 피고인 주장의 허점은 이밖에도 많다. 일례로 사건 당일 B씨는 극심한 통증을 느끼고 자신이 정신을 잃은 뒤 손가락을 삽입한 것은 아닌지 여러 차례 물어봤지만, 피고인은 만지기만 했다고 거듭 주장하다가 뒤늦게 시인했다. B씨는 피고인이 처음엔 삽입 사실을 잡아뗐던 것 자체가 당시 B씨가 의식이 없었다는 것을 알았다는 뜻이라고 재판부에 의견을 냈으나 판결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피고인은 B씨가 치마를 입은 상태였다고 주장했지만, 당시 B씨가 입었던 하의는 반바지였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피고인의 진술은 경험하지 않고서는 진술하기 어려운 내용이라 쉽게 배척하기 어렵다”고 봤다.
지나간 재판을 돌아보며 B씨는 “그때 내게 말할 기회를 줬더라면”이라고 여러 차례 아쉬워했다. B씨는 재판에서 의견 진술을 신청했으나, 재판장은 사실관계가 섞인 대목이 나오자마자 “사실관계는 이야기하지 마세요”라고 제지했다. B씨는 “1심 증인신문에서 피고인측은 재판장이 거듭 주의를 줬음에도 증거기록 내용을 되풀이하는 식으로 시간을 끌었다. 2심에서 다시 증언할 기회를 달라고 여러 차례 요청했지만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고 돌아봤다. 그는 “피고인은 재판부의 심증을 흔들기만 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피해자가 그것을 바로잡으려 증거를 제시하고자 해도 피해자는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목소리를 재판부의 귀에 들리게 할 힘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피고인의 모순이 제대로 반박·기각되지 않고 판결문에 고스란히 남은 것이 두고두고 한스럽다고 했다. “피해자의 주장을 전부 들어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피해자의 주장에서 배척할 만한 것이 있으면 하면 되죠. 피고인이 간단하게 배척할 수 있는 허위 주장을 하는데도 피해자의 입을 막아 놓으니 피고인 목소리만 판결문에 그대로 적히게 되는 것 아닌가요.”
가해자에 대한 재판 결과는 피해자의 인생까지 뒤흔들어놓는다. B씨는 재판 후 자신이 “합의하에 해놓고 상대를 고소한 미친년”이 됐다고 느낀다. 피고인이 업계에 소문을 내고, 피고인 측 변호사가 ‘성공 사례’로 판결문을 공개한 탓에 B씨는 기존에 속했던 업계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의 사건은 대법원 판단만을 남겨뒀다. B씨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고 하지 않나. 무죄가 확정되면 너무 수치스러워서 이 세상에 살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피해자는 형사재판의 당사자가 아니다’라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이 말에 피해자들이 괴리감을 느끼는 건 ‘피해자는 으레 억울하기 때문’이 아니다. 실제로 법원은 피고인의 주장에 훨씬 많이 노출된다. 판사 출신 오지원 법과치유 변호사는 형사절차 속 피해자가 처한 상황에 대해 이렇게 비유했다. “친구한테 맞은 아이가 있다고 칩시다. 어른이 ‘때린 친구를 혼내주겠다’고 데리고 갔는데 뭘 했는지는 모르고, 한참 있다가 그냥 ‘혼내줬다’ 결과만 통보해 주는 상황인 겁니다. 맞은 아이 입장에선 제대로 해결됐다고 느낄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법정 역시 피해자가 용기 내 방청을 간다 하더라도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구조다. 판사는 통상 피해자가 왔는지 확인하지 않고, 재판 진행을 위해 피고인을 쳐다보면서 말한다. 피고인과 변호인이 많은 주장을 하고, 검사는 공소사실 요지나 구형의견 정도만 말한다.
법적 절차 자체가 피해자의 말하기로 시작하는데도 정작 절차가 개시된 후 피해자의 말하기를 보장하지 않는 현행 사법제도는 역설적이다. 오 변호사는 “(표면적으로는) 피해자의 일상회복과 권리구제를 위해 사법제도를 만들어놓고 정작 피해자를 쏙 빼버린 절차적 소외”라고 말했다. 소외 속에서 피해자는 국가가 약속했던 정의가 무엇이냐 묻는다. 이는 피고인에게 무조건 유죄를 선고하라는 주장이 아니다. 내 사건에 내 자리가 없다면, 내 진술을 심판하면서 내 목소리는 듣지 않는다면 그 결과를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뜻이다. 마땅한 자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피해자의 재판은 끝나도 끝난 것이 아니다.
15일 열리는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의 최대 쟁점은 김 후보자에게 제기된 제넨셀 코로나19 신약 청탁 의혹이다. 김 후보자는 지인 양모씨로부터 신약 임상허가 승인을 살펴봐달라는 부탁을 받고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사적 청탁’을 했다는 의심을 받는다. 김 후보자는 “공익 차원의 민원을 전달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14일 경향신문은 이 사건 관련 자료를 바탕으로 청문회에서 규명이 필요한 주요 쟁점을 짚어봤다.
‘민원’이라기엔 적극적이었던 김승원, 왜
김 후보자는 양씨와 십수년간 친분을 유지했다. 2022년 2월 촬영된 일명 ‘3인 셀카’ 사진으로 양씨와의 관계가 알려지자 처음에는 “우연히 만난 것”이라고 해명했다가 “오류가 있었다”며 친한 선후배 사이임을 인정했다.
김 후보자는 신약 관련 청탁 논의 전인 2021년 9월 양씨가 운영하는 업체 사무실에 축하 화환을 보냈다. 양씨는 이후 김 후보자와의 통화에서 “어제 화환 잘 받았어요” “내가 출입구에 대놓고 놔뒀어”라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보내준 거 그대로 보내줬는데. 그러니까 확장이전이잖아, 그렇지?”라고 답했다.
양씨는 같은 달 14일 김 후보자와 통화하며 제넨셀 창립자 강모씨와 저녁식사 약속을 잡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날 김 후보자와 양씨는 신약 임상 승인 관련 논의를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양씨가 “(강씨가) 최대주주로 있는 제넨셀이라는 회사는 이미 통장 100억, 현금 100억 갖고 있는 회사예요” “오빠한테 조금 힘이 될 것 같고 서로가 조금 좋을 것 같아요”라고 하자 김 후보자는 “그러면 추석 끝나고 바로 볼까”라고 했다. 다만 강씨의 개인 사정으로 실제 만나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 후보자와 강씨의 대면이 불발되자, 양씨는 약 2주 뒤인 10월7일 전화로 김 후보자에게 식약처의 승인 절차 상황 파악을 부탁한 것으로 보인다. 이어 10월12일 김 후보자는 김강립 당시 식약처장에게 연락해 신약의 임상실험 허가를 빠르게 진행해달라 했고 10월26일 허가가 났다.
2021년 10월17일 양씨가 “교수님, 승원옵(오빠) 통화 연결하게요”라고 메시지를 보내자 강씨는 “실례되게 그러지 말고 담에 한 번 식사 대접할게”라고 대답했다. 양씨는 다시 “계속 (식약처) 실무가 시간 끌면 보건복지부 압박 넣어준대요”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다만 양씨는 이후 검찰 조사에서 “김 의원님이 그런 말은 한 적은 없다. 복지부 압박이나 이런 것도 과장해서 말한 것”이라고 진술했다.
“2천만원 주려 했다” 청탁 대가 실제 고려
김 후보자는 2021년 10월17일 서울 여의도의 한 주점에서 양씨를 만났다. 앞서 10월12일 김 후보자는 양씨의 부탁으로 식약처에 “신약 임상허가를 살펴봐달라”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이 자리에서 양씨에게 “정 고마우면 후원금 최대가 500만원이니까 나중에 잘되면 그렇게만 해주면 된다”고 말했다. 그해 12월31일 강씨는 김 후보자에게 500만원을 보내려 했지만 연간 후원금 한도가 꽉 차 입금되지 않았다.
양씨는 검찰 수사 과정에서 “김 후보자에게 (신약 관련) 보답으로 현금 2000만원을 주려 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후원금 외 다른 방식으로 대가 지급을 고려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2023년 8월 양씨를 조사하면서 그의 녹취록을 들어 “김승원 의원이 식약처 승인을 도와준 대가에 대해 2000만원 상당의 현금으로 보답할 방안을 논의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양씨는 “승인을 도와준 의원님께 진짜로 2000만원 정도는 현금으로 보답해주고도 싶었다. 선거할 때 자금이 많이 드니까”라고 답했다. 그는 다만 “그런 보답은 저의 일방적 생각이었지 김 의원님과 논의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검찰 조사에서 “청탁 대가를 구체적으로 약속하거나 현금이든 뭐든 받은 사실이 없다”며 “강 교수나 양씨의 후원금은 없는 것으로 확인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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