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창]노동부와 기후부는 레드팀을 자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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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반도체·데이터센터·피지컬 AI(인공지능)를 축으로 한 이른바 ‘3대 메가프로젝트’를 발표한 지 한 달이 넘었다.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쏟아지는 가운데 정부는 이를 뒷받침할 ‘메가특구특별법’ 제정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당장 대통령이 정치권력으로 ‘기업의 팔을 비튼다’는 비판이 나왔다. 모양새를 보면 일견 타당한 지적 같지만 나는 그래도 메가프로젝트 추진을 큰 틀에서 지지하기로 했다. 국가 경쟁력 지속과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이 거대한 프로젝트의 방향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수많은 이해관계가 부딪치는 프로젝트를 성사시키려면 정권의 권력 행사는 불가피한 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걱정은 남아 있다. 방향이 아니라 ‘속도’ 때문이다. 5년마다 대통령 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한계가 있어 그렇겠지만 정부와 여당은 유독 이 사안에서 속도를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0일 청와대에서 메가프로젝트 민관 합동 제2차 점검회의를 주재하며 아예 “속도전을 넘어서 전격전을 치러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속도전 내지는 전격전 속에서 노동과 환경이라는 가치는 속절없이 뒷전으로 밀리는 중이다.
메가프로젝트 ‘방향’은 맞지만노동·환경 가치 뒷전으로 밀린정부의 ‘속도전’은 우려스러워규제 완화가 ‘선례’ 되면 안 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노동 분야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6월 국회에 보고한 특별법 잠정안에는 파견 대상 업무 확대, 기간제 사용 기간을 2년에서 최대 4년으로 늘리는 방안, 소득 상위 3%에 해당하는 관리자·연구개발자에게 주 52시간 상한과 각종 수당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 이른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 기간을 1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는 방안 등이 담겼다. 산술적으로 16주 연속 주 80시간 노동도 가능해지는 설계다. 이는 노동부 스스로 정한 과로사 인정 기준을 훌쩍 뛰어넘는다.
그러나 이를 추진할 근거는 빈약해 보인다. 정작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반도체 기업은 그간 특별연장근로 제도를 거의 활용하지 않았다. 기존 제도 안에서도 기업은 충분히 성과를 내고 있다는 뜻이다. 반면 노사 협상력이 약한 중소 협력업체 노동자들에게는 장시간 노동이 고스란히 전가될 가능성이 크다. 기간제 사용 기간 연장 역시 마찬가지다.
환경 쪽 우려도 가볍지 않다. 이 대통령은 앞서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점검회의에서 “같은 지역인데 환경영향평가를 또 할 필요가 있느냐”며 절차 단축을 직접 주문했다. 지난 10일에는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이 “각종 인허가와 환경영향평가 등을 단축하겠다”고 다시 밝혔다.
계절별 변화를 반영해야 하는 환경영향평가의 취지를 생각하면, 이는 평가 자체를 요식행위로 만들 위험이 있다. 산업단지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는 특례법이 메가특구에 그대로 적용되면 여러 후보지를 비교 검토하는 본래의 평가 과정 없이 이미 정해진 부지와 사업 규모에 맞춰 형식적인 절차만 남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장 걱정스러운 지점은 이런 것들이 쌓여 ‘선례’가 되는 것이다. 지난달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은 메가특구에서 노동시간 규제를 풀어주면 판교나 용인의 다른 기업들도 형평성을 내세워 같은 특례를 요구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실제로 이미 통과된 반도체특별법도 메가특구 수준에 맞춰 다시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경영계 일각에서 나온다.
균형발전과 첨단산업 육성은 한국이 지속하는 데 필요한 핵심과제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정부가 스스로 표방해온 노동존중과 환경적 지속 가능성이라는 원칙을 저버린다면 그 의미는 퇴색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노동부와 기후에너지환경부는 메가프로젝트 앞에서만은 당분간 ‘모든 정부는 원팀’이라는 생각을 버리기 바란다. 노동부와 기후부는 장기적인 성공을 염두에 두고 ‘레드팀’을 자임하고 노동과 환경이란 가치를 지켜내야 한다. 그래야 최근 어떤 기관장처럼 뒤늦게 “드러누워서라도 막았어야 했다”고 후회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1호선 광인’은 수도권 거주자가 아니더라도 꽤 유명한 밈이다. 실제로는 1호선이 아니지만 단소를 들고 지하철에서 사람들을 위협하는 일명 ‘단소 살인마’ 영상에 무한도전 스타일의 자막을 입힌 재가공 영상이 상반기에 큰 인기를 끌었다. ‘광인(狂人)’이나 ‘돌아이’는 미친 사람을 일컫는 말이었으나 최근에는 독특한 사람, 애호가, 남보다 좀 더 열정적인 사람 정도로 순화되어 애칭처럼 쓰인다. 하지만 정작 ‘진짜 미친 사람’에게는 그런 관용과 애정이 허용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모습은 즉각 영상으로 남아 호기심과 경악의 놀이터가 되고, 어쩌다 정신질환자가 범죄를 저지르면 병력에 모든 관심이 집중되어 그들을 사회로부터 격리하라는 요구가 거세다. 우울증, 번아웃, ADHD에 대한 인식이 느리지만 꾸준히 변화 중인 가운데 환자가 스스로 말하기 어려운 질병은 여전히 낙인과 배제 속에서, 소문과 공포 속에서 고립되어 있다. 7월29일 개봉한 <어떻게 해야 했을까?>는 감독 후지노 도모아키가 자신의 누나 마사코에게 조현병 증상이 나타난 후 20년간 가족의 삶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영화는 개봉 전부터 입소문을 탔으며 8월10일 기준, 개봉 12일 만에 누적관객 5만명을 돌파했다. ‘의대에 진학할 만큼 총명하고 다정했던 누나’와 병이 악화한 모습의 대비, 문에 걸린 자물쇠 같은 이미지, 의사인 부모가 치료를 거부하고 딸을 집에 가두었다는 스토리는 압도적이다. 자극적이다. 뚜껑을 열어보면, 이렇게 잘 지은 제목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영화의 질문에 동참하게 된다. “아니 근데 진짜…어떻게 해야 했을까?”
영화의 타임라인이자 실제 가족의 삶은 다음과 같다. 의학·약리학 연구자였던 어머니와 아버지는 결혼 후 1958년 누나 마사코를 낳는다. 1966년, 여덟 살 터울의 감독 도모아키가 태어난다. 1983년, 의대에 진학해 해부실습을 마친 마사코가 조현 발작을 일으킨다. 아버지는 마사코를 병원에 데려가지만 후배 의사로부터 “100% 정상”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주장한다. 이후 25년간 마사코는 집에만 머물고 조현병 증세가 악화한다. 감독이 성인이 된 후 영상과 음성으로 가족을 기록하며 누나의 치료를 권하지만 양친은 서로 핑계를 대며 회피한다. 2008년, 어머니가 치매 증상을 보이면서 이중의 돌봄이 필요해지자 아버지는 비로소 누나의 입원 치료에 동의한다. 누나는 다행히 잘 맞는 약을 찾아 3개월 만에 퇴원하고 놀랍도록 호전된다. 알 수 없는 말을 쏟아내던 예전과 달리 요리나 자기 위생 같은 일상생활은 물론 평범한 의사소통도 가능하다. 25년과 3개월. 뼈저린 낙차다. 이후 어머니가 작고하고, 누나는 가족과 함께 살아가다가 2021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2024년 영화가 일본에서 개봉한 후 사망했다.
영화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나 VOD 공개 없이 극장에서만 상영된다. 가족의 초상권 문제도 있고, 아버지는 생전에 영화로 만든다는 것에 동의하긴 했지만 당시 96세였기에 그 결정을 얼마나 믿어도 될지 모르겠다고 감독은 말한다. ‘그럼에도’ 모든 것은 스스로가 감당할 일이라고 말하는 감독은 평생에 걸친 내밀하고 수치스럽기도 한 기록을 자기변명 없이 공개했다. 여기에는 두 가지 계기가 있다. 첫 번째는 아버지가 누나 마사코의 장례식장에서 추도사를 읊으며 “그 나름대로는 충만한 인생이었을지도 모른다”고 한 말이 가슴에 걸렸다고. 두 번째는 몇 년 전 일본에서 집에 갇혀 있던 발달장애아가 굶어 죽은 사건을 접한 뒤 자기 가족의 ‘실패 사례’가 세상에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한다. 영화가 자백하는 가족의 문제는 명백하다. 의사였던 양친의 지식과 자존심이, 누나의 질병을 부정하고 은폐했다. 마사코가 기본적인 소통조차 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양친은 매년 서점에서 의사 국가고시 시험 문제집을 사 왔다. 감독은 가족이라도 형제자매에게는 별다른 권한이 없어 무력하다. 그리고 이 모든 맥락은 사회적 구조 및 시대적 배경과 밀접하다.
마사코의 어머니는 홋카이도 개척민의 후손이자 1950년대에 여자의과대학을 졸업한 엘리트이다. 결혼 후 질병을 앓다가 회복되었다. 당시의 경제적·문화적 상황과 여성의 지위를 고려하면 굉장한 특권층에 해당한다. 지금까지 굳건한 ‘아이의 질병은 어머니의 잘못’이라는 잘못된 통념으로부터 자기를 방어하려는 절박함이, 딸의 병을 ‘설탕물 먹이면 나아지는’ 증상 정도로 왜곡하고 축소하지 않았나 싶다. 아버지 또한 딸이 국가고시의 부담 때문에 병을 가장한다고 생각하는 완고한 사람이다. 여기에 정신질환자를 낙인찍고 배척하는 인식, 엘리트로 이루어진 정상가정의 그림을 절대화하는 이데올로기, 일본 특유의 메이와쿠(迷惑·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행동)를 경계하는 문화가 함께 맞물려 돌아간다. 지금보다 훨씬 열악한 정신의료복합체의 한계 또한 고려해야 한다. 1984년 일본에서는 정신병원에서 환자들이 직원에게 폭행당해 사망한 우쓰노미야 병원 사건으로 병원의 불법 감금이나 폭행, 부실한 의료 행위가 공론화되었다. 누나가 정상이라고 주장하던 아버지 역시 누나가 마시는 차에 몰래 향정신성 약물을 탈 만큼 치료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었지만 의료 시스템을 믿지 못했던 듯하다. 누나에게 잘 들었던 약물이 개발된 것 또한 누나가 발병한 지 13년이 지난 후였다. 상용화 12년 후에야 누나가 약물치료를 받은 것은 잘못이지만, 백신을 불신하는 사람들이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세력을 형성한 2026년에 모든 사태의 책임을 가족에게만 돌릴 수 없다는 뜻이다. 우리나라도 아직 정신과 약을 불신하고 경계하는 분위기가 강해서, 당사자들이 투약을 방해하는 가족과 충돌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영화는 처음부터 조현병의 발병 원인을 규명하거나, 조현병이 어떤 병인지 알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고 밝힌다. 그러나 편집된 영상이나 감독이 누나를 대하는 방식을 보면 치열하게 이 병을 공부하고 탐구하고 고민한 것이 드러난다. 조현병은 입원 치료 후에도 신화처럼 깨끗이 완치되지 않고 마사코라는 사람과 공존한다. 이제 누나는 가족들과 불꽃놀이를 보며 아름다움에 감탄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칼 든 사람이 집에 있다는 망상으로 경찰에 신고한다. 아침에 차려야 하는 식사를 늦은 밤에 엉망진창으로 차려둔다. 섣불리 ‘호전된 누나’를 치유나 극복의 서사로 낙관하고 소비하지 않겠다는 선택이다. 그런가 하면 마사코는 조현병이 극심할 때 점성술을 좋아하던 취향을 평생 유지한다. 가장 아플 때도 그 사람을 그 사람답게 만드는 어떤 조각이 존재하는 장면은 누군가를 그 자체로 질환과 동일시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이전의 아픈 사람이 추방해야 할 타자가 아니라 연결된 하나라는 사실을 환기한다. 욕구나 상태를 스스로 설명하기 힘든 누나가 어떤 사람인지 다양하게 조명하려 한 흔적이다.
한 가족의 기나긴 삶을 101분으로 편집된 영상으로 보면서 현재의 관점으로 질타하기는 쉽고 간편하다. “어떻게 딸을 가둘 수가 있어? 회피형인 듯.” 동시에 그것은 영화가 던지는 용감하고 아픈 질문, “어떻게 해야 했을까?”를 가장 나쁘게 배반하는 방식이다. 영화에서 어려워지는 지점은 강렬한 모순이다. 문제를 숨기는 방식이 가장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선택을 하는 인간의 모순. 내가 의사인데, 내 딸은 치유할 수 없다는 모순. 젊은 여성인 딸을 보호하려면 자유를 박탈하고 자물쇠를 걸어야 하는 모순. 누나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 수 없어서 최선을 다하고도 돌본 자가 죄책감을 느끼는 모순. 예순 넘은 딸의 죽은 얼굴을 아기처럼 톡톡 두드릴 만큼 귀여워하면서도 마지막까지 함께 썼다는 논문을 관에 넣어주면서 자신이 바란 틀에 딸을 욱여넣는 아버지의 모순. 그런데 그 폭력적이고 일방적인 사랑이, 거의 4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가족의 힘만으로 지난한 돌봄을 가능하게 했다는 모순. 사랑과 돌봄과 고통과 좌절의 연쇄작용. 감독은 자기 가족이 실패 사례라고 말하지만, 이런 현실에서 누가 감히 성공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가족 단위에 전가된 환자의 돌봄은 필연적으로 실패한다.
정말로 어떻게 해야 했을까? 후지노 가족의 삶을 돌이킬 수는 없지만 지금을 살아가는 마사코와 가족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질문은 현재진행형이다. 40년간 조현병을 앓은 삼촌을 ‘죽을힘을 다해’ 감춰온 가족의 이야기를 쓴 이하늬 작가는 <나의 조현병 삼촌>(아몬드, 2021)에서 당사자에게 가족의 지지가 필요하듯, 정신질환자를 돌보는 가족에게도 기댈 곳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국가적 지원과 지역사회의 협업을 요구하면서, 함부로 ‘광인’의 영상을 찍으며 구경하지 않기를 선택할 수 있다. 정신질환자들을 격리하고 치워버려야 한다는 말 대신 그 삶이 또 나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고민하는 참여부터 시작할 수도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빌 게이츠 테라파워 이사회 의장(사진)을 만나 소형모듈형원자로(SMR) 등 인공지능(AI) 시대 전력 공급 방안에 대해 협력 가능성을 논의했다. 1년 새 두 번째 회동인데, 두 회사의 관계가 단순 투자 관계를 넘어 구체적인 사업과 프로젝트를 위한 ‘전략적 파트너’로 격상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최 회장과 게이츠 의장은 지난 14일 저녁 서울 종로구에 있는 선혜원에서 만나 차세대 원전과 AI 데이터센터(AI DC) 전력 수요, 글로벌 에너지 협력 가능성을 논의했다. 게이츠 의장은 지난해 8월 방한에서도 SK서린빌딩에서 최 회장과 만나 SMR 등 미래 에너지를 주제로 논의한 적이 있다.
SK이노베이션과 SK(주)는 테라파워가 아직 상용 SMR을 선보이기 전인 2022년, 테라파워에 총 2억5000만달러를 공동 투자해 2대 주주에 올랐다. 현재 테라파워는 미국 와이오밍주에서 비경수형 SMR인 ‘나트륨’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나트륨’은 테라파워가 개발한 4세대 소듐냉각고속로에 기반한 SMR로, 열저장 설비를 갖춰 원전의 ‘경직성’을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3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로부터 상업용 첨단원자로 최초로 건설 허가도 받았다.
SK이노베이션은 테라파워의 나트륨 SMR 기술을 AI DC 가동에 필요한 하나의 전력 모델로 만들 구상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SK이노베이션은 액화천연가스(LNG)발전설비·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전력 인프라 역량을 갖추고 있는데, 여기에 테라파워의 SMR 기술을 더하면 AI DC를 겨냥한 하나의 전력 공급 모델을 제공할 수 있다. AI DC 초기에는 LNG발전과 ESS로 전력을 공급하고, 중장기적으로는 SMR을 통해 무탄소 기저 전원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LNG·ESS·SMR을 묶게 되면) 데이터센터로서는 전력 생산과 저장, 공급 안정성을 하나의 사업모델 안에서 확보할 수 있다”며 “(회사로서도) 단순한 발전사업자가 아니라 고객의 전력 수요에 맞춰 발전원과 저장장치를 조합할 수 있는 에너지솔루션 사업자로 변신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당장 대통령이 정치권력으로 ‘기업의 팔을 비튼다’는 비판이 나왔다. 모양새를 보면 일견 타당한 지적 같지만 나는 그래도 메가프로젝트 추진을 큰 틀에서 지지하기로 했다. 국가 경쟁력 지속과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이 거대한 프로젝트의 방향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수많은 이해관계가 부딪치는 프로젝트를 성사시키려면 정권의 권력 행사는 불가피한 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걱정은 남아 있다. 방향이 아니라 ‘속도’ 때문이다. 5년마다 대통령 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한계가 있어 그렇겠지만 정부와 여당은 유독 이 사안에서 속도를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0일 청와대에서 메가프로젝트 민관 합동 제2차 점검회의를 주재하며 아예 “속도전을 넘어서 전격전을 치러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속도전 내지는 전격전 속에서 노동과 환경이라는 가치는 속절없이 뒷전으로 밀리는 중이다.
메가프로젝트 ‘방향’은 맞지만노동·환경 가치 뒷전으로 밀린정부의 ‘속도전’은 우려스러워규제 완화가 ‘선례’ 되면 안 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노동 분야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6월 국회에 보고한 특별법 잠정안에는 파견 대상 업무 확대, 기간제 사용 기간을 2년에서 최대 4년으로 늘리는 방안, 소득 상위 3%에 해당하는 관리자·연구개발자에게 주 52시간 상한과 각종 수당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 이른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 기간을 1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는 방안 등이 담겼다. 산술적으로 16주 연속 주 80시간 노동도 가능해지는 설계다. 이는 노동부 스스로 정한 과로사 인정 기준을 훌쩍 뛰어넘는다.
그러나 이를 추진할 근거는 빈약해 보인다. 정작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반도체 기업은 그간 특별연장근로 제도를 거의 활용하지 않았다. 기존 제도 안에서도 기업은 충분히 성과를 내고 있다는 뜻이다. 반면 노사 협상력이 약한 중소 협력업체 노동자들에게는 장시간 노동이 고스란히 전가될 가능성이 크다. 기간제 사용 기간 연장 역시 마찬가지다.
환경 쪽 우려도 가볍지 않다. 이 대통령은 앞서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점검회의에서 “같은 지역인데 환경영향평가를 또 할 필요가 있느냐”며 절차 단축을 직접 주문했다. 지난 10일에는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이 “각종 인허가와 환경영향평가 등을 단축하겠다”고 다시 밝혔다.
계절별 변화를 반영해야 하는 환경영향평가의 취지를 생각하면, 이는 평가 자체를 요식행위로 만들 위험이 있다. 산업단지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는 특례법이 메가특구에 그대로 적용되면 여러 후보지를 비교 검토하는 본래의 평가 과정 없이 이미 정해진 부지와 사업 규모에 맞춰 형식적인 절차만 남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장 걱정스러운 지점은 이런 것들이 쌓여 ‘선례’가 되는 것이다. 지난달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은 메가특구에서 노동시간 규제를 풀어주면 판교나 용인의 다른 기업들도 형평성을 내세워 같은 특례를 요구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실제로 이미 통과된 반도체특별법도 메가특구 수준에 맞춰 다시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경영계 일각에서 나온다.
균형발전과 첨단산업 육성은 한국이 지속하는 데 필요한 핵심과제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정부가 스스로 표방해온 노동존중과 환경적 지속 가능성이라는 원칙을 저버린다면 그 의미는 퇴색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노동부와 기후에너지환경부는 메가프로젝트 앞에서만은 당분간 ‘모든 정부는 원팀’이라는 생각을 버리기 바란다. 노동부와 기후부는 장기적인 성공을 염두에 두고 ‘레드팀’을 자임하고 노동과 환경이란 가치를 지켜내야 한다. 그래야 최근 어떤 기관장처럼 뒤늦게 “드러누워서라도 막았어야 했다”고 후회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1호선 광인’은 수도권 거주자가 아니더라도 꽤 유명한 밈이다. 실제로는 1호선이 아니지만 단소를 들고 지하철에서 사람들을 위협하는 일명 ‘단소 살인마’ 영상에 무한도전 스타일의 자막을 입힌 재가공 영상이 상반기에 큰 인기를 끌었다. ‘광인(狂人)’이나 ‘돌아이’는 미친 사람을 일컫는 말이었으나 최근에는 독특한 사람, 애호가, 남보다 좀 더 열정적인 사람 정도로 순화되어 애칭처럼 쓰인다. 하지만 정작 ‘진짜 미친 사람’에게는 그런 관용과 애정이 허용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모습은 즉각 영상으로 남아 호기심과 경악의 놀이터가 되고, 어쩌다 정신질환자가 범죄를 저지르면 병력에 모든 관심이 집중되어 그들을 사회로부터 격리하라는 요구가 거세다. 우울증, 번아웃, ADHD에 대한 인식이 느리지만 꾸준히 변화 중인 가운데 환자가 스스로 말하기 어려운 질병은 여전히 낙인과 배제 속에서, 소문과 공포 속에서 고립되어 있다. 7월29일 개봉한 <어떻게 해야 했을까?>는 감독 후지노 도모아키가 자신의 누나 마사코에게 조현병 증상이 나타난 후 20년간 가족의 삶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영화는 개봉 전부터 입소문을 탔으며 8월10일 기준, 개봉 12일 만에 누적관객 5만명을 돌파했다. ‘의대에 진학할 만큼 총명하고 다정했던 누나’와 병이 악화한 모습의 대비, 문에 걸린 자물쇠 같은 이미지, 의사인 부모가 치료를 거부하고 딸을 집에 가두었다는 스토리는 압도적이다. 자극적이다. 뚜껑을 열어보면, 이렇게 잘 지은 제목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영화의 질문에 동참하게 된다. “아니 근데 진짜…어떻게 해야 했을까?”
영화의 타임라인이자 실제 가족의 삶은 다음과 같다. 의학·약리학 연구자였던 어머니와 아버지는 결혼 후 1958년 누나 마사코를 낳는다. 1966년, 여덟 살 터울의 감독 도모아키가 태어난다. 1983년, 의대에 진학해 해부실습을 마친 마사코가 조현 발작을 일으킨다. 아버지는 마사코를 병원에 데려가지만 후배 의사로부터 “100% 정상”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주장한다. 이후 25년간 마사코는 집에만 머물고 조현병 증세가 악화한다. 감독이 성인이 된 후 영상과 음성으로 가족을 기록하며 누나의 치료를 권하지만 양친은 서로 핑계를 대며 회피한다. 2008년, 어머니가 치매 증상을 보이면서 이중의 돌봄이 필요해지자 아버지는 비로소 누나의 입원 치료에 동의한다. 누나는 다행히 잘 맞는 약을 찾아 3개월 만에 퇴원하고 놀랍도록 호전된다. 알 수 없는 말을 쏟아내던 예전과 달리 요리나 자기 위생 같은 일상생활은 물론 평범한 의사소통도 가능하다. 25년과 3개월. 뼈저린 낙차다. 이후 어머니가 작고하고, 누나는 가족과 함께 살아가다가 2021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2024년 영화가 일본에서 개봉한 후 사망했다.
영화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나 VOD 공개 없이 극장에서만 상영된다. 가족의 초상권 문제도 있고, 아버지는 생전에 영화로 만든다는 것에 동의하긴 했지만 당시 96세였기에 그 결정을 얼마나 믿어도 될지 모르겠다고 감독은 말한다. ‘그럼에도’ 모든 것은 스스로가 감당할 일이라고 말하는 감독은 평생에 걸친 내밀하고 수치스럽기도 한 기록을 자기변명 없이 공개했다. 여기에는 두 가지 계기가 있다. 첫 번째는 아버지가 누나 마사코의 장례식장에서 추도사를 읊으며 “그 나름대로는 충만한 인생이었을지도 모른다”고 한 말이 가슴에 걸렸다고. 두 번째는 몇 년 전 일본에서 집에 갇혀 있던 발달장애아가 굶어 죽은 사건을 접한 뒤 자기 가족의 ‘실패 사례’가 세상에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한다. 영화가 자백하는 가족의 문제는 명백하다. 의사였던 양친의 지식과 자존심이, 누나의 질병을 부정하고 은폐했다. 마사코가 기본적인 소통조차 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양친은 매년 서점에서 의사 국가고시 시험 문제집을 사 왔다. 감독은 가족이라도 형제자매에게는 별다른 권한이 없어 무력하다. 그리고 이 모든 맥락은 사회적 구조 및 시대적 배경과 밀접하다.
마사코의 어머니는 홋카이도 개척민의 후손이자 1950년대에 여자의과대학을 졸업한 엘리트이다. 결혼 후 질병을 앓다가 회복되었다. 당시의 경제적·문화적 상황과 여성의 지위를 고려하면 굉장한 특권층에 해당한다. 지금까지 굳건한 ‘아이의 질병은 어머니의 잘못’이라는 잘못된 통념으로부터 자기를 방어하려는 절박함이, 딸의 병을 ‘설탕물 먹이면 나아지는’ 증상 정도로 왜곡하고 축소하지 않았나 싶다. 아버지 또한 딸이 국가고시의 부담 때문에 병을 가장한다고 생각하는 완고한 사람이다. 여기에 정신질환자를 낙인찍고 배척하는 인식, 엘리트로 이루어진 정상가정의 그림을 절대화하는 이데올로기, 일본 특유의 메이와쿠(迷惑·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행동)를 경계하는 문화가 함께 맞물려 돌아간다. 지금보다 훨씬 열악한 정신의료복합체의 한계 또한 고려해야 한다. 1984년 일본에서는 정신병원에서 환자들이 직원에게 폭행당해 사망한 우쓰노미야 병원 사건으로 병원의 불법 감금이나 폭행, 부실한 의료 행위가 공론화되었다. 누나가 정상이라고 주장하던 아버지 역시 누나가 마시는 차에 몰래 향정신성 약물을 탈 만큼 치료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었지만 의료 시스템을 믿지 못했던 듯하다. 누나에게 잘 들었던 약물이 개발된 것 또한 누나가 발병한 지 13년이 지난 후였다. 상용화 12년 후에야 누나가 약물치료를 받은 것은 잘못이지만, 백신을 불신하는 사람들이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세력을 형성한 2026년에 모든 사태의 책임을 가족에게만 돌릴 수 없다는 뜻이다. 우리나라도 아직 정신과 약을 불신하고 경계하는 분위기가 강해서, 당사자들이 투약을 방해하는 가족과 충돌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영화는 처음부터 조현병의 발병 원인을 규명하거나, 조현병이 어떤 병인지 알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고 밝힌다. 그러나 편집된 영상이나 감독이 누나를 대하는 방식을 보면 치열하게 이 병을 공부하고 탐구하고 고민한 것이 드러난다. 조현병은 입원 치료 후에도 신화처럼 깨끗이 완치되지 않고 마사코라는 사람과 공존한다. 이제 누나는 가족들과 불꽃놀이를 보며 아름다움에 감탄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칼 든 사람이 집에 있다는 망상으로 경찰에 신고한다. 아침에 차려야 하는 식사를 늦은 밤에 엉망진창으로 차려둔다. 섣불리 ‘호전된 누나’를 치유나 극복의 서사로 낙관하고 소비하지 않겠다는 선택이다. 그런가 하면 마사코는 조현병이 극심할 때 점성술을 좋아하던 취향을 평생 유지한다. 가장 아플 때도 그 사람을 그 사람답게 만드는 어떤 조각이 존재하는 장면은 누군가를 그 자체로 질환과 동일시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이전의 아픈 사람이 추방해야 할 타자가 아니라 연결된 하나라는 사실을 환기한다. 욕구나 상태를 스스로 설명하기 힘든 누나가 어떤 사람인지 다양하게 조명하려 한 흔적이다.
한 가족의 기나긴 삶을 101분으로 편집된 영상으로 보면서 현재의 관점으로 질타하기는 쉽고 간편하다. “어떻게 딸을 가둘 수가 있어? 회피형인 듯.” 동시에 그것은 영화가 던지는 용감하고 아픈 질문, “어떻게 해야 했을까?”를 가장 나쁘게 배반하는 방식이다. 영화에서 어려워지는 지점은 강렬한 모순이다. 문제를 숨기는 방식이 가장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선택을 하는 인간의 모순. 내가 의사인데, 내 딸은 치유할 수 없다는 모순. 젊은 여성인 딸을 보호하려면 자유를 박탈하고 자물쇠를 걸어야 하는 모순. 누나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 수 없어서 최선을 다하고도 돌본 자가 죄책감을 느끼는 모순. 예순 넘은 딸의 죽은 얼굴을 아기처럼 톡톡 두드릴 만큼 귀여워하면서도 마지막까지 함께 썼다는 논문을 관에 넣어주면서 자신이 바란 틀에 딸을 욱여넣는 아버지의 모순. 그런데 그 폭력적이고 일방적인 사랑이, 거의 4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가족의 힘만으로 지난한 돌봄을 가능하게 했다는 모순. 사랑과 돌봄과 고통과 좌절의 연쇄작용. 감독은 자기 가족이 실패 사례라고 말하지만, 이런 현실에서 누가 감히 성공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가족 단위에 전가된 환자의 돌봄은 필연적으로 실패한다.
정말로 어떻게 해야 했을까? 후지노 가족의 삶을 돌이킬 수는 없지만 지금을 살아가는 마사코와 가족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질문은 현재진행형이다. 40년간 조현병을 앓은 삼촌을 ‘죽을힘을 다해’ 감춰온 가족의 이야기를 쓴 이하늬 작가는 <나의 조현병 삼촌>(아몬드, 2021)에서 당사자에게 가족의 지지가 필요하듯, 정신질환자를 돌보는 가족에게도 기댈 곳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국가적 지원과 지역사회의 협업을 요구하면서, 함부로 ‘광인’의 영상을 찍으며 구경하지 않기를 선택할 수 있다. 정신질환자들을 격리하고 치워버려야 한다는 말 대신 그 삶이 또 나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고민하는 참여부터 시작할 수도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빌 게이츠 테라파워 이사회 의장(사진)을 만나 소형모듈형원자로(SMR) 등 인공지능(AI) 시대 전력 공급 방안에 대해 협력 가능성을 논의했다. 1년 새 두 번째 회동인데, 두 회사의 관계가 단순 투자 관계를 넘어 구체적인 사업과 프로젝트를 위한 ‘전략적 파트너’로 격상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최 회장과 게이츠 의장은 지난 14일 저녁 서울 종로구에 있는 선혜원에서 만나 차세대 원전과 AI 데이터센터(AI DC) 전력 수요, 글로벌 에너지 협력 가능성을 논의했다. 게이츠 의장은 지난해 8월 방한에서도 SK서린빌딩에서 최 회장과 만나 SMR 등 미래 에너지를 주제로 논의한 적이 있다.
SK이노베이션과 SK(주)는 테라파워가 아직 상용 SMR을 선보이기 전인 2022년, 테라파워에 총 2억5000만달러를 공동 투자해 2대 주주에 올랐다. 현재 테라파워는 미국 와이오밍주에서 비경수형 SMR인 ‘나트륨’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나트륨’은 테라파워가 개발한 4세대 소듐냉각고속로에 기반한 SMR로, 열저장 설비를 갖춰 원전의 ‘경직성’을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3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로부터 상업용 첨단원자로 최초로 건설 허가도 받았다.
SK이노베이션은 테라파워의 나트륨 SMR 기술을 AI DC 가동에 필요한 하나의 전력 모델로 만들 구상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SK이노베이션은 액화천연가스(LNG)발전설비·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전력 인프라 역량을 갖추고 있는데, 여기에 테라파워의 SMR 기술을 더하면 AI DC를 겨냥한 하나의 전력 공급 모델을 제공할 수 있다. AI DC 초기에는 LNG발전과 ESS로 전력을 공급하고, 중장기적으로는 SMR을 통해 무탄소 기저 전원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LNG·ESS·SMR을 묶게 되면) 데이터센터로서는 전력 생산과 저장, 공급 안정성을 하나의 사업모델 안에서 확보할 수 있다”며 “(회사로서도) 단순한 발전사업자가 아니라 고객의 전력 수요에 맞춰 발전원과 저장장치를 조합할 수 있는 에너지솔루션 사업자로 변신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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