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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검사출신변호사 [사설]국회에서 5·18 폄훼 토론회 연 이진숙, 이러려고 의원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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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이이
댓글 0건 조회 1회 작성일 26-08-16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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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검사출신변호사 이진숙 국민의힘 의원이 13일 국회도서관에서 ‘새역사국민운동’과 5·18민주화운동을 폄훼하는 토론회를 열었다. 참석자들은 토론회에서 5·18을 “소요사태”로 규정하고 “광주를 고립시켜야 한다”는 등 5·18의 가치를 모독하는 망언을 쏟아냈다. 새역사국민운동은 5·18에 대한 국가폭력의 책임을 부정하고,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을 “대한민국 정체성을 흔드는 일”이라고 주장해온 곳이다. 5·18을 격하하려는 세력을 끌어들여 국회를 역사 왜곡의 무대로 만든 이 의원은 이 사태에 엄중한 책임을 져야 한다.
이 의원은 “5·18은 특정 진영의 소유물이 되면 안 된다”며 “학자들 연구에 금기가 가해지면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침해될 것”이라고 했다. 토론회는 5·18 재조명이란 미명하에 5·18 왜곡을 학술 토론회로 포장한 행사나 다름없었다.
발제자로 나선 <반일종족주의> 공동 저자 이영훈 새역사국민운동 대표는 5·18을 “1980년 5월 광주에서 있었던 열흘간의 소요사태”라고 칭하며 “좌파 세력이 독점하고 있는 5·18 권력을 해체하고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요’는 다중이 폭행이나 협박 또는 파괴 행위를 하며 공공질서를 문란케 하는 것을 말한다. 수많은 시민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신군부의 총칼에 희생된 5·18을 한낱 소요사태로 격하한 것이다. 토론회에서는 또 “호남과 주사파는 서로 약점을 커버해주는 순망치한 관계” 같은 기괴한 주장들이 쏟아지면서 객석에서 고성과 항의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이 의원의 행태는 그의 뒤틀린 역사관의 연장선이라 볼 수 있다. 방통위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당시 5·18 폄훼 글에 ‘좋아요’를 눌러 공분을 샀고, 자신의 유튜브에 ‘5·18 단체는 이권단체’라는 영상을 올리더니 이젠 국회의원이라는 직함을 달고 헌법정신과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있다. 이 의원에게 행사 취소 지침을 내렸다지만, 행사 강행을 사실상 방관한 국민의힘도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5·18민주화운동은 이미 법적·역사적 평가가 확립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이정표다. 그런 5·18을 폄훼해온 반사회적 세력에 국회의 문을 열어준 것은 아무리 면책특권이 부여된 국회의원이라고 해도 도를 넘는 행위다. 국회에서 고작 이런 토론회를 벌이기 위해 국회의원이 됐는지 이 의원에게 묻고 싶다. 이 의원은 5·18 희생자와 국민 앞에 즉각 사죄해야 한다. 국민의힘은 이 의원에 대한 엄중한 징계 조치로 역사 왜곡에 관한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할 것이다.
거대한 캔버스에 사람의 몸이 뒤집혀 있다. 머리는 아래로, 다리는 허공을 향한다. 인물의 형상은 얼룩진 물감 속에서 흐트러져 있다. 게오르그 바젤리츠(1938~2026)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거꾸로 된 그림’이다. 하지만 이 강렬한 이미지 하나로 그의 작업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화면을 분절하고 손가락으로 물감을 바르고, 두 캔버스를 맞대 이미지를 찍어냈다. 독수리, 손과 발 같은 모티프를 평생 반복하면서도 그리는 방법은 끊임없이 바꿨다.
독일 신표현주의를 대표하는 거장 바젤리츠의 회화적 실험을 살필 수 있는 ‘게오르그 바젤리츠’가 세화미술관에서 막을 올렸다. 1960년대 초기작부터 생애 마지막 시기까지 회화·드로잉·조각 46점을 통해 약 60년에 걸친 예술 세계를 조망한다. 국내 미술관 개인전은 2007년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이후 19년 만이다.
전시는 지난 4월 바젤리츠가 별세하면서 뜻밖에 작가의 사후 회고전이 됐다. 미술관은 1년 넘게 바젤리츠 스튜디오와 전시를 준비했고 지난 4월 독일에서 작가의 인터뷰도 촬영했다. 그러나 약 3주 뒤인 4월30일 바젤리츠가 별세했다. 이번에 출품된 ‘골드 페인팅’은 그의 마지막 작업이 됐다.
1938년 독일 작센에서 태어난 바젤리츠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 성장했다. 동베를린에서 미술을 공부하다 퇴학당한 뒤 서베를린으로 옮겼다. 나치 독일이 일으킨 전쟁과 뒤이은 분단은 그의 작업 세계를 이루는 중요한 배경이 됐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지배한 동독과 추상미술이 주도하던 서독 어느 쪽에도 자신을 맡기지 않았다. 사람과 풍경을 그리면서도 그것을 잘라내고 뒤집으며 자신만의 회화를 찾아갔다.
그 고민이 드러나는 초기작이 ‘나뉜 소 두 마리 I’(1966)다. 초록빛 화면 속 소들은 목가적으로 보이지만 몸은 잘리고 어긋나 있다. 바젤리츠가 1960년대 중반 시도한 ‘절편 회화’다. 전쟁과 분단을 환기하는 동시에, 대상을 하나의 온전한 형상으로 읽는 익숙한 방식을 흔들었다. 이러한 실험은 1969년부터 대상을 거꾸로 그리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분절과 역전은 구상과 추상, 역사 비판과 회화의 물질성 사이의 긴장을 드러내는 그의 핵심적인 조형 언어가 됐다.
바젤리츠의 화면에는 같은 모티프가 수십 년을 두고 반복된다. 가장 중요한 인물은 1962년 결혼한 아내 엘케다. ‘프랑스에서의 엘케 II’(2019)에서는 검은 화면 위 분홍빛 몸이 거꾸로 떠 있고 윤곽은 번지고 흐트러진다. 물감을 바른 캔버스에 다른 캔버스를 맞대 찍어내는 전사 기법을 썼다. 늙어가는 몸과 그 몸을 바라보는 작가 자신의 시간을 함께 담아낸다.
손과 발, 독수리도 끈질기게 반복된다. ‘에켈리’(2004)에서는 구두를 신은 다리 아래로 숲이 거꾸로 펼쳐지고, ‘나중에 구두가 발견되었다’(2023)의 옅은 푸른 화면에는 독수리가 거꾸로 떠 있다. 독일에서 힘과 권위의 상징이던 독수리를 추락시켜, 어두운 역사와 그 상흔을 환기하는 이미지로 바꿨다.
2000년대 ‘리믹스’ 연작에선 자신의 수십 년 전 그림까지 다시 불러냈다. ‘도약(리믹스)’(2007)은 황폐한 풍경 속 상처 입은 남성을 그렸던 1960년대 ‘영웅’ 연작을 재해석한 작품이다. 무겁고 거칠었던 인물은 밝은 색과 빠른 붓질로 가벼워졌고, 여성용 구두를 신겼다. 같은 모티프를 되풀이하면서도 표현 방법을 거듭 바꾼 그의 작업 방식을 보여준다.
전시의 마지막은 온통 금빛이다. 두 점의 ‘골드 페인팅’은 허공에 떠 있는 듯 찬란하지만, 그 위의 인물은 가느다랗고 끊어질 듯한 선으로 형체를 유지한다. 영원성을 떠올리게 하는 금빛은 오히려 사라져가는 육체의 유한함을 도드라지게 한다. 바젤리츠의 작품은 아트페어에서 20억~30억원대부터 거래되며, 이번 전시 보험가액도 약 1500억원에 달한다. 바젤리츠를 지금의 자리에 세운 것은 역사적 기억과 회화 자체에 대한 탐구 사이에서 자신만의 해법을 찾고, 그마저 끊임없이 갱신해온 60년의 실험이었을 것이다. 그는 생전 마지막 인터뷰에서 말했다. “새로운 것은 우선 저 자신에게 새로워야 했어요.” 전시는 12월2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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