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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이승윤의 노동과 삶]우리가 보지 않기로 한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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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이이
댓글 0건 조회 0회 작성일 26-08-14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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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 말이면 표지와 등이 플라스틱으로 제본된 논문과 자료집이 수십 권씩 쌓인다. 바쁘다는 핑계로 한번은 그것들을 한꺼번에 종이 폐기물로 내놓았더니, 남편이 도로 끄집어내 하나씩 뜯어내며 핀잔했다. 당신이 열심히 연구하는 그 노동자가 결국 이걸 다 분리해야 하는 것이잖아. 부끄러울 일은 며칠 뒤 또 있었다. 폐기물처리 노동자의 불안정성에 대해 자문한다는 취재기자를 통해, 나는 쓰레기 소각장과 재활용 선별장이 땅 밑에 있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됐다.
하남시 유니온파크는 2015년 준공된 국내 최초의 복합 지하 환경기초시설이다. 지하에 쓰레기 소각, 선별, 음식물 및 하수처리시설이 들어서 있고, 지상에는 근사한 전망대와 편의시설, 푸른 잔디가 있다. 주민들은 땅 밑에 ‘숨겨둔’ 소각장 위에서 운동하고 반려견도 산책시킨다. 서울 중구에는 1999년에 이미 지하 재활용 처리장이 문을 열었고, 은평구와 강동구도 마찬가지로 지하화했다.
땅 밑의 선별장에서는 수거차가 쏟아낸 뒤섞인 쓰레기가 컨베이어벨트 위를 지나가고, 노동자들이 그 앞에서 페트병과 비닐과 캔을 손으로 골라낸다. 내가 슬쩍 내보내려던 플라스틱 표지도 그 벨트 위를 지나갔을 것이다. 음식물처리시설에서는 파쇄와 탈수와 건조가 이어지고, 소각시설에서는 누군가가 쓰레기를 소각로에 밀어 넣고 또 누군가는 그 고온의 설비를 정비한다.
한국 여름이 얼마나 더운지는 모두가 안다. 그런데 그 여름을 창문 없는 지하에서 온종일 일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일부 설비는 45도까지 오른다고 한다. 땀으로 빠져나간 염분을 채우려 소금을 먹고, 안전 때문에 긴소매 작업복은 벗을 수 없다. 짧은 휴식시간에 지하 4층에서 지상까지 올라갔다 오는 시간이 아까워 그대로 주저앉는다고 했다.
2026년부터 수도권에서는 생활쓰레기 직매립이 금지되고, 발생한 곳에서 쓰레기를 처리하는 원칙이 시행됐다. 매립지의 토양오염을 줄이는 일은 필요했고, 한곳에 집중돼 있던 부담을 나누자는 취지도 정당하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우리는 환경을 위해 매립을 반대하고 분리배출도 성실히 한다. 그렇게 필요해진 재활용시설과 소각장은 ‘어딘가’에 지어져야 하는데, 그 어딘가는 어디인가. 그래서 나온 해법이 ‘지하화’였다. 서울시와 수원시가 준비 중인 쓰레기처리시설 역시 같은 방식이다. 갈등은 해소된 것이 아니라 땅 아래로 내려갔을 뿐이다.
국가는 눈에 보이는 오염, 냄새와 소음과 먼지를 관리하는 데는 유능하다. 그것이 시민의 지지를 얻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환경에 전면적으로 투자하는 일 앞에서는 멈춘다. 불안정 노동자의 목소리는 힘을 갖기 어렵고, 비용 절감에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결과는? 줄지 않는 쓰레기를 다만 보이지 않게 할 뿐이다.
산업안전보건 기준은 환기가 불충분하고 화재 위험이 있는 곳을 ‘밀폐 공간’으로 정해 엄격한 안전조치를 요구한다. 그러나 폐기물관리법에는 지하화에 따른 노동안전 기준이 매우 부족하다. 오염된 공기는 ‘정화’ 장치를 거쳐 지상으로 나가지만 지하에서 일하는 사람을 위한 ‘환기’ 설비는 미흡하다고 현장 노조는 말한다. 이 얼마나 비대칭적인가. 위험은 한 번 더 옮겨진다. 생활폐기물처리시설 노동자의 약 61%가 민간위탁 소속으로, 3년짜리 계약직으로 일한다. 위탁업체가 바뀔 때마다 고용도 연차도 끊긴다.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서, 나흘 이상 치료받은 노동자 가운데 72%는 산업재해를 신청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분리배출을 마친 뒤의 뿌듯함, 시설 위의 친환경적인 공원, 눈앞에서 사라진 쓰레기. 시민에게는 효능감을, 국가에는 정당성을 주지만 쓰레기 총량은 뚜렷이 줄지 않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노동자에게 남는다.
기후위기에 대처하는 진짜 전환은 그 부담과 불편을 함께 지겠다는 사회적 연대 없이는 불가능하고, 그 연대에서 폐기물처리 노동자를, 나아가 우리 사회의 노동자를 빼놓고는 어디에도 갈 수 없다. 지하 쓰레기처리시설의 노동환경과 안전기준을 법에 명시하는 일, 민간위탁 구조를 다시 들여다보고 공공 일자리로 만드는 일, 무엇보다 쓰레기를 줄이고 분리배출 이후 누군가의 손을 거쳐야 하는 그 과정에까지 관심을 두는 일부터다.
이 폭염 속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45도의 지하에서 우리의 깨끗함을 대신 감당하고 있다. 도시는 저절로 깨끗해지지 않는다. 땅 아래의 여름을 우리는 보지 않기로 했을 뿐.
한낮 기온이 39도에 육박하던 지난 6일 오후 대구 도시철도 2호선 범어역에 설치한 ‘이동 노동자 쉼터’는 텅 빈 채 ‘개점 휴업’ 상태였다. 쉼터는 배달 라이더, 대리운전 기사 등 이동 노동자들을 위한 공간이다. 대구시는 이 거점형 쉼터를 지하철역 입구에서 한참 내려가야 하는 지하 3층에 설치했다.
쉼터 관리자는 “아직 홍보가 덜 돼서 방문자가 적은 것 같다”며 “하루 평균 5~6명의 노동자가 쉼터를 찾는다”고 말했다. 대부분 ‘콜’을 기다리는 대리운전 기사들이라고도 했다.
대구시는 올해 폭염에 대비해 거점형 이동 노동자 쉼터 3곳과 ‘연계형 쉼터’ 100곳을 조성했다. 연계형 쉼터는 모두 CU편의점이다. 하지만 이동 노동자들에게 편의점 내부는 ‘그림의 떡’이다.
11일 낮 편의점 앞에서 배달 콜을 기다리던 노동자 이모씨(29)는 “편의점을 연계형 쉼터로 개방했다고 해도 하루 종일 밖에서 배달 일을 하다 보면 온몸이 땀 범벅이 된다. 자칫 냄새를 풍길까 편의점에 들어가 쉴 수가 없다”고 말했다.
대구시가 매년 수억 원 예산을 들여 ‘이동 노동자 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들에게는 외면받고 있다. 접근성이 떨어지고, 쉼터로 기능하기 어려운 곳이 대부분이어서 ‘탁상행정’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대구시가 올해 마련한 이동 노동자 쉼터는 103곳이다. 이 중 3곳이 거점형 쉼터다. 기존 달서구 노동복지회관과 군위군 의흥시장에 이어 범어역 지하 3층 공간에 거점형 쉼터를 새로 추가했다. 나머지는 연계형 쉼터로 편의점이다.
대구시는 지난 3년간 10억원이 넘는 예산을 쉼터 조성 및 운영비로 투입했다. 여름철에는 편의점 모바일 쿠폰(5000원)과 얼음생수 등도 일부 지원한다.
업계는 대구시가 배달 라이더 등 이동 노동자들의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쉼터 숫자 채우기에 연연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올해 6월부터 운영에 들어간 범어역 쉼터 지상 공간에는 오토바이나 택배 차량을 주차할 공간이 없다. 범어역은 범어네거리 교차로 구간에 있어 차량 주·정차가 금지돼 있다. 지상에서 배달을 하다 지하 3층까지 내려가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지만 오토바이와 차량 주차에 대한 대안도 대구시는 갖고 있지 않다.
배달 라이더들이 고객이 오가는 편의점에서 쉬는 것도 현실성이 떨어진다. 이날 만난 편의점 점주 박모씨는 “내 소유의 편의점 2곳이 모두 연계형 쉼터로 지정돼 있지만 배달 라이더들이 가게 안까지 들어와 쉬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나 같은 경우는 편하게 쉬고 가라고 하지만 눈치가 보이는지 금방 나간다”고 말했다.
이영학 전국이륜차배달라이더협회 대구지회장은 “물 한 잔이라도 눈치보지 않고 편히 쉴 수 있는 쉼터가 필요한데 대구의 쉼터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배달라이더의 노동 특성을 감안해 지상에 독립된 쉼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배달라이더협회에 따르면 대구 지역의 배달 라이더는 약 2만여 명에 달한다. 대리운전 기사의 약 2배 수준이다.
대구시 관계자는 “그간 이동노동자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 왔지만 미흡한 점도 있는 것 같다”며 “일부 거점형 쉼터 등 효율이 떨어지는 부분에 대해 개선점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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