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첩사 해체 후’ 국방방첩본부 등 3개 조직 출범…‘조사본부 수사권 집중’ 우려 해소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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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방첩사령부(방첩사) 해체에 따라 기존 방첩사 임무를 대신할 국방방첩본부와 국방보안지원단, 국방부 조사본부 내 안보수사단 등 3개 기관이 3일 공식 창설됐다. 방첩사 수사권을 모두 흡수한 국방부 조사본부는 수사권 집중에 대한 우려를 해소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국방부는 3일 안규백 장관 주관으로 경기 과천 본부에서 국방방첩본부 창설식을 열었다. 같은 날 보안지원단 창설식은 이두희 차관, 조사본부 안보수사단 창설식은 박정훈 조사본부장(준장) 주관으로 각각 열렸다.
안 장관은 이날 창설식에서 “오늘 우리가 결별하는 것은, 5·16 군사정변부터 12·12 쿠데타, 5·17 계엄, 12·3 내란까지 권력의 도구가 됐던 방첩 기관의 어두운 과거 전체”라며 “국방방첩본부 창설은 권력의 도구로 악용됐던 과거를 끝내고 국민의 군대를 재건하는 일대 분수령”이라고 말했다. 국방부는 12·3 내란 당시 주요 정치인 체포조를 꾸리는 등 핵심 역할을 한 방첩사를 지난달 31일 해체했다.
이번 개편으로 국방부 산하에는 국방방첩본부와 국방보안지원단이, 국방부 조사본부 산하에는 안보수사대와 사이버과학수사단이 새로 신설됐다. 국방방첩본부와 안보수사단, 사이버과학수사단은 경기 과천의 옛 방첩사 부지를 사용하며, 보안지원단은 서울 용산구 국방부 별관에 들어선다.
국방방첩본부는 기존 방첩사 폐지 이후 방첩 기능만 따로 떼어내 만든 조직이다. 군 방첩정보 전문기구로서 대테러 방첩 대응 역량 강화, 방산 분야 군사기밀 유출 방지, 사이버 안보위협 대응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국방보안지원단은 군단급 이상 부대의 중앙보안감사와 보안사고 조사를 포함한 군내 보안 업무를 전담한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안보수사권을 넘겨받아 창설된 조직으로 간첩 행위와 군사기밀 유출, 이적행위 등 안보 범죄 수사를 전담한다. 조사본부는 디지털 포렌식 등 첨단 수사를 맡을 사이버과학수사단도 함께 신설했다. 국방부는 “첨단 수사기법을 활용해 날로 지능화·고도화되는 안보 범죄에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군 안팎에서는 조사본부 수사권 집중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조사본부가 기존 방첩사 내란·외환 수사권에 더해 안보수사 권한까지 넘겨받으면서 그간 분산되어 있던 수사 기능이 한 기관에 모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조사본부는 내·외부 감시 기능을 강화해 수사권 확대로 인한 권한 남용을 차단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조사본부는 수사 공정성을 감시하는 수사심의관실을 신설하고, 자정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감찰실과 법무실을 확대 개편했다고 밝혔다.
외부 통제 장치도 마련한다. 국가인권위원회 군인보호국과 협조 체계를 구축해 수사를 감시받는 한편, 감사실장직에 외부 고위직 감사공무원을 임명할 방침이다. 박정훈 조사본부장은 이날 취재진과 만나 “외부의 감시와 통제를 적극 수용해 조사본부의 권한이 비대해지거나 나쁜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지휘 역량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일본 구마모토현을 강타한 규모 7.1의 강진으로 인한 사망자가 38명으로 늘었다. 여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폭염까지 겹치면서 열사병 등 2차 피해 확산 우려도 커지고 있다.
교도통신과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일본 매체 보도를 종합하면 구마모토현은 2일 닷새 전 발생한 강진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전날보다 2명 증가한 38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부상자는 103명이다.
추가 수습된 사망자 중 1명은 지진 발생 이후 차량에서 생활하던 70대 여성으로 열사병이 유력한 사인으로 거론된다. 차량 연료가 떨어지면서 에어컨을 제대로 가동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도통신은 이 여성이 이번 강진 이후 첫 ‘재해 관련 사망자’로 인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전날 구마모토현은 가장 큰 피해가 발생한 가시마마치의 대형 쇼핑몰 ‘이온몰 구마모토’에서의 수색 활동을 종료한다고 발표했다. 생존자 수색이 사실상 마무리되면서 복구 작업이 본격화하고 있지만, 올여름 일본을 덮친 폭염이 가장 큰 걸림돌로 떠오르고 있다. 일본 기상청은 3일 구마모토현 일부 지역의 최고기온이 40도에 달할 수 있다고 예보했다.
이재민 9226명이 대피소 210곳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상당수 대피소에는 냉방시설이 없고 일부는 전기 공급마저 끊긴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대피소 대신 주차장이나 공원에 세워둔 차량에서 지내는 주민도 적지 않다. 차량 에어컨을 가동하기 위한 연료 수요가 급증하면서 주유소마다 긴 줄이 이어지고 있다.
단수 피해도 계속되고 있다. 우키시와 야쓰시로시에서는 약 4만6800가구에 물 공급이 끊긴 상태다.
이재민 사이에서는 열사병 등 2차 피해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구마모토현에서는 지진이 발생한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1일까지 최소 99명이 열사병 증세로 병원에 이송됐다.
기하라 미노루 일본 관방장관은 지난달 31일 극심한 폭염을 “이중 재앙”으로 규정하며 중앙정부가 피해 지역의 냉방기기 확보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2016년 구마모토 대지진 당시 직접적인 지진 피해로 숨진 사람은 50명이었지만 장기간 이어진 대피소 생활과 차량 숙박 등으로 220명이 넘는 재해 관련 사망자가 추가로 발생한 바 있다.
기후로 보는 한국사
박정재 지음 | 바다출판사 | 312쪽 | 1만9800원
고구려의 전성기를 이끌던 장수왕은 427년 압록강 인근의 국내성에서 한반도 안쪽 평양으로 수도를 옮겼다. <삼국사기>에 한 줄 기록만 있을 뿐 천도의 이유는 구체적으로 전해지지 않았다. 고구려의 광대한 영토를 고려하면 국내성은 정중앙이었고 평양은 한쪽 구석이었다. 천도에는 큰 비용이 드는 데다가 수도에 자리 잡은 기득권의 반발도 있었을 것이다. 장수왕은 왜 힘들게 천도했을까.
역사학자들은 국내성의 협소함, 동북아 최강국이었던 북위의 침공 우려, 황해를 건너면 가까운 송나라와의 교류 등을 천도 이유로 추정한다. 박정재는 ‘기후변화’를 원인으로 본다. 고기후학자들이 ‘로마 온난기’라고 부르는 따뜻한 기후가 끝나면서 동아시아에서는 1~2세기부터 6세기까지 한랭한 날씨가 이어졌다. 특히 420~430년쯤 강수량은 줄고 기온은 감소하는 최악의 날씨가 지속했다. 고구려는 전성기를 구가하며 인구가 빠르게 늘어난 상태였다. 추운 국내성 부근에서는 농작물 생산량이 감소했을 것이다. 결국 장수왕은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금 더 따뜻한 남쪽으로 천도했을 것이란 추정도 가능하다.
‘한국사’라는 제목이 붙었지만 저자 박정재는 생물지리학, 고생태학, 고기후학을 연구하는 지리학자다. 역사학자가 아닌 지리학자가 역사서를 서술해도 되는 걸까. 저자는 자신의 견해가 역사학자에게는 “주제넘게 들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고, 이 책이 “복잡한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가설을 남용하며 모든 사회 변동을 기후변화로 설명하려 한다는 비판도 겸허히 수용한다”고도 했다.
그런데도 지리학자가 역사서를 쓴 이유는 무엇일까.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기후 위기, 자원 고갈, 생태계 붕괴 같은 환경문제는 역사학만으로 충분히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며 “인류세 문제는 어느 한 나라나 지역만의 일이 아니라 인류 전체가 함께 겪고 있는 도전”이기 때문이다. <기후로 보는 한국사>는 지리학자인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처럼 일종의 ‘빅 히스토리’를 표방한 역사서다.
한국사 책이라고 했지만, 저자의 시선이 과거 한반도에만 머물지는 않는다. 저자는 장수왕 천도를 두고도 공시적·통시적 분석을 시도한다. 유럽에서도 장수왕 천도 시기와 맞물린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중반까지 유목민이 대거 이동했다. 훈족이 중앙아시아를 벗어나 흑해 쪽으로 움직였고, 이에 밀린 고트족·반달족 등이 서쪽으로 이동해 로마와 북아프리카를 흔들었다. 저자는 이를 당시 기후변화가 북반구 전역에 영향을 미친 증거로 본다. 기후변화로 인한 천도는 고대 왕국만의 일이 아니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으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가라앉는 도시’로 꼽혔다. 조코 위도도 전 대통령은 재임 시기 보르네오섬 정글 지대의 계획도시 누산타라로의 천도를 추진했다. 침수 우려가 높은 태국 수도 방콕의 이전 논의도 초기 단계다.
책을 읽으면 고대 문헌과 유물에 기대 서술됐던 역사의 흐름이 달리 보인다. 연나라계 유민 세력의 수장 위만은 고조선에 자리 잡은 뒤 준왕을 공격해 권좌에 올랐다. 그 배경엔 위만이 관리한 서쪽 변방의 시장이 풍요로운 날씨 덕에 예, 옥저, 부여인들의 무역 중심지로 떠올랐다는 사실이 있다. 반면 기후가 좋지 않으면 전쟁의 참화가 더욱더 거셌다. 기후가 안정적인 시기 대제국의 영토 확장 전쟁은 단시간 내 승패가 갈렸다. 반면 식량 부족과 기근에 따른 민란과 내란은 장기화하기 쉽고, 그 결과 기근은 더욱 심해진다. 혹독한 기후와 기근이 이어졌던 17세기 전 세계에서는 큰 전쟁이 터졌다. 유럽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전쟁이라는 30년 전쟁(1618~1648)이 벌어졌고, 후금 세력은 명을 누르고 대륙을 차지했다. 병자호란과 정묘호란도 이 시기다. 흑점 수 증가와 화산 폭발 감소로 전 세기에 비해 기온이 높았던 18세기 세계에서는 전쟁이 크게 줄었다.
물론 저자가 역사의 동인으로 기후만을 드는 것은 아니다. 정조의 치세기(1776~1800)는 세계적 대기근의 시대와 겹쳤다. <정조실록>에는 진휼, 구휼, 환곡 등 피해 대책이 자주 언급됐다. 정조의 조선은 백성의 삶이 피폐해질 위기에서도 제도를 정비해 나라가 도탄에 빠지는 상황을 막아낸 것이다. 반면 화산 폭발 빈도가 높고 흑점 수가 적어 기온이 눈에 띄게 떨어진 순조 재위 기간(1800~1834)에는 홍경래의 난(1811) 등으로 나라가 어수선했고, 이후 조선의 국력은 완연한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청나라 최고의 군주로 꼽히는 강희제는 중국사상 가장 오랜 기간인 61년간(1661~1722) 통치했다. 이 시기 조선은 경신대기근, 을병대기근 등으로 고초를 겪었으나, 청나라는 가뭄 방지, 홍수 조절, 사회 안전망 구축 등으로 번영을 이뤘다.
기후변화로 인한 전쟁은 현대에도 이어지고 있다. 사하라사막 남부 사헬 지대에 있는 말리, 니제르, 부르키나파소는 1980~2000년대 분쟁에 휩싸였다. 이 지역의 가뭄과 사막화가 유목민과 농경민의 반목을 심화했기 때문이다. 2006~2010년 시리아의 기록적인 가뭄은 2011년 발발해 현재까지 이어지는 시리아 내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과거에는 주로 기온이 떨어졌을 때 집단 간 충돌이 발생했다면 앞으로는 기온이 오를 때 그러할 것이라는 점만 다를 뿐이다.”
저자는 동굴 석순, 습지의 꽃가루, 나무의 나이테로 과거의 강수량, 기온, 날씨를 파악한 뒤 이를 옛사람들이 남긴 기록과 비교해 새로운 형태의 역사서를 써냈다. 과거의 역사학계에서는 보기 힘들었지만 현재의 학제 연구에서는 가능한 방법일 것이다. 저자가 암시하는 대로 인류의 위기는 역사학, 지리학, 경제학, 정치학 등 분과 학문의 영역을 넘어설 만큼 거대하다. 이 책의 일부 대목에 비약, 추정이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거대한 위기의 시대에 새롭고 도전적인 형태의 학문이 필요하다는 사실 역시 분명하다.
국방부는 3일 안규백 장관 주관으로 경기 과천 본부에서 국방방첩본부 창설식을 열었다. 같은 날 보안지원단 창설식은 이두희 차관, 조사본부 안보수사단 창설식은 박정훈 조사본부장(준장) 주관으로 각각 열렸다.
안 장관은 이날 창설식에서 “오늘 우리가 결별하는 것은, 5·16 군사정변부터 12·12 쿠데타, 5·17 계엄, 12·3 내란까지 권력의 도구가 됐던 방첩 기관의 어두운 과거 전체”라며 “국방방첩본부 창설은 권력의 도구로 악용됐던 과거를 끝내고 국민의 군대를 재건하는 일대 분수령”이라고 말했다. 국방부는 12·3 내란 당시 주요 정치인 체포조를 꾸리는 등 핵심 역할을 한 방첩사를 지난달 31일 해체했다.
이번 개편으로 국방부 산하에는 국방방첩본부와 국방보안지원단이, 국방부 조사본부 산하에는 안보수사대와 사이버과학수사단이 새로 신설됐다. 국방방첩본부와 안보수사단, 사이버과학수사단은 경기 과천의 옛 방첩사 부지를 사용하며, 보안지원단은 서울 용산구 국방부 별관에 들어선다.
국방방첩본부는 기존 방첩사 폐지 이후 방첩 기능만 따로 떼어내 만든 조직이다. 군 방첩정보 전문기구로서 대테러 방첩 대응 역량 강화, 방산 분야 군사기밀 유출 방지, 사이버 안보위협 대응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국방보안지원단은 군단급 이상 부대의 중앙보안감사와 보안사고 조사를 포함한 군내 보안 업무를 전담한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안보수사권을 넘겨받아 창설된 조직으로 간첩 행위와 군사기밀 유출, 이적행위 등 안보 범죄 수사를 전담한다. 조사본부는 디지털 포렌식 등 첨단 수사를 맡을 사이버과학수사단도 함께 신설했다. 국방부는 “첨단 수사기법을 활용해 날로 지능화·고도화되는 안보 범죄에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군 안팎에서는 조사본부 수사권 집중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조사본부가 기존 방첩사 내란·외환 수사권에 더해 안보수사 권한까지 넘겨받으면서 그간 분산되어 있던 수사 기능이 한 기관에 모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조사본부는 내·외부 감시 기능을 강화해 수사권 확대로 인한 권한 남용을 차단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조사본부는 수사 공정성을 감시하는 수사심의관실을 신설하고, 자정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감찰실과 법무실을 확대 개편했다고 밝혔다.
외부 통제 장치도 마련한다. 국가인권위원회 군인보호국과 협조 체계를 구축해 수사를 감시받는 한편, 감사실장직에 외부 고위직 감사공무원을 임명할 방침이다. 박정훈 조사본부장은 이날 취재진과 만나 “외부의 감시와 통제를 적극 수용해 조사본부의 권한이 비대해지거나 나쁜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지휘 역량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일본 구마모토현을 강타한 규모 7.1의 강진으로 인한 사망자가 38명으로 늘었다. 여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폭염까지 겹치면서 열사병 등 2차 피해 확산 우려도 커지고 있다.
교도통신과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일본 매체 보도를 종합하면 구마모토현은 2일 닷새 전 발생한 강진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전날보다 2명 증가한 38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부상자는 103명이다.
추가 수습된 사망자 중 1명은 지진 발생 이후 차량에서 생활하던 70대 여성으로 열사병이 유력한 사인으로 거론된다. 차량 연료가 떨어지면서 에어컨을 제대로 가동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도통신은 이 여성이 이번 강진 이후 첫 ‘재해 관련 사망자’로 인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전날 구마모토현은 가장 큰 피해가 발생한 가시마마치의 대형 쇼핑몰 ‘이온몰 구마모토’에서의 수색 활동을 종료한다고 발표했다. 생존자 수색이 사실상 마무리되면서 복구 작업이 본격화하고 있지만, 올여름 일본을 덮친 폭염이 가장 큰 걸림돌로 떠오르고 있다. 일본 기상청은 3일 구마모토현 일부 지역의 최고기온이 40도에 달할 수 있다고 예보했다.
이재민 9226명이 대피소 210곳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상당수 대피소에는 냉방시설이 없고 일부는 전기 공급마저 끊긴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대피소 대신 주차장이나 공원에 세워둔 차량에서 지내는 주민도 적지 않다. 차량 에어컨을 가동하기 위한 연료 수요가 급증하면서 주유소마다 긴 줄이 이어지고 있다.
단수 피해도 계속되고 있다. 우키시와 야쓰시로시에서는 약 4만6800가구에 물 공급이 끊긴 상태다.
이재민 사이에서는 열사병 등 2차 피해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구마모토현에서는 지진이 발생한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1일까지 최소 99명이 열사병 증세로 병원에 이송됐다.
기하라 미노루 일본 관방장관은 지난달 31일 극심한 폭염을 “이중 재앙”으로 규정하며 중앙정부가 피해 지역의 냉방기기 확보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2016년 구마모토 대지진 당시 직접적인 지진 피해로 숨진 사람은 50명이었지만 장기간 이어진 대피소 생활과 차량 숙박 등으로 220명이 넘는 재해 관련 사망자가 추가로 발생한 바 있다.
기후로 보는 한국사
박정재 지음 | 바다출판사 | 312쪽 | 1만9800원
고구려의 전성기를 이끌던 장수왕은 427년 압록강 인근의 국내성에서 한반도 안쪽 평양으로 수도를 옮겼다. <삼국사기>에 한 줄 기록만 있을 뿐 천도의 이유는 구체적으로 전해지지 않았다. 고구려의 광대한 영토를 고려하면 국내성은 정중앙이었고 평양은 한쪽 구석이었다. 천도에는 큰 비용이 드는 데다가 수도에 자리 잡은 기득권의 반발도 있었을 것이다. 장수왕은 왜 힘들게 천도했을까.
역사학자들은 국내성의 협소함, 동북아 최강국이었던 북위의 침공 우려, 황해를 건너면 가까운 송나라와의 교류 등을 천도 이유로 추정한다. 박정재는 ‘기후변화’를 원인으로 본다. 고기후학자들이 ‘로마 온난기’라고 부르는 따뜻한 기후가 끝나면서 동아시아에서는 1~2세기부터 6세기까지 한랭한 날씨가 이어졌다. 특히 420~430년쯤 강수량은 줄고 기온은 감소하는 최악의 날씨가 지속했다. 고구려는 전성기를 구가하며 인구가 빠르게 늘어난 상태였다. 추운 국내성 부근에서는 농작물 생산량이 감소했을 것이다. 결국 장수왕은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금 더 따뜻한 남쪽으로 천도했을 것이란 추정도 가능하다.
‘한국사’라는 제목이 붙었지만 저자 박정재는 생물지리학, 고생태학, 고기후학을 연구하는 지리학자다. 역사학자가 아닌 지리학자가 역사서를 서술해도 되는 걸까. 저자는 자신의 견해가 역사학자에게는 “주제넘게 들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고, 이 책이 “복잡한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가설을 남용하며 모든 사회 변동을 기후변화로 설명하려 한다는 비판도 겸허히 수용한다”고도 했다.
그런데도 지리학자가 역사서를 쓴 이유는 무엇일까.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기후 위기, 자원 고갈, 생태계 붕괴 같은 환경문제는 역사학만으로 충분히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며 “인류세 문제는 어느 한 나라나 지역만의 일이 아니라 인류 전체가 함께 겪고 있는 도전”이기 때문이다. <기후로 보는 한국사>는 지리학자인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처럼 일종의 ‘빅 히스토리’를 표방한 역사서다.
한국사 책이라고 했지만, 저자의 시선이 과거 한반도에만 머물지는 않는다. 저자는 장수왕 천도를 두고도 공시적·통시적 분석을 시도한다. 유럽에서도 장수왕 천도 시기와 맞물린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중반까지 유목민이 대거 이동했다. 훈족이 중앙아시아를 벗어나 흑해 쪽으로 움직였고, 이에 밀린 고트족·반달족 등이 서쪽으로 이동해 로마와 북아프리카를 흔들었다. 저자는 이를 당시 기후변화가 북반구 전역에 영향을 미친 증거로 본다. 기후변화로 인한 천도는 고대 왕국만의 일이 아니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으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가라앉는 도시’로 꼽혔다. 조코 위도도 전 대통령은 재임 시기 보르네오섬 정글 지대의 계획도시 누산타라로의 천도를 추진했다. 침수 우려가 높은 태국 수도 방콕의 이전 논의도 초기 단계다.
책을 읽으면 고대 문헌과 유물에 기대 서술됐던 역사의 흐름이 달리 보인다. 연나라계 유민 세력의 수장 위만은 고조선에 자리 잡은 뒤 준왕을 공격해 권좌에 올랐다. 그 배경엔 위만이 관리한 서쪽 변방의 시장이 풍요로운 날씨 덕에 예, 옥저, 부여인들의 무역 중심지로 떠올랐다는 사실이 있다. 반면 기후가 좋지 않으면 전쟁의 참화가 더욱더 거셌다. 기후가 안정적인 시기 대제국의 영토 확장 전쟁은 단시간 내 승패가 갈렸다. 반면 식량 부족과 기근에 따른 민란과 내란은 장기화하기 쉽고, 그 결과 기근은 더욱 심해진다. 혹독한 기후와 기근이 이어졌던 17세기 전 세계에서는 큰 전쟁이 터졌다. 유럽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전쟁이라는 30년 전쟁(1618~1648)이 벌어졌고, 후금 세력은 명을 누르고 대륙을 차지했다. 병자호란과 정묘호란도 이 시기다. 흑점 수 증가와 화산 폭발 감소로 전 세기에 비해 기온이 높았던 18세기 세계에서는 전쟁이 크게 줄었다.
물론 저자가 역사의 동인으로 기후만을 드는 것은 아니다. 정조의 치세기(1776~1800)는 세계적 대기근의 시대와 겹쳤다. <정조실록>에는 진휼, 구휼, 환곡 등 피해 대책이 자주 언급됐다. 정조의 조선은 백성의 삶이 피폐해질 위기에서도 제도를 정비해 나라가 도탄에 빠지는 상황을 막아낸 것이다. 반면 화산 폭발 빈도가 높고 흑점 수가 적어 기온이 눈에 띄게 떨어진 순조 재위 기간(1800~1834)에는 홍경래의 난(1811) 등으로 나라가 어수선했고, 이후 조선의 국력은 완연한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청나라 최고의 군주로 꼽히는 강희제는 중국사상 가장 오랜 기간인 61년간(1661~1722) 통치했다. 이 시기 조선은 경신대기근, 을병대기근 등으로 고초를 겪었으나, 청나라는 가뭄 방지, 홍수 조절, 사회 안전망 구축 등으로 번영을 이뤘다.
기후변화로 인한 전쟁은 현대에도 이어지고 있다. 사하라사막 남부 사헬 지대에 있는 말리, 니제르, 부르키나파소는 1980~2000년대 분쟁에 휩싸였다. 이 지역의 가뭄과 사막화가 유목민과 농경민의 반목을 심화했기 때문이다. 2006~2010년 시리아의 기록적인 가뭄은 2011년 발발해 현재까지 이어지는 시리아 내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과거에는 주로 기온이 떨어졌을 때 집단 간 충돌이 발생했다면 앞으로는 기온이 오를 때 그러할 것이라는 점만 다를 뿐이다.”
저자는 동굴 석순, 습지의 꽃가루, 나무의 나이테로 과거의 강수량, 기온, 날씨를 파악한 뒤 이를 옛사람들이 남긴 기록과 비교해 새로운 형태의 역사서를 써냈다. 과거의 역사학계에서는 보기 힘들었지만 현재의 학제 연구에서는 가능한 방법일 것이다. 저자가 암시하는 대로 인류의 위기는 역사학, 지리학, 경제학, 정치학 등 분과 학문의 영역을 넘어설 만큼 거대하다. 이 책의 일부 대목에 비약, 추정이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거대한 위기의 시대에 새롭고 도전적인 형태의 학문이 필요하다는 사실 역시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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