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통합돌봄 100일…기본돌봄과 국가책임을 말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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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돌봄이 본격 시행된 지 100일이 지났다. 그동안 우리는 통합돌봄을 의료와 요양, 복지와 주거를 연계하는 정책으로 설명해 왔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통합돌봄의 본질은 서비스를 연결하는 데 있지 않다. 국가가 국민의 돌봄을 어디까지 책임질 것인가를 다시 묻는 정책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했고, 돌봄은 이제 누구나 나이 들고 병들면서 마주하게 되는 생애주기의 문제가 됐다. 통합돌봄은 국민이 살던 곳에서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국가의 책임을 확대하겠다는 사회적 약속이다.
지난 100일은 그 출발점이었다. 6월26일 기준 전국 229개 시군구에서 4만6215명이 통합돌봄을 신청했고, 3만7304명이 12만3595건의 서비스를 연계받았다. 통합돌봄이 전국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성과다. 그러나 이제는 행정 체계를 구축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과제가 남았다. 국민 누구에게, 어디까지, 무엇을 보장할지 분명히 하는 일이다.
여기에서 필요한 것이 ‘기본돌봄’이다. 기본돌봄은 새로운 복지사업이 아니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지역과 소득에 관계없이 보장받아야 할 최소한의 의료·돌봄 기반이다. 돌봄이 개인과 가족만의 책임이 아닌 국가가 반드시 책임져야 할 공공 인프라라는 의미다.
통합돌봄은 서비스가 있는 지역에서는 연계의 문제지만, 서비스가 부족한 지역에서는 공급의 문제다. 실제 지난 100일간 연계된 서비스의 62.6%는 기존 국가사업이었고, 지역이 새롭게 설계한 특화 서비스는 37.4%에 그쳤다. 이는 연계를 넘어 지역의 돌봄 기반 자체를 확충해야 함을 보여준다.
대도시에서는 의료기관과 복지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연결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농어촌과 인구 감소 지역, 의료 취약지에서는 기본적인 의료와 돌봄 자체가 부족하다. 올해 공중보건의가 배치되지 않은 읍면 보건지소는 전체의 82.1%에 달했다. 방문진료 의사와 방문간호 인력, 장기요양기관이 부족한 곳에서는 연계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래서 기본돌봄은 반드시 기본의료와 함께 논의돼야 한다. 퇴원한 어르신이 지역에서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는 방문진료와 방문간호, 장기요양, 일상생활 지원이 함께 제공돼야 한다. 기본의료 없는 기본돌봄, 기본돌봄 없는 기본의료는 결국 반쪽짜리 통합돌봄일 뿐이다.
이는 결국 ‘돌봄기본권’의 문제다. 국민의 주소가 돌봄 수준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 어느 지역에 살든 필요한 의료와 돌봄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재정 원칙도 달라져야 한다. 통합돌봄은 지방정부의 선택사업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져야 할 사회기반이다. 그러나 현재는 사업비 총액만 차등 지원될 뿐 국비 매칭 비율은 지역 여건과 관계없이 거의 동일하다. 그 결과 재정이 열악하고 고령화율이 높은 지역일수록 지방비 부담은 더 커지고, 가장 돌봄이 필요한 곳이 가장 취약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구조가 되기 쉽다.
필요한 곳에 더 많이 지원하는 것은 특혜가 아니라 ‘형평성’이다. 기초연금처럼 지역의 재정여건과 고령화 수준을 반영해 기본의료와 기본돌봄에도 국고보조율을 차등 적용할 필요가 있다. 인구 감소 지역과 의료 취약지에는 국비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통합돌봄은 비용을 줄이는 정책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사회적 투자다. 지난 7년간 시범사업에서도 요양병원 입원과 시설 입소는 감소했고, 가족의 부양 부담도 줄었다.
통합돌봄의 다음 100일은 행정 체계를 다듬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국민 누구나 어디에 살든 기본의료와 기본돌봄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국가의 책임을 제도와 재정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통합돌봄의 성공은 얼마나 많은 서비스를 연결했는가가 아니라, 국민의 주소와 관계없이 필요한 돌봄을 보장하는 국가를 만들었는가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30도가 넘는 불볕더위에 등산을 나섰던 60대 남성이 숨져 경찰이 수사를 벌이고 있다.
인천 강화경찰서는 지난 30일 오전 11시 5분쯤 강화군 마니산 정상 인근에서 60대 남성 A씨가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 병원으로 옮겼으나 1시간 40분만인 낮 12시 47분쯤 숨졌다고 31일 밝혔다.
경기도에 사는 A씨는 30도가 넘는 붙볕더위에 마니산을 오른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A씨의 정확한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원에 부검을 의뢰할 예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A씨에게서 별다른 외상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AI 시대 문명사적 전환기에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사회학적 상상력…기본소득 구상 진지하게 받아들여야다만, 새 사회에 맞는 새 제도로서 기본소득이 아닌기존 복지제도를 확대하는 방식으로 접근 중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해야 …“기본소득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AI 대전환은 우리의 삶과 사회뿐만 아니라 기존의 모든 제도를 바꿔 놓는다. 그 변화의 성격과 규모를 가늠하기조차 어려울수록 이에 대비해야 할 정치는 언제나 기존의 사고방식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삼성전자 성과급 갈등은 결국 인공지능 시대에 더욱 심해질 ‘양극화’에 대한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고,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자연스럽게 ‘기본소득’ 이념을 소환한다. 당시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인공지능 인프라 시대의 과실은 특정 기업만의 결과가 아니다”라며 “기업의 초과이익 일부를 국민에게 지급하는 ‘국민배당금’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에 속한다. 어떤 정치인은 반도체 산업 호황은 농어민들의 시장 개방이라는 희생과 인내가 축적된 결과라며 “이익 일부를 농어촌에 환원하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인공지능이 우리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당연시되는 문명사적 전환기 그 어느 때보다 사회학적 상상력이 필요한 건 분명하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기본소득 구상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문제는 새로운 사회적 환경에 부합하는 새 제도로서 기본소득을 논의하지 않고, 단지 기존 복지제도를 확대하는 방편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목표를 제대로 설정하지 않으면, 그 목표를 효율적으로 추진하면 할수록 해결해야 할 현실적 목표로부터 더 멀어진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근본적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기본소득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현재 시행되는 기본소득 정책을 보면, 우리는 그 방향의 적절성을 판단할 수 있다. 많은 국민이 기본소득이 실행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것을 보면, 기본소득의 근본 성격과 방향이 과연 제대로 설정되었는지 의심스럽다. 2026년 대한민국 정부는 지역소멸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복지정책으로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을 시행했다. 선정된 인구감소지역 주민에게 1인당 월 15만원(4인 가족 기준 월 60만원)을 지역화폐 형태로 지급하는 이 제도는 농어촌 공동체 유지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목표로 한다.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 차원의 지역기반 기본소득 실험이라는 점에서 정책적 의미가 크다. 그러나 이 정책은 시행과 동시에 하나의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왜 농어촌 주민만 기본소득을 받아야 하는가?
오늘날 대한민국은 더 이상 농업사회가 아니다. 통계적으로 농림어업은 국내총생산(GDP)의 약 1.6%를 차지하며, 전체 취업자의 5% 정도만이 농림어업에 종사한다. 반면 국민의 대부분은 도시에서 제조업과 서비스업, 최근 급속히 성장하는 디지털 산업과 플랫폼 경제에 종사하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진행된 산업구조의 변화는 이제 AI 혁명을 계기로 다시 한번 근본적인 전환을 맞이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가 특정 지역과 특정 산업을 중심으로 새로운 기본소득을 설계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더욱이 이미 농어촌은 공익직불제, 농업재해보험, 각종 가격보조, 지역소멸대응기금 등 다양한 재정지원을 받고 있는 영역이다. 농어촌 지역에만 현금성 지원을 집중하는 것이 도덕적 해이를 유발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또 하나의 현금성 지원을 추가하는 것이 국가 전체의 경제적 효율성과 사회적 형평성에 부합하는지는 보다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특정 산업·지역 중심 정책 설계
국가 지원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도시에 있다. 인류 산업구조는 일반적으로 크게 세 단계 변화를 경험했다. 첫 번째는 농업사회다. 토지가 생산 중심이었던 시대에는 대부분의 국민이 농업에 종사하였다. 국가의 부는 곧 농업 생산력이었으며,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동아시아의 정치철학은 이러한 시대를 반영한다. 농업은 단순한 산업이 아니라 국가의 존립을 가능하게 하는 경제적, 도덕적 기반이었다. 두 번째는 산업혁명 이후의 제조업 중심 사회이다. 증기기관과 대량생산은 농촌 인구를 도시로 이동시켰고, 노동자 계급이 새로운 사회의 중심세력이 되었다. 이 시기 복지국가는 산업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사회보험 체계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오늘날 우리는 세 번째 단계인 AI 기반 서비스 경제로 진입하고 있다. OECD 국가 대부분에서 서비스업은 GDP의 70% 이상을 차지하며, 한국 역시 서비스업 중심 경제로 전환된 지 오래다. 그러나 AI 혁명은 단순히 서비스업의 확대에 그치지 않는다. 생성형 AI와 로봇기술은 이제 화이트칼라 노동까지 대체하기 시작하면서 노동시장 전체를 근본적으로 재편하고 있다. 과거 산업혁명이 육체노동을 기계화하였다면, AI 혁명은 인간의 인지적 노동을 자동화하고 있다. 회계사, 번역가, 프로그래머, 디자이너, 심지어 법률 전문가의 업무 일부까지 AI가 수행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앞으로의 복지국가는 특정 산업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시장 전체의 구조적 불안정성에 대응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기본소득 논의 역시 특정 산업이나 특정 지역을 넘어 시민 전체의 경제적 안전망이라는 차원에서 재검토될 필요가 있다.
농어촌 기본소득을 둘러싼 논쟁에는 암묵적으로 하나의 역사적 가치관이 자리하고 있다.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전통적 사고이다. 조선시대 국가 운영의 핵심 원리는 농업이었다. 토지는 부의 원천이었고 농민은 국가재정을 떠받치는 중심계층이었다. 따라서 국가가 농업을 보호하는 것은 특혜가 아니라 국가의 생존전략이었다. 그러나 현대 산업사회에서는 이러한 전제가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 오늘날 국가 경제를 움직이는 중심은 반도체, 바이오 산업, 금융서비스, AI 산업, 플랫폼 경제와 같은 첨단 서비스 산업이다. 국민 대부분은 도시에서 노동하며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농업을 여전히 국가 경제의 중심산업으로 간주하는 것은 산업구조의 변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정책적 관성일 수 있다.
관성적 사고 아닌 시민 중심 구성을
물론 이러한 지적이 농업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농업은 여전히 식량안보를 책임지고 있으며, 기후위기 시대에는 환경보전과 탄소흡수라는 공익적 기능을 수행한다. 농촌 공동체는 국토 균형발전과 문화유산의 보존이라는 중요한 사회적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농업을 지원하는 이유는 ‘경제 규모’가 아니라 ‘공익적 기능’이어야 한다. 농민이라는 직업 자체를 보호하는 것과 농업이 수행하는 공익적 기능을 보상하는 것은 전혀 다른 정책이다. 전자는 직업 중심의 보조금이며, 후자는 공공재 생산에 대한 사회적 보상이다. 오늘날 OECD 국가들이 확대하고 있는 공익직불제 역시 이러한 사고에 기초하고 있다. 다시 말해, 국가가 보상해야 하는 것은 농민이라는 신분이 아니라 환경보전, 생태계 유지, 식량안보와 같은 공익적 활동이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농어촌 기본소득 역시 단순히 “농촌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농촌이 수행하는 공익적 기능과 어떠한 관계를 갖는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AI 시대 복지국가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국가는 특정 산업을 지원해야 하는가, 아니면 시민을 지원해야 하는가? 농업사회에서는 농업을 지원하는 것이 곧 국민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산업사회에서는 노동자를 지원하는 것이 경제를 안정시키는 길이었다. 그러나 AI 시대에는 특정 산업을 보호하는 방식만으로는 사회 전체의 위험에 대응하기 어렵다. 서비스업, 플랫폼 노동, 프리랜서, 자영업, 전문직 모두가 기술 변화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농민, 노동자, 공무원, 군인 등 각각의 집단마다 별도의 복지 체계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AI 시대에 더 이상 효과적이지 않다. AI 시대에는 사회 구성원이 여러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은 농촌에 살면서 온라인 플랫폼에서 일하고, 유튜브를 운영하며, AI를 활용한 프리랜서가 될 수도 있다. 직업의 경계가 무너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복지의 기준 역시 직업이나 산업이 아니라 시민이라는 멤버십 자체가 되어야 한다.
농업사회는 ‘농자천하지대본’의 시대였고, 산업사회는 노동이 국가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AI 시대에는 더 이상 특정 산업이 아니라 시민 모두가 국가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복지국가 역시 산업 중심에서 시민 중심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기본소득 논의도 바로 그 지점에서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했고, 돌봄은 이제 누구나 나이 들고 병들면서 마주하게 되는 생애주기의 문제가 됐다. 통합돌봄은 국민이 살던 곳에서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국가의 책임을 확대하겠다는 사회적 약속이다.
지난 100일은 그 출발점이었다. 6월26일 기준 전국 229개 시군구에서 4만6215명이 통합돌봄을 신청했고, 3만7304명이 12만3595건의 서비스를 연계받았다. 통합돌봄이 전국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성과다. 그러나 이제는 행정 체계를 구축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과제가 남았다. 국민 누구에게, 어디까지, 무엇을 보장할지 분명히 하는 일이다.
여기에서 필요한 것이 ‘기본돌봄’이다. 기본돌봄은 새로운 복지사업이 아니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지역과 소득에 관계없이 보장받아야 할 최소한의 의료·돌봄 기반이다. 돌봄이 개인과 가족만의 책임이 아닌 국가가 반드시 책임져야 할 공공 인프라라는 의미다.
통합돌봄은 서비스가 있는 지역에서는 연계의 문제지만, 서비스가 부족한 지역에서는 공급의 문제다. 실제 지난 100일간 연계된 서비스의 62.6%는 기존 국가사업이었고, 지역이 새롭게 설계한 특화 서비스는 37.4%에 그쳤다. 이는 연계를 넘어 지역의 돌봄 기반 자체를 확충해야 함을 보여준다.
대도시에서는 의료기관과 복지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연결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농어촌과 인구 감소 지역, 의료 취약지에서는 기본적인 의료와 돌봄 자체가 부족하다. 올해 공중보건의가 배치되지 않은 읍면 보건지소는 전체의 82.1%에 달했다. 방문진료 의사와 방문간호 인력, 장기요양기관이 부족한 곳에서는 연계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래서 기본돌봄은 반드시 기본의료와 함께 논의돼야 한다. 퇴원한 어르신이 지역에서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는 방문진료와 방문간호, 장기요양, 일상생활 지원이 함께 제공돼야 한다. 기본의료 없는 기본돌봄, 기본돌봄 없는 기본의료는 결국 반쪽짜리 통합돌봄일 뿐이다.
이는 결국 ‘돌봄기본권’의 문제다. 국민의 주소가 돌봄 수준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 어느 지역에 살든 필요한 의료와 돌봄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재정 원칙도 달라져야 한다. 통합돌봄은 지방정부의 선택사업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져야 할 사회기반이다. 그러나 현재는 사업비 총액만 차등 지원될 뿐 국비 매칭 비율은 지역 여건과 관계없이 거의 동일하다. 그 결과 재정이 열악하고 고령화율이 높은 지역일수록 지방비 부담은 더 커지고, 가장 돌봄이 필요한 곳이 가장 취약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구조가 되기 쉽다.
필요한 곳에 더 많이 지원하는 것은 특혜가 아니라 ‘형평성’이다. 기초연금처럼 지역의 재정여건과 고령화 수준을 반영해 기본의료와 기본돌봄에도 국고보조율을 차등 적용할 필요가 있다. 인구 감소 지역과 의료 취약지에는 국비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통합돌봄은 비용을 줄이는 정책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사회적 투자다. 지난 7년간 시범사업에서도 요양병원 입원과 시설 입소는 감소했고, 가족의 부양 부담도 줄었다.
통합돌봄의 다음 100일은 행정 체계를 다듬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국민 누구나 어디에 살든 기본의료와 기본돌봄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국가의 책임을 제도와 재정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통합돌봄의 성공은 얼마나 많은 서비스를 연결했는가가 아니라, 국민의 주소와 관계없이 필요한 돌봄을 보장하는 국가를 만들었는가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30도가 넘는 불볕더위에 등산을 나섰던 60대 남성이 숨져 경찰이 수사를 벌이고 있다.
인천 강화경찰서는 지난 30일 오전 11시 5분쯤 강화군 마니산 정상 인근에서 60대 남성 A씨가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 병원으로 옮겼으나 1시간 40분만인 낮 12시 47분쯤 숨졌다고 31일 밝혔다.
경기도에 사는 A씨는 30도가 넘는 붙볕더위에 마니산을 오른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A씨의 정확한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원에 부검을 의뢰할 예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A씨에게서 별다른 외상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AI 시대 문명사적 전환기에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사회학적 상상력…기본소득 구상 진지하게 받아들여야다만, 새 사회에 맞는 새 제도로서 기본소득이 아닌기존 복지제도를 확대하는 방식으로 접근 중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해야 …“기본소득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AI 대전환은 우리의 삶과 사회뿐만 아니라 기존의 모든 제도를 바꿔 놓는다. 그 변화의 성격과 규모를 가늠하기조차 어려울수록 이에 대비해야 할 정치는 언제나 기존의 사고방식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삼성전자 성과급 갈등은 결국 인공지능 시대에 더욱 심해질 ‘양극화’에 대한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고,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자연스럽게 ‘기본소득’ 이념을 소환한다. 당시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인공지능 인프라 시대의 과실은 특정 기업만의 결과가 아니다”라며 “기업의 초과이익 일부를 국민에게 지급하는 ‘국민배당금’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에 속한다. 어떤 정치인은 반도체 산업 호황은 농어민들의 시장 개방이라는 희생과 인내가 축적된 결과라며 “이익 일부를 농어촌에 환원하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인공지능이 우리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당연시되는 문명사적 전환기 그 어느 때보다 사회학적 상상력이 필요한 건 분명하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기본소득 구상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문제는 새로운 사회적 환경에 부합하는 새 제도로서 기본소득을 논의하지 않고, 단지 기존 복지제도를 확대하는 방편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목표를 제대로 설정하지 않으면, 그 목표를 효율적으로 추진하면 할수록 해결해야 할 현실적 목표로부터 더 멀어진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근본적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기본소득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현재 시행되는 기본소득 정책을 보면, 우리는 그 방향의 적절성을 판단할 수 있다. 많은 국민이 기본소득이 실행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것을 보면, 기본소득의 근본 성격과 방향이 과연 제대로 설정되었는지 의심스럽다. 2026년 대한민국 정부는 지역소멸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복지정책으로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을 시행했다. 선정된 인구감소지역 주민에게 1인당 월 15만원(4인 가족 기준 월 60만원)을 지역화폐 형태로 지급하는 이 제도는 농어촌 공동체 유지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목표로 한다.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 차원의 지역기반 기본소득 실험이라는 점에서 정책적 의미가 크다. 그러나 이 정책은 시행과 동시에 하나의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왜 농어촌 주민만 기본소득을 받아야 하는가?
오늘날 대한민국은 더 이상 농업사회가 아니다. 통계적으로 농림어업은 국내총생산(GDP)의 약 1.6%를 차지하며, 전체 취업자의 5% 정도만이 농림어업에 종사한다. 반면 국민의 대부분은 도시에서 제조업과 서비스업, 최근 급속히 성장하는 디지털 산업과 플랫폼 경제에 종사하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진행된 산업구조의 변화는 이제 AI 혁명을 계기로 다시 한번 근본적인 전환을 맞이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가 특정 지역과 특정 산업을 중심으로 새로운 기본소득을 설계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더욱이 이미 농어촌은 공익직불제, 농업재해보험, 각종 가격보조, 지역소멸대응기금 등 다양한 재정지원을 받고 있는 영역이다. 농어촌 지역에만 현금성 지원을 집중하는 것이 도덕적 해이를 유발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또 하나의 현금성 지원을 추가하는 것이 국가 전체의 경제적 효율성과 사회적 형평성에 부합하는지는 보다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특정 산업·지역 중심 정책 설계
국가 지원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도시에 있다. 인류 산업구조는 일반적으로 크게 세 단계 변화를 경험했다. 첫 번째는 농업사회다. 토지가 생산 중심이었던 시대에는 대부분의 국민이 농업에 종사하였다. 국가의 부는 곧 농업 생산력이었으며,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동아시아의 정치철학은 이러한 시대를 반영한다. 농업은 단순한 산업이 아니라 국가의 존립을 가능하게 하는 경제적, 도덕적 기반이었다. 두 번째는 산업혁명 이후의 제조업 중심 사회이다. 증기기관과 대량생산은 농촌 인구를 도시로 이동시켰고, 노동자 계급이 새로운 사회의 중심세력이 되었다. 이 시기 복지국가는 산업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사회보험 체계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오늘날 우리는 세 번째 단계인 AI 기반 서비스 경제로 진입하고 있다. OECD 국가 대부분에서 서비스업은 GDP의 70% 이상을 차지하며, 한국 역시 서비스업 중심 경제로 전환된 지 오래다. 그러나 AI 혁명은 단순히 서비스업의 확대에 그치지 않는다. 생성형 AI와 로봇기술은 이제 화이트칼라 노동까지 대체하기 시작하면서 노동시장 전체를 근본적으로 재편하고 있다. 과거 산업혁명이 육체노동을 기계화하였다면, AI 혁명은 인간의 인지적 노동을 자동화하고 있다. 회계사, 번역가, 프로그래머, 디자이너, 심지어 법률 전문가의 업무 일부까지 AI가 수행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앞으로의 복지국가는 특정 산업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시장 전체의 구조적 불안정성에 대응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기본소득 논의 역시 특정 산업이나 특정 지역을 넘어 시민 전체의 경제적 안전망이라는 차원에서 재검토될 필요가 있다.
농어촌 기본소득을 둘러싼 논쟁에는 암묵적으로 하나의 역사적 가치관이 자리하고 있다.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전통적 사고이다. 조선시대 국가 운영의 핵심 원리는 농업이었다. 토지는 부의 원천이었고 농민은 국가재정을 떠받치는 중심계층이었다. 따라서 국가가 농업을 보호하는 것은 특혜가 아니라 국가의 생존전략이었다. 그러나 현대 산업사회에서는 이러한 전제가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 오늘날 국가 경제를 움직이는 중심은 반도체, 바이오 산업, 금융서비스, AI 산업, 플랫폼 경제와 같은 첨단 서비스 산업이다. 국민 대부분은 도시에서 노동하며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농업을 여전히 국가 경제의 중심산업으로 간주하는 것은 산업구조의 변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정책적 관성일 수 있다.
관성적 사고 아닌 시민 중심 구성을
물론 이러한 지적이 농업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농업은 여전히 식량안보를 책임지고 있으며, 기후위기 시대에는 환경보전과 탄소흡수라는 공익적 기능을 수행한다. 농촌 공동체는 국토 균형발전과 문화유산의 보존이라는 중요한 사회적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농업을 지원하는 이유는 ‘경제 규모’가 아니라 ‘공익적 기능’이어야 한다. 농민이라는 직업 자체를 보호하는 것과 농업이 수행하는 공익적 기능을 보상하는 것은 전혀 다른 정책이다. 전자는 직업 중심의 보조금이며, 후자는 공공재 생산에 대한 사회적 보상이다. 오늘날 OECD 국가들이 확대하고 있는 공익직불제 역시 이러한 사고에 기초하고 있다. 다시 말해, 국가가 보상해야 하는 것은 농민이라는 신분이 아니라 환경보전, 생태계 유지, 식량안보와 같은 공익적 활동이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농어촌 기본소득 역시 단순히 “농촌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농촌이 수행하는 공익적 기능과 어떠한 관계를 갖는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AI 시대 복지국가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국가는 특정 산업을 지원해야 하는가, 아니면 시민을 지원해야 하는가? 농업사회에서는 농업을 지원하는 것이 곧 국민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산업사회에서는 노동자를 지원하는 것이 경제를 안정시키는 길이었다. 그러나 AI 시대에는 특정 산업을 보호하는 방식만으로는 사회 전체의 위험에 대응하기 어렵다. 서비스업, 플랫폼 노동, 프리랜서, 자영업, 전문직 모두가 기술 변화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농민, 노동자, 공무원, 군인 등 각각의 집단마다 별도의 복지 체계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AI 시대에 더 이상 효과적이지 않다. AI 시대에는 사회 구성원이 여러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은 농촌에 살면서 온라인 플랫폼에서 일하고, 유튜브를 운영하며, AI를 활용한 프리랜서가 될 수도 있다. 직업의 경계가 무너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복지의 기준 역시 직업이나 산업이 아니라 시민이라는 멤버십 자체가 되어야 한다.
농업사회는 ‘농자천하지대본’의 시대였고, 산업사회는 노동이 국가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AI 시대에는 더 이상 특정 산업이 아니라 시민 모두가 국가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복지국가 역시 산업 중심에서 시민 중심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기본소득 논의도 바로 그 지점에서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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