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수납전문가 베를린 성소수자 축제 ‘차량 테러’ 30명 사상···당국 “이슬람 극단주의 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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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수납전문가 독일 베를린에서 성소수자 축제 참가자들을 향해 차량을 몰아 30명의 사상자를 낸 용의자가 과거 극단주의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에 합류하려다 적발돼 최근까지 수감생활을 한 인물인 것으로 드러났다. 독일 당국은 이번 사건을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로 규정하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26일(현지시간) 알렉산더 도브린트 독일 내무장관은 기자회견에서 “현재까지 확보된 모든 정황은 이번 사건이 이슬람 극단주의에 의한 테러 공격임을 시사한다”고 밝다. 그는 용의자가 차량 돌진 이후 흉기를 휘두른 정황도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레바논계 독일 국적자인 압둘 B(21)는 전날 오후 10시15분쯤 성소수자 축제 ‘크리스토퍼 스트리트 데이’가 열린 베를린 도심에서 흰색 밴을 몰고 인파를 향해 돌진한 뒤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공격으로 여성 1명이 숨지고 29명이 다쳤다. 부상자는 애초 16명으로 집계됐으나 이후 29명으로 늘었다. 이 가운데 최소 3명은 중태여서 사망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경찰은 차량 돌진 이후 흉기를 이용한 추가 범행이 있었는지, 공범이 있었는지 등을 함께 조사하고 있다.
독일 일간 쥐트도이체차이퉁(SZ)은 용의자가 지난해 말 레바논에서 독일로 귀국하는 길에 베를린-브란덴부르크 공항에서 체포돼 지난 5월까지 구금됐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당시 보안 당국은 그가 시리아로 이동해 IS에 합류하려했으며 테러를 모의한 정황을 포착했고, 이후 급진적·폭력적 성향의 위험인물로 분류해 관리했다.
경찰은 사건 직후 열화상 카메라를 장착한 헬기를 공원 상공에 띄워 추적하고 있다. 이날 새벽부터 용의자와 가족의 주거지를 압수수색했지만 아직 행방은 확인되지 않았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이번 사건을 “극악무도한 행위이자 독일 사회에 대한 공격”이라고 규정하며 “사건의 전모를 철저히 규명하고 최대한 엄중한 처벌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독일 국내정보기관 연방헌법수호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독일에는 폭력 성향의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9110명 있다. 이중 1940명이 베를린에 거주하고 있다.
차량을 이용해 다중 인파를 노리는 공격은 IS 등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들이 반복적으로 사용해 온 테러 수법이다. 2016년 7월 프랑스 니스에서는 바스티유의 날 행사에 트럭이 돌진해 86명이 숨졌고, 같은 해 12월에는 튀니지 출신 IS 추종자가 베를린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트럭을 몰고 돌진해 13명이 사망했다.
오래전 나는 현장인문학에 적극적이었다. 현장인문학은 삶에 필요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도덕적 자원을 많이 갖지 못한 가난한 사람들과 인문학을 공부하는 프로그램이다. 주로 내가 강의했던 곳은 교도소와 야학이었다. 책은 어디서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 읽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읽힌다는 것을 여기서 체험했다. 이를테면 루쉰의 ‘철방에 잠든 사람들’을 교도소에서 읽는 것과 대학에서 읽는 것은 완전히 다른 감응을 불러일으킨다.
당시 나는 대학수업과 현장인문학을 자주 비교했다. 둘은 앎을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방식에서 크게 달랐다. 나는 둘의 차이를 ‘앎을 참조하는 앎’과 ‘삶을 참조하는 앎’이라는 말로 표현한 적이 있다. 대학이나 연구자집단에서 강의하거나 발표할 때 청중은 어떤 학자의 이론이나 개념을 떠올리고 내 주장과 그것을 관련지어 물을 때가 많았다. 기존 지식을 참조하고 비교하면서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앎의 회로 안에서 하나의 앎이 다른 앎을 가리키는, 자기 지시 형태의 앎이라고 할 수 있다.
삶의 갈등·고통 등 감정 지운 채문장의 조합으로 만든 AI 글쓰기‘앎만 참조하는 앎’이 계속되면서삶에 무력한 문장들만 쌓여간다
그런데 현장인문학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렇게 묻지 않았다. 물론 이것은 이들의 가방끈이 짧은 사정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뭔가를 물을 때 이들은 대체로 자신의 삶을 참조했다. “예전에 내게 이런 일이 있었어요.” 그러다보면 수업은 곧잘 인생 상담으로 흘러갔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 거예요?” 어떤 재소자는 의사도 아닌 내게 어딘가 아프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앎을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방식도 그랬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새로운 앎의 획득이 머리카락을 자르거나 말투를 바꾸는 등 신체나 행동의 변화로 나타나는 일이 많았다.
물론 ‘앎을 참조하는 앎’과 ‘삶을 참조하는 앎’의 구분은 상대적인 것이다. 누구에게나 앎과 삶은 직물을 짜는 씨실과 날실처럼 교차한다. 나처럼 읽고 쓰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도 삶에 대한 참조 없이 읽기와 쓰기가 진행되지는 않는다. 책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삶의 페이지를 되넘기는 일이 무의식적으로 계속 일어난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문장들은 내 삶의 어떤 일들을 격렬히 껴안은 후에야 생기를 얻는다. 그래서 커다란 기쁨으로 마무리될 때조차 읽기와 쓰기는 사람을 지쳐 쓰러지게 만든다. 읽기와 쓰기 모두 겪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해 대학 강의를 하다가 이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사건을 만났다. 한 학생이 몸이 아파 중간시험을 응시하지 못했다. 나는 그에게 책 한 권을 지정해주고 그 내용을 요약한 뒤 자유롭게 비평해보라는 과제를 냈다. 그가 제출한 독후감은 전체적으로 매끄럽고 깔끔했다. 하지만 정장 입고 놀이공원에 온 사람처럼 어딘가 어색했다. 문장들을 하나씩 살펴보니 문제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직접 인용한 문장들은 책에 있는 정확한 문장이 아니었고 무엇보다 저자 이름을 엉뚱하게 썼다(참고로 책의 저자는 나였다). AI가 작성한 글이었다. 읽지도 않고 쓰지도 않았는데 독후감이 나왔다. 겪지도 않은 일에 대한 보고서였던 셈이다(그가 이용한 거대언어모델 AI도 독자나 저자가 아니었다. 그것은 텍스트를 추출하고 합성했을 뿐이다).
지난달 배재고등학교 야구부 학생들이 ‘5·18민주화운동’을 폄훼하고 조롱하는 응원 구호를 외친 것 때문에 학교 측에서 사과문을 게재했는데 AI로 작성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할 때 겪게 되는 온갖 감정들을 겪지 않은 채 사과문이 나온 셈이다. 사과의 감정과 무관하게 작성된 사과문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오래전 현장인문학이 내게 준 가르침은 앎만을 참조하는 앎을 경계하라는 것이었다. 삶과 무관한 앎은 삶을 참조하고 삶으로 구현할 때의 갈등과 고통을 제거해주지만 그만큼 삶에 무력한 것이다. 그런데 AI 시대의 앎, AI 시대의 읽기와 쓰기는 이런 경향의 끝판왕처럼 보인다. 삶을 참조하는 일은 고사하고, 앎의 생산 과정조차 체험하지 않게 만든다. 읽지도 않은 읽기, 쓰지도 않은 쓰기의 결과물들이 깔끔한 정장을 입고 곳곳에 등장한다.
니체는 “피로 쓴 글만을 사랑한다”며 “글을 쓰려면 피로 쓰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 시대의 지식, 우리 시대의 문장들에는 피의 공급이 급감하고 있다. 글을 쓸 때 피를 흘리는 사람도, 글을 읽을 때 피 냄새를 맡는 사람도 사라져가고 있다. 피의 공급 없이, 핏물이 다 빠진 문장들을 조합하고 재조합해서 만들어낸 생성형 문장들이 퇴적되고 있을 뿐이다. 피가 끊겼으니 썩을 일만 남은 것일까. 생성이 부패였던가. 삶에 무의미한 문장들이 이제 산더미가 되었다.
“석사자상은 중국 유물이니 언젠가 고향에 보내주는 것이 좋겠다.”
간송미술관 보화각 입구를 90년 가까이 지켜오던 청대(淸代) 석사자상(石獅子像) 한 쌍을 두고 간송 전형필(1906~1962)은 생전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이 석사자상이 중국으로 돌아간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간송미술관과 공동으로 23일 간송미술관이 소장하던 중국 청대 석사자상 기증식을 열었다.
이번 기증식은 지난 1월 한·중 정상회담 당시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중국 국가문물국과 서명한 기증 협약을 이행하는 것이다.
기증식에는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 전인건 간송미술관장 등 한국 측 인사와 라오취안 중국 국가문물국장, 다이빙 주한 중국대사 등 중국 측 대표단을 포함해 50여명이 참석했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간송미술관, 중국 국가문물국은 유물의 소유권 이전과 실물 양도를 증명하는 ‘유물 인도·인수 확인서’에 최종 서명했고, 유물 운송 절차를 진행하게 된다.
석사자상은 간송이 1930년대 일본 오사카 경매에서 고려와 조선 석조 유물과 함께 구입한 것이다. 이후 석사자상은 간송미술관의 유물 전시장인 보화각이 건립되면서 건물 입구에 배치돼 이 자리를 지켜왔다.
간송은 생전 석사자상을 중국으로 반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미술관 측은 2016년 수장고를 신축할 당시 자체적으로 해당 유물의 중국 기증을 추진하다 중단했으며, 올해 간송 탄생 120주년을 맞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 관련 사무를 맡겼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연초 이재명 대통령의 중국 국빈방문을 계기로 한·중 우호관계 발전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아 중국 측에 간송미술관의 기증 의사를 전했다. 이후 중국 전문가 5명이 간송미술관을 찾아 감정을 진행했다. 이들은 “청대 작품으로 역사적, 예술적, 과학적 가치를 모두 갖춘 우수한 작품”이라며 “베이징 또는 화북 지방의 대리석을 사용했고, 제작 기술이나 장식 표현이 정교하고 예술성이 뛰어나 황족 저택인 왕부(王府)의 문 앞을 지킨 택문(宅門) 석사자상으로 추정된다”고 감정했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문화로 나라를 지킨 간송 선생의 유지에 발맞추어 국립중앙박물관이 한·중 문화 소통과 연대의 모범적인 이정표를 세우게 되어 뜻깊게 생각한다”며 “이번 기증식이 양국 문화교류를 풍성하게 만드는 새로운 동력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26일(현지시간) 알렉산더 도브린트 독일 내무장관은 기자회견에서 “현재까지 확보된 모든 정황은 이번 사건이 이슬람 극단주의에 의한 테러 공격임을 시사한다”고 밝다. 그는 용의자가 차량 돌진 이후 흉기를 휘두른 정황도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레바논계 독일 국적자인 압둘 B(21)는 전날 오후 10시15분쯤 성소수자 축제 ‘크리스토퍼 스트리트 데이’가 열린 베를린 도심에서 흰색 밴을 몰고 인파를 향해 돌진한 뒤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공격으로 여성 1명이 숨지고 29명이 다쳤다. 부상자는 애초 16명으로 집계됐으나 이후 29명으로 늘었다. 이 가운데 최소 3명은 중태여서 사망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경찰은 차량 돌진 이후 흉기를 이용한 추가 범행이 있었는지, 공범이 있었는지 등을 함께 조사하고 있다.
독일 일간 쥐트도이체차이퉁(SZ)은 용의자가 지난해 말 레바논에서 독일로 귀국하는 길에 베를린-브란덴부르크 공항에서 체포돼 지난 5월까지 구금됐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당시 보안 당국은 그가 시리아로 이동해 IS에 합류하려했으며 테러를 모의한 정황을 포착했고, 이후 급진적·폭력적 성향의 위험인물로 분류해 관리했다.
경찰은 사건 직후 열화상 카메라를 장착한 헬기를 공원 상공에 띄워 추적하고 있다. 이날 새벽부터 용의자와 가족의 주거지를 압수수색했지만 아직 행방은 확인되지 않았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이번 사건을 “극악무도한 행위이자 독일 사회에 대한 공격”이라고 규정하며 “사건의 전모를 철저히 규명하고 최대한 엄중한 처벌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독일 국내정보기관 연방헌법수호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독일에는 폭력 성향의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9110명 있다. 이중 1940명이 베를린에 거주하고 있다.
차량을 이용해 다중 인파를 노리는 공격은 IS 등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들이 반복적으로 사용해 온 테러 수법이다. 2016년 7월 프랑스 니스에서는 바스티유의 날 행사에 트럭이 돌진해 86명이 숨졌고, 같은 해 12월에는 튀니지 출신 IS 추종자가 베를린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트럭을 몰고 돌진해 13명이 사망했다.
오래전 나는 현장인문학에 적극적이었다. 현장인문학은 삶에 필요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도덕적 자원을 많이 갖지 못한 가난한 사람들과 인문학을 공부하는 프로그램이다. 주로 내가 강의했던 곳은 교도소와 야학이었다. 책은 어디서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 읽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읽힌다는 것을 여기서 체험했다. 이를테면 루쉰의 ‘철방에 잠든 사람들’을 교도소에서 읽는 것과 대학에서 읽는 것은 완전히 다른 감응을 불러일으킨다.
당시 나는 대학수업과 현장인문학을 자주 비교했다. 둘은 앎을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방식에서 크게 달랐다. 나는 둘의 차이를 ‘앎을 참조하는 앎’과 ‘삶을 참조하는 앎’이라는 말로 표현한 적이 있다. 대학이나 연구자집단에서 강의하거나 발표할 때 청중은 어떤 학자의 이론이나 개념을 떠올리고 내 주장과 그것을 관련지어 물을 때가 많았다. 기존 지식을 참조하고 비교하면서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앎의 회로 안에서 하나의 앎이 다른 앎을 가리키는, 자기 지시 형태의 앎이라고 할 수 있다.
삶의 갈등·고통 등 감정 지운 채문장의 조합으로 만든 AI 글쓰기‘앎만 참조하는 앎’이 계속되면서삶에 무력한 문장들만 쌓여간다
그런데 현장인문학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렇게 묻지 않았다. 물론 이것은 이들의 가방끈이 짧은 사정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뭔가를 물을 때 이들은 대체로 자신의 삶을 참조했다. “예전에 내게 이런 일이 있었어요.” 그러다보면 수업은 곧잘 인생 상담으로 흘러갔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 거예요?” 어떤 재소자는 의사도 아닌 내게 어딘가 아프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앎을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방식도 그랬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새로운 앎의 획득이 머리카락을 자르거나 말투를 바꾸는 등 신체나 행동의 변화로 나타나는 일이 많았다.
물론 ‘앎을 참조하는 앎’과 ‘삶을 참조하는 앎’의 구분은 상대적인 것이다. 누구에게나 앎과 삶은 직물을 짜는 씨실과 날실처럼 교차한다. 나처럼 읽고 쓰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도 삶에 대한 참조 없이 읽기와 쓰기가 진행되지는 않는다. 책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삶의 페이지를 되넘기는 일이 무의식적으로 계속 일어난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문장들은 내 삶의 어떤 일들을 격렬히 껴안은 후에야 생기를 얻는다. 그래서 커다란 기쁨으로 마무리될 때조차 읽기와 쓰기는 사람을 지쳐 쓰러지게 만든다. 읽기와 쓰기 모두 겪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해 대학 강의를 하다가 이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사건을 만났다. 한 학생이 몸이 아파 중간시험을 응시하지 못했다. 나는 그에게 책 한 권을 지정해주고 그 내용을 요약한 뒤 자유롭게 비평해보라는 과제를 냈다. 그가 제출한 독후감은 전체적으로 매끄럽고 깔끔했다. 하지만 정장 입고 놀이공원에 온 사람처럼 어딘가 어색했다. 문장들을 하나씩 살펴보니 문제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직접 인용한 문장들은 책에 있는 정확한 문장이 아니었고 무엇보다 저자 이름을 엉뚱하게 썼다(참고로 책의 저자는 나였다). AI가 작성한 글이었다. 읽지도 않고 쓰지도 않았는데 독후감이 나왔다. 겪지도 않은 일에 대한 보고서였던 셈이다(그가 이용한 거대언어모델 AI도 독자나 저자가 아니었다. 그것은 텍스트를 추출하고 합성했을 뿐이다).
지난달 배재고등학교 야구부 학생들이 ‘5·18민주화운동’을 폄훼하고 조롱하는 응원 구호를 외친 것 때문에 학교 측에서 사과문을 게재했는데 AI로 작성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할 때 겪게 되는 온갖 감정들을 겪지 않은 채 사과문이 나온 셈이다. 사과의 감정과 무관하게 작성된 사과문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오래전 현장인문학이 내게 준 가르침은 앎만을 참조하는 앎을 경계하라는 것이었다. 삶과 무관한 앎은 삶을 참조하고 삶으로 구현할 때의 갈등과 고통을 제거해주지만 그만큼 삶에 무력한 것이다. 그런데 AI 시대의 앎, AI 시대의 읽기와 쓰기는 이런 경향의 끝판왕처럼 보인다. 삶을 참조하는 일은 고사하고, 앎의 생산 과정조차 체험하지 않게 만든다. 읽지도 않은 읽기, 쓰지도 않은 쓰기의 결과물들이 깔끔한 정장을 입고 곳곳에 등장한다.
니체는 “피로 쓴 글만을 사랑한다”며 “글을 쓰려면 피로 쓰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 시대의 지식, 우리 시대의 문장들에는 피의 공급이 급감하고 있다. 글을 쓸 때 피를 흘리는 사람도, 글을 읽을 때 피 냄새를 맡는 사람도 사라져가고 있다. 피의 공급 없이, 핏물이 다 빠진 문장들을 조합하고 재조합해서 만들어낸 생성형 문장들이 퇴적되고 있을 뿐이다. 피가 끊겼으니 썩을 일만 남은 것일까. 생성이 부패였던가. 삶에 무의미한 문장들이 이제 산더미가 되었다.
“석사자상은 중국 유물이니 언젠가 고향에 보내주는 것이 좋겠다.”
간송미술관 보화각 입구를 90년 가까이 지켜오던 청대(淸代) 석사자상(石獅子像) 한 쌍을 두고 간송 전형필(1906~1962)은 생전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이 석사자상이 중국으로 돌아간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간송미술관과 공동으로 23일 간송미술관이 소장하던 중국 청대 석사자상 기증식을 열었다.
이번 기증식은 지난 1월 한·중 정상회담 당시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중국 국가문물국과 서명한 기증 협약을 이행하는 것이다.
기증식에는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 전인건 간송미술관장 등 한국 측 인사와 라오취안 중국 국가문물국장, 다이빙 주한 중국대사 등 중국 측 대표단을 포함해 50여명이 참석했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간송미술관, 중국 국가문물국은 유물의 소유권 이전과 실물 양도를 증명하는 ‘유물 인도·인수 확인서’에 최종 서명했고, 유물 운송 절차를 진행하게 된다.
석사자상은 간송이 1930년대 일본 오사카 경매에서 고려와 조선 석조 유물과 함께 구입한 것이다. 이후 석사자상은 간송미술관의 유물 전시장인 보화각이 건립되면서 건물 입구에 배치돼 이 자리를 지켜왔다.
간송은 생전 석사자상을 중국으로 반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미술관 측은 2016년 수장고를 신축할 당시 자체적으로 해당 유물의 중국 기증을 추진하다 중단했으며, 올해 간송 탄생 120주년을 맞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 관련 사무를 맡겼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연초 이재명 대통령의 중국 국빈방문을 계기로 한·중 우호관계 발전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아 중국 측에 간송미술관의 기증 의사를 전했다. 이후 중국 전문가 5명이 간송미술관을 찾아 감정을 진행했다. 이들은 “청대 작품으로 역사적, 예술적, 과학적 가치를 모두 갖춘 우수한 작품”이라며 “베이징 또는 화북 지방의 대리석을 사용했고, 제작 기술이나 장식 표현이 정교하고 예술성이 뛰어나 황족 저택인 왕부(王府)의 문 앞을 지킨 택문(宅門) 석사자상으로 추정된다”고 감정했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문화로 나라를 지킨 간송 선생의 유지에 발맞추어 국립중앙박물관이 한·중 문화 소통과 연대의 모범적인 이정표를 세우게 되어 뜻깊게 생각한다”며 “이번 기증식이 양국 문화교류를 풍성하게 만드는 새로운 동력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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