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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비대면 폰테크 [중얼거리는 사진 한 장]세상에서 가장 작은 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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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이이
댓글 0건 조회 3회 작성일 26-07-24 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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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폰테크 오랫동안 도시 변두리의 연립주택과 아파트를 전전하며 살았다. 지금 사는 곳도 논밭이 아파트 단지로 바뀐 작은 신도시에 가깝다. 이런 곳에서 자주 보게 되는 것은 자투리 땅만 생기면 어떻게든 개간해서 만든 밭이다. 가끔은 ‘사유지이니 경작을 금지한다’는 팻말이 서 있기도 하지만 이를 신경 쓰는 사람은 거의 없어 보였다.
대단한 작물을 심는 것은 아니다. 상추, 고추, 가지, 토마토 따위의 야채류가 대부분이다. 가끔 콩을 심기도 하고 꽃을 기르는 경우도 있다. 사진 속의 밭은 수년 전 세들어 살던 어느 아파트 단지 밖의 길가에 있던, 내가 본 것 중 가장 작은 밭이었다. 직경이 1m도 안 되는 정도의 땅을 돌로 둥글게 경계를 만들고 그 안에 씨를 뿌린 것이다.
이 밭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렇게 작은 밭은 손자·손녀의 농사 체험을 위해 만든 것일까, 아니면 다른 땅을 이미 남들이 차지해 어쩔 수 없이 일군 것일까. 그러면서도 감탄했다. 어떻게든 작은 밭이라도 일궈 무언가를 심어보려는 의지, 혹은 본능에 대한 것이었다.
이런 것을 농경민족의 후예가 가진 농업본능이라고 불러도 될까? 도시인들 가운데 상당수는 농촌 출신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취미로라도 농사를 지으려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어떤 주간지에는 그런 경험들이 에세이로 실리기도 하고, 책으로 펴내는 사람들도 있다. 확실히 우리에게는 그런 유전자 혹은 문화적 밈이 있지 않은가 싶기도 하다.
도시의 골목을 돌아다니면 쉽게 보게 되는 화분에 배추나 고추, 상추를 키우는 것도 작은 밭의 일종일 것이다. 재배본능 혹은 경작본능이라고도 부른다는 이 농업본능은 사라진 공동체에 대한 향수와 뭔가를 키운다는 즐거움이 겹쳐서 나타난 것일까.
그러면서 취미로 짓는 농사와 먹고살기 위한 본격적인 농사 사이에는 얼마나 큰 격차와 거리가 있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나도 시골 출신이라 어릴 적 농사일을 많이 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도 모내기를 할 때는 못줄을 잡거나 모를 날랐다. 기계화되기 이전이라 동네 사람들과 품앗이를 통해 여러 사람이 모여 모를 심었다. 물론 점심 때 먹는 못밥의 맛을 잊을 수가 없다. 그날은 특별한 날이라 보통 때와는 다르게 먹을거리가 풍성했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한 끼 먹고들 갔다.
가뭄이 심할 때는 작대기모와 호미모도 심었다. 작대기모는 겨우 물을 적신 논바닥에 작대기로 구멍을 뚫은 다음 모를 심는 것이고, 호미모는 호미로 파내 모를 심는 것이다. 모줄 없이 삐뚤빼뚤 심는 모라 고향에서는 그걸 지랄모라고 불렀다.
이 밖에도 농약 치기, 보리 베어 지게로 나르기, 퇴비 만들기 등 여러 일을 했다. 가장 힘든 일은 지독한 농약 냄새를 맡으며 한여름 땡볕 아래에서 농약을 치는 일이었다. 가끔은 머리가 핑 돌기도 했다. 파라티온, 다이야지논, 호리돌 같은 농약 이름이 아직도 기억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 작은 밭에도 작물이 자라면 잎마다 진딧물과 벌레가 달라붙었을 것이다. 농약을 뿌렸을까. 알 수 없지만 마음은 쓰였을 것이다. 아무리 작은 밭이라도 정성 들여 키운 작물이 해를 입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힘든 법이니까.
새벽 네 시. 산과 하늘의 경계가 아직 짙은 어둠 속에 잠겨 있을 때, 청도 운문사에는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도량석을 도는 목탁 소리가 깊은 산사의 적막을 깨우면, 회색 장삼을 갖춰 입은 스님들이 하나둘 법당으로 향한다. 세상 사람들이 잠에서 깨어나기도 전, 이곳에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수행자의 삶을 익히는 또 하나의 하루가 시작된다.
청도 운문사 승가대학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비구니 교육도량이다. 출가 후 기본교육을 받는 학인 스님들은 이곳에서 4년 동안 경전과 불교 교학을 공부한다. 그러나 승가대학의 교육은 책상 앞에서 이루어지는 공부에만 머물지 않는다. 예불과 참선, 발우공양, 독경과 운력, 엄격한 공동생활을 통해 수행자로서 갖추어야 할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함께 배운다.
새벽예불을 마친 스님들은 줄을 맞춰 법당을 나선다. 앞사람의 걸음에 맞춰 흐트러짐 없이 이어지는 행렬은 마치 기러기가 줄지어 날아가는 모습과 닮았다. 그래서 사찰에서는 이를 ‘안행(雁行)’이라 부른다. 법당으로 향할 때도, 예불을 마치고 돌아올 때도 걸음은 조용하고 질서정연하다. 함께 걷는 짧은 순간에도 대중생활의 규율과 배려가 담겨 있다.
새벽예불 뒤에는 하루의 첫 끼인 아침공양이 이어진다. 학인 스님과 강사 스님 등 대중이 큰방에 모여 발우공양을 한다. 발우는 크기가 다른 네 개의 나무 그릇으로 이루어져 있다. 스님들은 먹을 만큼만 음식을 덜고, 받은 음식은 고춧가루 하나 남기지 않고 깨끗이 먹는다. 발우공양에는 음식과 그것을 마련한 모든 인연에 감사하고, 필요한 만큼을 평등하게 나누며, 욕심을 절제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식사가 끝난 뒤에는 물로 발우를 씻고 그 물까지 남김없이 마신다. 공양 또한 배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절제와 감사, 청결을 배우는 하나의 수행이다. 운문사에서는 하루 한 끼를 발우공양으로 하고, 나머지 두 끼는 후원인 공양간에서 한다.
아침공양과 도량 청소가 끝나면 오전 수업에 앞서 상강례가 진행된다. 상강례는 ‘강의에 오르기 전에 올리는 예’라는 뜻이다. 학인 스님들은 경전을 설한 부처님과 그 가르침을 전하고 번역하고 해설해 온 여러 보살과 조사 스님들에게 감사의 예를 올린다. 이어 오늘의 공부가 단순한 지식 습득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마음과 삶을 바꾸는 바른 배움이 되기를 발원한다. 경전을 펼치기 전에 먼저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 것이다. 운문사에서 경전 공부는 교과서를 읽고 내용을 기억하는 학업만이 아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경하고, 그 가르침을 어떻게 삶으로 실천할 것인지 되묻는 수행의 한 과정이다.
오전 7시 30분이 되면 본격적인 강의가 시작된다. 1학년 치문반, 2학년 사집반, 3학년 사교반, 4학년 대교반의 학인 스님들이 학년별로 각자의 강의실에 모인다. 치문반에서는 출가 수행자로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규범과 마음가짐을 익힌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불교의 주요 경전과 사상, 선어록 등을 폭넓게 배우며 마지막 대교반에서는 화엄경을 비롯한 깊이 있는 교학을 공부한다. 강의실에서는 강사 스님의 설명을 듣는 데 그치지 않는다. 경전 원문을 읽고 뜻을 새기며, 배운 내용을 서로 묻고 답한다. 저녁에는 그날 공부한 내용을 다시 점검하는 논강과 강경이 이어진다. 경전의 문장을 외우고 설명하는 과정은 단순한 암기처럼 보일 수 있지만, 같은 구절을 거듭 읽고 되새기면서 가르침을 자신의 언어와 생각으로 받아들이는 훈련이다.
오전 수업을 마치면 다시 법당에서 예불을 올리고, 오전 11시 30분에는 점심공양을 한다. 오후에는 독경과 수업 준비, 운력이 이어진다. 운력은 대중이 힘을 모아 도량을 청소하거나 밭을 가꾸고 필요한 일을 함께하는 공동노동이다. 마당을 쓸고, 공양을 준비하고, 계절에 따라 도량을 돌보는 모든 일이 수행의 일부다.
운문사 승가대학에서는 공부하는 시간과 일하는 시간, 기도하는 시간이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경전을 읽을 때는 경전을 읽는 마음에 충실하고, 마당을 쓸 때는 비질하는 일에 온전히 집중한다. 아무리 사소해 보이는 일이라도 정성을 다하면 그 자리에서 수행이 이루어진다는 가르침을 몸으로 익히는 것이다.
오후 일정이 끝난 뒤에는 저녁공양과 저녁예불이 이어진다. 예불을 마친 학인 스님들은 다시 강의실에 모여 저녁 논강을 한다. 하루의 공식 일정이 끝나는 시각은 밤 9시 무렵이다. 그제야 스님들은 잠시 몸을 누이고 숨을 고를 수 있다. 다음 날 새벽 네 시면 다시 하루가 시작되기 때문에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온전히 자신만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다.
새벽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일과는 사관학교 생도의 생활을 떠올리게 할 만큼 규칙적이고 엄격하다. 그러나 이러한 규율의 목적은 사람을 억누르는 데 있지 않다. 자신에게 익숙했던 습관과 고집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과 보조를 맞추며 살아가는 법을 익히게 하는 데 있다.
운문사 승가대학에는 한국에서 출가한 스님뿐 아니라 먼 나라에서 불교를 만나 수행자의 길을 선택한 외국인 학인 스님들도 생활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에서 온 혜산 스님에게 빽빽한 일정이 힘들지 않으냐고 물었다. “제가 좋아서 선택한 길입니다. 처음에는 언어 때문에 많이 힘들었고 한자는 지금도 어렵습니다. 그래도 이곳에서 생활하는 것이 너무 행복합니다. 힘들다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하루를 보내고 나면 밤 9시에는 바로 잠이 들어요.” 혜산 스님은 환하게 웃었다. 낯선 언어와 문화, 엄격한 일과 속에서도 그가 이 생활을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이 분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운문사 주지 은광 스님은 승가대학의 공부가 지식을 쌓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승가대학에서는 새벽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일과 속에서 자신을 낮추고 욕심을 덜어내는 법을 배웁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생활하면서 타인을 배려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도 몸으로 익히게 됩니다.”
승가대학은 경전을 많이 아는 사람을 만드는 곳이 아니라, 배운 가르침으로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수행자를 길러내는 곳이라는 뜻이다. 머리로 이해한 부처님의 말씀을 행동으로 옮기고, 일상의 작은 순간마다 자신의 마음을 살피는 것이 운문사 교육의 핵심이다.
운문사의 교육은 승가대학에만 머물지 않는다. 한문 불전을 깊이 연구하는 교육과정과 계율·참선 교육을 비롯해 졸업한 스님들의 지속적인 공부를 위한 삼학수림도 운영한다. 일반인에게는 불교대학과 수행 프로그램을 열고 있으며, 출가와 수행자의 삶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바라밀 출가학교도 마련하고 있다. 출가자 교육에서 재교육, 일반인을 위한 불교 교육에 이르기까지 배움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한 사람이 세속의 이름과 익숙한 생활방식을 내려놓고 수행자로 거듭나기까지에는 얼마나 많은 질문과 인내가 필요할까. 출가는 옷을 바꾸고 머리를 깎는 한순간의 결심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예불하고, 경전을 읽고, 함께 밥을 먹고, 마당을 쓸며 자신의 마음을 거듭 돌아보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운문사 승가대학의 사계절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학인 스님들의 시간이다. 봄에는 경전을 펼치고, 여름에는 땀 흘려 도량을 가꾼다. 가을에는 배운 가르침을 되새기고, 겨울에는 깊은 고요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마주한다.
그렇게 네 번의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을 지나며 학인 스님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머리로 배우는 사람에서 그 가르침을 일상으로 살아내는 수행자로 조금씩 성장해 간다. 운문사의 하루는 밤 9시에 끝나지만, 수행자가 되어가는 공부에는 정해진 끝이 없다.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26’ 후원작가 이해민선(49)·이정우(45)·전현선(37)·홍진훤(46)의 전시가 막을 올린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올해의 작가상 2026’을 24일부터 오는 12월6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개최한다고 23일 밝혔다. 최종 수상자는 10월에 발표한다.
‘올해의 작가상’은 국립현대미술관과 SBS문화재단이 2012년부터 공동으로 주최해온 현대미술 작가 후원 프로그램이다. 매년 작가 4인(팀)을 선정하여 신작 제작과 전시 등을 후원하고 있다.
세계를 바라보는 익숙한 방식에 질문을 던지는 네 작가의 시선을 통해 동시대 미술의 현재를 조망한다. 이해민선은 사물과 환경에 축적된 시간의 흔적을 세심하게 관찰하며, 소멸과 지속 사이에 놓인 존재들의 상태를 회화와 설치 작업으로 탐구해왔다. ‘잔설’은 눈을 직접 그리는 대신 인화지의 흰색을 남긴 채, 그 주변의 먼지와 얼룩, 녹아내린 자국으로 표현했다. ‘바깥’과 ‘직립식물_덩어리’는 임시적인 것이 오래 지속되며 형성하는 풍경과 관계를 보여준다.
이정우는 생성형 인공지능(AI)과 데이터 기술이 현실과 역사를 구성하는 방식에 주목한다. ‘씌여진 영화, 씌여질 역사’는 해방 직후 만들어진 영화 <자유만세>에서 사라진 장면을 AI로 재구성해 과거의 검열이 오늘날 기술과 매체 환경에서 변형돼 반복되는 양상을 짚고, ‘왼손의 사수’는 영상 생성 모델의 오류를 통해 기술의 한계를 드러낸다.
전현선은 회화를 복합적인 공간 경험으로 확장해온 작가다. 2m 크기의 캔버스 30점을 암벽등반장처럼 비스듬하게 연결한 ‘토끼도 굴을 두 개 판다’는 관람객이 저마다의 시선과 경로로 이미지를 따라가며, 열린 해석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구성했다. 그림에서 튀어나온 듯한 설치 조각들은 평면과 입체, 이미지와 사물의 경계를 넘나든다.
홍진훤은 사진, 영화, 웹프로그래밍 등을 활용해 이미지를 둘러싼 권력관계와 시각체계를 탐구해왔다. ‘이미지의 최고 형태는 무장투쟁이다’는 한국의 집회문화가 무대와 카메라를 위한 연출 속에서 점차 하나의 공연처럼 변해가는 모습을 성찰하는 영상 작업이다. ‘사실 은하수는 유령입니다’는 풍경 사진을 통해 이미지와 현실의 관계를 탐구한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올해의 작가상은 동시대 한국미술의 실험적 흐름과 새로운 담론을 제시해온 대표 전시”라면서 “보이는 것 너머의 구조와 조건을 탐구하는 네 작가의 작업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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