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구정구입 아비뇽 교황청 돌벽에 물든 ‘제주 4·3’의 기억···1900석이 한강의 문장에 숨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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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정구입 한낮의 열기가 물러간 아비뇽의 여름밤, 고도(古都)의 심장 교황청 무대에 한강의 문장이 울려 퍼졌다. 제80회 아비뇽 페스티벌이 사상 처음으로 한국어를 공식 초청 언어로 선정한 가운데, 15일(현지시간) 한강의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원작으로 한 낭독공연 <새>(Oiseau)가 교황청 궁전 명예극장에서 막을 올렸다.
프랑스 연출가 줄리 델리케가 소설의 1장을 무대화한 이 공연은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의 작품을 한국 배우 이혜영과 프랑스의 이자벨 위페르가 두 개의 언어로 들려주는 낭독극이라는 점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어둠이 내려앉아 불을 밝힌 교황청 무대는 공연 시작 전부터 1900석 규모의 객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로 장관을 이뤘다. 중세 고딕 양식의 교황청 돌벽을 배경으로 펼쳐진 무대는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을 자아냈다.
원작은 주인공 경하가 친구 인선의 부탁을 받고, 홀로 남겨진 인선의 앵무새를 구하기 위해 눈보라를 뚫고 제주 중산간의 인선의 집으로 향하는 여정을 그린다. 제주에서 경하는 인선의 가족이 겪었던 제주 4·3 의 참혹한 역사를 접하며 깊은 애도의 시간을 갖게 된다.
작은 새소리와 함께 흰옷을 입고 무대에 등장한 두 낭독자는 프랑스어와 한국어를 주고받으며 손가락 절단 사고를 당한 인선이 입원한 병원으로, 폭설이 내리는 제주로, 군경이 마을 사람들을 학살한 수십 년 전 그날로 관객들을 이끌었다. 낭독극이라는 형식이 무색할 만큼 두 배우는 절제된 몸짓과 목소리만으로 경하와 인선의 감정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무대 뒤 돌벽에 프랑스어·영어 자막이 차례로 새겨지며 하나의 기억과 감정으로 이어졌다.
공연 끝 무렵, 한강이 직접 무대에 올랐다. 흰옷을 입은 한강은 제주 4·3과 한국전쟁 초기 민간인 학살의 기억이 맞닿는 대목을 조용히 읽어 내려갔다. 전쟁과 트라우마, 아이들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그의 담담한 목소리에 객석은 숨을 죽였다.
약 90분간 진행된 공연은 자정 가까운 시간이 되어서야 막을 내렸다. 한강과 이혜영, 위페르가 무대 인사를 마치고 퇴장한 뒤에도 박수가 잦아들지 않자 다시 무대 앞으로 나와 객석을 바라보며 5분 가까이 관객들에게 인사했다.
공연이 끝난 뒤 객석을 빠져나오던 프랑스 관객 크리스 마르탱은 “한국어를 소설로 듣는 독특한 경험이었다”며 “한국의 역사를 잘 알지 못하지만 슬픔과 애도의 감정이 충분히 전해졌다”고 말했다.
이번 축제에서는 이탈리아 극단 INDEX의 다리아 데플로리안이 연출한 <사랑이란 얼마나 끔찍한 고통인가>도 18일까지 카르멘 수도원 회랑에서 공연된다. 이 작품 역시 <작별하지 않는다>를 각색한 연극으로, 데플로리안은 배우 모니카 피세두와 함께 무대에 오른다.
데플로리안은 앞서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연극으로 옮긴 데 이어 다시 그의 작품을 무대화했다. 이번 작업을 준비하며 모니카 피세두와 함께 제주를 찾아 4·3평화공원을 방문한 그는 “제주의 풍경과 바다를 본 뒤 이탈리아로 돌아와 소설을 다시 읽었을 때 작품이 완전히 다르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그는 한강 작품에 매료된 이유로 “폭력을 다루는 방식”을 꼽았다. 데플로리안은 “한강은 사적인 폭력과 국가가 행사하는 제도적 폭력 사이에 분명한 경계를 긋지 않는다”며 “그 두 층위를 끊임없이 교차시키는 방식이 매우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머릿속 노동은 누가 하는가
앨리슨 데이밍거 지음 | 전경훈 옮김 | 한겨레출판 | 436쪽 | 2만4000원
한국 남편들의 성향에 대해 떠도는 에피소드가 있다. 아내가 남편에게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다녀오라고 말한다. 남편은 아이가 어디가 아픈지도 모른 채 병원에 데려간다. 아내가 병원에 다녀온 남편에게 “어떻대?” 하고 물으면, 남편은 “몰라. 약 먹이래”라고 답한다. 이런 남편을 여러 번 본 의사는 아예 “내 말을 녹음해 부인에게 전하라”고도 한다.
좀 더 우스꽝스러운 에피소드도 있다. 한 가족이 여름휴가를 떠나기 위해 비행기에 탑승했다. 자리에 앉은 남편이 묻는다. “근데 우리 지금 어디 가는 거야?”
과장됐을 법하지만 사실과 거리가 멀다고 단정할 수도 없는 이 에피소드들은 한국 남편의 무심함 혹은 무던함을 보여준다. 육아카페에 올리면 꽤 공감을 받을 수도 있겠다. 얼핏 생각하면 그리 ‘나쁜 남편’은 아닌 것도 같다. 적어도 아내의 말을 듣고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고 여행을 떠났으니까. 그런데 그걸로 충분한 걸까.
<머릿속 노동은 누가 하는가>(원제 What’s On Her Mind)는 가사노동에서 보이지 않았던 영역을 명확하게 드러내 개념화한다. 저자가 인지노동(cognitive labor)이라고 부르는 이 노동은 “가족의 필요와 요구가 무엇인지, 가족이 가족 외부 타인과 사회에 대해 어떤 의무를 지는지, 그러한 가족의 필요와 의무가 충족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수행되는 일련의 사고 과정”을 뜻한다. 가정의 ‘프로젝트 매니저’로서의 역할인 셈이다.
요리, 설거지, 빨래, 청소 등의 행동이 가사노동이라는 건 분명하다. 저녁으로 무엇을 먹을지, 냉장고 안의 두부가 상하지 않았는지, 세제가 떨어졌는지, 아이의 예방접종은 언제 맞혀야 하는지 등을 살피고 대비하는 머릿속의 행위를 ‘노동’이라고 칭하기는 쉽지 않다. 남성의 가사노동 시간이 과거보다 늘어났지만 여전히 여성만 분주하게 보이는 이유는 여성이 인지노동을 주로 맡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 책의 골자다. 미국의 사회학자인 앨리슨 데이밍거는 이 책을 위해 이성애·퀴어 부모 172명을 인터뷰했다.
집안일을 ‘경제적 생산활동’으로 인식하게 된 데는 지난 시대 페미니스트와 경제학자, 사회학자의 공이 컸다. 이들은 요리, 청소, 육아 등을 시와 분 단위로 측정해 가사노동의 가치와 분담을 연구했다. 문제는 어떤 가사노동은 시간으로 측정되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집안일을 정당한 사회과학 연구 대상으로 인정받게끔 한 결과, 가사노동의 복잡성과 미묘함을 축소하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인지노동은 측정하기 모호한 회색지대다. 빨래는 끝과 시작이 명확하지만, 휴가철 여행 계획을 짜는 일은 언제 시작해 끝나는지 알 수가 없다. 남편은 비행기 시간과 목적지를 알면 그만이지만, 어디를 가야 할지, 어떤 비행편이 좋을지, 어떤 숙소를 택해야 할지 결정하는 과정의 노고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인지노동은 정신의 알람과 같다. 여행 계획 세우는 일이 마무리될 때까지 알람은 계속 울린다. 정신의 알람은 마치 백그라운드 작업과 같아서, 직장에서 일하거나 휴식을 취할 때도 종종 울린다.
남성이 가정의 경제에 더 많이 기여하기에 인지노동은 여성의 몫이라는 견해도 있을 수 있다. 저자는 다양한 계층의 가정을 조사했다. 그 결과 여성의 소득이 더 높거나 노동시간이 길더라도 여성이 여전히 인지노동을 주도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성이 인지노동에 적합한 이유는 ‘성격’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한때 유행했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류의 인식처럼, 여성과 남성의 특성이 다르고 각자 특성에 맞게 가사노동을 분담하면 된다는 것이다.
데이밍거는 이를 ‘초인 여성’과 ‘허당 남성’ 유형으로 분석한다. 여성이 인지노동을 하는 것은 여성이라서가 아니라, “내가 계획을 잘하는 사람이어서” “남편은 원래 얼렁뚱땅해서”라는 것이다. 데이밍거는 이러한 ‘성격 본질주의’에도 반박한다. 예를 들어 교사 수십명, 학생 수백명의 일정을 조율하는 교장인 남편이 가족의 휴가 계획은 짜기 어려워한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나. 손재주가 없어서 집안일을 못한다는 남성의 직업이 정밀한 수술을 집도하는 외과의사라면 또 어떨까. 저자는 “정신 사용 영역에서도 실천이 완벽을 만든다”고 말한다. 아이가 어린 시절부터 더 많은 육아 자료를 찾아보는 사람이 그러지 않는 사람보다 더 훌륭한 육아 전문가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저자가 만난 동성 커플 중에도 인지노동이 한쪽에 불균형하게 전가되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전통적 성역할에서 벗어난 이들은 “모든 게 협상”이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파트너는 아이를 돌보고 자신은 돈을 주로 벌기로 한 퀴어 남성은 인지노동을 “시간이 지나면서 단련되는 근육”에 비유했다. 저자 역시 인지노동이 “누구에겐 있고 또 누구에겐 없는 타고난 역량이라기보다는 연습해서 완성할 수 있는 일단의 기술”이라고 본다. 그렇다고 무심함과 서투름을 방패 삼아 책임을 회피하는 남편을 무작정 비난하는 건 아니다. 학교·병원 등에서 부부 중 아내를 먼저 찾는 식의 사회적 기대가 인지노동 능력의 격차를 만든다는 점을 명확히 한다.
무거운 인지노동 부담은 더 많은 스트레스와 불안을 주고 직업적 성장도 제한한다. 저자는 질 좋고 비용 부담 적은 보육 서비스 확대, 성별 고정관념 강화하지 않기, 가정 내 인지노동 재분배하기 등을 실천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경험하는 것을 가리키는 이름이 없으면 그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기는 매우 어려운 법이다.” 이 책은 가사노동의 모호한 영역에 ‘인지노동’이라는 명확한 이름을 붙였다. ‘남편이 집안일을 많이 도와주는데, 왜 나는 이리 힘들까’라고 생각해온 아내라면 마음속 불만이 명징한 이론으로 바뀌는 독서 경험을 할 수 있는 책이다.
정부가 16일 국내 증시 변동성 확대의 주범으로 지목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의 투자자 기본 예탁금을 현행 1000만원에서 3000만원로 높이기로 했다. 최소 주문 단위도 현 1주에서 20주로 늘리도록 했다. 다만 시장에선 ‘소액개미’ 투자 수요는 줄겠지만 워낙 두 종목 ‘쏠림’ 현상이 강한 국내 증시 특성상 예탁금을 높인다고 변동성이 잦아들지는 두고봐야 한다는 회의적인 반응이 나왔다.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한국거래소는 이날 구윤철 부총리 주재 시장상황점검회의(F4 회의) 결과 이 같은 내용의 단일종목 레버리지 보완 방안을 발표했다.
우선 8월 5일부터 투자자가 단일종목 레버리지 투자에 필요한 기본 예탁금이 기존 주식포함 1000만원에서 현금 3000만원으로 상향된다. 기존에는 예탁금 1000만원 중 70%는 보유한 주식 가치로 대체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3000만원이 모두 현금으로 있어야 투자가 가능하다. 이는 기존 투자자가 추가 매수를 할 때도 적용된다.
매매수량 단위도 11월부터 1주에서 20주씩으로 늘어난다. 지금까지 단일종목 레버리지는 통상적인 레버리지 ETF와 마찬가지로 1만~2만원 수준으로 발행돼 삼성전자·SK하이닉스 기초자산보다 적은 금액으로도 투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20주 단위로만 거래할 수 있게 되면서 투자에 필요한 최소 금액이 더 필요하다.
투자자 보호 강화 차원에서 단일종목 레버리지 투자를 위해 이수해야 하는 사전 교육은 다음달부터 기존 2시간에서 3시간으로 늘어난다.
기본 예탁금 상향과 매매수량 단위 확대, 사전 교육 강화는 신규 투자자의 진입 장벽을 높여 시장 과열을 완화하려는 조치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자산운용사의 괴리율 관리도 엄격해진다. 괴리율은 ETF의 실제 가치인 순자산가치(NAV)와 시장에서 거래되는 실제 가격(종가) 사이의 차이를 백분율로 나타낸 지표다. 괴리율이 커지면 투자자가 단일종목 레버리지를 실제 자산가치보다 비싸게 사서 싸게 파는 경우가 발생한다.
다음달부터 괴리율 관리의무 기준을 현행 3%에서 2%로 높인다. 적정괴리율을 위반한 운용사는 신규 ETF 상장이 제한될 수 있다. 괴리율이 급격히 커져 적정 가격이 형성되기 어려운 ETF의 경우 기존에는 3단계를 거쳐 투자유의종목으로 지정됐는데, 이제는 2단계만 거쳐도 지정되도록 개선했다.
정부는 또 새로운 단일종목 레버리지의 신규 상장을 즉시 중단하기로 했다. 이미 거래 중인 상품에 대해서도 광고·마케팅을 전면 금지한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시장 규모 확대를 막겠다는 취지다.
이날 대책은 ‘소액 개미’ 투자자의 수요를 줄이는 데는 일정 부분 영향이 있겠지만 국내 증시 변동성을 낮추는 데 충분한 효과가 있을지 두고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투자자 사전 교육을 한 시간 더 늘린다 해도 단기 수익에 목매는 개인 투자자들에게 교육이 제대로 될지 의문”이라며 “1주가 아닌 20주씩 사게 되면 변동성이 더 커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 온라인 주식 투자 커뮤니티에서 이날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는 오후 7시 기준 전체 응답자 5398명 중 85%(4563명)가 ‘이번 대책이 효과가 없다’고 응답했다.
프랑스 연출가 줄리 델리케가 소설의 1장을 무대화한 이 공연은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의 작품을 한국 배우 이혜영과 프랑스의 이자벨 위페르가 두 개의 언어로 들려주는 낭독극이라는 점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어둠이 내려앉아 불을 밝힌 교황청 무대는 공연 시작 전부터 1900석 규모의 객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로 장관을 이뤘다. 중세 고딕 양식의 교황청 돌벽을 배경으로 펼쳐진 무대는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을 자아냈다.
원작은 주인공 경하가 친구 인선의 부탁을 받고, 홀로 남겨진 인선의 앵무새를 구하기 위해 눈보라를 뚫고 제주 중산간의 인선의 집으로 향하는 여정을 그린다. 제주에서 경하는 인선의 가족이 겪었던 제주 4·3 의 참혹한 역사를 접하며 깊은 애도의 시간을 갖게 된다.
작은 새소리와 함께 흰옷을 입고 무대에 등장한 두 낭독자는 프랑스어와 한국어를 주고받으며 손가락 절단 사고를 당한 인선이 입원한 병원으로, 폭설이 내리는 제주로, 군경이 마을 사람들을 학살한 수십 년 전 그날로 관객들을 이끌었다. 낭독극이라는 형식이 무색할 만큼 두 배우는 절제된 몸짓과 목소리만으로 경하와 인선의 감정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무대 뒤 돌벽에 프랑스어·영어 자막이 차례로 새겨지며 하나의 기억과 감정으로 이어졌다.
공연 끝 무렵, 한강이 직접 무대에 올랐다. 흰옷을 입은 한강은 제주 4·3과 한국전쟁 초기 민간인 학살의 기억이 맞닿는 대목을 조용히 읽어 내려갔다. 전쟁과 트라우마, 아이들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그의 담담한 목소리에 객석은 숨을 죽였다.
약 90분간 진행된 공연은 자정 가까운 시간이 되어서야 막을 내렸다. 한강과 이혜영, 위페르가 무대 인사를 마치고 퇴장한 뒤에도 박수가 잦아들지 않자 다시 무대 앞으로 나와 객석을 바라보며 5분 가까이 관객들에게 인사했다.
공연이 끝난 뒤 객석을 빠져나오던 프랑스 관객 크리스 마르탱은 “한국어를 소설로 듣는 독특한 경험이었다”며 “한국의 역사를 잘 알지 못하지만 슬픔과 애도의 감정이 충분히 전해졌다”고 말했다.
이번 축제에서는 이탈리아 극단 INDEX의 다리아 데플로리안이 연출한 <사랑이란 얼마나 끔찍한 고통인가>도 18일까지 카르멘 수도원 회랑에서 공연된다. 이 작품 역시 <작별하지 않는다>를 각색한 연극으로, 데플로리안은 배우 모니카 피세두와 함께 무대에 오른다.
데플로리안은 앞서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연극으로 옮긴 데 이어 다시 그의 작품을 무대화했다. 이번 작업을 준비하며 모니카 피세두와 함께 제주를 찾아 4·3평화공원을 방문한 그는 “제주의 풍경과 바다를 본 뒤 이탈리아로 돌아와 소설을 다시 읽었을 때 작품이 완전히 다르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그는 한강 작품에 매료된 이유로 “폭력을 다루는 방식”을 꼽았다. 데플로리안은 “한강은 사적인 폭력과 국가가 행사하는 제도적 폭력 사이에 분명한 경계를 긋지 않는다”며 “그 두 층위를 끊임없이 교차시키는 방식이 매우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머릿속 노동은 누가 하는가
앨리슨 데이밍거 지음 | 전경훈 옮김 | 한겨레출판 | 436쪽 | 2만4000원
한국 남편들의 성향에 대해 떠도는 에피소드가 있다. 아내가 남편에게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다녀오라고 말한다. 남편은 아이가 어디가 아픈지도 모른 채 병원에 데려간다. 아내가 병원에 다녀온 남편에게 “어떻대?” 하고 물으면, 남편은 “몰라. 약 먹이래”라고 답한다. 이런 남편을 여러 번 본 의사는 아예 “내 말을 녹음해 부인에게 전하라”고도 한다.
좀 더 우스꽝스러운 에피소드도 있다. 한 가족이 여름휴가를 떠나기 위해 비행기에 탑승했다. 자리에 앉은 남편이 묻는다. “근데 우리 지금 어디 가는 거야?”
과장됐을 법하지만 사실과 거리가 멀다고 단정할 수도 없는 이 에피소드들은 한국 남편의 무심함 혹은 무던함을 보여준다. 육아카페에 올리면 꽤 공감을 받을 수도 있겠다. 얼핏 생각하면 그리 ‘나쁜 남편’은 아닌 것도 같다. 적어도 아내의 말을 듣고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고 여행을 떠났으니까. 그런데 그걸로 충분한 걸까.
<머릿속 노동은 누가 하는가>(원제 What’s On Her Mind)는 가사노동에서 보이지 않았던 영역을 명확하게 드러내 개념화한다. 저자가 인지노동(cognitive labor)이라고 부르는 이 노동은 “가족의 필요와 요구가 무엇인지, 가족이 가족 외부 타인과 사회에 대해 어떤 의무를 지는지, 그러한 가족의 필요와 의무가 충족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수행되는 일련의 사고 과정”을 뜻한다. 가정의 ‘프로젝트 매니저’로서의 역할인 셈이다.
요리, 설거지, 빨래, 청소 등의 행동이 가사노동이라는 건 분명하다. 저녁으로 무엇을 먹을지, 냉장고 안의 두부가 상하지 않았는지, 세제가 떨어졌는지, 아이의 예방접종은 언제 맞혀야 하는지 등을 살피고 대비하는 머릿속의 행위를 ‘노동’이라고 칭하기는 쉽지 않다. 남성의 가사노동 시간이 과거보다 늘어났지만 여전히 여성만 분주하게 보이는 이유는 여성이 인지노동을 주로 맡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 책의 골자다. 미국의 사회학자인 앨리슨 데이밍거는 이 책을 위해 이성애·퀴어 부모 172명을 인터뷰했다.
집안일을 ‘경제적 생산활동’으로 인식하게 된 데는 지난 시대 페미니스트와 경제학자, 사회학자의 공이 컸다. 이들은 요리, 청소, 육아 등을 시와 분 단위로 측정해 가사노동의 가치와 분담을 연구했다. 문제는 어떤 가사노동은 시간으로 측정되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집안일을 정당한 사회과학 연구 대상으로 인정받게끔 한 결과, 가사노동의 복잡성과 미묘함을 축소하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인지노동은 측정하기 모호한 회색지대다. 빨래는 끝과 시작이 명확하지만, 휴가철 여행 계획을 짜는 일은 언제 시작해 끝나는지 알 수가 없다. 남편은 비행기 시간과 목적지를 알면 그만이지만, 어디를 가야 할지, 어떤 비행편이 좋을지, 어떤 숙소를 택해야 할지 결정하는 과정의 노고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인지노동은 정신의 알람과 같다. 여행 계획 세우는 일이 마무리될 때까지 알람은 계속 울린다. 정신의 알람은 마치 백그라운드 작업과 같아서, 직장에서 일하거나 휴식을 취할 때도 종종 울린다.
남성이 가정의 경제에 더 많이 기여하기에 인지노동은 여성의 몫이라는 견해도 있을 수 있다. 저자는 다양한 계층의 가정을 조사했다. 그 결과 여성의 소득이 더 높거나 노동시간이 길더라도 여성이 여전히 인지노동을 주도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성이 인지노동에 적합한 이유는 ‘성격’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한때 유행했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류의 인식처럼, 여성과 남성의 특성이 다르고 각자 특성에 맞게 가사노동을 분담하면 된다는 것이다.
데이밍거는 이를 ‘초인 여성’과 ‘허당 남성’ 유형으로 분석한다. 여성이 인지노동을 하는 것은 여성이라서가 아니라, “내가 계획을 잘하는 사람이어서” “남편은 원래 얼렁뚱땅해서”라는 것이다. 데이밍거는 이러한 ‘성격 본질주의’에도 반박한다. 예를 들어 교사 수십명, 학생 수백명의 일정을 조율하는 교장인 남편이 가족의 휴가 계획은 짜기 어려워한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나. 손재주가 없어서 집안일을 못한다는 남성의 직업이 정밀한 수술을 집도하는 외과의사라면 또 어떨까. 저자는 “정신 사용 영역에서도 실천이 완벽을 만든다”고 말한다. 아이가 어린 시절부터 더 많은 육아 자료를 찾아보는 사람이 그러지 않는 사람보다 더 훌륭한 육아 전문가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저자가 만난 동성 커플 중에도 인지노동이 한쪽에 불균형하게 전가되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전통적 성역할에서 벗어난 이들은 “모든 게 협상”이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파트너는 아이를 돌보고 자신은 돈을 주로 벌기로 한 퀴어 남성은 인지노동을 “시간이 지나면서 단련되는 근육”에 비유했다. 저자 역시 인지노동이 “누구에겐 있고 또 누구에겐 없는 타고난 역량이라기보다는 연습해서 완성할 수 있는 일단의 기술”이라고 본다. 그렇다고 무심함과 서투름을 방패 삼아 책임을 회피하는 남편을 무작정 비난하는 건 아니다. 학교·병원 등에서 부부 중 아내를 먼저 찾는 식의 사회적 기대가 인지노동 능력의 격차를 만든다는 점을 명확히 한다.
무거운 인지노동 부담은 더 많은 스트레스와 불안을 주고 직업적 성장도 제한한다. 저자는 질 좋고 비용 부담 적은 보육 서비스 확대, 성별 고정관념 강화하지 않기, 가정 내 인지노동 재분배하기 등을 실천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경험하는 것을 가리키는 이름이 없으면 그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기는 매우 어려운 법이다.” 이 책은 가사노동의 모호한 영역에 ‘인지노동’이라는 명확한 이름을 붙였다. ‘남편이 집안일을 많이 도와주는데, 왜 나는 이리 힘들까’라고 생각해온 아내라면 마음속 불만이 명징한 이론으로 바뀌는 독서 경험을 할 수 있는 책이다.
정부가 16일 국내 증시 변동성 확대의 주범으로 지목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의 투자자 기본 예탁금을 현행 1000만원에서 3000만원로 높이기로 했다. 최소 주문 단위도 현 1주에서 20주로 늘리도록 했다. 다만 시장에선 ‘소액개미’ 투자 수요는 줄겠지만 워낙 두 종목 ‘쏠림’ 현상이 강한 국내 증시 특성상 예탁금을 높인다고 변동성이 잦아들지는 두고봐야 한다는 회의적인 반응이 나왔다.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한국거래소는 이날 구윤철 부총리 주재 시장상황점검회의(F4 회의) 결과 이 같은 내용의 단일종목 레버리지 보완 방안을 발표했다.
우선 8월 5일부터 투자자가 단일종목 레버리지 투자에 필요한 기본 예탁금이 기존 주식포함 1000만원에서 현금 3000만원으로 상향된다. 기존에는 예탁금 1000만원 중 70%는 보유한 주식 가치로 대체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3000만원이 모두 현금으로 있어야 투자가 가능하다. 이는 기존 투자자가 추가 매수를 할 때도 적용된다.
매매수량 단위도 11월부터 1주에서 20주씩으로 늘어난다. 지금까지 단일종목 레버리지는 통상적인 레버리지 ETF와 마찬가지로 1만~2만원 수준으로 발행돼 삼성전자·SK하이닉스 기초자산보다 적은 금액으로도 투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20주 단위로만 거래할 수 있게 되면서 투자에 필요한 최소 금액이 더 필요하다.
투자자 보호 강화 차원에서 단일종목 레버리지 투자를 위해 이수해야 하는 사전 교육은 다음달부터 기존 2시간에서 3시간으로 늘어난다.
기본 예탁금 상향과 매매수량 단위 확대, 사전 교육 강화는 신규 투자자의 진입 장벽을 높여 시장 과열을 완화하려는 조치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자산운용사의 괴리율 관리도 엄격해진다. 괴리율은 ETF의 실제 가치인 순자산가치(NAV)와 시장에서 거래되는 실제 가격(종가) 사이의 차이를 백분율로 나타낸 지표다. 괴리율이 커지면 투자자가 단일종목 레버리지를 실제 자산가치보다 비싸게 사서 싸게 파는 경우가 발생한다.
다음달부터 괴리율 관리의무 기준을 현행 3%에서 2%로 높인다. 적정괴리율을 위반한 운용사는 신규 ETF 상장이 제한될 수 있다. 괴리율이 급격히 커져 적정 가격이 형성되기 어려운 ETF의 경우 기존에는 3단계를 거쳐 투자유의종목으로 지정됐는데, 이제는 2단계만 거쳐도 지정되도록 개선했다.
정부는 또 새로운 단일종목 레버리지의 신규 상장을 즉시 중단하기로 했다. 이미 거래 중인 상품에 대해서도 광고·마케팅을 전면 금지한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시장 규모 확대를 막겠다는 취지다.
이날 대책은 ‘소액 개미’ 투자자의 수요를 줄이는 데는 일정 부분 영향이 있겠지만 국내 증시 변동성을 낮추는 데 충분한 효과가 있을지 두고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투자자 사전 교육을 한 시간 더 늘린다 해도 단기 수익에 목매는 개인 투자자들에게 교육이 제대로 될지 의문”이라며 “1주가 아닌 20주씩 사게 되면 변동성이 더 커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 온라인 주식 투자 커뮤니티에서 이날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는 오후 7시 기준 전체 응답자 5398명 중 85%(4563명)가 ‘이번 대책이 효과가 없다’고 응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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