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틱톡팔로워 2년 전 불탄 공장 문이 열렸다…“내 가족은 여전히 이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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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이이
댓글 0건 조회 26회 작성일 26-06-28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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틱톡팔로워 24일 오후 12시쯤 경기 화성시 전곡산업단지 아리셀 공장 3동의 문이 열렸다. 검게 그을린 철제 사물함과 불에 탄 잔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앞에서 A씨는 딸 박영화씨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다. 딸의 제사상에 올릴 소주병을 쥔 손끝은 떨리고 있었다. 박씨는 2년 전 이날 이 공장에서 다른 노동자 22명과 함께 목숨을 잃었다.
아리셀산재피해가족협의회와 아리셀중대재해참사대책위원회는 이날 오전 11시 참사 현장 앞에서 추모식을 열었다. 참사가 발생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유족들의 시간은 여전히 그날에 머물러 있었다. 사고 현장을 찾은 유족들은 “아직도 공장 안에 가족들의 유해가 남아 있다”며 온전한 유해 수습과 책임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촉구했다.
아리셀 참사는 2024년 6월24일 이차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에서 전지 발열로 인한 화재와 폭발이 발생해 노동자 23명이 숨진 사고다. 2022년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발생한 최대 규모의 산업재해 참사로 기록됐다. 사망자 23명 가운데 18명은 이주노동자였으며 이들이 제대로 된 근로계약서 작성이나 안전교육도 받지 않은 채 현장에 투입된 사실이 경찰 조사 등을 통해 드러났다.
유족들은 여전히 참사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추도식에 참석한 15명의 유족은 아리셀 참사 추모를 상징하는 하늘색 옷을 입고 희생자들의 영정사진을 들었다. 누군가는 눈을 꼭 감은 채 기도했고 누군가는 연신 눈물을 훔쳤다. 또 다른 이는 말없이 바닥만 응시했다. 라오스 국적의 희생자 고 주이씨의 유족은 “지난 2년 동안 죽음이 무엇인지 수없이 생각했다”며 “아이를 만질 수도 볼 수도 없어 너무 보고 싶어 미치겠다”고 울먹였다. 고 이준봉씨의 아버지 이병렬씨는 “참사로 아들과 며느리를 한꺼번에 잃었다”며 “내가 왜 아직 살아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참사 이후 책임자 처벌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1심 재판부는 박순관 아리셀 대표의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 등을 인정해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항소심에서 수원고등법원은 이를 징역 4년으로 크게 감형했다. 유족들과의 합의가 주요한 감형 사유로 작용했다.
중국 국적의 희생자 고 채춘효씨의 유족은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가고 있는데 고작 4년이라니 대한민국 법이 이것밖에 안 되느냐”며 “돈 있는 사람은 법도 무시한 채 살 수 있는데, 왜 피해자들은 매일 울고 땡볕 아래서 외쳐야 하느냐”고 말했다.
추도식에는 세월호·이태원·씨랜드 참사 유가족과 산업재해 피해자 유가족들도 함께했다. 씨랜드 화재 참사로 딸을 잃은 이상학씨는 “우리 모두의 안전할 권리를 위해 함께 싸우고 노력해야 한다”며 “사고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더라도 줄여나갈 수는 있다”고 말했다.
먼 지역에서 찾아온 시민들은 하늘색 리본에 추모의 글을 남겼다. 경기 성남에서 온 이예진씨(21)는 “같은 노동자로서 결코 남의 일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며 “유해 수습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겁고 화가 난다”고 말했다.
이날 유족들은 경찰의 협조 아래 화재가 발생한 3동의 문 한쪽을 열고 그 앞에서 제사를 지냈다. 유해와 함께 남아 있을 영혼이 공장 밖으로 나가길 바라는 뜻을 담은 의식이었다. 하얀 제사상 위에는 생전 희생자들이 좋아하던 음식과 꽃다발이 놓였다. 떨리는 손으로 준비해 온 삶은 달걀과 흰밥, 떡을 상 위에 올린 유족이 공장 바닥에 소주를 부었다. 불에 탄 잔해가 남아 있는 건물 안으론 유족들이 던진 흰 국화꽃들이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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