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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한국인조회수 역사학자이자 레지스탕스 영웅 블로크 팡테옹 안치···유족 “극우 세력은 참석 말아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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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이이
댓글 0건 조회 14회 작성일 26-06-28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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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한국인조회수 20세기 프랑스 대표 역사학자이자 레지스탕스 영웅인 마르크 블로크(1886∼1944)가 23일(현지시간) 프랑스 국가 영웅 전당인 팡테옹에 부인 시몬과 함께 안치됐다고 AFP 등이 보도했다. “정치·문화·과학 분야의 가장 뛰어난 인물들에게만 허락되는 영예인 팡테옹 안치 대상 가운데 최초의 역사학자”다. 엘리제궁은 “팡테옹에 지적이고 공화주의적인 유산을 새기게 될”이라고 했다.
블로크의 훈장과 사진 등 유품을 담은 상징적 관과 부인 시몬을 기리는 상징적 관은 이날 오후(현지시 간) 파리 팡테옹으로 운구됐다.
블로크는 1886년 7월 6일 리옹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도 역사학자였다. “독일 제국이 1871년 알자스를 병합한 뒤에도 공화국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프랑스 국적을 유지하기로 선택한 유대인 가정 출신”이다.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그는 제1차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징집됐다. 당시 전공을 인정받아 전쟁십자훈장과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전후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중세사 교수가 됐다. 블로크는 1929년 뤼시앵 페브르와 함께 아날학파의 모태가 된 학술지 <경제사회사 연보>를 창간했다. 53세였던 1939년 제2차 세계대전 발발 때 다시 소집돼 참전했다.
이듬해인 프랑스의 군사적·정치적 붕괴 과정을 분석한 대표작 <기이한 패배>를 썼다.“저항운동에 헌신하게 되는 가치관을 드러낸 작품”이다.
1940년 6월 필리프 페탱 정권이 들어선뒤 반유대주의 정책에 희생된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소르본대 교수직을 잃은 뒤 사실상 강제 은퇴했다. 시민권도 일부 박탈당했다.
1943년 나치가 프랑스 전역을 점령하자 60세 나이에 레지스탕스에 들어갔다. 리옹 지역 저항조직의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 1944년 3월 비시 경찰에게 체포됐다. “‘리옹의 도살자’로 악명 높았던 게슈타포 책임자 클라우스 바르비의 지시에 따라 몽뤼크 감옥에서 고문을 당했지만, 저항조직에 도움이 될 만한 어떤 정보도 제공하지 않았다”고 한다.
1944년 6월 16일 다른 레지스탕스 대원 27명과 함께 게슈타포에 처형됐다. 건강이 악화한 부인 시몬은 같은 해 7월 2일 리옹의 한 병원에서 숨졌다.
AFP는 마크롱 대통령 후임을 선출하는 대통령 선거를 1년 앞둔 시점에 열린 안치식의 정치적 의미도 들여다봤다. “극우 정당인 국민연합(RN)이 차기 집권을 노리는 상황에서 블로크 가족은 애국적이지만 ‘깊이 반국수주의적’이었던 블로크의 신념을 들어 극우 세력이 행사에 참여하지 않기를 요청했다”고 한다. 의전에 따라 모든 선출직 공직자가 초청 대상이다. 국민연합의 실질적 지도자인 마린 르 펜은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측근들이 앞서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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