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폰테크 [정동칼럼]달러 약세가 새 정부에 주는 시사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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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는 4월2일을 ‘해방의 날’로 선포하면서 상호관세 조치를 실행했다. 주가 하락, 국채 매도, 달러 약세라는 부정적 시장 반응이 나왔고 관세 부과는 연기됐다. 4월 중순 미 연준 의장에 대한 금리 인하 압박과 비판 논평이 있었고, 중앙은행 독립성에 대한 우려가 불거졌다. 5월에는 감세법안 처리 과정에서 재정적자 및 국가부채에 대한 전망이 나빠졌다. 무디스의 미국 신용등급 강등이 뒤따랐다. 부채 문제를 무시하기로 양당이 암묵적 합의를 한 모양새여서 또 다른 ‘워싱턴 컨센서스’로 불린다. 이러한 상황은 모두 성장 약화, 물가 상승, 부채 증가 쪽을 가리킨다.
이민자 추방과 연구지원 삭감, 주요 대학에 대한 제재, 인재 유출은 그동안 미국의 성공 스토리를 견인해온 기반을 약화하는 것이다. 미국 대학 유학생 비자 심사를 강화한 것은 무역적자 줄이기에 나선 트럼프 행정부가 자국의 강력한 서비스 수출 분야를 억누른 것이라 모순적이다. 이란 핵시설 공격으로 일부 반전이 있었지만, ‘타코(TACO·Trump Always Chickens Out·트럼프는 늘 겁먹고 물러선다) 거래’라는 신조어가 나돌고 있다. 힘을 과시하고 위협했다가 상대방이 반발하거나 시장 반응이 부정적이면 멈추는 일 처리 방식이 경제에는 나쁜 불확실성이 된다. 트럼프의 정책 추진에 대한 적법성 논란, 탄소중립과 대외원조 등 약속 파기는 미국의 제도, 패권적 지위에 대한 국제사회 신뢰와 미국 자산에 대한 투자 안전성에 의문을 품게 한다.
최근의 달러 약세 추이가 하반기에도 이어진다거나 달러패권 약화가 가시화할 것이라고 해석하기는 이르다. 군사력이나 경제적 패권보다 통화패권이 더 오래갈 것이라는 전망이 많고, 유로·위안·크립토 자산 등 대체재가 아직 약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미국 예외주의 시대의 과도한 미국 자산 집중을 낮추고 달러 하락 위험을 ‘헤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길게 보면, 금융위기-팬데믹-인플레-전쟁의 충격에 이어 자본이 미국을 이탈하는 이례적 모습이 나타난 것이다.
“통화 가치는 그 나라 정부를 따라간다”는 시장 격언이 있다. 경제적 인과관계로는, 성장을 높이고 물가를 안정시키고 부채 관리를 엄격하게 하는 나라의 통화가 강해진다. 달러 약세 현상에서 한국의 새 정부는 어떤 시사점을 얻을까.
첫째, 정책 불확실성의 최소화다. 지정학의 시대, 세계 질서의 변화, 무역전쟁 등 대외 여건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대내적 불확실성이 추가되지 않도록 유념해야 한다. 정부가 안정되고 예측 가능하게 정책을 실행해가는 것이 국가 간 경쟁에서 중요하다. 경기를 활성화하고 민생을 되살려야 하는 상황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경제안보, 통상, 공급망, 금융안정, 산업정책 등 다부처 소관 업무에 대한 정부 내 의사결정 및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해야 한다.
둘째, 시장의 신뢰다. 미국 대통령도 국채시장이 흔들리고 주가가 떨어지면 버티지 못한다. 시장이 불신하면 지지율도 하락한다. 관세전쟁 과정을 보면 시장과 싸워서 이기는 정부는 없다. 재정을 적극 운용하되 낭비가 없도록 규율하고 재정지출이 성장으로 환류되도록 사업을 설계해야 한다. 2022년 가을 영국 정부의 감세안 발표 이후 발생한 영국 국채 투매 사태를 복기할 필요가 있다.
셋째, 정책은 내용뿐 아니라 절차와 과정이 중요하다. 국민 생활과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은 대부분 정해진 답이 없다. 이민, 정년, 연금, 부동산, 주주이익 보호, 기후와 에너지 어느 하나 단순하지 않다. 정부가 완성된 답을 내놓기 어렵다. 공론화 과정을 어떻게 거칠지가 현실적 고민 대상이다. 상충하는 목표 간 균형점을 이 정도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고 인정하게 되는 사례를 축적해가야 한다.
넷째, 중견통상국가인 한국에 실용, 현실, 유연성은 생존의 조건이다. 규모로 상대 국가나 기업을 압도할 수 없고, 무역을 기반으로 경제를 꾸려야 하는 우리에게는 이념, 이상을 내세워 경직될 여유 공간이 없다.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저서 <대변동(Upheaval)>에서 국가의 위기가 냉정한 현실 인식과 실용적 판단의 결여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새로운 제도 도입 시 단일 형태로 모든 현장에 적용하려는 것 역시 경직성이다. 우리 경제는 한 유니폼에 맞출 수 없는 복잡하고 섬세한 단계에 와 있다.
“옛날에는 못 사는 동네라는 인식 때문에 어디가서 신안 산다고 말도 못했당께. 지금 전 국민 지원금 25만원 준다고 난리인디 여그는 석 달에 한 번씩 꼬박꼬박 돈이 나오잖어. 다들 부러워하지.”
지난 18일 전남 신안군 안좌도 신재생에너지 주민·군협동조합 사무실에서 만난 김정대 조합장(67)은 ‘햇빛연금’ 얘기에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 안좌도는 신안군이 2021년 전국 최초로 시행한 햇빛연금의 첫 수혜지다.
안좌도에는 불법 새우 양식장으로 사용되던 염해 농지에 만든 288메가와트(MW) 규모의 태양광 발전소가 있다. 안좌도 주민들은 이곳 발전 수입으로 분기별로 1인당 17만∼68만원의 배당금을 받는다. 햇빛연금으로 불리는 ‘신재생에너지 개발이익 공유제’가 시행되면서 가능해진 일이다.
지역의 사정이 다 다른 탓에 아무리 좋은 국가 정책도 적용에는 한계가 있다. 이때 지역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당면한 현안을 해결하는 데 돌파구를 마련한 건 지방자치였다.
지방을 ‘소멸’ 위기까지 몰고가는 인구감소 문제부터 기후위기에 따른 재난 대응 및 에너지 전환, 현장 지원이 절실한 돌봄과 주민복지까지 지방자치가 정부를 앞서 선도한 사례가 적지않다. 그 중에서도 신안군의 햇빛연금은 지역 자원인 햇빛과 바람을 이용해 주민 복지를 끌어올리고, 인구 감소에 대응한 창의적 사례로 꼽힌다.
신안군은 2018년 ‘신재생에너지 개발이익 공유 등에 관한 조례’를 만들어 재생에너지 발전소 건립 시 주민 지분 참여를 보장하고, 순이익의 30%를 주민에게 배당하도록 했다. 주민은 1만원의 조합비만 내고 협동조합에 가입하면 이익 배당을 받는다.
햇빛연금은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모두 지역화폐인 ‘1004섬 신안상품권’으로 지급된다. 안좌도 토박이 이금배씨(80)는 “노인에게 10만원, 20만원은 적은 돈이 아닌데 연금을 받기 시작하면서 삶의 질이 달라졌다”며 “연금이 나올때 외식 하는 것도 큰 즐거움”이라고 말했다.
신안은 풍부한 일조량과 바람을 이용해 소금 생산을 많이 했는데, 소금값 하락과 고령화로 폐염전이 늘며 위기가 찾아왔다. 이때 박우량 전 신안군수가 꺼내 든 것이 신재생에너지 개발이익 공유제였다. 지역 자원을 활용해 재생에너지를 새 먹거리로 만들되 주민에게도 이익이 돌아가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안좌도에서 시작된 햇빛연금은 자라도와 지도 등 6개 섬으로 확대됐다. 수혜 주민은 전체 군민의 43%로 이들이 받은 햇빛연금은 지난 4월까지 247억원을 넘어섰다. 군은 재생에너지 이익 공유금을 활용해 2023년부터 17세 이하 아동 전체에 ‘햇빛아동수당’도 주고 있다. 수당은 올해 80만원에서 120만원으로 늘었다.
햇빛연금 지급 후 인구 소멸 고위험 지역이던 신안군 인구가 늘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기준 3만8173명으로 2년 사이 315명이 늘었다. 햇빛연금을 받는 6개 섬 인구는 1만4633명으로 657명이 증가했다. 김정대 조합장은 “햇빛연금 덕분에 고향을 등졌던 청년들도 돌아오는 마을이 됐다”고 말했다.
신안군은 햇빛연금 지급 대상 지역을 2030년까지 13개 섬으로 늘릴 계획이다. 해상풍력을 활용한 ‘바람연금’도 계획 중이다. 2030년까지 8.2기가와트(GW)급 해상풍력단지를 조성해 전 군민이 연간 1인당 최대 600만원의 햇빛·바람연금을 받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신안군 햇빛·바람연금 모델은 ‘전남형 에너지 기본소득’으로 확대될 움직임을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은 햇빛·바람연금의 전국 확대를 공약해 더욱 주목받고 있다.
인구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노인 돌봄 문제는 미룰 수 없는 당면 과제가 됐다. 돌봄 공백의 해법을 제시하고 있는 곳도 자지체다. 충북 진천군은 2020년부터 병원 퇴원 노인을 위한 ‘우리동네 돌봄스테이션’을 운영하며 초고령 사회를 대비하고 있다. 지역에 종합병원이 단 한 곳에 불과한 상황을 고려해 방문 돌봄으로 방향을 잡았다.
지난 14일 충북 진천군 백곡면에 사는 김수남 할머니(77)가 집을 찾아온 임혜진 간호사와 이지혜 사회복지사를 버선발로 마중 나왔다. 김 할머니는 혈액암 치료를 받고 있는데 최근 왼쪽 팔이 부러져 수술도 받았다. 남편 정학영 할아버지(79)도 오래전 목등뼈를 다쳐 장애를 앓고 있다.
임 간호사가 혈당수치 등 두 사람의 건강을 확인하는 동안 이 사회복지사는 거동이 힘든 부부가 생활하는 데 불편함이 없는지 집 안을 세심히 둘러봤다. 김 할머니네를 찾은 두 사람은 진천군 돌봄스테이션 소속 직원들이다.
돌봄스테이션이 고용한 간호사, 사회복지사, 영양사 등은 팀을 이뤄 매달 한차례 지역 노인의 집을 찾아 건강검진, 재활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영양식을 제공하고 안전바 등을 설치해주는 사업도 한다. 지역 종합병원과 연계해 의사와 물리치료사도 파견한다.
정 할아버지는 “물리치료나 검진을 받으려면 읍내로 가야 해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면서 “군청 사람이 와서 검진과 영양식 등을 챙겨주니 편하고, 말동무도 돼 줘 삶에 활기가 돈다”며 웃었다.
5월 말 기준 진천군의 65세 이상 인구는 1만7120명으로 전체의 19.8%를 차지한다. 초고령 사회 진입이 코앞이다. 군은 고령의 주민들이 요양원이 아닌 지역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방문 돌봄서비스를 마련했다. 그 결과 요양원을 찾는 장기요양환자가 줄고, 매년 장기 요양 급여 15억5000만원도 줄일 수 있었다. 김영국 진천군 통합돌봄팀장은 “타 지자체에서도 진천의 사례를 배우기 위해 찾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성동구도 생활밀착형 정책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휴대전화 충전과 교통정보 제공 등 편의 기능과 냉난방 기능을 갖춘 버스정류장 ‘스마트쉼터’가 대표적이다. 폭염·한파에서 버스 이용 주민을 보호하고, 비상벨과 폐쇄회로(CC)TV 등을 갖춰 시민안전을 지키는 역할도 한다. 실제 2년 전 스토커를 쉼터 안에 가둬 붙잡은 일도 있다.
대중교통 이용객 증가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줬다. 버스 이용객수는 53개 쉼터가 설치된 2023년 약 209만명에서 55개 쉼터가 설치된 지난해 약 402만명으로 거의 두 배 증가했다. 안전과 도시 미관을 고려한 독창성이 높은 평가를 받아 오는 7월17일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에이프라임 디자인 어워드’(The A′ Design Award)에서 최고상인 플래티넘상을 받는다.
이런 유형의 버스 정류장은 성동구가 2020년 8월 처음 설치한 후 서울 용산·동작구, 경기 시흥시, 부산시 등 전국으로 확산하고 있다.
배보람 녹색전환연구소 지역전환팀장은 “지역의 취약계층을 빠르게 파악하고 대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재난대응에서도 지방자치의 중요성이 크다”며 “로컬푸드 육성(완주)과 녹색일자리·에너지 전환 조례(광주광역시), 필수노동자 조례(성동구) 등 지속가능한 사회의 모범 사례를 여러 지자체가 벤치마킹한 사례가 있다”고 밝혔다.
성동구는 역사 등 유동인구가 많고 흡연을 많이 하던 곳을 중심으로 13개의 스마트 흡연부스도 운영하고 있다. 음압시설을 갖춰 흡연실 안의 담배냄새가 바깥으로 빠져나가지 않는다. 스마트 흡연부스 설치 후 간접흡연으로 인한 민원이 수백 건에서 거의 제로로 떨어졌다.
구청장이 휴대전화 문자로 주민과 직접 소통하며 나온 정책이다. 전담팀을 두고 문자로 들어오는 민원을 해소하고 있다. 지난 17일 왕십리역 인근 스마트쉼터에서 만난 주민 위나윤씨(44)도 인상 깊은 구의 정책을 묻자 “민원을 넣으면 바로 해결해준다”며 구청장과의 문자 소통을 들었다.
위씨는 지방자치를 “우리 손으로 우리의 일꾼을 뽑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위에서 임명한 사람은 지역의 사정을 잘 모를 거 아니에요. 이곳에서 계속 활동한 정치인이나 일꾼은 지역의 문제를 잘 아니 문제도 잘 해결해주지 않을까요.”
지방자치 일선에서 일하는 공무원은 주민 의견을 중히 여기는 것이 지방자치 이후 가장 큰 변화라고 보고 있다. 1995년 3월 공직에 입문해 임명제의 마지막과 지방자치의 시작을 함께 한 기초지자체의 과장급 공무원 A씨는 주택과에서 일하며 철거민 시위에 대응하던 때를 떠올렸다.
“예전에는 그분들의 말을 들어주지도 않았는데, 지방자치 이후엔 구청장이 직접 가진 않더라도 실무자에게 만나 이야기를 듣고 오라고 이야기하더라고요. 주민을 만나는 횟수도 늘고, 주민에게 정책을 알리고자 하는 노력이 많아졌어요.”
지방자치로 주민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지역 특성에 맞는 정책 실험과 혁신이 가능해진 덕에 ‘빛나는’ 정책들이 탄생했다.
지금은 경기도, 부산, 광주, 울산 등 대도시에서 대부분 시행 중인 대중교통환승제의 시작점도 서울시의 버스준공영제(2004년) 도입이었다. 민생경제 대책에서 가장 먼저 거론되는 ‘지역화폐’도 1990년대 말~2000년대 초반 지자체에서 발행을 시작한게 시초였다.
충북 청주시의 ‘정보공개 조례’는 1996년 ‘정보공개법’으로 발전했다. 코로나19 당시 대구시가 선보인 ‘드라이브스루 선별진료소’는 전국으로 확대됐을 뿐더러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수원시가 전국 최초로 선보인 ‘긴급차량 우선 신호시스템’은 재난안전체계의 신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송정복 희망제작소 목민관클럽 사무국장은 “지방자치가 외유성 해외 연수, 낭비성 청사 재건축 등으로 구설에 오르기도 하지만 내실을 다지는 흐름이 있다는 것도 분명하다”면서 “지금은 지방정부가 새로운 정책, 현장 중심 정책을 만들어가는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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