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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사설] 한·미 정상 첫 대면 선방, 후속 협상도 집중력 발휘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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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이이
댓글 0건 조회 93회 작성일 25-08-31 0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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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25일 첫 한·미 정상회담이 마무리됐다. 두 정상은 워싱턴 백악관에서 2시간20분간의 공개·비공개 회담 및 오찬을 통해 북한·동맹·통상 등 주요 현안에 대한 기본 입장을 교환했고, 우호적 평가를 주고받으며 신뢰를 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대통령에 “위대한 지도자” “당신은 미국으로부터 완전한 지원을 받을 것”이라며 우의를 확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직전 트루스소셜에 험악한 글을 올리며 긴장이 고조됐으나 정작 회담에서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전체적으로 선방한 회담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미국은 지난달 관세 협상 타결 이후 농축산물 추가 개방, 대미 직접투자 증액 등을 압박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협상을 끝냈다. 원래대로 하기로 했다”며 추가 요구를 접었다. ‘동맹의 현대화’의 핵심 현안인 주한미군 감축 여부에는 “지금 말하고 싶지 않다. 한국은 친구이기 때문”이라며 피해갔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우리 주변 정세에 더 잘 대응할 수 있도록, 그 과정에서 한국이 더 많은 역할을 한다는 큰 방향에서 한·미 간 의견 일치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경제 협력 분야에선 조선 협력을 크게 늘려가는 데 공감대를 이룬 것에 더해 원자력 협력도 의미 있는 논의를 했고, 농축산물 추가 개방 요구도 없었다고 한다. 대통령실이 회담 목표로 제시한 ‘경제·통상의 안정화’ ‘동맹의 현대화’ ‘새 협력 분야 개척’에서 비교적 순탄하게 논의가 이뤄진 셈이다.
회담에서 단연 눈에 띄는 대목은 두 정상이 한반도 문제에서 공조를 약속한 점이다. 이 대통령이 북·미 대화에서 “피스메이커를 하면 페이스메이커로 열심히 지원하겠다”고 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분명 북한과 관련해 큰 진전을 함께 이뤄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화답했다. 이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 구상, 화해·협력 대북정책에 의기투합한 것은 의미가 작지 않다.
이 대통령은 회담에서 안보뿐 아니라 경제, 첨단기술에서의 협력 강화로 한·미 동맹을 발전시키고, 국익도 확장하는 ‘미래형 포괄적 전략동맹’을 지향하겠다고 했다. 종합하면 한·일에 이어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 동맹의 토대 위에서 한·미·일 협력 강화, 북·중·러 관계 개선으로 이어지는 ‘국익 중심 실용외교’의 첫 단추를 이 대통령이 순조롭게 끼웠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대통령이 “한국이 과거처럼 안미경중(안보는 미국·경제는 중국) 태도를 취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한 것은 대중 외교의 방향 전환을 시사한 것인지, 산업 분야에서 중국에 추월당하고 있는 현실을 가리킨 것인지 추가 설명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번 정상회담에서 공방이 예상됐던 쟁점 현안들은 대부분 제외됐다. 추후 실무협상팀의 어깨가 더 무거워진 셈이다. 3500억달러 대미 투자 패키지, 원전 협력·원자력협정 개정,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 등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 앞으로 예상되는 후속 협상에서도 국익을 최대한 지킬 수 있도록 집중력을 잃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의 작은 섬 아이기나는 제우스 신과 강의 님프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아코스의 전설로 알려져 있다. 아이기나에 비극이 닥친 것은, 남편의 바람기에 넌덜머리가 난 헤라 여신에게 아이아코스의 친부가 알려진 탓이었다. 분노한 헤라는 역병을 내려 이 작은 섬을 초토화했고, 하루아침에 백성 없는 나라의 허울뿐인 왕이 되어버린 아이아코스는 아버지 제우스 신에게 엎드려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아무리 신의 왕이라도 이미 죽은 이들을 살려낼 방도는 없었다. 고민하던 제우스는 마침 눈에 띈 개미굴의 개미들을 모두 아이아코스의 백성으로 변신시켜 빈 땅을 채워주기에 이른다. 이후 아이기나섬의 사람들은 개미라는 뜻의 ‘뮈르미돈(myrmidon)’이라 불렸는데, 이들은 사람이 되었어도 여전히 개미 시절처럼 근면하고 성실하며, 국가에 충성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이 설화처럼 개미는 이솝 우화 ‘개미와 베짱이’에도 나오듯 근면 성실의 대명사이다. 또한 ‘개미군단’이라 지칭될 때는 작지만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효율적인 집단이라는 뜻도 함께 가진다. 이는 생물학자들의 관찰로도 증명되었다.
먹이를 찾아 나선 개미 떼들의 귀갓길은 그야말로 잘 훈련된 군대의 행진과도 비슷하다. 이들은 각자 제 몸무게의 몇배씩이나 되는 무거운 먹이를 잘도 짊어진 채, 한눈팔지 않고 앞선 개미들의 뒤만을 부지런히 따라간다. 이들을 이끄는 것은 앞선 개미들이 분비한 페로몬 신호이다. 개미들은 주로 화학적 신호, 즉 냄새에 의해 외부 자극을 인식하기에 앞선 개미의 체취는 그 어떤 내비게이션 정보보다도 정확해 믿고 따르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눈 밝은 과학자들은 이렇게 규칙을 잘 지키고 성실한 개미들이 ‘다수’이기는 하지만, ‘전부’는 아니라는 것도 알아낸다. 일부는 실수로 정해진 경로를 벗어나기도 하고, 때로는 냄새 정보가 아니라 시각 정보에 의존해 새로운 경로를 적극적으로 모색하기도 한다. 그리고 개미 집단의 규모나 크기에 상관없이 이런 ‘길치’ 혹은 ‘개척자’ 개미들의 비율은 5~15% 정도로 일정하게 유지된다.
다수의 개미들이 따르는 길은 집으로 가는 것이 보장된 ‘확실한 길’이다. 하지만 이탈자 개미들의 앞에 놓인 길은 귀가가 보장되지 않는 ‘불확실한 길’이며, 안전이 확보되지 않는 ‘위험한 길’이다. 확실한 길을 두고 미지의 경로로 나서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행동처럼 보이지만, 이상하게도 일정 비율의 개미들은 늘 이런 위험하고 불확실한 길로 들어서곤 한다.
이렇게 일탈한 개미들의 상당수는 예상대로 무사히 귀가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 중 아주 일부는 새로운 먹거리를 발견해 집단의 부를 늘리기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더 빠르고 좋은 길을 찾아내 전체 루트를 개선하기도 한다.
개미 집단이 소수의 일탈을 적극적으로 막지 않고 보장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행동이 장기적 혹은 거시적으로는 집단의 생존력을 높이는 전략적 탐색이기 때문이다.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은 지난 주말, 특별한 행사에 참여할 기회를 가졌다. 행사장의 분위기는 한마디로 ‘뜨거웠다’. 하지만 이는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무더위가 아니라, 단조로운 일상에 무디어진 열정을 되살리는 불씨에 가까워 오히려 기꺼운 뜨거움이었다.
10대 청소년과 20대 청년들이 주로 참여한 이 행사는 ‘비 더 퍼스트!(Be the First!)’라는 기치에 맞게, 미래에 지어질 달 기지에서 수행할 수 있는 연구 주제를 제안하는 자리였다. 달은 이미 1969년에 인류에게 첫 방문을 허락했지만, 이후로 반세기가 훌쩍 넘는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인류 거주불능 구역으로 남아 있는 곳이다. 사람이 살 수 없는 불모지에 연구소를 세우고 거기에서 연구할 주제를 공모한다는 것은 지금의 시각에서는 현실적 제안이라기보다는 허구적 공상에 가까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본선에 참여한 젊은 참가자들의 아이디어는 지극히 이상적이었으되, 그들이 내놓은 연구 제안서는 더없이 현실적이고 진지했다.
수상자 중, 고3 학생의 소감이 특히 마음에 와닿았다. 처음에는 내신 수행평가를 위해 가볍게 생각해냈던 아이디어가 이 대회와 맞물리면서 점차 빠져들어 입시를 코앞에 둔 수험생임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젝트에 몇개월을 매달렸다는 말에서 정해진 길을 벗어나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누군가의 모습 말이다.
요즘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일부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무언가에 영혼을 판 건 아닌가 하는, ‘느낌적 느낌’이 든다. 그 무언가가 대개는 돈과 권력일 텐데, 하물며 반성의 기미조차 없으니 답답함이 찜통더위 저리 가라다.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돈과 권력이었을까. 아니면 돈과 권력보다 더 큰 무언가를 얻고자 했을까. 실제로 그들이 영혼을 팔았는지는 눈에 보이지 않으니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오래전부터 영혼을 판 사람들의 끝이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는 차고 넘친다.
아일랜드 출신 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1890년 발표한 장편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1910년 무성영화를 시작으로 여러 차례 영화로 제작되었고, 국내에서는 뮤지컬로도 만들어진 걸작이다. 도리언 그레이는 스무 살이 넘었지만 “소년의 모습”을 한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화가 바질 홀워드는 홀린 듯 그의 초상화를 그렸고 “세상 사람들의 경박한 눈길에 내 영혼을 드러내고 싶지 않”다며 전시조차 거부하고 있었다. 문제는 도리언 그레이였다. 나르키소스가 샘물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고 반했듯, 자신의 초상화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는 끝내 하지 말아야 할 약속을 하고 말았다. 초상화처럼 아름다운 모습을 영원히 간직할 수만 있다면, 영혼도 팔 수 있다고 그는 약속했다.
영혼은 아니지만, 영혼의 무게와 진배없는 그림자를 판 사람도 있었다. 프랑스 출신 작가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가 1814년 출간한 <그림자를 판 사나이>의 주인공 페터 슐레밀은 가난한 청년이었다. 슐레밀에게 유혹의 손길을 내민 것은 “회색 옷 입은 남자”였다. 그는 슐레밀에게 “행운의 자루”를 내밀며 “당신의 아름다운, 너무나 아름다운 그림자”를 팔라고 청했다. 행운의 자루는 이름처럼 슐레밀에게 행운, 즉 부와 명예를 안겨주었다. 성정이 맑았던 슐레밀은 혼자서 호의호식하지 않았다.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매번 주머니를 열었고, 사람들은 도움에 감사했다. 그런 슐레밀의 평판이 좋아진 것이야 당연지사.
영혼을 판 도리언 그레이는 어떻게 됐을까. 애초의 바람처럼 그의 아름다움은 변치 않았다. 하지만 그토록 밝게 빛났던 초상화의 모습은 사악한 모습으로 점점 변해갔다. 현실에서 자기 탐닉이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초상화의 도리언 그레이는 타락하고 사악한 모습이 됐다. 영혼을 판 것은 그 자신인데, 그가 겨눈 칼은 초상화를 그린 바질 홀워드에게 향했다. 홀워드를 죽인 도리언 그레이는 초상화마저 찔렀다. 그렇게 하면 아름다웠던 자신의 모습이 회복될 줄 알았다. 짐작대로겠지만, 도리언 그레이의 마지막이 궁금하다면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한번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그림자를 판 슐레밀은 어떻게 됐을까. 슐레밀에게 그림자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의 첫 반응은 ‘불쌍하다’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림자 없는 슐레밀을 다시 보려고 하지 않았다. 다들 못 볼 걸 본 것처럼 밀어냈다. 회색 옷 입은 남자가 다시 나타났다. 그림자를 돌려줄 테니 영혼을 달라고 그는 말했다. 슐레밀의 선택이 궁금하다면 <그림자를 판 사나이> 역시 읽어볼 일이다.
고흐는 진짜 자기 모습을 그리려고 귀를 잘랐고,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의 주인공 송화는 소리를 얻기 위해 눈을 내놓았다. 두 사람의 선택이 옳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무릇 영혼을 팔 심산이라면 삶을 향한 애정과 숭고한 가치를 세상에 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도 무언가에 영혼을 판 사람은 아닌가, 서글픈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속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병신년(1596) 선조가 태의 허준(1539~1615)을 불러 ‘…의서 한 권을 편집하도록 하라’고 명했다…그러다 정유재란 발발(1597)로 중단….”
월사 이정구(1564~1635)가 쓴 <동의보감> ‘서문’에 등장하는 편찬 시기이다. 1596년 선조의 명에 따라 허준이 책임지고 시작했다는 뜻이다. 그러다 정유재란 때문에 중단됐고, 이후 허준 단독으로 편찬 임무를 수행해 1610년 25권으로 완성하고 1613년 초간본이 빛을 보았다는 게 정설이었다.
■4년 앞선 초고본?
그런데 최근 선조의 지시보다 4년 앞선 1592년 4월 무렵에 작성된 <동의보감> 초고본을 확인했다는 주장이 나왔다.(최영성 한국전통문화대 교수·경향신문 2025년 7월24일 보도) 연구자는 이 초고본을 출판을 목적으로 집필한 최초의 원고로 파악했다.
목차나 내용 등에서 최종본과 적잖은 차이를 보이고, 수많은 메모와 교정부호를 통해 내용 수정을 염두에 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초고본(추정)에서 ‘외형편 안(眼·눈)’편에 ‘蠐螬(제조·굼벵이)’를 쓰면서 ‘즉상두(卽桑蠹·즉 뽕나무 벌레)’라는 주석을 달라는 표시를 해놨다. 그런데 최종본(1613년 발행)이 이를 그대로 반영했다. ‘제조’라고 써놓고 작은 글씨로 ‘즉상두(이것은 뽕나무 벌레다)’라는 주석을 달았다.
또 초고본(추정)에서 ‘不伏水土病與內傷同(기후와 풍토가 맞지않는 병은 내상과 같다)’ 항목 위에 ‘…내상을 조리하고 보하고 약재를 쓰라’고 표시해놓았다. 역시 최종본은 이 표시를 반영하여 ‘내상조보약재’ 18종을 나열했다.
무엇보다 제3책 ‘잡병편 권4’의 마지막 쪽 왼쪽에 쓴 글귀가 눈길을 끈다. ‘임진(壬辰) 4월 초사일 종필(終筆).’
<동의보감>이 1610년 완성되었으니 ‘임진’은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 임진년’을 가리킨다.
또한 ‘종필(終筆)’은 ‘글을 마무리 짓다’는 의미다. 즉 허준이 1592년 4월4일 무렵, 제3책 ‘잡병편 권4’까지 집필한 뒤 일단 글쓰기를 중단했다는 의미다. 동의보감 초고본을 작성하던 중에 임진왜란이 발발(1592년 4월13일)하자, 글쓰기가 중단된 시점, 즉 ‘4월4일 집필을 끝낸다’고 했을 가능성이 짙다는 것이다. 물론 처음 거론된 견해인만큼 학계의 검토와 논쟁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공인 여부는 학계에 맡겨두고 싶다. 대신 말 나온 김에 ‘잘 알려지지 않은 허준과 동의보감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빙그레 웃는 승려상
허준은 그동안 몇차례 대하사극에서 소개되는 등 그 삶이 대중에게 폭넓게 알려져있다.
TV 드라마 때문인지 허준 하면 배우 전광열씨나 고 김주혁씨를 연상케 한다.
물론 허준의 초상화는 남아있지 않다. 다만 그의 초상화를 보았다는 박미(1592~1645)의 ‘얼평’이 눈길을 끈다.
“…허준은 비택(肥澤·광채가 나고 혈색이 좋음)하여 승려와 흡사했고, 입을 열면 늘 미소를 지었다. 내가 그의 초상화를 보았는데 곡진(曲盡·간곡하며 정성스러움)하면서도 완용(莞容·빙그레 웃음)하는 모습을 띠었다.”(<분서집>)
이 대목에서 ‘너희가 허준을 아느냐’는 근본적인 질문을 떠올려본다. 한국고전DB에서 ‘허준’, 이름 두 자를 쳐보면, 대략 117건(선조~광해군·중복 제외)의 실록 기사가 검색된다. 그런데 그 중 60%에 이르는 70건 정도가 허준의 탄핵을 둘러싼 기사다.
■결정적인 출세의 기회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1569년(선조2) 미암 유희춘(1513~1577)의 천거로 내의원에 들어온 허준에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왔다.
52살 때인 1590년 12월이었다. 이때 왕자(광해군 추정)가 두창(천연두·마마)에 걸려 사경을 헤맸다. 19세기 종두법이 보급되기 전까지만 해도 두창은 무시무시한 치사율을 보인 역병이었다. 그러나 뚜렷한 치료법은 없어서 그저 무속의 힘을 빌려 낫기만을 바랐다.
선조 때도 그랬다. 이미 3년전(1588년) 셋째 왕자(의안군)와 공주를 두창으로 잃은 바 있었다.
선조가 발을 동동 굴렸지만 의관들은 “뚜렷한 치료법이 없으니 기다려봐야 한다”고 수수방관했다.
그렇게 생때 같은 자식 둘을 잃었는데, 또 다른 왕자까지 ‘죽을 병에 걸린’ 것이었다.
전전긍긍한 선조는 선배 어의들이 나서지 않자 허준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럼 네가 한번 약을 써서 고쳐봐라.”
특명을 받은 허준은 홀로 각종 의서를 참고한 뒤 왕자의 약물치료에 나섰다. 그러나 처음엔 여의치 않았다.
“마침 한겨울(음력 12월)이어서 독기와 열이 한 곳으로 뭉쳐 왕자의 증세가 악화되었다. ‘(허준의 처방) 약 때문’이라는 비판이 빗발쳤다. 그러나 선조는 아랑곳하지 않고 허준을 믿어줬다. 마침내 신령스러운 영약 몇 종을 찾아 세 번 투여하니 왕자가 세 번 모두 일어났다.”
허준의 투약 덕분에 “왕자의 험악한 증상은 사라지고 완전히 회복했다”(<언해두창집요> ‘서문’)는 것이다.
■신비의 묘약
그렇다면 허준이 왕자의 치료를 위해 썼다는 ‘신약’, 즉 ‘신비의 영약’은 무엇일까.
<언해두창집요>의 서문 말미에 ‘두창’의 치료 약제를 언급하면서 ‘저미고’와 ‘용뇌고자’를 콕 찍었다.
“이 책(<언해두창집요>) 하나면…급한 치료에 도움이 될 것…저미고와 용뇌고자는 백발백중의 약…기사회생하는 것이 그림자나 소리보다 빨라서 비록 목숨을 관장하는 귀신이라도 이보다 더 신묘하지는 못할 것….”
‘저미고’와 ‘용뇌고자’는 용뇌(龍腦·약재의 일종)와 돼지 심장 또는 꼬리의 피를 활용하여 만든 방제이다. 두창의 흑함(黑陷·천연두에 걸려 생긴 발진이 곪을 때에 피가 나고 빛깔이 검어지는 증상) 증상에 쓰는 것이다. 특히 저미고는 강력한 방향성으로 소통시키는 용뇌와, 계속 움직이는 돼지 꼬리의 성질을 얻어서 두창의 독을 바깥으로 몰아내고 정신을 일깨우기 위해 조성됐다.
“(왕자의 완쾌 이후 소문이 퍼졌고) 이 약재를 10번 쓰면, 10명이 모두 살아나니 그 효과가 신기할 따름…그 후 왕자와 공주가 마마에 걸렸을 때 약을 써서 모두 회복…일반 백성이 생명을 보전한 것이 그 수를 셀 수 없을 정도….”(<언해두창집요> ‘서문’)
허준은 두창에 걸린 왕자와 공주는 물론 수없는 백성들을 이 신약으로 되살렸다고 자랑한 것이다.
■첫번째 비토
선조는 왕자를 살려낸 허준에게 대단한 상을 내렸다. 허준을 당상관(정3품)으로 가자(加資·품계를 올려주는 일)하라는 특명을 내린 것이다.(<선조실록>1590년 12월25·1591년 1월3일)
그러나 곧 거센 반발에 부딪쳤다. 이것이 허준에 대한 첫번째 비토, 즉 탄핵이었다.
대간들(사간원과 사헌부) 등은 이후 10차례의 끈질긴 상소전을 교대로 벌이며 ‘허준의 가자’를 비판했다.
“허준이 어의라는 직분으로 왕자의 병을 치료한 것입니다…자기 일입니다. 그런 허준을 당상관으로 품계를 올리다니…상급이 지나칩니다….”(<선조실록> 1591년 1월3일)
그러나 선조는 “…이 아이의 누이도 두창으로 잃었다. 이번에 살아날 가망이 없던 아이가 다시 깨어난 것은 허준의 공이니, 품계를 올려 그 공을 갚겠다”(1월4일)고 일축했다. 선조는 대간들의 끈질긴 반대에도 불구, 왕자의 은인인 허준을 당상관으로 승급시켜준 것이다.
허준은 승승장구했다. 5년 뒤(1596년 3월3일) 동궁(광해군)의 병을 치료한 공로로 동반직(문관직)으로 승급됐다. 서자 출신에게 ‘문관’의 대접을 해준 것이다. 이전까지 허준의 관작은 정3품(차관보) 통정대부였다. 선조는 그런 허준에게 종2품 가의대부(차관급)까지 승급시켰다.
선조가 허준에게 ‘새로운 의서’(동의보감)의 편찬 작업을 맡긴 것이 그 해였다.
■공신 반열에 오른 허준
그러던 허준에게 또 한 번의 영예가 찾아온다. 1604년 6월25일 발표된 임진왜란 공신 명단에 ‘호성공신 3등’ 자격으로 ‘양평군’의 군호(君號·군으로 작위를 내릴 때의 명칭)를 받았다. 그와 함께 종1품(부총리~장관) 숭정대부로 승급됐다.
호성공신은 의주로 피란한 선조를 끝까지 호종(임금의 호위하며 따름)했던 86명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어의 허준 등 의관 2명, 내시 24명, 이마(마부 및 마의) 6명, ’별좌 및 사알‘(왕명 전달) 2명’도 포함되었다. 실록의 사관은 “전쟁의 공신을 뽑는데 호종신을 86명이나 뽑고, 그중 내시가 24명, 다른 미천한 자들이 20여명이었으니 얼마나 외람된 일이냐”고 한탄했다.
그러나 선조가 이른바 ‘천 것들’에게 공신 타이틀을 내린 이유가 있었다.
“상(선조)이 피란을 떠날 때…명망 진신들이 모두 상의 곁을 떠나…의주에 이르기까지 선조를 따른 문무관은 겨우 17명…나머지는 환관 수십 명과 어의 허준, 액정원(왕명 전달 하급관리) 4~5명, 마부와 말관리인 3명 등….”(<선조수정실록> 1592년 6월1일)
이때 선조는 “사대부가 도리어 너희들만도 못하다”라고 넋두리 했다.
선조가 내린 허준의 <공신도감의궤>를 보라.
“임진년 6~7월 사이…장마철에 천리 먼 길을…가는 동안 자주 건강을 잃을 때마다 그대의 돌보는 힘에 의지했다. 위급한 시기에 잠시도 떨어져 있지 않고…약을 써서 병을 고쳤고…그런 마음을 끝까지 변치 않았도다.”
■아니꼬운 허준의 출세
그런데 허준의 공신 작위를 끝까지 아니꼽게 여기는 시각은 만만치 않았다.
허준은 조상의 산소를 찾아 공신으로서 종1품 자리에 오른 사실을 고하기 위해 휴가원을 냈다.
가문의 영광이었다. 그러나 사간원이 늑달같이 허준을 탄핵했다. “어의가 사사로운 일로 감히 침을 맞고 회복 중인 성상(선조)의 곁을 떠나 휴가를 보냈다”(17일) “전혀 반성을 모르는 교만방자한 허준을 국문하고 파직해야 한다”(19일)는 것이었다.(<선조실록> 1605년 9월 17·19일)
선조는 “허준이 공신이 된 후에 조상의 산소를 찾은 것은 인지상정 아니냐”고 두둔해주었다. <선조실록>은 “허준은 임금의 은혜를 믿고 교만하기 때문에 그를 시기하는 자들이 많았다”(19일)고 촌평했다.
■허준을 정승급으로?
그럼에도 선조의 허준 총애는 그치지 않았다. 이듬해(1606년 1월) 선조는 허준에게 깜짝선물을 안겨준다. 임금의 지병을 잘 고쳤다는 이유로 허준을 보국숭록대부(정1품)로 올린 것이다.
정1품이라면 18품계 중 최상위 계급이며 3정승(영의정·좌의정·우의정)에 해당되는 관작이다.
이 경천동지할 소식에 사헌부와 사간원은 ‘신분질서 파괴’라며 아우성 쳤다.
“…의관이 ‘숭록(종1품)’이 된 것도 전례 없고, 그마저 외람된 일인데, 여기에 ‘보국(정1품)’은 또 웬 말입니까.”(<선조실록> 1606년 1월3일)
이 문제를 두고 사헌부와 사간원은 14차례에 걸쳐 상소를 올린다. 선조는 결국 6일 만인 1월9일 허준의 승급이 취소됐다. 조정에서 ‘허준 비토’ 분위기가 만만치 않았음을 다시 한 번 보여준 대목이다.
■하늘이 무너지다
그런 허준에게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 일어났다. 1608년 2월1일 든든한 버팀목이던 선조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조짐은 1607년 10월부터 있었다.
선조가 아침에 방 밖으로 나오려다가 쓰러진 이후 갖가지 약재처방으로도 좀체 회복되지 않았다.(<선조실록> 1607년 10월9일) 급기야 “수의 허준이 약을 제대로 쓰지 못해 임금의 병세가 악화했다”는 탄핵론이 부각되었다.(11월13일)
사실 이 때의 허준은 당파 싸움의 속죄양이었다. 당시 수어의는 허준이었지만 내의원 도제조(정1품·자문명예직)는 소북파의 영수 유영경(1550~1608)이었다. <선조수정실록> 1607년 11월1일조를 보자.
“당시 유영경이 약방 도제조였으므로 (대북파가) 먼저 허준에게 ‘약을 잘못 썼다’고 논죄한 다음 유영경의 지위를 동요시키려 했다.”
대북파가 허준을 탄핵함으로써 ‘소북파 영수(유영경)’를 공격한 것이다. 이 ‘허준 탄핵론’은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11월13~21일 사이에 무려 18번의 상소가 핑퐁식으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선조는 “몸도 편치 않은데 수의를 죄줄 수 없으니 논의를 그치고 그 의술을 다할 수 있도록 하라”(11월15일)고 허준의 탄핵을 불허한다.
■유배와 귀환
결국 선조가 승하(1608년 2월1일)하고, 광해군이 즉위했다. 그때까지 억눌려있던 허준에 대한 질시와 반감이 봇물처럼 터진다.
3월10일 사간원은 “허준은 음흉하고 외람스러운 사람”으로 폄훼하면서 허준의 죄상을 까발렸다.
“허준은 어의로써…옥체(임금의 몸)가 편치 않은 데도 한기(寒氣)를 높이는 약을 잘못 써서 마침내 천붕(天崩·임금의 죽음)의 슬픔을 불렀으니…국문하여 법에 따라 처벌하소서.”
대간들의 탄핵상소는 무서웠다. 3월10~28일 사이에 무려 14차례에 걸쳐 “허준을 위리안치(圍籬安置·유배지에 울타리를 쳐서 가두는 처벌)시키라”고 아우성 친다.
광해군은 ‘위리안치’가 아닌 ‘중도부처(단순 유배형)’의 처벌을 내린다. 유배 중에도 “허준을 위리안치 하라”는 대간들의 상소가 이어졌다.(1609년 4월 21·23·24일)
그러나 광해군은 대간들의 끈질긴 탄핵을 일축했고(1609년 4월24일), 결국 1년 8개월만인 1609년 11월 22일 방면해준다. 광해군은 “허준은 호성공신이고 나에게도 공로가 있는 사람”이라 했다.
“…내가 마침 병이 많은데 내의원에는 명의가 적다…이제 석방하는 것이 가하다.”(<광해군일기> 1609년 11월22일조)
이를 두고 “허준의 죄상은 임금을 시해한 것과 같다”(<선조실록> 22일·사관)고 평가했고, “석방 명령을 거두어 달라”(23일·사간원)고 촉구했다. 9번의 상소가 올라왔다. 그러나 광해군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내의원에 복귀한 허준은 임금의 병을 돌봤다.
■토종 악재를 우리말로
허준의 삶이 여기까지였다면 어떨까. 선조와 광해군을 잘 모신 덕분에 주변의 질시와 비판 속에서도 공신이 되었고, 종1품(부총리급)까지 출세한 국왕 주치의로만 평가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허준은 임금(선조와 광해군)의 명을 받고 다시 백성의 품으로 뛰어 들어갔다.
1596년 5월 시작하여 1610년 8월 완성된 <동의보감>의 편찬이다. <동의보감> 서문은 선조가 허준에게 의서 편찬을 명하는 장면을 전한다.
“선조는…병신년(1596) 태의 허준에게 ‘의서를 편찬하라…외진 시골에는 약이 없어 죽는 이가 많다. 우리나라에 향약이 많이 생산되는데도 사람들이 모른다. 그대는 약초를 분류하면서 향명(鄕名·민간의 명칭)을 함께 적어 백성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하라’는 명을 내렸다.”
1610년 8월6일 14년 만에 <동의보감>이 완성되자 광해군의 촌평은 어떤가.
“허준이 선왕(선조)의 명에 따라 지금까지 노심초사…귀양지에서도 그치지 않았고, 노력한 결과 비로소 편질을 완성하여 올렸다.”
■‘사람을 살린 일이 부지기수’
모두 25책으로 된 <동의보감>은 1212종의 약에 대한 자료와 4497종의 처방을 수록한 불후의 의서이다. 86종에 이르는 국내외 의서들을 총정리했기에 임상의들에게는 더할 수 없는 필독서가 되었다.
가장 돋보이는 것은 병든 백성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다. 그는 이 땅에서 나는 637개 향약의 이름을 한글로 표기하여 백성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것이야말로 동의보감 편찬의 진정한 목적이라 할 수 있겠다. <동의보감> 뿐이 아니다.
예컨대 1612년(광해군 4년) 12월 전염병(온역·티푸스성 질환)이 급속도로 퍼지자 허준은 광해군의 명을 받아 ‘전염병 매뉴얼’인 <신찬벽온방>을 편찬했다.(1613년 2월)
이정구는 <신찬벽온방> 서문에서 “이 책의 편찬으로 누추한 시골의 후미진 골목이라도 다 처방문을 의지하여 구해 살게 되었다”고 했다.
또 <벽역신방>(1613)은 그 무렵 북쪽에서 유행한 성홍렬에 대한 책이다. <벽역신방>은 동아시아 3국을 통틀어 성홍열과 유사질환을 구분해낸 최초의 성과였으며, 세계적으로도 가장 빠르고 정확한 홍역연구서로 꼽힌다.
이밖에 앞서 인용한 두창 관련 치료책인 <언해두창집요>(1608)와, 진맥학 학습서인 <찬도방론백결집성>(1612), 산부인과 의학서인 <언해태산집요>(1608), 응급조치용 약방문인 <언해구급방>(1607) 등도 있다.
의성 허준의 진면목을 알려준 소개한 기사가 있다.
역대 의학자들의 전기인 <의림촬요>(‘역대의학성씨)다.
“허준은…경전과 역사에 박식했다. 특히 의학에 조예가 있어 신묘함이 깊은데 이르렀다. 사람을 살린 일이 부지기수다.”
다른 건 다 차치하고 “사람을 살린 일이 부지기수”라는 말이 의사 허준의 삶을 규정해주지 않는가.
(이 기사를 위해 김충배 허준박물관장, 최영성 한국전통문화대 교수가 도움말과 자료를 전해주었습니다. 허준 선생의 진면목을 알려면 허준박물관을 찾아 가보시기 바랍니다.) 이기환 히스토리텔러 lkh0745@naver.com
<참고자료>
최영성, ‘동의보감 초고본에 관한 연구-허준의 집필 구상이 담긴 초고본’, <연민학지>, 연민학회, 2015
김호, <허준의 동의보감 연구>, 일지사, 2000
신동원, <동의보감과 동아시아 의학사>, 전북대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들녘, 2015
허준박물관, <조선의 의사들, 인을 실천하다>(박물관 개관 20주년 특별전 도록), 2025
허준박물관, <조선에서 세계로-동의보감>(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15주년 특별전 도록>, 2024
한국관광공사(이하 공사)는 여행자가 느끼고 경험하는 이야기를 담은 콘텐츠 ‘요즘여행’의 세 번째 테마 ‘N차 여행’ 콘텐츠 5선을 26일 공개했다. ‘N차 여행’은 같은 지역을 여러 차례 방문하며 익숙한 공간 속에서 새로운 경험을 발견하고, 개인적인 서사를 쌓아가는 방식을 뜻한다.
공사 측은 “처음에는 잘 알려진 명소를 둘러보지만, 방문이 거듭될수록 골목길과 축제,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 등 지역의 숨은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며 “단순한 소비를 넘어 지역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는 새로운 관광 패러다임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화도, 체류형 프로그램 ‘잠시섬’의 환대
강화 청년들이 만든 협동조합 청풍이 운영하는 ‘잠시섬’은 이름 그대로 ‘잠시 멈춰 섬에서 쉰다’를 지향하는 체류형 프로그램이다.
휴식과 모험이 균형을 이루는 30여 개 프로그램이 상시 운영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것은 ‘금풍양조장 마스터 클래스’와 노을을 벗삼는 ‘야외 힐링요가’이다. 최근 SNS에서 주목받기도 한 금풍양조장은 100년 전통을 이어온 곳으로, 참여자들은 이곳에서 빚는 막걸리를 직접 시음하며, 대를 이어온 주인장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외에도 현지 농산물을 활용한 제철 요리 피크닉, 깊은 향의 차와 함께하는 티 클래스, 로컬 아티스트와 함께하는 나만의 그림책 마음 여행 워크숍까지. 기수마다 새로운 이벤트가 이어진다.
모든 과정을 강화도의 젊은 주민들이 진행자로 나선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참가자들은 현지인의 안내로 강화의 매력을 발견하고 함께 어울리며 친구가 된다. 모든 숙소는 1인 예약이 원칙으로 새로운 사람과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다.
강화도의 명소를 자유롭게 둘러볼 수도 있다. 성공회 강화성당은 우리나라 최초 한옥 성당으로, 동서양 건축미가 어우러진 독특한 외관을 자랑한다. 조양방직은 1933년에 설립된 직물공장의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레트로 카페로, 방문객에게 색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빨간 버스 타고 아지트로 출발, 전주 도서관 여행
2021년 6월, 바람에 나부끼는 ‘책이 삶이 되는 책의 도시 전주’ 플래카드가 전주 도서관 여행의 시작이었다. 폐 동사무소와 파출소를 리모델링해 작은 도서관으로 전환하고, 숲속과 한옥마을에 특별한 도서관을 짓고, 노후화된 공단에 그림책 도서관을 만들고, 덕진공원 연못에 세상에 하나뿐인 한옥형 연화정도서관을 세웠다. ‘전주 사람들은 이런 도서관이 있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 즈음 지역을 넘어선 호응에 전국 최초 ‘도서관 여행’ 코스가 만들어졌다.
11월까지 매주 토요일, 빨간 전용 버스를 타고 해설사와 함께 도는 이 특별한 여행은 전주를 여러 번 찾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14곳의 도서관 중 단연 첫손은 연화정 도서관이다. 덕진공원 연못 한가운데 놓인 전통 석교 ‘연화교’를 건너면 한옥 도서관을 만날 수 있으며, 책을 읽으며 풍경과 함께 감각을 깨우는 경험이 가능하다. 또한 총 길이 101m의 아중호수를 품은 국내 최장 곡선형 도서관인 아중호수도서관은 ‘음악 특화 도서관’으로 호수를 바라보며 나만의 취향이 담긴 LP를 감상할 수 있다.
이밖에도 시 특화 학산숲속시집도서관, 카페 갤러리 공간으로 재탄생한 서학예술마을도서관, 책 보물을 발견할 수 있는 동문헌책도서관, 국내외 가이드북과 여행 에세이가 가득한 다가여행자도서관 등, 각자의 취향에 맞는 도서관이 다양하게 준비됐다.
파도 파도 새로운, 강원 고성 해변 여행
고성은 바닷가 마을에서 살아보고 싶은 로망을 N차 여행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곳으로,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매력을 선사한다.
고운 백사장이 끝없이 펼쳐지고 기암괴석이 신비로운 풍경을 만들며 아기자기한 포토존은 화보 같은 장면을 연출한다. 작은 어항을 끼고 오가는 고기잡이배부터 감각적인 카페가 늘어선 풍경까지 어디를 가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바다를 만날 수 있다. 공통점은 모든 해변이 과하지 않게 고요하다는 점이다.
천진항과 봉포항 사이의 천진해변과 봉포해변은 아름다운 백사장과 편의시설을 갖춰 다양한 방식으로 바다를 즐기기에 적합하다. 편안히 ‘바다멍’을 하고 싶다면 가진항 인근 작은 해변을, 탁 트인 풍경과 스노클링 명소를 원하면 백섬해상전망대를 추천한다.
바다는 보고 싶지만 일정이 빠듯한 날에는 워케이션 명소 맹그로브 고성(교암리해변)도 좋다. 오션뷰 워크 라운지와 숙소를 갖춘 이곳에서 당일치기나 숙박으로 몰입과 휴식을 동시에 즐길 수 있으며, 숙박하지 않더라도 2만 원으로 일일 이용권을 구매해 입장할 수 있다.
차와 함께 다정해지는 시간
지리산과 섬진강으로 친숙한 하동은 1200여 년 역사를 자랑하는 ‘차(茶)’ 덕분에 특별한 명성을 이어왔다. 특히 녹차 재배 면적은 전국의 23%를 차지할 만큼 하동에서 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부부가 운영하는 ‘유로제다’에서는 참여자가 직접 차를 시음하고, 농가 주인과 차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다도를 배울 수 있다. ‘티카페하동’은 하동의 차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공간으로, 다도 체험과 야외 녹차 족욕, 티 소믈리에 클래스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1만여 평 규모의 ‘따신골녹차정원’은 차나무와 소나무, 진달래가 조화를 이루어 마치 정원 속에 들어온 듯한 풍경을 선사하며, 섬진강이 내려다보이는 캠핑 사이트에서는 차와 다식을 곁들여 힐링의 시간을 즐길 수 있다.
통영 강구안에서 즐기는 황홀한 미각 여행
통영은 아름다운 바다로 유명해 ‘동양의 나폴리’라 불리는 도시다. 바다가 선사한 감수성이 예술인들의 창작을 길러 문화예술의 도시로도 알려졌지만, 통영의 진짜 매력은 바다와 함께하는 풍성한 먹거리에도 있다. 그중에서도 강구안은 ‘미(美)항’을 넘어 ‘미(味)항’이라 불러도 손색없을 만큼 다양한 맛집과 음식 문화가 살아 있는 공간이다.
충무김밥과 밀면, 시락국, 우짜면 등은 저렴한 가격에 비해 맛과 양이 넉넉해, 가벼운 한 끼로 여행자의 배를 든든히 채운다. 통영 꿀빵과 꽈배기처럼 달콤한 길거리 음식은 강구안 골목을 거닐며 여행의 즐거움을 더한다. 골목마다 개성 있는 먹거리를 지나치다 보면 다 맛보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 자연스럽게 다음 방문을 기약하게 된다.
강구안 바로 앞 통영중앙전통시장에는 오랜 세월 자리를 지켜온 원조 맛집이 많다. 이중 ‘정화순대’는 순대와 잡채, 김밥, 쫄면 등 한국인의 입맛을 그대로 담아낸 대표적인 음식점이다. 시장 바로 옆 통제영꽈배기 또한 찹쌀꽈배기, 찹쌀도너츠, 공갈호떡 등 달콤한 간식거리가 가득해 여행자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통영에 왔다면 다찌집도 빼놓을 수 없다. 남쪽 바다가 선선히 내어준 싱싱한 해산물이 한 상 가득 차려지는 다찌집은, 그 자체로 강구안의 저녁을 가장 사치스럽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다찌의 어원에 대해선 일본식 선술집 ‘다찌노미’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다 있지!’라는 익살스러운 해석이 엇갈리지만, 어원이 무엇이든 다찌집은 통영 미식 여행의 하이라이트임이 분명하다.
한편 ‘요즘여행’에서 소개한 콘텐츠를 경험한 다섯 작가의 체험기를 포함한 자세한 정보는 대한민국 구석구석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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