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소년사건변호사 [셸터: 서로를 구하다④]최루탄 쏘고 곤봉 휘둘러도…유신정권은 국제시장 셔터 앞에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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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 철폐! 독재 타도!”
구호 소리가 들리면 다시 경찰이 쫓아왔고, 학생들은 흩어져 달렸다. 한 무리의 학생들이 시장 동쪽 끝 용두산 앞 골목까지 밀렸다. 시장이 다 내려다보이는 대각사에서 기다리던 경찰이 최루탄을 파바바방 쐈다. 허연 가루를 뒤집어쓴 학생들이 다시 흩어졌다. 부산대 2학년 강용업도 골목으로 도망쳤다.
한참 구호를 외치고 달아나기를 반복하던 강용업과 학생들은 길을 막고 달려오는 경찰들과 마주쳤다. 반대편으로 몸을 돌렸지만 그쪽에서도 경찰들이 나타났다. 길에 갇힌 강용업은 일단 눈에 보이는 가게로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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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가을, 왁자지껄한 항구도시의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부산의 대학생들은 기가 죽어 있었다. 1972년 시작된 박정희 정권의 유신 독재가 정점에 이른 때였다. 특히 10월4일 부산에서 인기가 높던 김영삼 신민당 총재가 국회의원에서 제명되자 부산 사람들도 뒤집어졌다.
전국에서 대학생들의 유신 반대 시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부산대는 이상하게 조용했다. 캠퍼스 곳곳에 형사들이 들어와 있긴 했지만 그건 다른 대학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부산대 학생들이 시국에 느끼는 분노가 다른 지역 학생들보다 적은 것도 아니었다.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고요. 놀기 좋아하던 의예과 2학년 강용업도 가슴이 답답했다. 남포동에서 미팅을 하고 대학가 호프집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수다를 떨어도 금방 힘이 빠졌다. 운동권 써클과는 거리가 멀었던 의대생들의 술자리에서도 화제는 늘 정치 이야기로 흘러가곤 했다. 숨 막히는 유신 체제를 욕하다 보면 너무나 평온한 캠퍼스 분위기에도 욱 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부산이 이래도 되나? 너무 쪽팔리다.”
“제발 누가 데모 주도 좀 안 해주나? 건드리면 탁 터질 긴데.”
서울 학생들이 정권과 맞서 싸웠다는 이야기가 들려온 날엔 괜히 더 움츠러들었다. 이화여대 총학생회가 부산대 총학생회에 가위를 선물로 보냈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금정산에는 단풍이 물들고 억눌린 분노는 임계점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날씨가 맑던 10월16일 오전, 강의실로 난 캠퍼스 오솔길을 걷던 강용업은 길에 뿌려진 삐라들을 발견했다. 손바닥만한 삐라엔 ‘10시에 도서관 앞에서 집회를 연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강의실에 들어간 그는 친구들에게 삐라를 보여 줬다. 기다리던 ‘건드림’이었다. 수업을 제쳐두고 우르르 몰려간 도서관 앞에는 벌써 학생 수백 명이 바글댔다. 한 학생이 선언문을 읽고 있었다.
4·19혁명 이후 최대 규모의 반독재 투쟁, 부마민주항쟁이 막을 올렸다. 학생들은 장소를 옮겨 운동장을 돌며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불렀다. 수천 명으로 불어난 시위대는 경찰이 막은 정문을 뚫고 거리로 나섰다. 행렬은 곳곳에서 경찰과 충돌하며 남쪽 시내로 향했다. 강용업과 친구들은 온천교 앞에서 경찰들에게 진압당해 흩어졌지만, 많은 학생들이 부산의 번화가인 남포동까지 진출해 거리를 돌며 시위를 벌였다. 버스 기사들은 차비를 받지 않으려 했고, 상인들은 김밥과 사이다를 나눠 줬다.
다음날에도 강용업과 친구들은 자주 가던 남포동 다방에 모여 시위를 기다렸다. 함성을 듣고 뛰쳐나가니 넓은 대로가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경찰의 진압도 전날보다 더 강경했다. 행렬 앞쪽에서 여학생 한 명이 곤봉에 맞은 듯 머리와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채 부축을 받고 빠져나왔다. 그 모습에 시위대의 분노가 폭발했다. 곳곳에서 최루탄이 터지고, 국제시장 골목마다 경찰과 시위대의 추격전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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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간, 강용업의 사촌 형 김광호는 자갈치시장 옆 충무동의 한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있었다. 현역 장교였던 김광호에게 문효중 원장은 궁금한 게 많았다.
“김 대위, 지금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 문 원장이 물었다.
“심각한 것 같습니다.” 김광호가 말했다. “학생들이 안타깝습니다. 제 동생도 지금 대학생인데 데모하러 다닌다는데….”
갑자기 진료실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문 원장과 김광호가 나가 보니, 허연 최루탄 가루로 범벅이 된 학생들이 병원 현관으로 뛰어들어와 숨을 헉헉 몰아쉬고 있었다. 병원 문밖으로는 도로를 뛰어다니는 진압 경찰들이 보였다. 문 원장은 문을 쾅 닫아 잠가버렸다.
“조금만 기달리라. 괜찮다, 괜찮다.” 문 원장은 벌벌 떠는 학생들을 안심시켰다. “눈 따갑제? 저기 가서 눈 깜빡이지 말고, 눈 감고 비누로 다 씻어내라.”
학생들이 몸을 추스른 뒤 다시 거리로 나서자 문 원장은 또 병원 문을 열었다. 다른 학생들이 들어오면 문을 잠그고 또 챙겨 줬다. 거리의 다른 가게들도 하나같이 문을 열어뒀다가 학생들이 들어오자마자 문을 걸어잠갔다. 그 모습을 본 김광호도 버스에서 최루탄 냄새에 힘들어하는 학생들에게 말했다. “수건으로 코 막아라. 수건 없으면 코에 침이라도 바르고, 눈 절대 뜨지 마라.”
학생들이 숨은 버스에 경찰이 다가오면 김광호는 일부러 군복 쫙 가슴을 펴며 호통쳤다. “이 새끼들, 빨리 가! 차 빨리빨리 빼란 말이야!”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유족회 활동을 하다 고초를 겪은 아버지를 둔 그는 학생들이 아주 남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한국 민주화운동사에는 경찰의 강경 진압으로부터 시위대를 숨겨 주는 상인과 시민의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성난 민심을 대변하며 거리로 나선 청년들을 응원하는 마음이 컸다. 특히 한국전쟁 때 임시수도로 피난민과 함께 성장한 부산은 복작복작한 시장과 좁은 골목이 많아 쫓기는 시위대를 숨겨 주기 쉬운 환경이었다.
대학생 강용업도 경찰에 쫓기다가 보이는 상점으로 몸을 피했다. 옷가게, 음식 파는 가게…상호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많은 가게에서 신세를 졌다. 상인들은 강용업과 시위대가 뛰어들어오면 셔터를 탁 내렸다.
“학생들, 얼마나 배고프겠노. 잘하는데 이 빵이나 좀 묵고 가라.” 숨을 돌리고 있으면 상인들은 물과 빵을 줬다. 숨어든 가게에서 용돈을 받았다는 친구도 있었다. 그날 시위가 마무리되고 집에 갈 때도 택시 기사는 돈을 받지 않았다.
아버지와 함께 국제시장에서 원단 가게를 운영한 ‘시장 토박이’ 정윤용에게도 정신없는 날들이었다. “남자 여자 할 거 없이 최루탄 맞고 막 정신 못 차리는” 학생들이 뛰어들어오면 일단 셔터부터 내렸다. 학생들의 얼굴에 물을 뿌리고 타올로 닦아 주면, 숨을 돌린 학생들은 또 뛰쳐나갔다. 다시 거리로 나가는 학생들에게 정윤용은 조심하라는 말 정도만 던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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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 셋째 날인 18일부터는 부산에 계엄령이 내려졌다. 공수부대가 탱크를 끌고 시내로 들어왔다. 경찰보다 훨씬 폭력적인 진압에 부상자가 속출했다. 산발적인 시위가 며칠 이어졌지만 강경한 진압에 사그라들었다. 정권은 시위가 이어지던 경남 마산에까지 위수령을 발동하면서 불씨를 꺼트리려 했다. 2026년 현재 집계 기준 부마항쟁 당시 1명이 사망하고 1563명(부산 1058명, 마산 505명)이 연행된 것으로 파악된다.
국제시장에서 모자 가게를 하던 김희대는 어느 날 밤, 영업을 마치고 보수동 자취방으로 털레털레 걸어오고 있었다. 유쾌하지 않은 기분이었다. 전날 군인들의 검문에 잡혀 공들여 기른 장발 머리를 가운데만 밀렸기 때문이었다. ‘장사하는 사람’이라며 가게 장부를 보여주니 풀려났지만, 함께 잡혀 있던 청년들은 군인들에게 끌려갔다.
어지러운 마음으로 자취방에 도착해 대문을 열자, 옆을 어슬렁거리던 대학생 두 명이 확 따라 들어왔다. 시위에 참여했다가 공수부대 군인들에게 쫓겨 도망치던 학생들이라고 했다. 김희대는 학생들을 일단 집 화장실에 숨겨 줬다. 곧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군인들이었다.
“방금 들어온 사람 있습니까?” 군인들이 말했다.
“내 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입니다. 어제 잡혀가 머리도 깎이고, 조사받고 왔습니다.” 김희대가 둘러대자 군인들은 돌아갔다.
김희대는 학생들에게 라면을 끓여 줬다. 라면을 나눠 먹으며 셋은 짧은 대화를 나눴다. 김희대는 왜 이렇게 시위를 하느냐고 물어봤다. 학생들은 민주주의로 가야 하는데 독재가 너무 심하다고 했다. 김희대는 그런 건 잘 모르지만, 학생들이 무슨 죄가 있겠나 싶었다. 학생들은 건너편 공원으로 내려갔다. 김희대는 학생들이 또 잡히지는 않을까 걱정됐다.
밑천도 없이 장사를 하겠다며 고향인 경북 문경 시골마을을 혼자 떠나온 김희대였다. 대구부터 부산까지, 신문팔이부터 자동차 정비까지 안 한 게 없었다. 국제시장은 그런 그를 품어준 곳이었다. 비좁은 시장 골목을 누비는 싹싹하고 성실한 문경 청년에게 상인들은 뭐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 했다.
신용이 시장의 법이라면, 인지상정은 도덕이었다. 어려움에 빠진 이를 외면하지 않고 도우면 언젠가 돌아온다. 자신에게. 또는 모두에게. 장부에 일일이 적지 않아도 다 돌아오게 돼 있는 어떤 베풂에 대한 믿음이 시장에는 있다.
“자기 욕심만 챙기고 그래 하는 사람은 오래 못 간다. 그런 사람은 보면 딱 표가 난다”(정윤용). 시장에서 남의 도움 받지 않고 두 발로 서 있는 사람은 없다. 한국전쟁의 포연 속에 자리를 잡고 가게를 키워 온 국제시장 상인들은, 최루탄 페퍼포그 맞고 들어온 학생들을 감싸 줄 준비가 돼 있었다.
47년이 지난 지금 정윤용은 시장 번영회장을, 김희대는 부회장을 맡고 있다. 부마항쟁 때 숨겨 준 학생들을 지금 다시 만나면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은지 그들에게 물었다.
“고난을 겪고 행복이 올 수 있는 거거든요. 우리가 이만큼 민주화도 되고 잘 살 수 있는 거는 다 학생들 덕분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김희대가 말했다.
“맞지, 그 사람들 덕분이죠. 부산 마산이 아니었으면 우리나라가 이리 발전 안 한다고 지금도 이야기하고 있어요.” 정윤용이 거들었다.
시장 가게에 숨어들었던 대학생, 이제는 의사가 된 강용업에게도 그 당시 상인들을 떠올리면 어떤 마음인지 물었다.
“그분들에게 정말 감사드리고 싶어요. 지원해주신 덕분에 우리가 시장에서 뛰어다니면서도 용기를 얻고, 보람도 되고, 우리가 옳은 일을 하고 있구나….” 그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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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시내 거리가 시위로 뜨겁게 끓던 1979년 10월18일, 한 남자가 시위 현장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유신정권의 핵심 인사인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였다. 부산과 마산에서 큰 시위가 일어났다는 소식에 직접 분위기를 살피러 온 것이었다. 학생들뿐 아니라 각계각층 시민들이 시위에 참여하는 모습, 시장 상인들이 음료수와 맥주를 나눠 주고 피난처를 제공해 주는 모습 등을 그는 모두 봤다.
등을 돌린 거대한 민심을 보며 김재규는 4·19혁명을 떠올렸다. 정권이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전국으로 시위가 확산하고, 유신정권도 이승만 자유당 정권처럼 무너질 수 있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부산 출장에서 복귀한 직후 그는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 상황을 보고했다. 그는 훗날 법정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진술했다.
“부산을 다녀오면서 바로 청와대로 들어가 박 대통령에게 보고를 드린 일이 있습니다. 김계원 비서실장과 차지철 경호실장과 동석해 저녁식사를 막 끝낸 식당에서였습니다.
(중략) 본인이 직접 시찰하고 판단한 대로 솔직하게 보고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박 대통령은 버럭 화를 내면서 ‘앞으로 부산 같은 사태가 생기면 이제는 내가 직접 발포명령을 내리겠다’며 역정을 내셨고, 차지철은 ‘캄보디아에서는 300만명을 죽이고도 까딱 없었는데 우리도 데모대원 100만~200만명 죽인다고 까딱 있겠습니까’ 하는 무시무시한 말들을 함부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의 이와 같은 반응은 절대로 말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본인의 판단이었습니다. 누구보다도 본인이 잘 압니다. 그는 군인 출신이고 절대로 물러설 줄을 모르는 분입니다. (중략) 박 대통령은 이 박사(이승만)와는 달라서 어떠한 저항이 있더라도 기필코 방어해내고 말 분입니다.”
며칠 뒤인 10월26일 김재규는 박 대통령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유신정권의 몰락 이후 많은 이들이 민주주의가 찾아오길 기대했다. 하지만 그해 겨울 12·12 사태로 다시 긴 군부독재가 시작됐다. 시민들의 바람을 꺾은 건 부마항쟁 당시 김재규와 가까운 곳에 있던 인물이었다. 김재규가 부산에서 시위를 지켜보던 1979년 10월18일, 보안사령관 전두환은 지휘계통도 아니었던 부산의 계엄사령부를 찾아 강경 진압을 독려하고 공수부대를 격려하고 있었다.
“소요사태 수습은 초기 진압 작전이 가장 중요하며 군이 개입한 이상 강력한 수단을 사용, 데모 재발을 방지하고 군의 위세를 과시하며 (중략) 타 지방으로 데모 확산을 방지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 후…” 육군 군수사령부는 그날 전두환이 주도한 회의 내용을 이렇게 기록했다. 전두환의 이런 위험한 인식은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뒤 더 굳어져 갔다.
[셸터: 서로를 구하다]는 한국 현대사의 격동기, 위험을 무릅쓰고 국가폭력으로부터 타인을 지켜 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시리즈 전체 기사는 링크(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튀르키예 음식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무래도 케밥이다. 얇은 빵에 싸 먹는 양고기, 그리고 곁들여 마시는 아이란. 튀르키예를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사람에게도 케밥은 꽤 익숙한 음식이다.
그런데 튀르키예에 며칠 머물며 끼니를 거듭하다 보면 예상 외의 음식들이 눈에 띈다. 기억에 남는 것은 오히려 올리브와 치즈, 토마토와 고추, 요거트와 빵이었다. 고기보다 채소가 먼저 눈에 들어오고, 메인 요리가 나오기도 전에 식탁 가득 놓이는 작은 접시들에 마음을 빼앗긴다.
튀르키예의 음식은 생각보다 훨씬 넓다. 지중해와 에게해를 끼고 있고, 아나톨리아 내륙과 동부까지 뻗은 거대한 국토만큼이나 지역 음식도 다르다. 이스탄불에서 먹은 생선과 메제, 이즈미르·우를라에서 만난 올리브오일 중심의 채소요리, 데니즐리에서 먹은 어린 양고기까지 한 나라의 음식이라고 하기에는 풍경이 제법 다채롭다.
특히 에게해 지역을 지나면서 튀르키예 음식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튀르키예 관광청은 이즈미르를 에게해와 산을 양옆에 둔 도시이자 서로 다른 문화가 음식에 녹아든 곳, 지역 식재료를 활용해 에게해 음식을 새롭게 해석하는 미쉐린 인정 음식문화가 공존하는 곳으로 소개한다. 그러니 튀르키예에 간다면 케밥만 찾을 일은 아니다. 오히려 케밥을 시작으로 이 나라의 식탁이 어디까지 뻗어 있는지를 살펴보는 편이 재미있다.
케밥은 하나가 아니다
이스탄불에서 먹은 되네르 케밥과 데니즐리에서 먹은 케밥은 같은 이름으로 묶기 어려울 만큼 달랐다.
점심시간, 이스탄불의 명소 그랜드 바자르 입구에 자리한 되네르지 샤힌 우스타(Dönerci Şahin Usta)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튀르키예의 1호 공인 한국어 가이드인 규벤씨가 추천한 ‘케밥 맛집’이다. 아담한 가게에서는 얇게 저민 고기를 층층이 쌓아 올린 ‘되네르’를 세로 꼬치에서 돌려 구웠다가 주문과 동시에 고기를 잘라 도톰하고 쫄깃한 식감의 빵 사이에 끼워서 냈다. 바로 옆에는 서서 먹을 수 있는 공간까지 마련돼 있었다. 비교적 최근에 생겼다고 한다.
튀르키예에서 먹는 첫 케밥. 콜라보다는 현지인들처럼 아이란을 곁들였다. 요거트에 물과 소금을 섞어 만든 음료로, 달지 않고 살짝 짭짤하다. 고기의 기름진 맛을 한 번 씻어내고 다음 한입을 받기에 좋다. 매콤한 음식과도 합이 좋았다. 그 맛이 그리워 귀국 후 플레인요거트에 물을 타서 마셔봤는데, 특유의 그 ‘간간한’ 맛이 살지 않아서 살짝 아쉬웠다.
1943년부터 영업을 시작한 데니즐리의 케밥치 카디르(Kebapçı Kadir)에서는 완전히 다른 케밥을 만났다. 한 살이 되지 않은 어린 숫양을 전통 화덕에서 오래 익힌 ‘데니즐리 케밥’이다. 4시간 이상 구운 양고기는 손을 대기만 해도 부서질 듯 부드러웠다. 담백한 고기에 취향에 따라 오레가노, 큐민, 소금 등을 더한 뒤 기름을 머금은 납작한 빵에 싸먹는다. 역시나 아이란과 맛의 조합이 좋았다.
규벤씨는 열기구로 잘 알려진 카파도키아에 가게 되면 ‘항아리 케밥’으로 불리는 ‘테스티 케밥(testi kebabı)’을 먹어볼 것을 권했다. 고기와 채소를 밀봉한 토기 항아리에 넣어 천천히 익힌 뒤 식탁에서 항아리를 깨서 먹는다. 남부 지방에서는 다진 양고기와 꼬리 지방을 반죽해 넓적한 꼬치에 붙이고 숯불에 굽는 ‘아다나 케밥(Adana kebabı)’을 즐긴다. 같은 케밥이라는 이름 아래 조리법도, 식감도, 지역의 풍경도 다르다.
‘고등어 케밥’으로 알려진 발르크 에크멕(Balık Ekmek)은 이름부터 조금 억울하다. 튀르키예어로 발르크는 생선, 에크멕은 빵이라는 뜻. 말 그대로 구운 생선을 빵에 끼운 이스탄불의 대표적인 길거리 음식으로, 전통적으로 고등어를 많이 사용한다. ‘고등어 케밥’이라고 부르지만 엄밀히 케밥의 한 종류는 아니다. 규벤씨에 따르면 최근 몇 년새 토르티야처럼 얇은 빵에 구운 고등어를 말아서 먹는 발르크 뒤륌(balık dürüm)이 인기라고 한다.
처음 만난 메제라는 세계
이번 여행에서 가장 의외였던 음식은 메제(Meze)였다. 흔히 ‘애피타이저’로 번역되지만, 한국어를 잘하는 현지인 가이드 규벤씨는 “반찬”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보니 애피타이저라는 말로는 부족했다. 작은 접시 하나하나가 독립적인 음식이고, 그것들이 마치 한정식처럼 한꺼번에 식탁을 채운다. 메인 요리가 나오기 전에 단독으로 먹거나, 빵에 곁들이기에 좋았다. 규벤씨는 보통 서너 가지에서 대여섯 가지 정도를 골라 함께 나눠 먹는다고 설명했다.
이스탄불의 기리틀리 레스토랑(Giritli Restaurant)에서는 15종에 가까운 메제를 만났다. 문어와 생선, 채소를 넣어 지은 해산물밥(씨푸드 오르조), 초절임한 농어, 석류를 넣은 감자요리, 올리브 무침, 크림치즈를 올린 가지, 건포도와 무친 해류, 캐러멜라이즈드한 양파를 올린 아티초크, 파슬리 차지키, 연어 패스트라미 등 제각각 다른 모습으로 조리돼 있었다. 전반적으로 딜의 향이 강했다. 식당 이름인 ‘기리틀리(Giritli)’는 튀르키예어로 ‘크레타 사람, 크레타 출신’을 뜻한다. 크레타·에게해 음식을 기반으로 한 메제를 맛볼 수 있었다.
보스포로스 해협이 내다보이는 이스탄불의 키바 갈라타포르트(Kiva Galataport)에는 쇼케이스에만 12종이 넘는 메제가 진열돼 있었다. 요거트와 후무스, 차지키, 올리브, 버섯, 치즈 등을 활용한 음식들이 메인 요리를 맞기 전, 식욕을 당겼다.
데니즐리의 ‘말라 프리미엄(Marla Premium)에서는 다른 식당에서 보지 못했던 갖가지 화려하고 다채로운 매제의 세계가 펼쳐졌다. 각종 채소는 기본, 딸기와 망고 등 과일까지 아우르는 조합이 마치 요리쇼를 보는 듯했다. 규벤씨도 아보카도를 이용한 메제는 처음 본다고 했다.
메제는 특정 음식 하나의 이름이라기보다, 식탁을 구성하는 방식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역 특산물이나 셰프의 의지에 따라 수십, 수백 가지로 응용이 가능한 아주 흥미로운 음식이었다. 생선이나 고기를 기다리기 전에 먹는 음식이라고 설명하기에는 어쩐지 아쉽다.
쾨프테와 라마준, 떡갈비와 피자?
쾨프테(Köfte)는 다진 고기를 빚어 굽거나 익힌 음식이다. 한국인에게는 흔히 ‘터키식 떡갈비’라고 설명하지만, 실제로 먹어보면 한국의 떡갈비와는 다른 질감과 향을 가진다. 키바 갈라타포르트에서 먹은 쾨프테는 불맛이 선명하면서 간이 절묘했다. 둥글거나 납작하게 빚은 고기를 숯불에 구워내는 방식은 튀르키예에서 매우 친숙한 음식 풍경이다.
라마준(Lahmacun)은 흔히 ‘터키식 피자’라고 부른다. 얇은 반죽 위에 다진 고기와 채소 등을 얇게 펴 발라 굽는다. 쾨셰바시 이즈미르(Köşebaşı İzmir)에서 먹은 라마준은 손바닥만 한 작은 크기였다. 규벤씨의 시범에 따라 함께 나온 토마토와 오이 샐러드를 올려 싸 먹었다. 바삭한 도우와 짭조름한 토핑의 조화가 한국인의 입맛에 딱 좋았다.
규벤씨는 이탈리아와 튀르키예의 국가 대항 배구 경기를 한 관객이 ‘Lahmacun, Better Than Pizza(라마준이 피자보다 낫다)’는 피켓을 들고 응원을 했다는 일화를 들려줬다. 이탈리아 사람이라면 ‘킹 받을만한’ 도발이다.
얇은 반죽 안에 치즈나 채소, 고기 등을 넣어 굽거나 튀기는 뵈렉(Börek)도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됐다. 이름을 몇 개 외우는 것보다 ‘얇은 반죽과 속재료의 조합’이라는 큰 특징을 기억하는 편이 여행에서는 유용하다.
코코레치와 홍합밥, 길 위의 튀르키예
튀르키예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먹는 길거리 음식 중에는 코코레치(Kokoreç)가 있다. 양의 내장을 손질해 향신료를 넣고 돌돌 말아 구운 뒤 잘게 다져 빵에 넣어 먹는다. 처음에는 재료 이름만 듣고 선뜻 손이 가지 않을 수 있다. 실제로 먹어보니 예상보다 거부감은 적었다. 바삭하게 구워 기름을 빼고, 다시 불판에서 잘게 다져 익힌 코코레치는 향신료의 풍미가 강했다. 메뉴판에는 다섯 가지 코코레치가 있었다. 그중 ‘레귤러’라고 표시된 토마토를 함께 내장을 다져 넣은 것을 골랐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럽게 잘 구운 빵과 바삭한 내장의 씹는 맛이 재미있었다.
튀르키예를 두 번 다녀온 지인이 꼭 먹으라고 추천했던 홍합밥 미데 돌마(midye dolma)는 여행 마지막 날 먹을 수 있었다. 이스탄불의 명동이라 불리는 이스티클랄에서 홍합밥만을 판매하는 노점상을 여럿 보았다. 행인들이 오가며 한 입 두 입 홍합밥을 먹는 풍경이 신기했지만, 선뜻 엄두를 내기 어려웠다.
마침 코코레치를 먹기 위해 들른 코코레치치 우르(Kokoreççi Uğur)에서 홍합밥까지 팔고 있어서 기쁜 마음에 주문을 넣었다. 홍합을 잘게 썰어 양념한 밥으로 껍데기를 채운 미데 돌마에 레몬즙을 뿌려서 먹는다. 한국인이라면 마다하기 힘든 맛이다.
청소년들이 들어와 햄버거를 찾듯이 코코레치를 먹고, 배달기사가 음식을 받아 가고, 동네 사람들이 포장해 갔다. 커다란 코코레치가 돌아가며 익고 있는 장면을 누군가는 계속 영상에 담고 있었다. 뭔가 동네 맛집을 찾은 듯 뿌듯함이 밀려왔다. 역시나 향신료 맛이 강한 코코래치와 홍합밥에는 아이란을 곁들여야 제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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