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틱톡조회수 [정동칼럼]오류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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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이이
댓글 0건 조회 28회 작성일 26-06-29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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틱톡조회수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어이없는 행정적 오류로 오염된 9회 지방선거, 그리고 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후속 조사는 이 사회에서 오류가 얼마나 편만해 있는지를 보여준다. 과도한 주의력을 요구하는 기술, 복잡하고 세밀해진 제도, 변동성 높은 사회 시스템이 결합해 오류는 더 이상 예외가 아니라 그럴듯한 확률로 발생할 ‘예정된 사고’가 되어간다. 청소년기 최후의 심판인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출제 오류 논쟁, 안전에 철저해야 하는 시스템인 공항에서 벌어지는 각종 사고들, 그리고 ‘한 점의’ 오류도 없어야 하는 선거관리 업무의 실패는 이제 오류의 발생에 성역이 없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심지어 오늘날 대형언어모델 기반 인공지능이 생성하는 결과물은 본질적으로 오류에 취약하다.
일상이 된 오류는 변검 배우처럼 얼굴을 달리하며 나타난다.
어떤 오류는 참사를 낳는다. 2014년 세월호 참사, 2023년 궁평지하차도 참사에는 안전관리 관련 기관 담당자들 간 부주의와 소통의 오류가 있었다. 광주 학동 참사, 아리셀 공장 화재 참사, 삼풍백화점 참사 등 6월에 발생한 기업형 참사들에는 탐욕, 부실, 안전 시스템 미작동, 그리고 사후 조치 미흡이라는 심리적, 물리적, 기술적, 사회적 오류들이 매복해 있었다.
어떤 오류는 삶을 파괴한다. 복지 서비스 판별 시스템에 오류가 발생하면 부적격자가 수급을 받음으로써 그 시스템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그걸 막자고 증빙서류를 늘리면 이번에는 자격이 있는 수급자들이 수급을 받지 못한 채 불행한 죽음을 맞이하는 나비효과가 발생한다. 잘못된 판결 역시 개인에게는 삶이 블랙홀에 던져지는 참사라는 사실을 수많은 ‘과거사 재심 판결’들이 보여준다.
어떤 오류는 마음의 가장 취약한 지점인 의심에 불을 붙인다. 오류를 유발한 사람을 보며 처음엔 그의 부주의를 지적하고, 다음에는 무능력을 꾸짖고, 그러고는 기어이 악의를 의심하게 된다. 인간은 보통 오류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에, 오류가 반복되면 그것을 확률의 문제가 아니라 의도의 문제로 인식하게 된다. “왜 손흥민을 저렇게 쓸까?” 같은 짜증 섞인 호기심부터 “선관위는 민주주의가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었던 것일까?” 하는 무거운 공적 질문까지, 한국 사회가 던지고 있는 이런 질문들은 우리 마음이 미처 덮지 못해 날리는 의심의 불씨다.
어떤 오류는 부정의를 가져온다. 잉크 한 방울로 물 한 컵이 검게 변하듯, 복잡한 시스템에서는 책임이 모호한 작은 오류도 감당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온다. 오류를 발생시킨 이는 징계받기도 하고, 조직은 해체론에 직면하기도 하나 결국 그 정도다. 반면 오류의 오물을 뒤집어쓴 개인은 실제로 삶을 상실하고, 시스템은 오래 흔들리며, 사회는 서로 간 신뢰를 잃는다. 모든 오류는 비용을 유발하지만, 누군가에게 더 가혹하다. 수급자격 판단, 재판, 언론 보도, 인사, 그리고 선거관리 모두, 오류가 유발한 개인적, 조직적, 사회적 비용은 어떤 재분배 정책으로도 상쇄하기 어려운 사회적 부정의를 확대한다.
이런 오류를 줄일 수 있을까? 관리자적 선의에 기반한 이 질문은 판도라의 상자를 연다. 오류를 완전히 없앨 수 없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인간은 불완전하고, 그럴 기술도 없고, 어떤 오류를 극단적으로 줄이려면 그 사회의 다른 부분을 돌볼 수 있을 자원을 지나치게 소모한다. 결국 우리에겐 괴로운 질문이 던져진다. 사회는 오류를 어디까지 감내해야 하는가? 이 판단은 비용과 편익의 계산 문제인가, 타협할 수 없는 가치의 문제인가? 책임은 어떻게 논할 수 있는가?
어려운 질문엔 늘 인지적 우회로가 생기기 마련이다. 하나는 오류를 차별하는 것이다. 사소한 오류는 응징하고, 거대한 오류는 게임 법칙인 양 수용하고, 자신을 방어하기 어려운 약자에게 저질러지는 오류는 ‘불가피함’을 말하면서 인지적·윤리적 부담을 덜어낸다. 다른 하나는 사람을 오류와 동일시하는 것이다. 정적을, 장애인을, 탈가정 청소년을, 이주민을, 한센인을, 참사 피해자를, 말단 공무원을 오류로 호명하면 오류 발생 원인은 어떤 행동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가 된다.
이렇듯 인간이 고안하는 해법까지도 오류를 벗어날 수 없다. 이 글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모든 발화와 공적 의사결정에는 ‘한계’가 아니라 ‘오류’가 있음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오류를 온전히 피할 수는 없어도, 그 결과인 고통과 부정의는 덜어낼 수 있다. 오류사회의 윤리학은 성찰과 공감에 근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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