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지대 제10대 총장, 한의과대학 방정균 교수 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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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법인 상지학원은 29일 이사회를 열고 상지대 제10대 총장으로 한의과대학 방정균 교수를 임명했다.
신임 방 총장의 임기는 오는 8월 1일부터 2030년 7월 31일까지 4년간이다.
방 총장은 1988년 상지대 한의과대학 1기로 입학했으며, 2002년 한의과대학 교수로 임용된 이후 교육과 연구는 물론 대학 행정 분야에서도 다양한 경험을 쌓아왔다.
2017년부터 학교법인 상지학원 법인 국장, 상지대 대외협력처장, 부총장 등을 역임하며 대학의 주요 정책과 대외협력 업무를 수행했다.
또 2020년 교육부 사학분쟁조정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사학 제도 발전과 대학 운영의 공공성 제고에 힘썼고, 2021년에는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을 역임하기도 했다.
방 총장은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고, 교육 혁신과 연구 역량 강화, 산학협력 및 지역사회와의 상생을 통해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끌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1592년 발발한 임진왜란, 개전 초 전황은 참혹했다. 음력 4월13일 부산포에 모습을 드러낸 왜군은 불과 두 달 뒤인 6월13일, 조선 국왕을 영변까지 도망치게 했다. 왜군을 피해 백성을 버리고 도망치는 국왕의 모습을 보며 백성들은 국가의 존재 의미를 잃어버렸고, 궁궐은 백성들에 의해 불탔다. 영변까지 도망친 선조는 자기 안위와 국가 회복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렇게 해서 선택된 방법이 분조(分朝)였다. 왕의 제1조정은 여차하면 중국으로 망명할 수 있도록 의주까지 도망칠 때, 세자(광해군)는 제2조정을 구성해서 조정이 살아 있음을 보여주어야 했다.
음력 6월14일, 형식적 눈물을 뒤로한 채 선조는 의주로, 세자는 강계로 방향을 잡았다. 제2조정에는 영의정 최흥원과 우의정 유홍을 비롯하여, 외교 부문을 제외한 핵심 관료들 대부분이 배종했다. 명(明)으로의 망명을 위해 제1조정 행렬을 간소화하는 동시에, 행정과 사법, 군사와 인사까지 관할해야 하는 제2조정의 권한을 보여주기 위한 조치였다.
죽어도 천자의 나라에서 죽겠다고 우겼던 선조와 달리, 세자는 국가 회복을 위해 공격적인 결정을 내렸다. 왕명에 따른 안전한 강계 땅이 아니라, 적과 대적하며 명령을 하달하고 보고받기에 유리한 이천으로 이동했다. 지독한 폭우를 동반한 장마철, 영변에서 이천까지의 협로는 조선이 처한 상황만큼이나 고통스러웠다. 모든 신료는 비를 맞으며 걸었고, 한 나라의 차기 권력인 세자마저 말고삐 잡을 사람이 없어 스스로 말을 몰아야 했다.
이천에 도착한 제2조정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조정의 역할을 수행했다. 국가 기능을 회복하고, 백성들에겐 조정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영변에서 이천까지 한 달여간 목숨을 건 이동의 결과였다. 이제 상황을 정리하고, 반격을 위한 모멘텀을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이러한 시점에 의주 행재소로부터 황당한 전갈이 내려왔다. 제1조정에서 제2조정 관료들을 탄핵한 것이다. 강계로 가라 했던 왕명을 받들지 않고 이천까지 이동했다는 게 탄핵의 이유였다.
세자를 따랐던 신하들은 황당하기 이를 데 없었다. 국가 체계를 정비하고 반격의 기회를 만들기에도 모자란 시간에, 선조는 세자가 아닌 자신이 왕이라는 사실을 신하들에게 각인시키는 데 시간을 사용했다. 죽을지 살지 모를 긴박한 상황에서야 왕좌보다 목숨이 중요했지만, 세자가 만든 그 잠깐의 여유는 다시 왕권과 왕좌를 떠올리게 했다. 전쟁 발발 이전처럼 상대를 견제하고, 권력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리려 했다. 외적을 상대하기에도 모자란 에너지가 내부 총질에 사용되었던 것이다.(정탁, <피난행록>)
공동체나 국가가 무너질 정도의 내부 분열은 외부 충격이 극에 달했을 때 발생하지 않는 법이다. 단합해서 외부 충격에 대응하다가 잠시 한숨 돌리는 작은 틈이 만들어질 때 비로소 내부 총질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부 위기는 여전하고 심지어 더 큰 위험이 예견되어도, 숨 고를 잠깐의 시간만 있으면 내부를 견제하고 상대방을 공격하는 게 권력의 속성이기는 하다. 그런데 문제는 외침보다 더 많은 국망의 이유가 그 잠깐 사이에 발생한 내부 분열 때문이며, 그래서 이러한 내부 분열은 공동체와 국가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2024년 12월3일,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큰 위기를 맞았다. 다행히 온 힘을 다해 이를 막고, 정권교체까지 이루어냈다. 내란의 밤을 넘어, 이제 잠깐 숨고르기가 가능해졌다. 그러나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은 여전하고, 이 같은 위협을 항구적으로 막기 위한 단합된 에너지 역시 필요하다. 이 같은 잠깐의 시간을 비집고 다시 내부를 겨냥한 분열의 조짐들이 올라오고 있다. 제2조정 신하들만큼이나 현재 정국을 바라보는 눈이 불안한 이유이다.
신임 방 총장의 임기는 오는 8월 1일부터 2030년 7월 31일까지 4년간이다.
방 총장은 1988년 상지대 한의과대학 1기로 입학했으며, 2002년 한의과대학 교수로 임용된 이후 교육과 연구는 물론 대학 행정 분야에서도 다양한 경험을 쌓아왔다.
2017년부터 학교법인 상지학원 법인 국장, 상지대 대외협력처장, 부총장 등을 역임하며 대학의 주요 정책과 대외협력 업무를 수행했다.
또 2020년 교육부 사학분쟁조정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사학 제도 발전과 대학 운영의 공공성 제고에 힘썼고, 2021년에는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을 역임하기도 했다.
방 총장은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고, 교육 혁신과 연구 역량 강화, 산학협력 및 지역사회와의 상생을 통해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끌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1592년 발발한 임진왜란, 개전 초 전황은 참혹했다. 음력 4월13일 부산포에 모습을 드러낸 왜군은 불과 두 달 뒤인 6월13일, 조선 국왕을 영변까지 도망치게 했다. 왜군을 피해 백성을 버리고 도망치는 국왕의 모습을 보며 백성들은 국가의 존재 의미를 잃어버렸고, 궁궐은 백성들에 의해 불탔다. 영변까지 도망친 선조는 자기 안위와 국가 회복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렇게 해서 선택된 방법이 분조(分朝)였다. 왕의 제1조정은 여차하면 중국으로 망명할 수 있도록 의주까지 도망칠 때, 세자(광해군)는 제2조정을 구성해서 조정이 살아 있음을 보여주어야 했다.
음력 6월14일, 형식적 눈물을 뒤로한 채 선조는 의주로, 세자는 강계로 방향을 잡았다. 제2조정에는 영의정 최흥원과 우의정 유홍을 비롯하여, 외교 부문을 제외한 핵심 관료들 대부분이 배종했다. 명(明)으로의 망명을 위해 제1조정 행렬을 간소화하는 동시에, 행정과 사법, 군사와 인사까지 관할해야 하는 제2조정의 권한을 보여주기 위한 조치였다.
죽어도 천자의 나라에서 죽겠다고 우겼던 선조와 달리, 세자는 국가 회복을 위해 공격적인 결정을 내렸다. 왕명에 따른 안전한 강계 땅이 아니라, 적과 대적하며 명령을 하달하고 보고받기에 유리한 이천으로 이동했다. 지독한 폭우를 동반한 장마철, 영변에서 이천까지의 협로는 조선이 처한 상황만큼이나 고통스러웠다. 모든 신료는 비를 맞으며 걸었고, 한 나라의 차기 권력인 세자마저 말고삐 잡을 사람이 없어 스스로 말을 몰아야 했다.
이천에 도착한 제2조정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조정의 역할을 수행했다. 국가 기능을 회복하고, 백성들에겐 조정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영변에서 이천까지 한 달여간 목숨을 건 이동의 결과였다. 이제 상황을 정리하고, 반격을 위한 모멘텀을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이러한 시점에 의주 행재소로부터 황당한 전갈이 내려왔다. 제1조정에서 제2조정 관료들을 탄핵한 것이다. 강계로 가라 했던 왕명을 받들지 않고 이천까지 이동했다는 게 탄핵의 이유였다.
세자를 따랐던 신하들은 황당하기 이를 데 없었다. 국가 체계를 정비하고 반격의 기회를 만들기에도 모자란 시간에, 선조는 세자가 아닌 자신이 왕이라는 사실을 신하들에게 각인시키는 데 시간을 사용했다. 죽을지 살지 모를 긴박한 상황에서야 왕좌보다 목숨이 중요했지만, 세자가 만든 그 잠깐의 여유는 다시 왕권과 왕좌를 떠올리게 했다. 전쟁 발발 이전처럼 상대를 견제하고, 권력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리려 했다. 외적을 상대하기에도 모자란 에너지가 내부 총질에 사용되었던 것이다.(정탁, <피난행록>)
공동체나 국가가 무너질 정도의 내부 분열은 외부 충격이 극에 달했을 때 발생하지 않는 법이다. 단합해서 외부 충격에 대응하다가 잠시 한숨 돌리는 작은 틈이 만들어질 때 비로소 내부 총질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부 위기는 여전하고 심지어 더 큰 위험이 예견되어도, 숨 고를 잠깐의 시간만 있으면 내부를 견제하고 상대방을 공격하는 게 권력의 속성이기는 하다. 그런데 문제는 외침보다 더 많은 국망의 이유가 그 잠깐 사이에 발생한 내부 분열 때문이며, 그래서 이러한 내부 분열은 공동체와 국가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2024년 12월3일,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큰 위기를 맞았다. 다행히 온 힘을 다해 이를 막고, 정권교체까지 이루어냈다. 내란의 밤을 넘어, 이제 잠깐 숨고르기가 가능해졌다. 그러나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은 여전하고, 이 같은 위협을 항구적으로 막기 위한 단합된 에너지 역시 필요하다. 이 같은 잠깐의 시간을 비집고 다시 내부를 겨냥한 분열의 조짐들이 올라오고 있다. 제2조정 신하들만큼이나 현재 정국을 바라보는 눈이 불안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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