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부장검사출신변호사 [최정화의 사소한 세계]아버지의 마지막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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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부장검사출신변호사 내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한다. 화장을 하러 들어가시기 전 길게 누워 계시던 모습이다. 심장마비로 급하게 맞이한 작별이었다. 생전에 화려한 색깔만 찾으시던 아버지는 미색의 삼베옷과 신을 신고, 이제는 옴짝달싹할 수 없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그 색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내색을 하지 못하고 계셨다.
삼베옷이 아버지랑 안 어울린다는 생각 때문에 아버지의 얼굴만 봤다. 아버지의 얼굴은 유독 크고 희었다. 색조 화장 때문이었다. 두 눈을 감고 입술을 꾹 다물고 계셨는데 아마 눈꺼풀과 입술 사이에는 본드가 붙어 있었을 것이다.
초등학교 졸업을 마치기 전에 고향을 떠나 돈을 벌어야 했던 어린 구두닦이는 우연히 마주친 ‘아이스케키’ 장수와 서로의 장비를 맞바꾸기도 하면서 이런저런 직업을 전전했다. 한창 개발 중이던 1970~1980년대의 인천시 건축노동자로 일하면서 겨우 생활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었고, 건설 현장의 낙후된 환경 탓이었을까, 암을 앓으시다 치료를 받고 이겨냈다. 일찍 은퇴해 술을 마시는 걸 낙으로 삼으며 노년을 즐기시던 아버지도, 우리 가족도 그렇게 일찍 마지막이 찾아올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었다.
아버지는 어쩌면 억울했을지 모른다. 내내 고생만 하다가 이제 좀 쉬어보겠다는데 급하게 찾아온 마지막이 황당했을지도 모른다. 유난히 화를 잘 내던 아버지는 사자(使者)에게도 성을 냈을지 모른다. 그만큼 웃음도 많았던 아버지는 급작스러운 작별이 황당해서 웃음을 터뜨리셨을지도 모른다. 엄살도 꽤 많은 편이시던 아버지는 어쩌면 집에 어서 돌아와달라고 급히 아내를 찾았을지도 모른다.
색조화장에 살아계신 듯한 모습
아버지의 마지막 얼굴은 평온했다. 돌아가신 지 사흘이 지났지만, 피부는 건강한 혈색이 도는 발그레한 살색이었다. 죽었지만 죽은 척도 못하고 살아 있어야 하는 기괴한 장례식에 어리둥절해하면서, 우리 가족은 본드와 화장품, 보존 기술의 도움을 받아 돌아가신 지 사흘이 지나도 살아 있는 것 같았던 아버지와 무사히 헤어졌다.
퍼뜩 이상한 생각이 든 것은 외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엄마가 이모에게 건넨 한마디가 떠올랐을 때였다. “엄마 표정이 아주 편안해 보이지?” 나는 어렵지 않게, 수년 전의 외할머니와 내 아버지의 얼굴이 너무 흡사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엄마의 대사를 내가 더 이상 반복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알게 된다. 편안하게 잠들어 계신 듯한 아버지의 마지막 얼굴이 이 세상 모든 장례식장에 누워 있는 시신들의 우아한 거짓말이라는 사실 말이다. 불현듯 쓰러진 아버지가 어쩌면 나를 찾았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밀려온다.
밥을 자주 굶으셨던 걸까? 일하다 목이 말라도 물을 마실 수 없으셨을까? 아버지는 유독 밥을 허겁지겁 드시고 물을 벌컥거리며 마셨다. 어릴 때부터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따라 했던 나는 지금도 밥을 빨리 먹고 물을 급하게 마신다. 굶은 적도, 목에 물을 축이지 못하는 고된 육체노동에 시달려본 일 없는 내게, 급하게 먹고 마시는 습관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유산이다. 나와 다른 처지에 있는 이들, 내가 빼앗은 누군가의 삶을 짐작해보는 마음 말이다.
사흘이 지나도 산 사람 같고 잠자는 사람 같았던 내 죽은 아버지의 얼굴 말고, 본드로 붙이고 다듬어서 평온해진 얼굴 말고, 티 없이 깨끗하게 화장한 피부 말고, 내 아버지의 진짜 얼굴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 얼굴이 문득 그립다. 이제는 재가 된 아버지가 담긴 매끈하고 고급스러운 항아리 말고 불 속에서 사그라들던 아버지의 몸뚱이가.
인천집에 들러 아버지가 생전에 찍으신 증명사진을 챙겨왔다. 사진 속의 아버지가 다시 내게 거짓말을 한다. 자기 나이랑 안 어울리는 분홍색 티셔츠를 입고, 대머리를 숨긴 채 검은 가발을 뒤집어쓰고, 땀구멍이 송송 난 거친 피부를 페인트로 보정한 가짜 아버지가 내 손바닥 위에서 웃는다. 장례식장에서도 사진 속에서도 아버지의 진짜 얼굴을 보지 못한 나는 아버지를 만나러 어디로 가야 하나?
내내 한집에 살면서도 한 번도 제대로 만나지 못한 내 산 아버지, 그보다 더 거짓말 같았던 내 죽은 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반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나는 아직 아버지의 죽음에 당도하지 못했다.
왜 죽을 때마저 자신이지 못할까
가난한 충청도 마을에서 태어나자마자 가장이 되었고, 어린 시절에는 학생이 아니라 산업역군이어야 했고, 결혼한 후에는 버는 것만 배우고 쓸 줄은 모르는 구두쇠 남편이고 부모여야 했고, 성장한 딸들 사이에서는 자기중심적인 외톨이였던, 내 마음속에서 아버지는 아직 죽어도 죽지 못했다. 아버지는 왜 항상 무언가를 뒤집어쓰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 진짜 얼굴을 보여주지 못하셨을까? 인간은 왜 죽을 때마저도 자기 자신이지 못할까?
경남권을 중심으로 기록적 폭염이 이어지면서 올해 경남권 온열질환자 수가 서울의 환자 수를 넘어섰다.
1일 질병관리청 온열질환감시체계에 따르면, 지난 5월15일부터 전날까지 전국 500여곳의 응급실을 찾은 온열환자는 총 1781명이었다. 13명은 사망했다.
이 기간 환자 수가 많은 곳은 경기(372명)였으며 경북(182명), 전남광주(163명) 순이었다. 경남 환자수는 161명이었는데, 이는 서울 환자 수(158명)를 앞지른 것이다. 경남 인구가 서울의 3분의 1 수준임을 감안하면 경남 지역 환자 집중도가 높은 것이다.
경남 양산시가 1일 최고 기온 41.6도를 기록하며 연이틀 기상 관측 사상 최고기온을 경신하는 등 경남 지역에서는 기록적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폭염 중대경보가 발효된 지역의 오후 3시 기준 최고 기온은 경남 김해시 40.6도, 부산 금정구 40.5도, 경남 창원시 40.4도, 울산 울주군 온산읍 39.8도 경남 창녕군 도천면 39.3도 등이다.
얼굴도 이름도 공개하지 않은 채 활동해 온 영국의 거리 예술가 뱅크시는 전쟁과 빈곤, 권력과 자본주의의 모순을 풍자하는 작업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거리의 벽에서 출발한 그의 이미지는 미술시장과 대중문화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뱅크시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특별전 ‘뱅크시: 스틸 히어’(BANKSY: Still Here)가 서울 여의도 더현대 서울 ALT.1에서 열리고 있다. 판화와 오브제, 벽화 사진 등 110여점을 통해 뱅크시의 주요 작업과 프로젝트를 살핀다.
이번 전시는 거리의 벽화를 떼어 옮겨온 것은 아니다. 뱅크시가 설립한 공식 감정기관 페스트 컨트롤 오피스(PCO)의 인증을 받은 판화와 그의 판화·에디션을 제작하고 유통했던 픽처스 온 월즈(POW) 컬렉션 등이 중심이다. 뱅크시는 벽화에 사용한 이미지를 별도의 에디션 판화로 제작해 왔으며, 주최 측은 이를 미술시장에서 작품으로 인정되는 ‘공식 인증작’으로 소개한다.
대표작은 빨간 하트 모양 풍선을 향해 손을 뻗는 소녀를 그린 ‘풍선을 든 소녀’(Girl with Balloon)이다. 2018년 소더비 경매에서 낙찰 직후 액자 속 파쇄 장치가 작동해 화제가 된 작품과 같은 이미지의 판화다. 당시 파쇄된 작품은 이후 ‘사랑은 쓰레기통 안에’(Love is in the Bin)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얼굴을 스카프로 가린 시위자가 화염병이나 돌 대신 꽃다발을 집어 던지려는 모습의 ‘꽃을 던지는 사람’(Love is in the Air)을 비롯해 ‘지금은 웃어라’(Laugh Now), ‘러브 랫’(Love Rat) 등 친숙한 이미지를 볼 수 있다.
전시장에는 거친 콘크리트 벽을 연상시키는 공간을 조성해 거리에서 작품이 탄생한 환경을 재현했다. 뱅크시의 벽화 사진과 작가가 주도한 프로젝트의 오브제·인쇄물, 초기 실크스크린 제작 방식을 살핀 판화 자료도 함께 나왔다.
전시를 기획한 윤재갑 디렉터는 “뱅크시는 예술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고 사회와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를 묻는 작업을 해왔다”며 “뱅크시가 누구인지보다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전시는 11월3일까지.
삼베옷이 아버지랑 안 어울린다는 생각 때문에 아버지의 얼굴만 봤다. 아버지의 얼굴은 유독 크고 희었다. 색조 화장 때문이었다. 두 눈을 감고 입술을 꾹 다물고 계셨는데 아마 눈꺼풀과 입술 사이에는 본드가 붙어 있었을 것이다.
초등학교 졸업을 마치기 전에 고향을 떠나 돈을 벌어야 했던 어린 구두닦이는 우연히 마주친 ‘아이스케키’ 장수와 서로의 장비를 맞바꾸기도 하면서 이런저런 직업을 전전했다. 한창 개발 중이던 1970~1980년대의 인천시 건축노동자로 일하면서 겨우 생활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었고, 건설 현장의 낙후된 환경 탓이었을까, 암을 앓으시다 치료를 받고 이겨냈다. 일찍 은퇴해 술을 마시는 걸 낙으로 삼으며 노년을 즐기시던 아버지도, 우리 가족도 그렇게 일찍 마지막이 찾아올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었다.
아버지는 어쩌면 억울했을지 모른다. 내내 고생만 하다가 이제 좀 쉬어보겠다는데 급하게 찾아온 마지막이 황당했을지도 모른다. 유난히 화를 잘 내던 아버지는 사자(使者)에게도 성을 냈을지 모른다. 그만큼 웃음도 많았던 아버지는 급작스러운 작별이 황당해서 웃음을 터뜨리셨을지도 모른다. 엄살도 꽤 많은 편이시던 아버지는 어쩌면 집에 어서 돌아와달라고 급히 아내를 찾았을지도 모른다.
색조화장에 살아계신 듯한 모습
아버지의 마지막 얼굴은 평온했다. 돌아가신 지 사흘이 지났지만, 피부는 건강한 혈색이 도는 발그레한 살색이었다. 죽었지만 죽은 척도 못하고 살아 있어야 하는 기괴한 장례식에 어리둥절해하면서, 우리 가족은 본드와 화장품, 보존 기술의 도움을 받아 돌아가신 지 사흘이 지나도 살아 있는 것 같았던 아버지와 무사히 헤어졌다.
퍼뜩 이상한 생각이 든 것은 외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엄마가 이모에게 건넨 한마디가 떠올랐을 때였다. “엄마 표정이 아주 편안해 보이지?” 나는 어렵지 않게, 수년 전의 외할머니와 내 아버지의 얼굴이 너무 흡사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엄마의 대사를 내가 더 이상 반복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알게 된다. 편안하게 잠들어 계신 듯한 아버지의 마지막 얼굴이 이 세상 모든 장례식장에 누워 있는 시신들의 우아한 거짓말이라는 사실 말이다. 불현듯 쓰러진 아버지가 어쩌면 나를 찾았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밀려온다.
밥을 자주 굶으셨던 걸까? 일하다 목이 말라도 물을 마실 수 없으셨을까? 아버지는 유독 밥을 허겁지겁 드시고 물을 벌컥거리며 마셨다. 어릴 때부터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따라 했던 나는 지금도 밥을 빨리 먹고 물을 급하게 마신다. 굶은 적도, 목에 물을 축이지 못하는 고된 육체노동에 시달려본 일 없는 내게, 급하게 먹고 마시는 습관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유산이다. 나와 다른 처지에 있는 이들, 내가 빼앗은 누군가의 삶을 짐작해보는 마음 말이다.
사흘이 지나도 산 사람 같고 잠자는 사람 같았던 내 죽은 아버지의 얼굴 말고, 본드로 붙이고 다듬어서 평온해진 얼굴 말고, 티 없이 깨끗하게 화장한 피부 말고, 내 아버지의 진짜 얼굴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 얼굴이 문득 그립다. 이제는 재가 된 아버지가 담긴 매끈하고 고급스러운 항아리 말고 불 속에서 사그라들던 아버지의 몸뚱이가.
인천집에 들러 아버지가 생전에 찍으신 증명사진을 챙겨왔다. 사진 속의 아버지가 다시 내게 거짓말을 한다. 자기 나이랑 안 어울리는 분홍색 티셔츠를 입고, 대머리를 숨긴 채 검은 가발을 뒤집어쓰고, 땀구멍이 송송 난 거친 피부를 페인트로 보정한 가짜 아버지가 내 손바닥 위에서 웃는다. 장례식장에서도 사진 속에서도 아버지의 진짜 얼굴을 보지 못한 나는 아버지를 만나러 어디로 가야 하나?
내내 한집에 살면서도 한 번도 제대로 만나지 못한 내 산 아버지, 그보다 더 거짓말 같았던 내 죽은 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반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나는 아직 아버지의 죽음에 당도하지 못했다.
왜 죽을 때마저 자신이지 못할까
가난한 충청도 마을에서 태어나자마자 가장이 되었고, 어린 시절에는 학생이 아니라 산업역군이어야 했고, 결혼한 후에는 버는 것만 배우고 쓸 줄은 모르는 구두쇠 남편이고 부모여야 했고, 성장한 딸들 사이에서는 자기중심적인 외톨이였던, 내 마음속에서 아버지는 아직 죽어도 죽지 못했다. 아버지는 왜 항상 무언가를 뒤집어쓰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 진짜 얼굴을 보여주지 못하셨을까? 인간은 왜 죽을 때마저도 자기 자신이지 못할까?
경남권을 중심으로 기록적 폭염이 이어지면서 올해 경남권 온열질환자 수가 서울의 환자 수를 넘어섰다.
1일 질병관리청 온열질환감시체계에 따르면, 지난 5월15일부터 전날까지 전국 500여곳의 응급실을 찾은 온열환자는 총 1781명이었다. 13명은 사망했다.
이 기간 환자 수가 많은 곳은 경기(372명)였으며 경북(182명), 전남광주(163명) 순이었다. 경남 환자수는 161명이었는데, 이는 서울 환자 수(158명)를 앞지른 것이다. 경남 인구가 서울의 3분의 1 수준임을 감안하면 경남 지역 환자 집중도가 높은 것이다.
경남 양산시가 1일 최고 기온 41.6도를 기록하며 연이틀 기상 관측 사상 최고기온을 경신하는 등 경남 지역에서는 기록적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폭염 중대경보가 발효된 지역의 오후 3시 기준 최고 기온은 경남 김해시 40.6도, 부산 금정구 40.5도, 경남 창원시 40.4도, 울산 울주군 온산읍 39.8도 경남 창녕군 도천면 39.3도 등이다.
얼굴도 이름도 공개하지 않은 채 활동해 온 영국의 거리 예술가 뱅크시는 전쟁과 빈곤, 권력과 자본주의의 모순을 풍자하는 작업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거리의 벽에서 출발한 그의 이미지는 미술시장과 대중문화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뱅크시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특별전 ‘뱅크시: 스틸 히어’(BANKSY: Still Here)가 서울 여의도 더현대 서울 ALT.1에서 열리고 있다. 판화와 오브제, 벽화 사진 등 110여점을 통해 뱅크시의 주요 작업과 프로젝트를 살핀다.
이번 전시는 거리의 벽화를 떼어 옮겨온 것은 아니다. 뱅크시가 설립한 공식 감정기관 페스트 컨트롤 오피스(PCO)의 인증을 받은 판화와 그의 판화·에디션을 제작하고 유통했던 픽처스 온 월즈(POW) 컬렉션 등이 중심이다. 뱅크시는 벽화에 사용한 이미지를 별도의 에디션 판화로 제작해 왔으며, 주최 측은 이를 미술시장에서 작품으로 인정되는 ‘공식 인증작’으로 소개한다.
대표작은 빨간 하트 모양 풍선을 향해 손을 뻗는 소녀를 그린 ‘풍선을 든 소녀’(Girl with Balloon)이다. 2018년 소더비 경매에서 낙찰 직후 액자 속 파쇄 장치가 작동해 화제가 된 작품과 같은 이미지의 판화다. 당시 파쇄된 작품은 이후 ‘사랑은 쓰레기통 안에’(Love is in the Bin)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얼굴을 스카프로 가린 시위자가 화염병이나 돌 대신 꽃다발을 집어 던지려는 모습의 ‘꽃을 던지는 사람’(Love is in the Air)을 비롯해 ‘지금은 웃어라’(Laugh Now), ‘러브 랫’(Love Rat) 등 친숙한 이미지를 볼 수 있다.
전시장에는 거친 콘크리트 벽을 연상시키는 공간을 조성해 거리에서 작품이 탄생한 환경을 재현했다. 뱅크시의 벽화 사진과 작가가 주도한 프로젝트의 오브제·인쇄물, 초기 실크스크린 제작 방식을 살핀 판화 자료도 함께 나왔다.
전시를 기획한 윤재갑 디렉터는 “뱅크시는 예술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고 사회와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를 묻는 작업을 해왔다”며 “뱅크시가 누구인지보다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전시는 11월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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