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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레플리카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아부외교’의 끝판왕…삼국통일의 비법 된 진덕여왕의 ‘태평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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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이이
댓글 0건 조회 108회 작성일 25-09-14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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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레플리카 ‘위대한 당나라 왕업을 여니…높은 황제의 포부 빛나도다…해와 달, 뭇별이 (당나라의) 만방을 두루 도네…우리 당나라 황제 밝게 비추리라.’(<삼국사기> ‘진덕여왕’조)
650년 신라 진덕여왕(재위 647~654)이 당나라 황제인 고종(649~683)에게 올린 ‘태평송’이다. 그 내용을 더 들여다보자.
“…(당나라가) 전쟁을 그치니 천하가 안정되고 문치를 닦아 대대로 잇게 했도다. 하늘의 뜻을 잘 받드니 은혜의 비가 내리고…깊은 어짊은 해와 달에 짝할 만 하고 시운(時運)을 어루만져 태평세월을 갈구하도다…”
손발이 오글거린다. 이게 다가 아니다. <삼국유사>는 “진덕여왕이 손수 비단을 짜서 그 위에 ‘태평송’을 수놓아 바쳤다”고 덧붙였다.
■손발이 오글오글…
이 ‘태평송’은 한시의 측면에서 당대 중국의 어떤 시에도 꿀리지 않을 명작으로 평가된다.
고려의 문장가 이규보(1169~1241)는 “신라 여왕의 태평시는…고고하고 웅혼하니 당나라 모든 저작에 비해도 우열을 가릴 수 없다…여왕이 썼다니 기이하다”(<백운소설>)고 평가했다. 그러나 ‘여왕이 쓴 시가 좋다’느니 하는 이야기는 중요치 않다. ‘아부로 가득찬 그 내용’이 핵심이다.
물론 ‘중국=천하의 중심’으로 여겼던 때였다.
그럼에도 한 나라(신라)의 국왕이 중국 황제에게 저렇게 저자세로 아부를 떨 필요가 있었을까.
한문학자 이가원(1917~2000)은 “우리 시가에 있어서 아유(阿諛·아부)문학의 효시”라 했다. 또 “‘태평송’이 빌미가 되어 사대모화의 불씨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으니 외교 측면에서는 빛났지만 자주(自主)에는 씻지 못할 먹칠이 된 셈”(<한국한문학사>·1979)이라 했다.
그러나 “찬란한 시문인 ‘아부문학’으로 당나라 황제를 홀리는 게 당시 신라의 외교전술”(서수생 전 경북대 교수)이라는 평가도 있다. 신라가 아부외교로 당나라 황제의 마음을 샀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진덕여왕은 왜 당나라 황제를 위해 ‘아부송’을 불렀을까.
■김춘추의 외교참사
그 무렵(650) 삼국 및 국제정세를 살펴보자. 8년 전인 642년(선덕여왕 10)이었다. 이때 백제는 신라를 숨 쉴 틈없이 밀어붙인다.
7월 미후성 등 신라의 40여 개 성을 빼앗았다. 8월 고구려군과 연합한 백제군은 당항성(경기 화성)을 공격, ‘신라-당나라’의 소통로를 끊으려 했다. 이어 백제군이 신라 대야성(합천)까지 빼앗았다. 이때 대야성 도독인 이찬 품석과 부인 고타소랑(태종 무열왕 김춘추의 딸) 등이 죽었다.
대야성(합천)은 백제에서 신라로 가는 길목에 자리잡고 있었다. 642년 7~8월은 신라로서는 ‘충격과 공포’의 두 달이었다.
신라는 우선 고구려에 손을 내밀었다. 훗날 태종무열왕(재위 654~661)이 되는 이찬 김춘추(604∼661)이 고구려 특사를 자처한다.(643년 겨울)
백제군에게 딸 부부를 잃은 김춘추는 복수심에 불타 “내가 고구려에 가서 반드시 지원군을 얻어내겠다”고 다짐했다.
고구려 보장왕(642~668)을 알현한 김춘추는 강한 어조로 군사지원을 요청했다.
그러자 고구려 보장왕이 “본래 고구려 땅이었던 죽령(충북 단양~경북 영주 사이의 고개)의 서북 땅을 (고구려에) 돌려준다면 출병해준다”고 ‘조건부 지원’을 제안한다. 이에 김춘추는 발끈하며 대들었다.
“…대왕께서는…친선의 뜻은 없고 사신을 위협하여 땅을 돌려 줄 것만을 요구하시니…신은 죽을지언정 따를 수 없습니다.”
이런 오만불손한 김춘추의 태도에 화를 낸 보장왕은 그를 구금했다. 김춘추는 천신만고 끝에 귀국할 수 있었지만 신라의 대 고구려 외교는 참사로 끝났다.
■당태종의 폭탄발언
신라는 당나라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643년(선덕여왕 12) 1월~648년(진덕여왕 2) 겨울까지 8번이나 특사를 당나라에 보낸다.
그러나 중국과의 일방외교는 험난할 수밖에 없었다. 굴욕외교의 일화가 있다. 643년(선덕여왕 12) 9월 군사지원을 위한 특사 파견 때였다.
당 태종은 신라 사신에게 “신라를 위해 3가지를 제안하겠다”고 운을 뗐다.
“내(태종)가 당나라 군을 이끌고 요동(고구려)을 침공하면 고구려의 신라 포위가 풀릴 것이다. 이것이 첫번째 계책이다.”
그러나 당 태종은 이 계책의 한계도 언급했다. “1년 정도라면 몰라도 당나라군의 증원이 없다면 다시 신라가 위태로워진다”는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당나라의 ‘붉은 옷과 붉은 깃발’을 수천개 줄 수 있다. 그러면 백제·고구려군은 당나라 지원군인줄 착각하고 물러갈 것이다.”
태종은 이것이 두번째 계책이라 했다. 3번째 계책은 무엇일까. 태종은 “신라가 부인(선덕여왕)을 임금으로 삼아 이웃나라의 업신여김을 받고…침략 당하고 있다”고 전제했다.
그런 뒤 충격적인 제안을 내민다. “내가 당나라 종친 한 사람을 신라 왕으로 삼으려 한다. 군사를 보내서 그를 호위하려 한다. 나라가 안정되기를 기다려서 너희 스스로 지키는 일을 맡기려고 한다. 이것이 세번째 계책이다.”
■선덕여왕을 끌어내린다…
무슨 청천벽력인가. 신라 여왕(선덕여왕·632~647)을 끌어내리고, 당나라 황족을 신라왕으로 옹립하겠다는 얘기가 아닌가.
당 태종은 신라 특사에게 “잘 생각해 보라. 세가지 중 어떤 것을 따르겠느냐”고 물었다. 이 충격 발언에 특사는 “예”라고만 할 뿐 대답할 수 없었다. 이에 “당 태종이 신라 사신은 용렬하여 군사를 청하고 위급함을 알리러 올 만한 인재가 아님을 탄식했다”(<삼국사기>)고 전했다.
명색이 군사지원을 청하러 온 특사가 담대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우물쭈물 한 것을 한심하게 여겼다는 뜻이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신라 특사는 당 태종의 트럼프식 ‘핵폭탄급 발언’을 예상하지 못한채 진땀을 흘렸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사실 조짐은 있었다. 이미 ‘나비 없는 모란꽃’ 그림을 보내 남편이 없는 선덕여왕을 조롱한 당 태종이 아닌가. 신라 조정은 당 태종의 ‘선덕여왕 끌어내리기’ 충격요법에 대비하고 시뮬레이션 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제2의 외교참사였다.
이후 동북아 정세는 또한번 요동쳤다. 2년 뒤(645년 5월) 당나라가 고구려를 침공했다. 신라는 3만 대군을 동원, 고구려의 배후에서 당나라를 돕는다. 그러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 당 태종은 안시성 공격에 실패한 뒤 천신만고 끝에 회군했다. 신라는 어땠을까. 신라가 당나라군을 지원한 사이, 백제가 그 공백을 틈타 신라 7개 성을 빼앗았다. 존망의 위기에 빠진 신라로서는 유일한 동아줄인 당나라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신라의 마지막 승부수
신라는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 648년(진덕여왕 2) 김춘추와, 그의 아들 (김)문왕을 특사로 파견했다.
김춘추는 5년 전(643) 고구려와의 외교참사를 반면교사로 삼았다. 이번에는 조급하게 “구원병을 보내달라”고 재촉하지 않았다.
우선 태종의 허락을 얻어 당나라 국학(국자감)에 나가 석전(공자 등 유학 성인을 제사 지내는 의식)과 강론을 참관했다. 태종은 서두르지 않는 김춘추에게 호감을 나타냈다.
<삼국사기>는 “당 태종이 춘추의 용모가 영특하고 늠름함을 보고 후하게 대우했다”고 했다.
태종은 자신이 손수 지은 ‘비명’(비석에 쓴 글씨) 2장과 새로 편찬한 역사서(<진서>)를 하사했다.
그렇게 김춘추를 지켜본 태종은 연회 자리에서 사사로이 불러 금과 비단을 건네며 넌즈시 운을 뗐다.
“경(김춘추)은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이 있는가.”(태종)
김춘추은 이때다 싶어 당나라의 군사지원이 절실함을 구구절절 강조했다. 그는 “당나라의 지원이 없으면 신라는 포로가 되고, 그 경우 당나라에 대한 조회도 더는 바랄 수 없을 것”이라 했다. 이에 태종은 “네 말이 옳다”면서 군사의 출정을 허락했다.
■23년 만에 드러난 밀약 내용
바야흐로 나·당 연합군이 결성된 것이다. 김춘추로서는 목적을 달성했지만 예서 그치지 않았다.
당 태종에게 “신라 관리의 관복 및 의례복을 고쳐 당나라 제도에 따르고 싶다”고 제안했다. 태종은 반색하면서 내전(황제와 왕후의 공간)에서 진귀한 옷을 꺼내어 김춘추와 사신일행에게 하사했다.
태종은 김춘추에게 당나라 관작(특진·당나라 정2품 문산관)을 내렸다. 또 3품 이상의 당나라 관리들에게 “김춘추를 위한 환송 연회를 베풀어주라”고 명했다. 김춘추는 떠나기 전에 한가지 더 제안했다.
“신의 아들(김문왕)을 폐하의 곁에서 숙위(황제 친위대)할 수 있도록 해주소서.”(김춘추)
태종은 흔쾌히 허락했다. ‘한껏 몸을 낮춰 황제의 환심을 산’ 신라와 김춘추의 외교가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당 태종이 신라에 원군을 파견하는 조건이 없었을까.
648년 당시에는 공개되지 않았던 ‘밀약’ 내용이 23년 뒤인 671년(문무왕 11) 밝혀진다. 삼국통일 후 나·당 간 관계에 최악으로 치닫자 극적으로 공개된 것이다.
당시 당나라 총관 설인귀(614~683)는 문무왕에게 “신라가 반역을 도모하면 멸망할 수 있다”는 내용의 협박편지를 보낸다.
이때 문무왕은 23년전(648) 나·당 연합 당시의 밀약내용을 까발린다.
“당시 당 태종은 김춘추를 만나 ‘백제와 고구려를 평정하면 평양 이남의 백제 땅은 모두 너희 신라에게 주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살기 위한 아부외교
당시 백제·고구려의 협공에 존망의 위기에 빠졌던 신라에게 648년 나·당 연합은 ‘천군만마’였다.
이에 신라는 관리의 의관(옷과 관)을 중국식으로 제도화했다. 진덕여왕은 기존의 독자 연호(태화·太和) 대신 당 고종(649~683)의 연호(영휘·永徽)를 사용했다. 바로 그럴 때 진덕여왕이 직접 짠 자수에 아부로 가득찬 ‘태평송’을 새겨 보낸 것이다.
물론 신라의 대당 외교를 ‘굴욕’으로 폄훼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시대에 무슨 ‘민족 개념’이 있었겠는가. 백제와 고구려는 신라를 들들 볶고, 결국 멸망의 길로 이끄는 나쁜 이웃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신라로서는 ‘살기 위해’ 대당 아부외교를 감수했던 것이다.
■주인(당나라)을 무는 개(신라)
그렇지만 그 결과는 어떠했을까. 7세기 당나라와 고구려, 백제, 신라가 어우러진 동북아 전쟁의 최종 승자는 신라였다.
즉 나·당 연합의 결과로 백제(660)와 고구려(668)를 격파했다. 648년의 밀약에 따르면 당나라는 평양 이남의 땅을 신라에 떼어 주어야 했다.
그러나 당나라는 고구려와 백제 고토는 물론 신라까지 집어삼킬 야욕을 노골화했다.
<삼국사기>는 “당나라군은 백제 멸망 직후 사비(부여)의 언덕에 진영을 설치해 신라를 침략할 계획을 세웠다”(‘열전 김유신’)고 전했다.
650년 극강의 아부외교를 펼친 신라였지만 이때만큼은 가만있지 않았다. 긴급 소집된 군신회의에서 김유신(595~673) 등이 강경대처를 주장한다.
“개(신라)는 주인(당나라)을 두려워하지만 주인이 그 다리를 밟으면 무는 법…지금이 물어야 할 때입니다.”
이 소식을 염탐한 당나라 소정방(592~667)은 ‘앗 뜨거워라!’ 하며 신라 침공 계획을 포기했다. 신라의 강경책에 당나라가 ‘움찔’했던 것이다.
■취리산 회맹의 전말
당나라는 ‘한반도 접수’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663년 4월 당나라는 신라를 계림도독부로 칭하고 문무왕에게 계림대도독의 벼슬을 내렸다.
아직 당나라의 힘이 필요했던 문무왕은 대놓고 반발할 수 없었다. 결국 4개월 뒤인 663년 8월 나·당 연합군은 백제 부흥군-왜 연합군과 백강(금강?) 전투에서 대승을 거뒀다. 백제 부흥운동은 실패로 돌아갔다. 당나라의 한반도 정책은 이 무렵 직접 통치 대신 간접 통치로 바뀐다.
신라는 물론 고구려와, 그리고 백제의 가열찬 독립의지까지 확인했기 때문이다. 당나라는 660년 당시 당나라에 끌려온 부여융(의자왕의 아들)을 웅진도독에 임명했다. 그러면서 당나라 칙사 유인원(생몰년 미상) 주도 아래 ‘취리산 회맹식’을 거행한다.(665년 8월)
이른바 유인원(당 특사)-계림도독(문무왕)-웅진도독(부여융)의 회맹이다. 그런데 회맹의 조약문이 심상치 않다.
“백제 부여융에게 조상 제사를 잇게 하고 옛 땅을 지키게 하려 한다. 신라와 사이좋게 지내고…당나라의 영원한 제후국으로 복종하라.”
■백제 고토는 백제에게…
신라에는 치욕이었지만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 고구려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당나라는 고구려 정벌전에서 신라군을 종 부리듯 동원했다.
일례로 661년 당나라는 “평양으로 군량미를 보내라”고 명했다. 이에 김유신 등이 수레 2000여대(쌀 4000섬·조 2만2000섬)를 끌고 적진을 뚫어 천신만고 끝에 평양에 도착했다. 그러나 군량미를 접수한 소정방은 “군사들이 피곤하다”면서 전투를 그치고 홀랑 귀국해버렸다.(<삼국사기>)
우여곡절 끝에 고구려까지 접수(668)한 당나라는 9도독부와 안동도호부를 설치했다. 동맹국이라는 신라를 철저히 깔아뭉갰다.
당나라로 개선한 대총관 이적(594~669)은 “신라에는 공을 세운 자가 아무도 없다”고 떠벌렸다.
설상가상으로 669년 당나라에 사절로 떠났다가 귀국(670)한 김흠순(599~680)이 경악할만한 지도 한 장을 가져왔다.
‘백제의 옛 땅을 백제인들에게 되돌려준다’는 ‘백제·고구려 멸망 후’ 동북아의 강역지도였다.
■당나라의 토사구팽
20년 전에는 ‘태평송’까지 지으며 아부했던 신라였다. 그러나 연합을 헌신짝처럼 버린 당나라에게 더는 ‘충성을 바칠 필요’가 없었다.
신라는 백제의 고토를 야금야금 먹어들어갔다. 고구려 부흥운동까지 은밀히 지원했다. 그러자 당나라는 앞서 밝혔듯 대총관 설인귀를 통해 신라에 “신라가 충성하지 않으면 사직을 끊겠다”는 장문의 협박 편지(671)를 보냈다. 이때 문무왕도 역시 장문의 답서로 응수했다.
문무왕은 일단 “…저의 간과 뇌를 들판에 발라서라도 황제의 은혜, 그 ‘만 분의 일’이라도 갚고자 했다”고 운을 뗀다. 문무왕은 한술 더떠 “태양이 비록 빛을 비춰주지 않지만 해바라기와 콩잎의 본심은 여전히 해를 향하는 마음을 품고 있다.”고까지 했다.
이 또한 지나친 아부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당나라가 먼저 배반했다’는 뜻의 ‘태양이 빛을 비춰주지 않는다’는 표현이 의미심장하다.
충성맹세로 시작한 문무왕의 답서는 이제 당나라를 원망하고, 규탄하는 내용으로 흘러간다.
“신라 백성은 풀뿌리도 먹지 못했는데, 당나라군은 양식이 남아 돌았다. 당나라군 1만명이 4년 동안 신라의 것을 먹고, 옷을 입었다. 당나라군의 가죽과 뼈는 비록 중국사람이지만 피와 살은 신라가 길러준 것이다.”(<삼국사기> ‘신라본기·문무왕조’)
문무왕의 피를 토하는 ‘토사구팽’ 외침이 계속된다.
“아! 두 나라 평정 전에는 (신라가) 혹독한 부림을 당하더니 들짐승(백제·고구려)이 없어지자 요리사(당나라)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구나.”
문무왕은 이 지경이 된 모든 책임은 당나라에 있으며, 앞으로 계속 신라를 핍박하면 더는 참을 수 없다고 선언한 것이다.
■진정한 국력은?
사실상 선전포고였다. 신라는 대놓고 백제 고토와 고토에 주둔하고 있던 당나라군을 공략했다.
마침내 675년(문무왕 15년) 9월 매소성(경기 연천) 전투에서 군마 3만여필을 획득하는 대첩을 거두었다. 676년 11월 기벌포(충남 서천 장항)에서 벌인 잇단 해전에서 22번 싸워 모두 승리했다. 이로써 나당전쟁은 신라의 완전한 승리로 끝난다.
648년 진덕여왕 때 맺은 신라-당나라 밀약을 깨고 한반도 전체를 접수하려 했던 당나라의 야욕은 이렇게 실패로 끝났다.
삼국 중 가장 약했던 신라는 이른바 ‘아부외교’로 당나라의 힘을 빌려 삼국 통일을 이룬 뒤 결국 당나라까지 몰아내는 개가를 올렸다. 외교에서 ‘아부’면 어떻고 ‘충성맹세’면 어떠한가. 나라를 위해, 백성(국민)을 위한 외교라면 ‘바짓가랑이 밑을 지난들’ 어떠랴.
지난 8월21일 미·일 정상회담을 앞둔 이 대통령은 “국가의 국력을 키워야 되겠다는 게 제 고민”이라고 했다. 국력이란 ‘경제력과 국방력’을 주로 따지지만 그보다 더한 요소가 있는 것 같다. 660년 백제 멸망 후 당나라 소정방은 “왜 내친 김에 신라까지 정복하지 못했느냐”고 힐책한 고종에게 이렇게 답했다. “신라는 임금이 어질고 백성을 사랑하며, 신하는 충심으로 나라를 섬기고…비록 작지만 도모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국력=외교력’의 버팀목이 아닐까. 이기환 히스토리텔러 lkh0745@naver.com
<참고자료>
김충희, ‘신라 진덕여왕의 태평송에 대한 재검토’, <한민족어문학> 80권 80호, 한민족어문학회 2018
서수생, ‘태평송(직금송)에 대하여’, <어문학> 11호, 한국어문학회, 1964
외국 언론에서도 한국의 예산 낭비 지적 사례로 소개된 경남 창원시의 ‘빅트리’(인공나무 전망대)가 시민·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개선하기로 했다.
13일 창원시에 따르면 지난달 4일부터 17일까지 빅트리를 임시개방하면서 시민 1868명를 상대로 한 빅트리 외형등과 관련한 설문조사에서 부정평가(85%)가 긍정평가(15%)를 압도했다.
방문객들은 ‘조감도와 달라 실망’ 28%, ‘특색 있으나 보완 필요’ 27%, ‘조형미 부족’ 25% 등 의견을 냈다.
당초 설계에 있던 빅트리 상부 ‘메인나무’가 설치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부정의견 67%, 긍정의견 18%으로 나타났다. 상부 ‘메인 구조물’ 추가 설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은 81%로 현상 유지 및 기타 합산 의견 19%를 크게 앞섰다.
창원 빅트리는 344억 원을 들여 대상공원 정상부 7310㎡ 부지에 설치한 전체면적 1257㎡ 규모 건축물(높이 40m, 아파트 15층)이다. 완공 후 드러낸 빅트리 모습은 창원의 상징건물이라는 시민의 기대와는 달리 조감도와 딴판이라며 ‘탈모 빅트리’ 등의 흉물 논란에 휩싸였다.
시는 설문조사 결과를 종합해 빅트리 외관과 콘텐츠를 보완하고, 전망대 기능을 특화해 시설을 개선해 나가기로 했다. 이달 중 시민·전문가 협의체를 발족해 시설 보완범위, 공모 방식 등 개선 기본방향을 도출한다.
오는 10월에는 빅트리 개선 디자인·설계 전국 공모를 시행해 전문가 심사를 거쳐 내년 1월까지 선정을 마칠 방침이다.
창원시는 단순 디자인 공모가 아닌 디자인·설계 공모를 시행하는 것은 당선된 디자인이 차후 설계·시공과정에서 크게 달라지는 경우를 막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당선작은 시민 설명회, 누리집, 언론 등을 통해 공개하고 이후 실시설계 등 행정절차를 거쳐 개선공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급기야 싱가포르의 ‘슈퍼트리’를 본떠 조성된 창원 빅트리가 흉물 논란에 휩싸였다며 싱가포르의 현지 언론까지 조명했다. 당시 싱가포르의 유력 영어일간지 ‘THE STRAITS TIMES’는 현지 시간 8월 18일 ‘한국의 한 도시가 ‘빅트리’ 랜드마크를 원했지만 344억원을 낭비했다’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3314.53’
4년 넘게 ‘박스권’에 머물던 코스피 지수를 10일 역대 최고치까지 밀어 올린 건 안으로는 이재명 정부의 증시 부양 정책과 밖으로는 미국 금리인하 기대감이었다. 특히 지난해 약 10% 폭락하며 세계 주요증시 중 최하위권을 기록한 코스피가 올해 38% 상승해 전세계 1위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법 개정 등으로 국내 증시가 질적으로 개선되고 있다 평가도 나온다. 향후 3차 상법개정안 통과와 배당소득세 완화까지 더해져 ‘서학개미’가 ‘동학개미’로 돌아오면 이재명 대통령 공약처럼 ‘코스피 5000’시대가 오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이 커진다. 증권가는 연말 3500선을 제시했다.
그러나 미국발 변수가 크고, 국내 기업의 펀더멘탈(기초체력)이 취약한 만큼 증시 도약이 제한적일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증권가에선 이날 코스피 지수를 밀어올린 건 단기적으로 대주주 양도세 기준 관련한 이슈로 분석했다. 정책적으로 이재명 정부가 증시 부양에 손을 들어줬다고 시장에서 해석하면서 지수가 ‘날개’를 단 것이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코스피 연고점 경신의 정책적인 배경은 세제개편안 기대감에서 기인한다”며 “정책 수혜주 강세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이미 시장은 대주주 양도세 이슈를 주가에 반영하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더 나아가 지난 4월 9일만 해도 2290선에 그쳤던 코스피 지수는 6월 20일 3000포인트를 단숨에 넘긴 걸 생각하면 상법 개정도 영향이 크다. 상법은 두 차례에 걸쳐 개정돼 이사의 충실 의무를 주주까지 확대하고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했다. 코리아디스카운트 요인으로 꼽힌 지배주주의 주주권 침해를 견제해 투자자의 입지를 넓힌 것이다. 실제로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를 골자로 한 1차 상법개정안이 통과된 7월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만 6조3000원 어치를 순매수하면서 지수 상승을 견인했다. 이날 하루 외국인의 순매수(1조3811억원) 규모도 지난해 6월 13일 이후 최대치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거버넌스 개선에 대한 기대가 다른 자산이 올라갈 때 한국 자산은 못올라갔던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끊은 것 같다”며 “유의미한 변화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이남우 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그동안 한국에선 법적인 주주 보호 장치가 없었고 이사회가 지배주주에 기울여졌지만 거버넌스 개혁이 코스피의 하방 경직성을 만들어 주고 있다”며 “외국인 수급 측면에서도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미국발 금리 인하 기대감도 기름을 부은 격으로 해석된다. 최근 미국 고용시장이 둔화될 조짐을 보이자 미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이 강화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동성이 늘어날 것이란 관측이 자산가격을 밀어올린다는 모양새다. 코스피 지수가 역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운 이날 미국 증시(9일 현지시간)와 일본 증시도 사상 최고 종가를 기록했다.
이에 증권사들은 연말 코스피 지수 상단으로 3500포인트을 제시했다.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한 3차 상법 개정 외에도 최근 배당소득세 분리과세 등 증시 관련 세법에 대한 기대감이 긍정적 요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코스피 상승세가 지속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이정환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증시는 기대와 실적으로 좌우되는데, 최근 상승은 실적보단 기대감에 있다”며 “새로운 섹터가 나오고 성장률이 받쳐줘야 증시가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변수도 있다. 미국 경기가 침체로 이어지거나 금리인하 기조가 바뀔 수 있다는 점이다. 이웅찬 iM증권 연구원은 “연준이 미국 경제가 좋지 않아 금리를 내린다는 것인데, 이 흐름이 지속돼 미국의 고용지표 등이 나빠지면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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