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테크 한달간 6번 대책도 별무소용···“1500원 방어 급급 말고 속도 조절 방점을”[고환율 경고음]
페이지 정보

본문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에 근접하며 심리적 마지노선을 위협하자 외환 당국이 잇따라 대책을 쏟아내고 있으나 사실 환율 상승세를 막진 못하고 있다. 오히려 정부가 ‘환율이 1500원 넘어갈까봐’ 안절부절하는 것처럼 보여 도리어 시장 불안을 자극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환율 수준 자체를 방어하는데 급급하기보다 상승 속도를 조절하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한다.
외환당국이 단순 구두개입 이외에 고환율에 본격적인 대응을 한 건 지난달 중순 이후부터로 볼 수 있다. 외환당국은 지난달 24일 국민연금이 참여하는 ‘4자 협의체’를 가동한다고 발표했다. 이어 같은 달 30일에는 국민연금과의 외환스와프 계약 연장을 위한 협의에 착수하고, 수출기업 환전 동향과 해외투자 현황 점검에 나섰다.
환율이 14870원을 넘기는 등 고공행진을 이어가자 휴일인 이달 14일 긴급 경제장관 간담회를 열었다. 시장 안팎에선 15일 장이 열리면 환율이 연고점인 1484.1원을 넘을 수도 있고 판단, 급히 회의를 연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15일에는 정부와 한국은행, 국민연금이 연간 650억 달러 규모의 외환 스와프 계약을 1년 연장했다. 18일에는 은행이 달러를 쌓아두지 않고 시장이 풀도록 유도하는 ‘외환 건전성 제도 탄력적 조정 방안’을, 19일에는 내년 상반기 외환 건전성 부담금을 한시 면제하는 조치를 각각 발표했다.
외환 당국이 최근 잇따라 내놓은 대책은 하나로 귀결된다. 시장이 달러를 조금이라도 내놓을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푼 것이다. 지금까지는 금리와 성장률 격차로 인해 환율이 출렁였다면 최근에는 수요보다 공급이 부족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권아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대책 발표 직후 보고서를 통해 “현물환 시장과 자금조달 시장 모두에서 나올 수 있는 조치가 총출동했다고 본다”며 “정부의 강한 환율 안정 의지를 명확히 한 것에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대응을 두고 엇갈린 평가가 나온다. 늦었다는 평가와 도리어 환율을 자극한다는 상반된 반응이다.
민간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이미 시장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 후반에서 굳어지는 분위기”라며 “정부가 좀 더 일찍 대응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외환 당국이 공개적이고 지속적으로 시장 개입에 나서면서 오히려 환율이 오른 측면이 있다”고 했다.
외환 당국의 추가 대책으로는 국민연금의 환 헤지(위험회피) 비율 상향이 거론된다. 서학개미와 기업의 달러 매수로 인한 자본 유출을 직접 막기 어렵다면, 국민연금이 환 헤지를 확대해 시장 내 달러 유동성을 늘리자는 구상이다. 다만, 한·미 금리 차가 현재처럼 크게 벌어진 국면에서는 환 헤지 비용이 급등해 국민연금 입장에서는 수익률 하락을 감수해야 하는 부담이 커진다.
외환 당국이 보유한 외환보유액과 외평채로 조달한 외화 일부를 팔고 원화를 사들이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홍춘욱 프리즘투자전략 대표는 “원화 약세 국면에서 정부가 외환시장 안정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하려면 외환보유액 일부를 매도해 시장에 달러 공급을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정부가 외환보유고를 동원해도 별다른 효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오히려 변동성이 더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일각에선 정부가 ‘1400원’ ‘1450원’ ‘1500원’ 등 특정 환율 수준을 신경쓰기 보다 위·아래로 움직이는 폭을 줄이는 데 정책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국내 자본 해외 유출이 ‘뉴 노멀’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 엔화가 강세로 돌아서거나 미국 금리 정책이 인하로 바뀌는 등 대외 요인 변화가 없으면 환율이 떨어지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향후 정부 대책은 환율의 절대 수준보다 변동성을 낮추는 데 방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효상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금융팀장은 “최근 고환율 현상은 늘어나는 해외 투자 수요의 영향이 큰 만큼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외환시장을 안정화하기 위한 정부의 단기적인 조치들도 중요하지만, 중장기적으로 우리나라에 외환이 잘 유입이 되도록 외환시장을 조금 더 개방하는 조치들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한화 미 함정 시장 첫발 ‘긍정 평가’해외 기자재 공급, 법에 가로막혀안보 차원 조선소 인력 충원 문제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자국 해군의 신형 호위함 건조를 한화와 함께하겠다고 밝히면서 한·미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 ‘마스가(MASGA)’가 본격화했다. 다만 미국의 부실한 기자재 공급망 등으로 사업의 불확실성이 크다는 점은 불안 요소로 꼽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조선업 재건을 위해 ‘황금함대’를 만들겠다는 사업을 발표했는데, 앞서 미 해군은 지난 19일 헌팅턴 잉걸스를 선두 조선사로 삼고, 생산 속도를 높이기 위해 미국 내 여러 조선소에 건조를 맡길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간 유지·보수·정비(MRO) 시장을 토대로 미국 함정 건조 시장을 공략한 데 이어 큰 진전을 이뤘다는 평가가 나온다.
헌팅턴 잉걸스와 지난 4월부터 기술제휴를 맺고 있는 HD현대중공업도 황금함대 프로젝트에 기술협력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된다.
일각에선 사업의 불확실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미국은 선박 건조에 필요한 기자재 공급 기반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인데도, 해외로부터 공급받는 것은 법과 제도로 가로막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번스-톨레프슨법’은 미국 군함이나 군함 선체, 주요 구성품을 외국 조선소에서 건조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미국은 군함을 건조할 ‘기술력’이 없는 게 아니라 ‘생산력’이 많이 뒤처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문제로 방위사업청은 지난 8월 미국 해군부와 방산협력 방안을 논의하면서 미국 측에 한국에서 함정 건조를 포함해 블록 모듈을 생산하고, 이를 미국 현지 조선소에서 최종 조립하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미 의회는 국방수권법(NDAA)을 통과시키면서 한국·일본 등 동맹국과 협력하겠다는 내용을 삭제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행정명령 등으로 기자재 공급이나 블록 등을 외부에서 제공할 수 있게 한다면 미국 사업도 진척이 있겠지만, 아니라면 단기적으로 생산성을 높이는 건 제한된다”고 말했다.
현지 인력 확보의 어려움도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소다. 미 해군은 안보 차원에서 미국 시민만 조선소에서 일할 수 있게 하고, 외국인들은 별도 허가를 받도록 한다.
양종서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미국인 용접공을 고용하면 최소 연 20만달러(약 2억8000만원)를 줘야 하는데, 미국 시민으로만 조선 인력을 채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보면 절로 ‘픽’하고 웃음이 터지는 지점이 있다.
“꿈에 어떤 미인이 홀로 앉아서 손짓을 하는데, 나는 소매를 뿌리치고 응하지 않았다. 우스운 일이다.”(1594년 2월5일)
‘이순신과 여자’와 관련해서 한 두 군데 의심쩍은 일기가 보인다. 하나는 역시 꿈, 다른 하나는 현실 이야기다.
(꿈)“꿈에 부안 사람이 아들을 낳았는데, 달수를 계산했더니 낳을 달이 아니어서 꿈이지만 내쫓았다.”(1594년 8월2일)
(현실)“…저녁에 경상 좌수사(이운룡·1562~1610)와 작별 술잔을 나누고 취하여 대청에서 엎어져 잤다. 개(介)와 함께….”(1596년 3월9일)
■이순신의 흉중
이 두 사례를 두고 ‘설’이 많다. 우선 꿈에 나타난 ‘부안사람(扶安人)’을 장군의 첩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알 수 없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순신의 ‘확실한 첩’은 서자 훈(1574~1624)을 낳은 해주 오씨 뿐이기 때문이다.
또 술에 취해 ‘함께 한 개(介與之共)’을 두고 “(여자 종인) 개와 함께 잤다”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단순히 ‘함께(共)’를 ‘여자와 잤다’고 이해하는 것 역시 곤란하다는 견해도 있다.
이순신 장군이 여색을 멀리했다는 정황 자료가 남아있다. 백사 이항복(1556~1618)은 “이순신은 7년간 군중에 있으면서 마음 고생하고 몸이 피로했으므로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고 통제사 이공 유사>)고 했다. 꿈에서도 미인의 유혹을 뿌리쳤을 정도로….
웬 객쩍은 소리냐 할 수도 있겠다. 지금 ‘우리들의 이순신’ 특별전(~2026년 3월3일)을 열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전시기획자의 강조점이 ‘위기의 순간을 견디고 일어선 우리가 곧 이순신이다’라는 구호이다. 패배와 좌절, 압도적인 위기 앞에서 흔들리면서도 무너지지 않으려는 고뇌, 또 다시 일어서려는 결단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큰 울림을 준다’는 것이다.
이번 전시는 <난중일기> 등에 담겨있는 ‘인간 이순신의 내면과 감정’을 입체적으로 조명했다. 이중 필자는 인간 이순신의 ‘흉중(마음 속)을 날 것 그대로’ 써내려간 <난중일기>에 초점을 맞춰본다.
<난중일기>를 언급할 때 빼놓지 않은 소재가 있다.
그것은 바로 이순신의 ‘지독한 원균 뒷담화’이다.
“원균(1540~1597)의 술주정에 배 안의 모든 장병들이 놀라고 분개하니 고약스러움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1593년 5월 14일)
“왜적을 토벌하겠다는 공문을 보냈더니 원균은 ‘술에 취해 정신이 없다’고 핑계대면서 대답이 없었다.”(1593년 6월11일)
“원균이 잔뜩 취해서 흉악하고 도리에 어긋나는 말을 함부로 했다. 해괴 했다.”(1593년 8월 26일)
“원균이 온갖 계략으로 나를 모함하고… 뇌물 짐이 서울 길에 잇닿아 있다. 그렇게 나를 헐뜯으니…”(1597년 5월 8일)
■‘탈탈 털린’ 개인일기
그런데 <난중일기>를 읽다보면 원균 뿐 아니라 다른 장수들도 이순신에게 사정없이 욕을 먹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원수(권율·1537~1599)가 근거없이 망령되게 고한 일이 많았는데 그런데도 원수의 지위에 둘 수 있는 것인가. 괴이하다”(1595년 4월30일), “우수사(이억기·1561~1597)는 …헛소리를 많이 하며…”(3월24일), “경상수백(권준·1547~1611)이 모함하는 말을 거짓으로 꾸몄다.”(10월21일), “남해현령 기효근(1542~1597)은 어린 계집을 배에 태우고 남이 알까봐 두려워했다.”(1593년 5월30일)는 등….
이순신은 또 “체찰사(로 파견된) 이원익(1547~1634)의 계책이 얼마나 쓸모없냐. 우스운 일이다. 조정이 세운 계책이 어찌 이럴까”(1596년 2월28일)하고 개탄했다.
순변사 이일(1538~1601)은 이순신의 꿈에까지 나타나 장군에게 욕을 먹었다.
“꿈에 이일과 만나…‘당신은 국난을 맞아…배짱좋게 음란한 계집이나 끼고…비웃음을 사고 있으니 어떠냐’고 따졌다….”(1594년 11월25일)
그렇다면 이순신은 ‘모두까기’였을까. 그러나 한번 생각해보자.
<난중일기>는 그날그날 불쑥불쑥 솟아오르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담은 ‘개인일기’일 뿐이다.
다른 사람 보라고 다듬고 포장할 리 없다. 만일 400여 년 뒤 자신의 일기가 ‘탈탈 털린’ 이순신의 심정은 어땠을까. 개인정보가 저렇게 까발린 것에 한없는 분노와 부끄러움을 느꼈을 것이다.
■반목은 반목, 협력은 협력…
다른 이들이야 그렇다 치고 이순신과 원균(1540~1597)은 유독 ‘견원지간’이었다.
그렇지만 왜군과의 전투에서는 내남이 있을 수 없었다. 이순신-원균 등과 이억기(전라 우수사·1561~1597) 등 3대장은 수시로 만나 작전회의를 했다.
이순신은 “영남 원수(원균)가 왜군 300여 명의 머리를 베어 죽였다”면서 “아주 기쁘다”고 자기일처럼 좋아했다.(1594년 1월24일)
3일 뒤인 27일자는 “원균 수사의 군관이 제주 판관의 편지와 말 장식, 해산물, 감귤, 유자 등을 보내왔다. 어머니께 보냈다”고 했다.
2월13일에는 “‘적선 출몰’ 보고를 받고 원균과 상의토록 했다”고도 했다. 또 1596년 윤8월22일에는 “(당시 불화와 갈등 때문에) 전라병사로 좌천(?)된 원균을 전라 병영(강진)에서 만나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꿈에 원균이 나타나…
또 칠천량 해전(1597년 7월15일)을 8일 앞두고 꾼 이순신의 ‘원균 꿈’이 자못 의미심장하다.
당시 삼도수군통제사는 원균이었다. 쫓겨났던 이순신이 옥에서 겨우 나와 백의종군하던 때였다.
그때 이순신의 꿈에 원균이 나타났다.
“원공(원균)과 함께 있을 때 나(이순신)는 원공의 윗 자리에 앉아 음식상을 내올 때 원공이 즐거운 기색을 보이는 것 같았다.”(7월7일)
꿈이 맞다면 곧 다가올 칠천량 패전을 예감한 원균이 조선의 바다를 이순신에게 맡기고 기꺼이 전사했던 것이 아닐까.
꿈은 현실이 되었다. 16일 칠천량 패전 소식을 들은 이순신은 “생각할수록 분하여 간담이 찢어지는 것 같다”면서 통곡했다. 이순신은 보름 뒤인 8월3일 “삼도수군통제사로 부임하라”는 선조의 정식 교서를 받았다. .
■아픈 내색도 사치
또 하나 <난중일기>를 읽으면 이순신은 크고 작은 질병에 시달렸다.
그렇지만 온통 나라 걱정 뿐이었다. <난중일기> 1593년 5월16일자는 “내가 몸이 아주 불편해 드러누워 끙끙 앓았다”고 했다. 그러나 아프다는 내색은 사치였다.
“명나라군의 진격이 늦어지고 소식을 들었다. 나라 걱정이 많다…더욱 더 탄식이 일어나 펑펑 쏟아지는 눈물에 잠길 뿐이다.”
아무리 아파도 결코 진중을 비울 수 없었다. 게다가 동료 장수와 부하들과의 소통을 위해 술자리를 걸러서도 안되었다.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도 조정에 올리는 보고서를 직접 써야 했고, 또 술을 마실 수밖에 없었다.
1594년 3월과, 1596년 2~5월 사이 이순신은 역병(전염병)에 걸려 몸상태가 최악이었다.
예컨대 1594년 3월6~25일 사이 “몸이 괴로워 앉고 눕기도 불편하며, 하루종일 무리가 무겁고 신음했다”는 등의 기사가 줄을 잇는다. 3월6일 이순신은 “몸이 몹시 괴로워 앉기도, 눕기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러나 쉴 수 없었다.
청슬(거제시 지석리)에 출몰한 적선 40여척을 불태웠다는 보고를 받고 역풍을 무릅쓰고 흉도(거제도)까지 가야 했다. 그때 명나라 장수 담종인이 통지문을 보내왔다. ‘명나라-일본 간 강화 협상에 방해가 되니 왜군을 공격하지 말라’는 문서였다.
억장이 무너지는 통지문이었다. 답서를 써야 했지만 병중의 이순신은 꼼짝할 수가 없었다.
부하들을 시켰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 이순신 본인이 억지로 병든 몸을 이끌고 앉아 글을 썼다.(1594년 3월7일) 이순신은 답서에서 “왜적의 점거 지역은 모두 조선 땅인데 왜 공격하지 말라는 거냐”면서 “강화 하자는 것은 일본군의 속임과 거짓”이라고 우회적으로 거부했다.
병중에 발휘한 투혼의 답서라 할 수 있다.
이순신은 또 1596년 3~5월 무려 2개월 이상 끙끙 앓았다. 거의 매일같이 ‘땀이 온몸을 적시고 밤잠을 이루지 못했으며 곽란 때문에 구토했다’는 등 악전고투의 연속이었다.
예컨대 “낮에는 땀이 옷에만 배더니 밤에는 두 겹이 다 젖고 다시 방바닥까지 흘렀다”(3월25일)고 했다. 습열 때문에 온몸에 침을 20여곳이나 맞기도 했다.(4월19일) 몸이 불편해서 하루에 두번이나 구토했다.(5월8일)
■20시간 근무, ‘몸 혹사’
그런 상황에서도 소통을 위한 술자리는 거를 수 없었다. 몸이 아파 땀이 줄줄 흐르고 있던 1596년 3월 5일의 술자리가 그랬다.
이날 이순신은 5경(새벽 3~5시) 무렵 배를 출발해서 동틀 무렵 우수사(이억기)가 복병하고 있던 견내량(거제대교 아래 해협)에 도착했다.
그는 이억기와의 사이에서 벌어진 사소한 오해를 푼 뒤 술자리를 마련했다. 이후 일찍부터 만취한 이순신이었지만 그냥 돌아오지 않았다. 다시 전라 우수영 우후(정4품) 이정충의 장막(꽃나무 아래)에 들러 이야기를 나눈 뒤 술에 취해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이순신은 몸을 추슬러 겨우 지휘부로 돌아왔다.
다시 부하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삼경(밤 11~새벽 1시)이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지금 시간으로 계산하면 하루 24시간 중 대략 20시간(새벽4~밤 12시)이다. 그 정도로 몸을 혹사했다.
■‘나라의 치욕을 씻으라’
진중과 배 안에서 그러한 극한상황을 버틴 이순신을 버티게 한 힘은 가족을 향한 그리움이었다.
<난중일기>에 녹아있는 이순신의 효심은 필설로 다할 수 없다. <난중일기>의 첫날(1592년 1월1일) 내용이 “어머니를 떠나 설 두 번을 쇠니 간절한 회안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었다. 또….
“아침에 흰 머리카락 10여 가닥을 뽑았다…위로 늙으신 어머님이 계시기 때문이다.”(1593년 6월12일)
이순신은 어머니(초계 변씨·1515~1597)를 ‘천지(天只·하늘)’라 일컬었다. ‘어머니는 하늘(母也天只)’이라는 <시경>(‘용풍·백주’) 구절에서 따왔다.
“어머니 생신이다. 적을 토벌하는 일 때문에 찾아뵙고 장수를 기원하는 술 잔을 올릴 수 없다. 평생의 한이 되겠구나.”(1593년 5월4일)
1594년 1월11일의 일기를 보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이날 새배를 드리려고 찾아뵌 어머니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큰소리로 불렀더니 어머니가 놀라 깨어 일어났다. 깜짝 놀란 이순신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머니가) 숨이 곧 끊어지실 듯 해가 서산에 이른 듯 했다. 남몰래 눈물만 펑펑 흘릴 뿐이다.(只下隱淚)”
하지만 “적을 무찌를 일이 급해 오래 머물 수 없었다”고 했다. 겨우 하룻밤 어머니와 지낸 뒤 다음날 아침에 “돌아가겠다”고 인사를 드렸다. 이때 어머니의 말씀이 심금을 울린다.
“잘 가라. 나라의 치욕을 크게 씻어라.(大雪國辱)”(1594년 1월12일)
이 대목에서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선생(1862~1927)이 떠오른다.
조마리아 선생은 1910년 2월14일 아들이 사형언도를 받자 혹시나 항소할까봐 “옳은 일을 하고 받는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를 향한 효도”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과연 한국 역사의 두 불세출의 영웅을 낳은 어머니들은 뭔가 다르지 않은가.
■하늘이 무너졌다
이순신은 1596년 윤8월12일 노환으로 기력을 잃어가던 어머니를 뵈러 도착했다. 그때가 밤 10시였다.
“어머니는…숨이 곧 끊어질 듯 하루도 버티기 어려우신 듯…펑펑 쏟아지려는 눈물을 머금고 서로 부여잡았다. 밤새 위안하며 기쁘게 해드렸다.”
어머니 변씨는 이듬해인 1597년 4월13일 타계했다. 83살로 당시로서는 장수한 것이었다.
문자 그대로 천지(天只), 곧 하늘(어머니)이 무너진 것이다. 마침 백의종군 길에 오르던 이순신이 잠시 아산에 머무르고 있던 때였다.
어머니의 안부를 물으려 갔던 사내종이 돌아와 하늘이 무너지는 소식을 전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부음이었다.
“어머니의 부음에 나는 가슴을 치고 발을 구르며 슬퍼했다. 하늘의 해도 까맣게 변했다…서러움에 찢어지는 아픔 마음으로 다 쓸 수 없었다.”
그러나 이순신은 장례조차 제대로 치르지도 못하고 금부도사에게 이끌려 길을 떠나야 했다.
“갈 시간이 되어 어머니의 신위에 인사를 올렸다. 목놓아 울었다. 어찌하랴, 어찌하랴…죽느니만도 못하다.”(4월19일)
■코피를 쏟은 이유
이순신은 막내아들 이면(1577~1597)을 가슴에 묻었다. 명량대첩(1597년 9월16일) 직후인 10월14일의 일이었다.
저녁 때 어떤 사람이 천안에서 와서 집안 편지를 전했다. 느낌이 ‘싸’ 했다. 봉투를 채 뜯지도 않았는데, 뼈와 살이 먼저 떨렸다.
마음이 ‘아찔’ 하고 어지러웠다. 겉봉투를 와락 펼쳤더니 ‘통곡’ 두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면이 전사한 것을 알았다. 간담이 떨어졌다. 목놓아 소리 높여 슬피 울부짖었다. 하늘은 어찌 이토록 모진가…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하늘이 정한 이치 아니더냐. 하늘과 땅이 깜깜하고 한낮의 해도 빛이 바랬다.”
하지만 부하들 앞에서 목놓아 울 수 없었다. 이순신은 “외딴 곳 소금 굽는 집에 가서 마음껏 큰소리로 서럽게 울부짖었다”고 토로했다.
아들 전사 후 5일이 지난 19일의 <난중일기>도 심금을 울린다.
“나는 죽은 아들이 그리워 통곡했다. 어두울 무렵 코피가 한 되 남짓 쏟아졌다. 그리움에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그러나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와중에도 전투가 벌어졌다. 예컨대 이순신이 ‘소금 굽는 곳에서 통곡한 날’ <난중일기>는 “적의 머리 13급과 적에게 투항한 자(조선인)의 머리를 베어왔다”고 기록했다.
또 ‘죽은 아들이 그리워 서럽게 울었다’는 19일자 일기에는 “적에게 부역했던 2명을 잡아왔다”는 구절이 보인다. 전쟁의 비극이 이렇게 한 날짜의 일기에 적나라하게 투영되어 있다.
<난중일기>엔 부인(상주 방씨)에 대한 언급이 6번 정도 등장한다. 그러나 나라 걱정 때문에 절절한 그리움을 표할 수도 없음을 채찍질했다.
“아내의 병세가 아주 위중하다는 소식을 받았다…나랏일이 이러니 다른 일은 걱정도 할 수 없구나….”(1594년 8월30일)
그렇지만 이순신은 이날 밤새 뒤척였다. 결국 새벽에 점을 쳐서 불안을 달랬고, 그 결과 모든 점궤가 좋아 그제서야 안심했다.(9월1일)
■‘시인’ 이순신
<난중일기>에는 무인(武人)이 아니라 시인 이순신의 면모가 물씬 풍긴다.
그중 이동하는 장면을 두고 ‘지는 해를 탔다’(乘暮·1596년 4월13일), ‘어둠을 탔다’(乘昏·1597년 11월2일), ’석양을 탔다‘(乘夕·1592년 2월12일)는 등의 표현을 썼다. 특히 ‘참혹한 전쟁터의 모습’을 묘사한 뒤 ‘달을 타고 옮겨 정박했다’(乘月移泊·1598년 9월19일)은 구절은 어떠한가.
또 “일행이 꽃비(花雨)에 젖었다.”(1592년 2월23일)는 얼마나 공감각적인가. 이외에도 “온갖 시름이 가슴을 쳤다. 자려고 해도 잠들 수 없었다. 닭이 울 때야 풋잠이 들었다.”(1593년 5월13일)는 구절을 보라. 그 뿐인가. 같은 해 8월17일에는 “달빛은 낮과 같이 밝았다, 출렁이는 물빛은 하얀 비단 같았다. 마음을 가눌 수 없다.”고 했다. 1594년 5월9일에 읊은 시는 또 어떠한가.
“…빈 정자에 홀로 앉아 ‘가슴을 치는 백가지 생각’을 토로하며 ‘술에 취한 듯, 꿈 속인 듯 바보가 된 듯, 미친 듯’ 했다.”
구구절절 주옥같은 시어이다. 그렇지만 <난중일기>를 관통하는 구절은 따로 있다.
명랑해전을 하루 앞 둔 이순신의 결기에 찬 한마디….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必死則生 必生則死) 한 사람이 좁은 길목을 지키면, 천 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一夫當逕 足懼千夫 今我之謂矣)(1597년 9월15일)
인간 이순신의 삶을 집약한 이 한마디가 오늘의 우리를 지켜주고 있다. 그래서 이 어려운 때 우리는 외칠 수 있다. ‘우리가 이순신이다.’(2011년 8월11일 이후 14년 5개월 가량 진행한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칼럼이 이번 회를 마지막으로 끝나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사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기환 히스토리텔러 lkh0745@naver.com
<참고자료>
이순신, <난중일기>, 노승석 교감, 민음사, 2013
이순신, <난중일기>, 박종평 옮김, 글항아리, 2018
서윤희·유새롬·임혜경 외, <우리들의 이순신> 특별전 도록, 국립중앙박물관, 2025
유새롬, ‘이순신의 마음을 담은 기록, 난중일기’, <우리들의 이순신> 특별전 도록, 국립중앙박물관, 2025
신병주, ‘난중일기 속 인간 이순신, 장군 이순신’, <충무공 이순신과 한국 해양>4호, 해군사관학교 해양연구소, 2017
박경식, ‘이순신의 진중생활에 관한 연구 2’, <이순신연구논총> 8권1호,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 2007
장시광, ‘난중일기 속에 나타난 이순신의 일상인으로서의 면모’, <온지논총>20, 2008
국가유산청 현충사관리소, <충무공유사>, 2008
폰테크, 신차장기할부, 이혼전문변호사, 이혼전문변호사, 수원강제추행변호사, 브랜드이모티콘, 분당불법촬영변호사, 수원음주운전변호사, 수원이혼전문변호사, 수원형사변호사, 인터넷가입, 성남상간소송변호사, 용인상간소송변호사, 신불자장기렌트, 가전내구제, 협의이혼, 수원상간녀변호사, 남양주법무법인, 수원흥신소, 성남음주운전변호사, 수원법률사무소, 자동차랜트, 대기업렌트카, 의정부법률사무소, 신용불량장기렌트, 대구이혼전문변호사, 의정부이혼변호사, 볼보장기렌트, 무심사무보증장기렌트, 차렌트한달, 인터넷가입사은품많이주는곳, 폰테크 사이트, 네이버키워드광고, X6장기렌트, 안산학교폭력변호사, 양육권, 첫차장기렌트, 제주장기렌트, 폰테크 당일, 폰테크, 렌트카특가, 상간남소송, 고양이혼전문변호사, 렌트리스차이, 자동차장기렌트, 수원법률사무소, 수원성범죄변호사, 위자료, 의정부성범죄전문변호사, 인터넷설치현금, 렌트카저렴, 용인불법촬영변호사, 카니발장기렌트승계, 양주학교폭력변호사, 김해이혼전문변호사, 수원검사출신변호사, 용인상간소송변호사, 폰테크, 인터넷가입, 수원이혼변호사, 용인강간변호사, 당일렌트, 인터넷티비현금많이주는곳, 정품비아그라, 안양법무법인, 장기렌트카아반떼, 남성진변호사, 폰테크 홈페이지, 수원이혼전문변호사, 의정부변호사, 이지렌터카, 수원마약변호사, 자동차대여, 수원법률사무소, 수원이혼전문변호사, 구미이혼전문변호사, 상간녀소송, 남양주학교폭력변호사, 남양주학교폭력변호사, 수원상간소송변호사, 개인회생장기렌트카, 용인법무법인, 한달차량렌트, 수원학교폭력변호사, 홈쇼핑렌터카, 화물차장기렌트, 양주학교폭력변호사, 폰테크, 폰테크, 분당불법촬영변호사, 수원강간변호사, 암요양병원>, 의정부형사전문변호사, 개인회생렌트, 용인성범죄변호사, 장기렌트선납금, 대학생중고차, 의정부음주운전변호사, 장기렌트리스가격비교, 의정부이혼전문변호사, 분당불법촬영변호사, 의정부법률사무소, 수원이혼전문변호사, 빠른이혼, 위자료, 자동차신차할부, 장기렌트보증보험, 이혼소송, 용인성범죄변호사, 수원법무법인, 레플리카사이트, 부천이혼전문변호사, 싼타페하이브리드리스, 렌트카예약, 의정부이혼변호사, 용인음주운전변호사, 자동차비교견적, 비아그라 효과, 중고차장기렌탈, 쏘렌토하이브리드장기렌트, 폰테크, 제네시스장기렌트, 수원성추행변호사, 출장용접, 분당강간변호사, 소형차리스, 성남상간소송변호사, 수원불법촬영변호사, 베뉴렌트, 성남법무법인, 의정부이혼전문변호사, 의정부대형로펌, 장기렌트견적비교, 폰테크, 인터넷가입, 저신용무보증장기렌트, 대전흥신소, 용인법무법인, 비아그라 약국, 서울암요양병원, 재리스, 이혼전문변호사, 장기렌트보험, 수원상간소송변호사, 안양이혼전문변호사, 수원강제추행변호사, 저신용장기렌트카, 렌트카쿠폰, 이혼변호사, 안양학교폭력변호사, 자동차견적서, 기아자동차렌트, 폰테크 사이트, 의정부음주운전변호사, 분당불법촬영변호사, 수원형사전문변호사, 양주학교폭력변호사, 폰테크, 용인대형로펌, 의정부이혼전문변호사, 중고차장기렌탈, K7장기렌트, 이지렌터카, 용인학교폭력변호사, 자동차신차할부, 포항이혼전문변호사, 용인불법촬영변호사, 한게임클래식머니상, 인스타 좋아요, 수원형사변호사, 수원형사전문변호사, 의정부형사전문변호사, 용인형사전문변호사, 의정부성범죄변호사, 안산이혼변호사, 수원이혼전문변호사, 현대차딜러, 성남성범죄변호사, 신불자렌트, 신차장기, 한달렌트카비용, 수원성범죄변호사, BMW장기렌트카, 렌탈임대, 안양음주운전변호사, 인천흥신소, 세종이혼전문변호사, 폰테크, 개인렌트카, 토레스장기렌트, 현대차딜러, 폰테크, 개인회생장기렌트카, 수원상간소송변호사, 수원불법촬영변호사, 렌트카저렴한곳, 용인성추행변호사, 성남성범죄전문변호사, 재산분할, 출장용접, 용인이혼전문변호사, 장기렌트카비교, 의정부이혼변호사, 의정부소년재판변호사, 승소사례, 용인상간소송변호사, 아우디할인, 수원탐정사무소, 의정부상간소송변호사, 상간녀위자료, 폰테크, 수원법률사무소, 용인성범죄변호사, 장기렌트개인사업자, 인터넷티비현금많이주는곳, 의정부이혼전문변호사, 카니발장기렌트, 의정부차장검사출신변호사, 의정부성범죄변호사, 차량렌트, 의정부형사변호사, 수원검사출신변호사, 홈페이지 상위노출, 이혼상담, 분당강제추행변호사, 인터넷가입현금지원, 수원법무법인, 기아장기렌트, 의정부음주운전변호사, 의정부변호사, 인천흥신소, 의정부법률사무소, 용인검사출신변호사, 인터넷비교사이트, 성남상간소송변호사, 수원불법촬영변호사, 구미이혼전문변호사, 분당강간변호사, 수원법률사무소, 감성뮤직, 수원강제추행변호사, 수원성범죄전문변호사, 의정부음주운전변호사, 안산학교폭력변호사, 장기렌트5년, 용인검사출신변호사, 이혼전문변호사, 인터넷티비현금많이주는곳, 수입차장기렌트비용, 개인장기렌트, 남양주학교폭력변호사, 의정부이혼전문변호사, 평택학교폭력변호사, 안양이혼전문변호사, 저신용장기렌트카, 장기렌트카비교견적, 의정부법률사무소, 수원법무법인, 자동차가격, 자동차렌트비용, 수입차장기렌트카, 선납금없는장기렌트카, 서울흥신소, 캐피탈장기렌트, 안산이혼변호사, 의정부성범죄변호사, 성남대형로펌, 이혼소송, 상간소송변호사, 신차렌트카, 차량장기렌트비용, 의정부상간소송변호사, 성남학교폭력변호사, 비아그라 부작용, 수원성범죄변호사, 용인강간변호사, 장기렌트카인수, 수원불법촬영변호사, 6개월렌트카, 수원대형로펌, 창원이혼전문변호사, 사이트 상위노출, 폰테크, 투싼장기렌트, 장기렌트순위, 비아그라 후기, 페라리리스, 12개월렌트, 일할때듣기좋은음악, 고양이혼전문변호사, 국내렌트카, 인터넷비교사이트, 이혼상담, 개인사업자렌트카, 홈페이지 상위노출, 현대자동차렌트, 싼타페리스, 수원법무법인, 용인강간변호사, 고양이혼전문변호사, 비아그라 효과, 한게임클래식, 인스타 좋아요 구매, 수원이혼변호사, 안산상간소송변호사, 미니쿠퍼장기렌트, 인터넷설치현금, 자동차1년렌트, 미니장기렌트, 신차장기렌트가격비교, 의정부이혼전문변호사, 잔잔한음악, 장기렌트가격비교사이트, 렌트카추천, 남양주음주운전변호사, 베뉴장기렌트, 사업자차량, 분당강제추행변호사, 수원이혼전문변호사, 수원형사전문변호사, 수원음주운전변호사, 대학생장기렌트, 문해력훈련, 폰테크, 이지렌터카, 인스타 팔로워, 의정부학교폭력변호사, 의정부학교폭력변호사, 평택
- 이전글서울탐정사무소 폰테크 25.12.27
- 다음글이혼전문변호사 폰테크 이혼전문변호사 폰테크 25.12.27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