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소년재판변호사 가습기살균제 원인 규명 15년 만에 배상 나선 정부…생애 전주기 지원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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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24일 발표한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 종합지원대책’의 핵심은 그동안 행정적 피해구제 차원에 국한했던 정부 역할을 적극적인 배상체계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기존에는 기업 분담금(2500억원)과 일부 정부 출연금(225억원)을 토대로 구제급여 등이 지급됐지만, 앞으로는 정부 주도로 지원이 대폭 확대된다.
2019∼2021년 출연 이후 중단됐던 정부 출연을 내년 100억원을 시작으로 재개한다.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을 강화하기 위해 장기 소멸시효를 폐지하고, 단기 소멸시효는 중단한다.
정부는 피해자에게 치료비와 사고로 인해 잃은 소득,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 등 손해 전반을 배상하기로 했다. 특히 피해자의 건강 상태와 치료 기간이 제각각인 점을 고려해 배상금 수령 방식에 대한 선택권도 보장한다. 피해자는 배상금을 한 번에 모두 받거나, 일부 금액을 먼저 지급받은 뒤 치료비를 지속적으로 지원 받는 방식 중에서 원하는 방법을 택하면 된다.
피해자 지원은 학업과 취업, 사회 진출까지 생애 전 주기에 걸쳐 이뤄진다. 2025년 기준 피해자 가운데 초중고 학생은 914명, 병역판정 대상은 2029년까지 632명, 20~30대 피해자는 1085명으로 추산된다.
학령기 피해 청소년이 중·고등학교 진학 시 추첨 대신 주거지 인접 학교를 희망할 경우 우선 배정하고, 대학 등록금 일부를 지원한다. 질병으로 인한 결석 인정 기준도 완화한다. 질병결석 인정 사유를 병원 진료에 한정하지 않고, 질환으로 인한 가정 요양이나 정신건강 진단·모니터링 참여까지 포함시킨다.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는피해 청년에게는 건강 특성을 반영한 병역 판정 체계를 마련한다. 사회복무요원은 호흡기에 부담이 될 수 있는 근무지를 배제하고, 현역 입대 시 소총·박격포 등 신체 활동이 많은 주특기 배정에서 제외한다.
취업을 앞둔 피해 청년은 국민취업지원제도와 청년도전지원사업, 대학일자리플러스센터 등을 통해 맞춤형 지원을 받게 된다. 취업 후 치료가 필요한 경우에는 휴가를 보장한다.
치료 과정에서의 불편도 줄어든다. 본인일부부담금의 경우 치료비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대납 후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이 정산하도록 해 피해자의 선납 부담을 낮췄다. 건강 피해 인과관계 연구 범위는 기존 호흡기 질환 중심에서 만성·전신질환과 후유증까지 넓힌다.
국가 주도 추모사업도 본격 추진된다. 현행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의 목적에 ‘추모’를 추가하고, 피해자들과 협의를 통해 추모일을 지정해 공식 추모행사를 개최할 방침이다. 정부는 내년 상반기 ‘가습기살균제 피해 구제를 위한 특별법’ 전부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피해자와 유족들은 이번 정부 지원대책을 대체로 환영하면서도, 정부 대책이 선언에 그치지 않도록 이행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채경선 8·31 사회적가치 연대(가습기살균제 피해자단체) 대표는 “그동안 피해자 단체에서 요구하고 제안했던 방안들이 거의 다 수용된 대책”이라며 “지난 14년간 이어온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운동이 하나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 중요한 것은 정부가 발표한 내용이 현장에서 약속대로 이행되는지 여부”라고 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1994년부터 판매된 가습기살균제 제품이 폐 손상 등 대규모 인명 피해를 일으킨 사건이다. 2011년 질병관리본부 역학조사를 통해 가습기살균제와 폐 손상 간의 인과관계가 확인됐고, 2014년 당시 환경부가 피해 구제 절차를 시작했다.
2022년 피해자와 기업이 민간조정기구를 통해 피해 구제 방안을 마련하려 했지만 기업별 합의금(최대 약 9000억) 분담액을 두고 이견이 나오면서 무산됐다. 지난해 6월 대법원이 가습기살균제 피해에 대한 국가 책임을 공식 인정한 이후, 1년 반만에 정부가 종합 대책을 내놨다. 정부는 “2026년을 피해구제 방식 전면 전환의 원년으로 삼고 오랜 기간 고통을 겪었던 피해자들이 조속히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후속 조치를 속도감 있게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악의 평범성’은 환상이다
해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개념의 주요 전제는 나치의 유대인 정책을 관할했던 친위대 중령 아돌프 아이히만이 상부의 명령을 수동적으로 집행한 소심한 관료였다는 것이다.
독일 철학자 베티나 슈탕네트는 아이히만이 1950년대 아르헨티나에서 망명 중일 때 남긴 기록과 언론인과의 인터뷰 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아렌트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저자에 따르면 아이히만은 ‘수동적 관료’가 아니라 ‘유대인 절멸 기계’를 설계하고 작동시킨 장본인이자 확신에 찬 인종주의자였다. 아이히만은 아르헨티나에서 지내는 동안 주도면밀하게 자기방어 논리를 고안했다. 자신과 자신의 부하들은 “전쟁이라는 살인 모터의 거대한 동력 전달 장치의 작은 톱니들”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것이 아이히만이 생애 마지막 해에 남들에게 보이기로 선택한 자신의 이미지였다”면서 아렌트가 아이히만이 공들여 연출한 ‘희생자’ 이미지에 속아넘어갔다고 판단한다.
가장 큰 대중적 관심 모은 소설
올해 소설 분야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큰 관심을 모은 책으로 꼽을 만하다.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와 몇년째 역주행 기록을 쓰고 있는 양귀자의 <모순> 등 출간된 지 오래된 소설들이 베스트셀러 목록 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서점가에서 <혼모노>는 예스24와 교보문고의 2025년 종합 베스트셀러에서 각각 3위와 4위를 차지하며 젊은 소설가의 저력을 보여줬다.
올해 출판계 최대 화제 인물인 영화배우이자 출판사 대표 박정민의 추천사 “넷플릭스 왜 보냐. 성해나 보면 되는데”가 소설의 인기에 큰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나, 첫 장편 <두고 온 여름>(2023)을 비롯해 성해나가 2019년 등단 이후 꾸준히 문단의 주목을 받던 이름이었다는 점에서 작품 자체의 역량을 무시할 수 없다.
‘혼모노’ ‘스무드’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 등 7편의 작품이 실린 소설집은 개성적인 캐릭터와 강렬한 서사로 진짜라고도, 가짜라고도 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인류 문명 여명기에 대한 신화 부수기
인류 문명의 여명기에 대한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책이다. 우리는 흔히 인류가 선사시대에 수렵채집을 하면서 평화롭고 평등한 삶을 살다가 약 1만2000년 전 ‘농업혁명’으로 도시·국가·관료제가 출현하면서 불평등해졌다고 알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주장을 인정할 경우 불평등은 인류가 문명을 얻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하는 비용이 된다는 점이다. 무정부주의 성향의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1961~2020)와 고고학자 데이비드 웬그로는 인류학과 고고학 분야 최신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신화 부수기’를 시도한다.
저자들에 따르면 유럽 계몽주의자들은 신대륙(아메리카) 선주민들로부터 사상적 영감을 받았다. 저자들은 또 농업 발달과 잉여 자산 축적의 결과로 사회 불평등이 발생했다는 기존 학계의 주장에도 반대한다.
우리의 지식이 대단히 가변적인 전제 위에 서 있으며 지적인 퇴행을 막기 위해서는 전복적 사고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일깨워준다.
AI가 가져올 ‘불길한 미래’미리보기
인공지능(AI)이 몰고올 불길한 미래를 다룬 책들의 홍수 속에서 단연 돋보인 책이다.
유명한 외국 저자들이 다가올 미래를 분주히 예측하는 동안, 소설가 장강명은 한국 바둑계가 이미 ‘AI 이후’를 살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2016년 이세돌 9단이 구글의 바둑 AI 프로그램 알파고에 패배한 이후 한국 바둑계는 전 세계 그 어느 곳보다 먼저 ‘AI 충격파’를 거세게 경험했다. 모두가 AI의 포석을 학습하면서 기사들의 수준은 상향평준화됐지만 개성은 사라졌다. 프로 기사들은 ‘연습생 과외’ 일자리를 잃었다. 바둑이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예술’이라는 믿음도 훼손됐다.
기자 출신인 저자가 꼼꼼한 취재를 바탕으로 보여주는 바둑계의 변화를 따라가다 보면, 향후 AI가 바둑 이외의 다른 업계에 미칠 충격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책의 마지막 문장이 주는 울림이 매우 크다. “우리는 우리 운명의 주인이다./ 우리는 우리 영혼의 선장이다./ 아직까지는.”
‘죽음의 땅’ 후쿠시마의 기묘한 평화
독특한 형식의 책이다. 사진작가 정주하가 2011년부터 올해까지 코로나19 팬데믹 사태가 일어난 3년을 제외하고 매년 후쿠시마를 찾아 찍은 사진과 소설가 백민석과 황모과가 정주하의 사진을 보고 떠올린 소설을 엮었다.
정주하의 사진은 소들이 자연사할 때까지 그들을 돌보는 목부가 있는 미나미소마의 ‘희망농장’을 주로 담았는데 흑백으로 처리된 사진은 쓸쓸함을 자아낸다. 반대로 후쿠시마의 일상적인 모습은 컬러 사진으로 배치돼 죽음의 땅에 내몰린 소들의 모습과 대비된다.
황모과의 소설 ‘마지막 숨’은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가 폭발한 뒤, 방사능 물질이 흘러들어간 바다에서 죽은 인어의 사체로 만든 사료를 먹고 800년 넘게 살아가는 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죽음의 땅에서 얻은 영생이 과연 축복인지 고통인지 묻는다. 백민석의 ‘검은 소’는 제2원자력발전소까지 녹아내렸다는 것을 가정하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재일조선인 작가 서경식 교수가 생전 기획했다.
오키나와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오키나와 출신 만화가 히가 스스무가 1995년과 2010년 각기 발표한 <모래의 검>과 <마부이>를 합쳐 2023년 출간한 그래픽노블의 한국어판이다.
독립된 왕국이었다가 일본에 합병된 슬픈 역사부터 1945년 3월부터 6월까지 3개월 동안 오키나와 인구의 약 3분의 1이 사망한 ‘오키나와 전투’의 비극, 미군 기지 유치를 둘러싼 갈등에 이르기까지 오키나와의 과거와 현재를 담담하면서도 사실적인 그림체로 담았다.
저자는 애써 비극을 강조하진 않지만 일본이 미·일 안보체제의 부담을 오키나와에 떠넘겼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고발한다.
‘유타’라고 불리는 무녀의 역할이 인상적이다. 이들은 무속적 제의를 통해 오키나와인들이 지켜야 할 공동체적 연대의 소중함을 상기시킨다.
깊은 눈으로 역사를 들여다본 그래픽노블이라는 점에서 홀로코스트를 다룬 <쥐>와 1979년 혁명 이후 이란의 혼란을 그린 <페르세폴리스> 같은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트럼프는 우리를 지켜주는 불량배”
부동산 재벌 출신 유명인에 불과했던 도널드 트럼프가 어떻게 미국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까. 백인 저학력 노동자들은 왜 트럼프를 지지할까. 그들은 모두 백인우월주의자들일까.
‘감정노동’ 개념을 고안한 것으로 유명한 사회학자 앨리 러셀 혹실드는 전 세계 민주주의자들을 당혹스럽게 한 트럼프의 선거 승리를 이해하기 위해 2017년 애팔래치아산맥 부근 켄터키주 파이크빌로 갔다. 트럼프 주요 지지층인 백인 저학력 노동자들이 밀집한 지역이다. 저자는 파이크빌과 인근 지역 주민들을 7년간 심층 인터뷰해 ‘자부심’과 ‘수치심’이라는 열쇳말을 건져낸다. 트럼프 지지자들도 트럼프가 불량배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들에게 트럼프는 “우리를 보호해주는 우리의 불량배”다. ‘레드네크’(목덜미가 그을린 남부 백인 노동자)나 ‘힐빌리’(애팔래치아산맥 인근의 가난한 저학력 백인) 같은 납작한 용어들로는 다 포착할 수 없는 미국 사회의 입체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책이다.
1800여쪽으로 펼쳐낸 김규식의 삶
현대사 연구자 정병준 이화여대 교수의 역작이다. 10년 가까운 집필 기간을 거쳐 완성된, 1~3권 도합 1872쪽에 이르는 평전이다.
우사 김규식(1881~1950)은 해방 공간에서 ‘우익 3영수’로 꼽혔던 인물이지만 이승만, 김구, 여운형 같은 거물들에 가려져 생애와 활동이 충분한 조명을 받지 못했다.
1권(1881~1918년)은 유년기, 미국 유학 시절, 중국 망명과 독립운동 투신 등의 사건을 담았다. 2권(1919~1921년)은 파리강화회의 참석, 1인 외교투쟁, 미국에서 이승만과의 만남과 갈등을 다룬다. 3권(1922~1945년)에서는 러시아에서 개최된 극동민족대회와 국민대표회의, 중국인들과의 항일 연대, 민족혁명당 가입과 임시정부 부주석 재임 시기를 살핀다. 김규식의 삶뿐만 아니라 독립운동 세력 내부의 역학 관계까지 세밀하게 보여준다.
3권 말미에 실린 70여쪽 분량의 ‘김규식 자료 추적기’는 이 방대한 저서의 길잡이 구실을 한다.
오웰이 빚진, 그리고 지운 여인 아일린
영국 작가 조지 오웰(1903~1950)은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로 만들고자 했던 지식인이자 파시스트들과 싸운 투사였다. 그의 대표작 <1984>와 <동물농장>은 동시대 좌파 지식인들이 소련을 낭만화하고 있을 때 스탈린 체제의 본질이 전체주의에 다름 아니라는 사실을 폭로한 걸작이다.
인권변호사 출신의 호주 작가 애나 펀더는 오웰의 명성에 가려져 있었던 오웰의 아내 아일린의 삶을 복원함으로써 오랫동안 ‘지식인의 양심’으로 추앙받아온 오웰의 치부를 드러낸다. 여성을 대하는 오웰의 태도를 다룬 대목들이 충격적이다. 여기에는 단순한 일탈이나 불륜을 넘어 성범죄라고 할 만한 행위들도 포함돼 있다.
저자는 오웰의 문학적 성취는 그것대로 인정해야 한다면서도 진실을 외면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제가 바랐던, 그리고 여전히 바라는 바가 있다면, 이 책이 하나의 해방이 되는 것입니다. 가부장제는 도덕적으로 낡고 허약한 정당성이 없는 권력 체계입니다.”
우리가 아는 그런 홍대용은 없다
2권을 합쳐 1300쪽 분량인 <홍대용 평전>은 천재 실학자이자 독창적 과학자, 개혁적 사상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담헌 홍대용을 둘러싼 신화를 해체하는 책이다.
한문학자 강명관 부산대 명예교수가 16년 동안 홍대용의 생애, 그의 저술, 당대 청과 조선의 문헌들, 중국 지식인들과 주고받은 편지 등 담헌이 남긴 방대한 스펙트럼의 텍스트를 샅샅이 검토해 써낸 역작이다.
홍대용은 미신적 사고와 신분제의 질곡이라는 낡은 질서를 깨뜨리고 민족주체성을 강조한 인물로 자리매김됐으나, 저자는 그런 이미지는 조선 사회의 ‘자생적 근대’의 근거를 찾으려는 20세기 초 학자들에 의해 왜곡된 것이라고 말한다. 일각에서는 사족을 비판한 홍대용의 발언을 신분제 타파 의지로 해석하지만, 대지주 출신 홍대용에게는 백성에 대한 고민이나 공감이 없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영천군수 시절에는 진휼곡 500석을 착복한 뒤 군민들에게 고리로 빌려주는 부패도 저질렀다.
“늙은이가 뭔 재미로 살겠어. 명절마다 손주 밥해 먹이는 게 낙인데…. 이제 물 건너 가뿌맀지.”
경북 안동시 일직면 명진2리에서 23일 만난 반영희 할머니(90)가 절구통에 깐 마늘을 쏟아부으며 말했다.
할머니가 나무 방망이를 몇 차례 내리치자 알싸한 마늘향이 올라왔다. 주방과 거실이 한 공간으로 이뤄진 27㎡(약 8평) 남짓한 좁은 컨테이너 임시조립주택은 금방 마늘 냄새로 가득 찼다.
반 할머니는 지난 3월 발생한 경북 산불로 집을 잃었다. 의성에서 시작돼 안동·청송·영양·영덕으로 번진 화마는 1986년 이후 집계된 산불 통계상 역대 최대 피해 면적(9만9289㏊)을 기록했다.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 4349명이 아직 2623개의 임시조립주택에 거주하고 있다.
반 할머니의 보금자리도 컨테이너 집으로 바뀌었다. 기존 집보다 임시주택이 거주 환경은 쾌적하지만 평생을 살아온 집과 비교하면 좁고 답답하다. 반 할머니는 “평생을 마당에 빨래를 널고 장독을 들여다보며 살았다”라고 말했다. 할머니에게 임시주택에서 하루는 더디게 흘러갔다.
반 할머니는 “올 추석에는 잠 잘 곳도 없고, 밥 해 먹일 곳도 없어서 애들에게 오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임시주택을 벗어나 새집을 짓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산불로 주택이 완전히 소실된 이재민에게는 가구당 1억~1억2000만원을 지급했지만 건축비 상승 등으로 집을 다시 짓기에는 역부족한 금액이다.
김남수씨(58·영양군 석보면)는 “샌드위치 패널로 경량철골구조 집을 지어도 3.3㎡당 700만원은 줘야 한다”며 “목조는 800만원, 콘크리트는 1000만원을 훌쩍 넘는데 건축비를 알아 볼 엄두도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66㎡ 규모의 집 한 채를 지으려면 최소 1억4000만원이 든다.
그린피스·녹색전환연구소·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 등이 조사한 ‘2025 경북 산불 피해주민 실태조사’ 결과에도 주택 피해를 입은 주민의 17.7%는 ‘주택 복구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고 답했다. 가장 큰 이유는 비용 부족(42.1%)이다.
김씨는 “다들 농기계를 산다고 받은 돈을 많이 썼다”며 “이재민 대부분이 70~80대 어르신들이라 대출도 쉽지 않다. 결국 자식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사과 등 과수농사를 짓던 농민들은 생계에 직접 타격을 받았다. 불에 탄 사과나무를 뽑아내고 새 묘목을 심어도 수확까지는 최소 5년이 걸린다.
이번 산불로 경북지역 사과 재배지 1560㏊가 피해를 본 것으로 집계됐다. 경북은 전국 사과 재배면적의 58%(3만3313㏊)를 차지한다.
안동 임동에서 사과농사를 짓는 김동규씨(57)는 “산불 발생 당시에는 사과나무 묘목 매물이 없어 구하지 못했다. 내년 봄에 심을 묘목 1000그루를 겨우 구한 상태”라며 “올해는 빈 땅에 콩과 고추를 심어 입에 풀칠했다. 사과가 다시 열리기까지 앞이 막막하다”고 말했다.
소득 회복도 더디다. 피해주민 실태조사에서도 산불 이전 수준과 비교해 ‘10% 미만 회복’에 그쳤다는 응답이 37.3%로 가장 많았다. 80% 이상 회복했다고 답한 비율은 11.0%에 불과했다.
이기형씨(50대·청송)는 “산불로 일터를 잃어버린 사람은 이웃집 품앗이를 하며 일당을 벌어 버티고 있다”며 “산불 특별법이 마련됐다고 하는데 솔직히 체감되는 게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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