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흥신소 [셸터: 서로를 구하다⑤]눈앞엔 계엄군, 등 뒤엔 숨은 사람들…5월의 아홉살 소녀는 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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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을 해 달라’는 독일인 기자의 부탁으로 따라온 마사 헌틀리(Martha Huntley)는 사실 자신이 없었다. 남편 찰스(Charles Betts Huntley: 한국 이름 허철선)와 선교사 부부로 한국에 온 지 어느새 15년째였지만, 외국어를 금방 배우는 찰스에 비하면 마사의 한국어 실력은 뛰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독일인 기자가 광주 양림동의 헌틀리 가족 사택의 문을 두드린 그날, 한국어를 잘하는 찰스는 하필 시내에 나가 있었다. 따뜻한 5월 날씨 아래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지난 몇 달 동안 분위기가 뒤숭숭하긴 했다. 1979년 12월12일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필두로 한 군인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실권을 장악한 뒤로 광주에서도 반독재 시위가 계속 열리고 있었다. 상황이 정말 심각하다고 느낀 건 온 가족이 두 딸 메리와 수잔이 출연한 ‘사운드 오브 뮤직’ 뮤지컬을 보러 대전으로 향한 1980년 5월17일이었다. 열차를 가득 채운 군인들이 소주와 맥주를 퍼마시고 있었다. 만취한 군인들은 자기들끼리 소리지르고 싸우거나, 깨진 술병으로 승객들을 위협했다. 그날 밤 12시 신군부는 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다음날 기차를 타고 광주로 돌아온 헌틀리 가족은 집으로 가려고 택시를 잡았다. 택시 기사는 마사가 아는 길이 아닌, 멀고 복잡한 길로 차를 빙 둘러 몰았다. 왜 다른 길로 가느냐고 물으니 기사는 “군인들, 군인들”이라고만 했다. 집에 도착하니 안부를 묻는 지인들의 전화벨이 쉬지 않고 울려댔다.
도시에 쫙 깔린 군인들이 젊은 사람들을 때리고, 트럭에 실어 어디론가 데려갔다. 시민들이 저항할수록 군인들은 더 끔찍한 폭력을 휘둘렀다. 곤봉으로 때리고, 군화로 짓밟고, 칼로 찌르고, 총으로 쐈다. 찰스가 목사로 근무하던 광주기독병원에도 부상자와 사망자가 밀려들어왔다.
독일인 기자가 헌틀리 가족의 집을 찾아온 것도 그때쯤이었다. 외신기자들 중 가장 먼저 광주에 도착한 그는 자신을 독일 제1공영방송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라고 소개했다. 서울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달려왔는데,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그에게 사람들이 이 집을 알려줬다고 했다. 그는 지금 광주 시민들이 한 산기슭에 사망자들을 묻고 있다며 함께 가서 통역해 줄 수 있냐고 물었다. 힌츠페터가 타고 온 택시에 몸을 실은 일행은 산으로 출발했다. 산비탈에 모인 사람들이 보였다. 택시에서 내린 셋은 비탈을 올랐다.
사람들이 울고 있었다. 방금 판 듯한 구덩이 20여개 옆으로 천에 싸인 시신이 한 구씩 놓였다. 가족을 찾으려는 이들은 시신의 얼굴을 하나씩 확인하며 다녔다. 여기저기서 기도 소리와 염불 외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 사이로 통곡이 터져나왔다. 힌츠페터는 사람들을 인터뷰했고 마사는 통역했다. 잊을 수 없는 몇 시간, 85세가 된 지금까지도 마사의 인생에서 가장 슬픈 장면이다.
◆ ◆ ◆
광주는 참혹했다. 신군부가 공수부대를 보내 작정하고 탄압하면서 수많은 사상자가 나왔다. 1980년 5월18일부터 27일까지 열흘 동안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조사 기준으로만 최소 166명이 숨지고 73명이 실종됐다. 부상자는 3000여명에 달한다. 당시 계엄군의 암매장 등을 고려하면 사망자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참상의 소문은 해외까지 퍼져나갔고 많은 외신기자가 광주에 들어왔다. 군부가 국내 언론을 통제하던 때였기에 외신은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 주요한 창구였다. 그리고 헌틀리 사택은 외신기자들이 꼭 거쳐 가는 취재 거점이었다. 기자로 일한 경험이 있던 마사는 광주에서 일어나는 일을 글로 써 미국 기자들에게 보냈다. 찰스는 기자들에게 통역을 제공하고, 자신도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계엄군의 폭력을 기록했다. 총에 맞고 머리가 으스러진 시신들을, 병원 병상이 부족해 복도에 매트를 깔고 누운 부상자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가 찍은 사진은 이후 전두환의 재판에서 증거로 쓰이기도 했다.
외신기자들이 거실에서 토론하고 사진과 테이프를 정리하던 그때, 바로 위층 다락방에는 한국인 청년 예닐곱 명이 숨소리를 낮추고 숨어 있었다.
헌틀리 가족과 알고 지내던 광주 목회자들이 20일 데려온 자녀들이었다. 부모들은 자녀가 군인들의 살상에 휘말리지 않기를 바랐고, 미국인 선교사 집이라면 안전한 공간 중 하나였다. 다락방에 숨은 청년들은 책을 읽거나 소리 낮춰 기도하면서 지냈다.
누군가를 숨겨주려다 보면 거짓말을 해야 할 수도 있다. 독실한 종교인에게는 윤리적 갈등을 부를 수 있는 일이다. 헌틀리 부부의 결론은 명쾌했다. 찰스는 훗날 회고록에 이렇게 적었다. “그러나 나는 생각했다. 한 젊은이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거짓말한 것을 용서받는 편이, 한 젊은이가 알 수 없는 운명으로 끌려가게 내버려 둔 것을 용서받는 편보다 더 쉬울 것이라고. 그리고 나는 다시라도 그렇게 할 것이다!”
헌틀리 가족이 살던 양림동의 빨간 벽돌집은 광주 시민들의 목숨을 구하는 피난처가 됐다. 청각장애인들이 찾아왔고, 두 어린 자녀를 둔 가족이 며칠 머물렀다. 병원 관계자들과 가족이 문을 두드렸다. 임산부와 아이들이 찾아왔다. 아놀드 피터슨 목사 등 다른 선교사들도 시민들을 집에 들였다.
하지만 도시를 날뛰는 폭력은 외국인 선교사들의 근처에도 예고 없이 떨어지곤 했다. 헌틀리 가족의 막내딸인 아홉 살 제니퍼(Jennifer Huntley Mario)가 새끼 고양이들과 마당에서 놀고 있을 때도 그랬다. 다락방에 숨어 있던 청년 한 명이 바람을 쐬러 나왔다가 제니퍼를 발견하고 옆으로 왔다.
두 사람이 한창 고양이들과 놀던 중에, 바깥 자갈길에서 저벅거리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군인 두 명이 길을 지나가고 있었다. 새끼 고양이에게 흐뭇하게 웃어 주던 청년의 얼굴은 순식간에 사색이 됐다. 겁에 질려 집으로 헐레벌떡 뛰어드는 그를 못 본 군인들은 길 저편으로 사라졌다.
1980년 5월, 상황을 이해하기엔 제니퍼는 너무 어렸다. 하지만 그 순간 그는 도시를 덮친 비극을 처음 실감했다. 버스를 가득 채운 청년 시위대가 나무판자로 차체를 탕탕 치며 노래 부를 때도, 다스베이더 같은 전투경찰의 모습을 아버지의 사진으로 봤을 때도 크게 와닿지 않던 공포가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엄마 아빠가 왜 그렇게 온종일 심각한 표정인지도 알 것 같았다.
집에 혼자 있던 어느 날에는 소총을 든 군인 두 명이 초인종을 눌렀다. 문을 열어준 제니퍼가 ‘부모님이 집에 없다’고 말했는데도 군인들은 자꾸 어깨 너머를 쳐다봤다.
‘뭔가 숨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면 안 돼.’ 제니퍼는 생각했다. ‘그렇다고 이 군인들을 집 안에 들여보내도 안 돼. 딱 현관까지만.’ 군화가 눈에 들어왔다. ‘이 사람들이 집에 들어오면서 저 시커먼 부츠를 벗을 리도 없어. 어른이 있었다면 좋을 텐데….’ 현관에서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는 통로 근처가 보였다. 제니퍼는 군인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계속 웃었다.
“이야옹!”
다락방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났다. 군인들이 2층을 올려다봤다. “고양이에요. 새끼를 낳았거든요.” 제니퍼는 계속 웃으며 말했다. “아이스티 드릴까요?”
아이스티를 마신 군인들이 돌아가자마자 몸이 떨렸다. 잘 대처한 건지 걱정됐다. 다락방은 다시 조용해졌다. 상황을 감당하기엔 제니퍼는 너무 어렸다.
◆ ◆ ◆
광주에서 검정고시를 준비하던 열여덟살 곽복률이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 친구와 함께 고향 강진에 갔다가 다시 돌아온 건 18일 오후였다.
그날 광주 버스터미널에 내린 둘은 황금동 쪽 거리를 지나가다가 계엄군을 맞닥뜨렸다. 군인들이 젊은 대학생들을 잡아다가 개머리판으로 마구 때리고 있었다. 시장바구니를 든 아주머니들이 장교의 멱살을 잡고 “왜 애들을 때리냐”고 항의해도 계엄군의 폭력은 멈추지 않았다.
곽복률과 친구를 본 계엄군이 다가왔다. 고등학생 또래에 비해 머리가 길었던 둘을 대학생으로 본 것 같았다. 둘은 골목길을 따라 정신없이 달아났다. 막 붙잡히려던 그때, 누군가 옆에서 둘을 잡아끌었다. 유흥가 업소에서 일하는 누나들이었다. 누나들은 가게 안으로 그들을 숨겼고, 군인들도 가게 안까지는 쫓아오지 않았다. 낯설고 좁은 방에서 잠깐 숨을 돌린 둘은 이내 친구의 친척과 연이 있던 룸살롱으로 향했다. 도시는 혼란스러웠다. 집에 돌아가기도 힘들고, 어차피 마음 편히 있을 곳도 없었다.
붕 뜬 두 청년은 영업을 멈춘 룸살롱 방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주방에서 라면을 끓여다 먹고 흑백 체크무늬 소파에서 잠을 잤다. 그러다 날이 밝으면 시내로 나가, 파도치는 시대에 휩쓸리듯 도시를 돌아다녔다. 20일 오후 광주의 택시기사들과 버스기사들이 벌인 대규모 차량시위 현장에서는 마음이 울컥 벅찼다. 시민들이 최루가스를 가라앉히자며 끌고 나온 소방차를 잘 다루지 못해 쩔쩔매는 모습도 봤다. 도청 앞 분수대에서 지프차에 탄 채 시위대를 찍고 있는 외국인 기자들에게 박수도 쳐 줬다.
21일, 도청 앞에서 집단발포가 있던 날에도 곽복률은 거리에 있었다. 행렬 저 앞에서 타다다당 총소리가 나니 사람들이 다 바닥에 엎드렸다. 시민 네다섯 명이 옆구리에서 피가 철철 흐르는 청년의 팔다리를 잡고 병원으로 뛰어가는 모습을 목격했다. 병원 잔디밭에 20구가 넘는 시신이 한 줄로 늘어서고, 어르신들이 시신 사이를 돌아다니며 자식을 찾는 모습을 봤다.
계엄군이 시민들의 저항에 밀려 철수한 21일부터 26일까지 닷새간은 해방의 시간이었다. 시민들은 광장에 모여 민주주의를 토론하고, 줄지어 헌혈했으며, 자발적으로 조직을 꾸려 치안을 유지했다. 하지만 평화로운 시간의 끝은 다가오고 있었다. 진압 작전을 세운 계엄군은 27일 자정 광주로 재진입했다. 어둠 속에서 2만명이 넘는 병력이 5개 방향으로 치고 들어왔다. 최종 목표는 시민군이 최후 항전을 벌이는 도청이었다.
헌틀리 사택에 숨어 있던 20여명은 집 가장 안쪽에 있는 제니퍼의 방에 모였다. 찰스는 집 대문을 잠그고 가스를 차단했다. 사람들은 이불과 매트리스를 끌어모아 바닥에 깔았다. 아기들은 침대에 앉고, 어른들은 울면서 기도했다.
총성이 밖에서 계속 들렸다. 마사는 트럭을 타고 돌아다니는 청년들이 확성기로 ‘함께 싸우자’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제니퍼는 한 여성이 아기에게 나지막하게 노래를 불러 주며 안심시키는 모습을 봤다. 나중에 저 아기와 놀아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제니퍼는 생각했다. 머리 위로 헬리콥터 소리가 끊기지 않았다. “모든 것이 너무나 비극적이었다”고 마사는 기억한다.
같은 시간 곽복률과 친구는 총성을 듣지 못했다. 룸살롱은 도청과 그리 멀지 않았지만, 밴드 연주도 차음하는 육중한 아치형 대문은 바깥소리를 완전히 차단했다. 그러나 쾅쾅 문 두드리는 소리에는 잠에서 깰 수밖에 없었다.
“문 열어! 열라고!”
공포 속에서 곽복률은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설마 정부의 군대가 죄 없는 우리를 쏠까.’ 긴장한 채 문을 열었다. M16 소총 총구가 그를 겨누고 있었다. 한두 개가 아니었다. 무릎을 꿇은 채 총을 겨눈 두세 명, 그 뒤로 또 두세 명, 또 두세 명이 있었다. 속옷 바람으로 자다가 막 일어난 그는 군인들이 찾던 사람이 아닌 듯했다.
군인들은 룸살롱을 수색했다. 그들은 대문 근처 쪽문이 열려 있는 걸 보고 건물에 시민군이 숨었다고 의심하고 있었다. “이쪽으로 들어온 거 다 봤어!” 군인들은 으름장을 놓으며 소파 아래까지 뒤졌지만, 나오는 건 없었다.
실내를 둘러보던 군인들은 지하 1층 통닭집으로 내려가는 불 꺼진 계단을 발견했다. 군인들은 곽복률의 등에 총구를 대며 앞장서 내려가라고 시켰다. 총격에 휘말릴까 무서웠던 곽복률의 머릿속에 무언가 떠올랐다. “나루터에 전화를 한 번 해봅시다.”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군인들과 함께 내려가 보니 문은 밖에서 잠겨 있었다. “보세요. 안에 사람이 없다는 거 아닙니까?” 곽복률이 말했다.
“너 집이, 어디야?” 군인이 윽박질렀다. “바로 집으로 가라.”
곽복률은 집을 향해 걸었다. 새벽과 아침 사이의 그 시간, 몇백 미터 옆 도청은 계엄군에게 완전히 점령됐다.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도, 소설 <소년이 온다>의 주인공이 된 고등학생 문재학도 그날 그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런 일을 모른 채 곽복률은 털레털레 걸었다. 아침이 다 오지 않은 하늘이 어둑어둑했던 기억이 있다.
◆ ◆ ◆
꾀죄죄한 몰골로 강진 집에 돌아간 곽복률을 할머니와 부모님이 헐레벌떡 뛰어나와 얼싸안고 쓰다듬었다. 죽은 줄만 알았던 내 새끼, 살아 돌아왔냐….
곽복률은 그해 검정고시를 치지 않았다. 광주에 돌아가고 싶지도 않고 공부에도 손이 가지 않았다. “담배 피우고 머리 기르고, 멍하니 무위도식하는” 시간이었다. 농사일을 도우면서 시간을 보낸 그는 다시 마음을 잡아 검정고시를 치고 대학에 입학했다.
몇 년 뒤 참석한 학과 야유회, 행사를 주관한 후배의 부탁으로 곽복률은 그해 광주에서 자신이 본 것들을 후배들 앞에서 이야기했다. 계엄군으로부터 숨겨준 누나들, 총에 맞아 죽거나 끌려간 사람들, 택시 시위와 시민들의 저항, 룸살롱을 덮친 계엄군…. 너무 많이 마신 막걸리만 아니었다면 더 이야기했을 터였다.
조금씩 광주를 돌아볼 수 있게 된 곽복률의 마음에 가장 깊이 박힌 이름은 윤상원이었다. 죽음을 알면서도 마지막 싸움에 임한 시민군의 대변인. 열여덟살 곽복률이 룸살롱에서 쫓겨나 집으로 향하던 그날 도청에서 숨진 열사. 당시 계엄군과 언론이 광주에 덮어씌운 ‘폭도’라는 오명을 벗겨 준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윤상원이라고 곽복률은 생각한다.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살고 싶다”는 그는 윤상원기념사업회에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헌틀리 가족도 그날의 기억에 오래 짓눌렸다. 제니퍼는 부모님이 “늘 슬퍼 보였다”고 기억한다. 마사는 “우리의 삶은 매일 그 사건의 영향을 받았다”고 회상한다.
절망하며 울기만 하는 날들은 아니었다. 부부는 그날 이후에도 광주를 찾아오는 외신기자들과 교회 단체들을 만나 진실을 알렸다. 마사는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해외 한인 중에는 광주의 친척이 투옥된 이들도 있었다. 헌틀리 부부는 한인들이 남은 가족을 위해 보내는 생계비를 전달했다. 계엄령하에서 그런 일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도, 자칫하면 추방될 수 있다는 것도 다 알면서 한 일이었다.
헌틀리 가족은 1985년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날 광주에서 한 모든 일에 후회는 없다. 제니퍼는 5·18민주화운동이 역사에서 제자리를 찾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가족이 어떻게든 도움이 됐다는 게” 기뻤다. 그는 노숙인들에게 긴급 쉼터와 음식을 제공하는 단체에서 일하고 있다. 마사는 “남편과 나는 광주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투옥되거나 고문당하거나 죽는 일을 조금이라도 막기 위해, 그들을 돕고 세상에 진실을 알리기 위해 부름받았다고 느꼈다”며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그들을 보호하겠다”고 했다.
찰스는 2017년 6월26일 8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광주에 묻히고 싶다”는 그의 유언에 따라, 마사와 제니퍼와 가족들은 2018년 5월 그의 유골을 들고 광주를 찾았다. 17일 양림동 선교사 묘역에 남편을 안장한 가족은 다음날 5·18민주화운동 제38주년 기념식이 열리는 국립 5·18민주묘지로 향했다. 헌틀리 가족과 함께 사람들을 보호했던 피터슨 목사의 부인과, 세상에 진실을 알린 힌츠페터 기자의 부인도 동행했다.
5·18민주묘지에 도착한 마사는 왠지 그 장소가 익숙하게 느껴졌다. 오랜 기억 속 장면들이 선명해졌고, 마침내 마사는 알아봤다. 1980년 5월 힌츠페터 기자와 함께 오른 산기슭이었다. 사람들이 슬픔 속에 가족을 묻던 그곳이 “아름다운 추모 공간”으로 변한 모습을 보고 마사는 울었다. 기념식 막바지에 마사가 연단에 올랐다.
“The cruelty I witnessed in Gwangju could not be expressed in any words.(내가 광주에서 목격한 잔인함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습니다.)” 청중 앞에 선 마사가 말했다.
“But the love the citizens of Gwangju showed us was greater than anything, anyone can imagine. I remember at Kidok-byungwon and other hospitals, they had a hard time stopping citizens from trying to donate too much blood.(그러나 광주 시민들이 보여준 사랑은 다른 무엇보다,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거대했습니다. 기독병원과 다른 병원들에서, 시민들이 너무 많은 피를 헌혈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애써야 할 정도였습니다.)”
사람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부슬비가 내렸다. 1980년 5월의 그날, 마사가 슬픈 마음을 누르며 사연을 통역해 준 산기슭의 무덤들이, 그 모습 그대로 마사를 굽어보고 있었다.
[셸터: 서로를 구하다]는 한국 현대사의 격동기, 위험을 무릅쓰고 국가폭력으로부터 타인을 지켜 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시리즈 전체 기사는 링크( 확인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19일 ‘소방 빨대 발언’으로 논란이 된 추미애 경기지사가 재차 사과하자 징계보다 소방직 국가 전환에 따른 제도 개선책 마련에 당력을 집중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날 부승찬 민주당 의원이 국정감사장에서 “소방이 재정 진짜 쭉쭉 빨아먹지 않나”라고 발언하면서 논란이 확산하는 모양새다. 김민석 대표가 당 윤리심판원에 부 의원에 대한 직권조사를 지시한 가운데 당내에선 설화를 일으킨 당사자들에 대해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민주당은 이날 오후 언론 공지를 통해 “김 대표가 오늘 국정감사에서 나온 부 의원의 소방 관련 발언에 대해 엄중 경고했다”며 “중앙당 윤리심판원에 해당 발언의 경위에 대한 직권조사명령을 내렸다”고 밝혔다.
앞서 부 의원은 이날 경기도청에서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경기도 국정감사에서 추 지사의 ‘소방 재정 빨대’ 발언 논란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물론 큰 잘못을 하셨지만 충분히 사과하셨다”며 “(소방공무원이) 국가직임에도 불구하고 소방 예산의 90% 정도를 지방자치단체에서 부담하니까 재정을 진짜 쭉쭉 빨아먹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망언”이라고 비판하자 부 의원은 “지사님께서 여러 번 사과를 하셨고, 국가직 공무원에 대한 국가의 책임이 있는 것”이라며 “언제까지 이렇게 방기를 할 것인가, 그런 과정에서 (소방이) 쭉쭉 빠는 존재로 돼선 안 된다는 의미에서 제가 말씀드렸던 것”이라고 말했다.
부 의원 발언이 돌출하면서 이날 추 지사의 재차 사과를 계기로 소방직 제도 개선을 통해 이번 사태를 마무리하려는 여당 지도부가 당혹스러운 처지에 놓이게 됐다.
한 민주당 중진 의원은 통화에서 부 의원 발언을 두고 “내부 진영을 보호하려 (방어를 하다) 설화 논란을 빚은 것으로 보인다”며 “당에서 용납할 수 없다는 정도로 (추 지사 및 부 의원 논란에 대해) 경고 등 명확한 의사 표시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김 대표는 이날 오전 당 유튜브 <민주당TV>에서 추 지사 발언 논란을 두고 “지금은 무엇보다 국민 마음을 잘 헤아려 국민께서 마음이 풀릴 때까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하는 게 우선”이라고 밝혔다. 조계원 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최고위원회의 후 “관련한 재정적, 제도적 보완책 마련에 집중하고, 정쟁화하는 부분이나 추 지사에 관한 부분은 이후 논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추 지사 징계에는 일단 거리를 두고 2020년 소방공무원의 국가직 전환 이후에도 상당한 예산을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는 문제를 시정하기 위한 입법에 나서겠다는 뜻을 표명한 것으로 해석됐다.
당내 일각에서 추 지사에 대한 구두 경고 등의 징계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박지원 의원은 이날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지도부에서 경고 정도는 해야 된다”며 “당은 기강을 세워야 된다. 그런 실수로 결국 손해 보는 것은 이재명 대통령, 민주당 아닌가”라고 말했다. 경기도 지역구 한 의원은 통화에서 “추미애 도정에 대해 엄격히 공개 경고해야 한다”며 “반발하는 지지자들은 당연히 있겠지만 계속 끌려가면 안 된다”고 말했다.
추 지사 논란에 대한 대응이 김 대표 리더십을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추 지사가 당대표 시절 당시 야인이던 김 대표를 민주연구원장으로 발탁하는 등 여의도 복귀를 도운 만큼 김 대표가 추 지사 징계를 결단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당 지도부 관계자는 통화에서 “추 지사 징계 가능성이 닫혀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면서도 “우선 정책을 통해 이 문제를 풀어 가겠다는 대표의 의지가 강하다. 추 지사 징계로 (민생) 이슈가 덮이면 안 된다는 생각인 것”이라고 말했다.
성장은 우리 사회의 복지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국제통화기금(IMF)의 세계경제전망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지난해 1.94%에서 올해 2.14%, 내년 2.20%로 높아질 것으로 추산됐다. 한국 경제의 성장 여력 증가라는 새로운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는 의미다. 이는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한 기술혁신에서 비롯된 것으로, 앞으로도 지속될 거대한 변화의 일부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느끼는 것처럼 성장과 그로 인한 삶의 질 향상은 사회 전반에 고르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산업 부문 간, 수출과 내수, 지역 간, 노동과 자본 사이의 격차는 계속 커질 것이다. 특히 성장과 고용의 고리가 약화되고, AI 활용과 함께 신규 일자리가 좀처럼 만들어지지 않는 것은 눈여겨봐야 할 일이다. 성장의 불균형은 삶의 질 불균형도 야기하는데, 자본주의의 거대한 변화 속에서 국가가 뒤로 물러서서 별다른 개입을 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러한 격차가 계속 누적되고 일자리·교육·주거 등에서 제도화된 불평등과 결합한다면, 그리고 자산시장 팽창으로 커질 대로 커져버린 부의 불평등까지 증폭된다면 그 결과는 파괴적이 될 것이다. 일론 머스크 같은 일부 기업가들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최소한의 기본소득 제공을 언급하지만, 고르지 못한 성장이 위협하는 것은 더 근본적인 것들이다.
성장이라는 높은 파도에 일부만 올라타고 다수는 낮은 곳에 머문다면, ‘우리는 한배를 타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계층이동의 사다리가 사라지면 사람들은 미래를 믿지 않게 되며 좌절감과 무기력함, 실업과 노후 불안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성장의 성과 독점은 소득 격차나 빈곤으로 끝나지 않는다. 사회의 정서적 연대 기반은 흔들리고 민주주의는 기능부전에 빠지게 된다. 이미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의 산업화 과정에서도 기술과 생산성 증가의 성과는 매우 불평등하게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21세기의 기술혁신과 생산성 향상 과정에서 국가는, 복지는 어떠해야 하는가?
역설적인 것은 기술혁신과 성장의 구조로 볼 때 우리 사회가 앞으로 더 불평등해질 것이라 말하지만, 그 핵심 대응책인 복지의 적극적 역할 확대에 대해 한국이란 국가가 뚜렷한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복지는 지출 규모는 작지만 제도적으로 자리 잡아 국민의 일상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만큼 한국에서 복지는 각자의 역량과 삶의 기회를 넓히고, 거대한 변화 속에서 새롭게 구조화되는 불평등에 맞서 싸우기 위해 해야 할 바가 뚜렷하다.
그럼에도 지금 국가는 과거의 선성장론, 작은 국가론과 이별하지 못한 채 복지의 보편화와 과감한 확충을 국민 앞에 제안하지 못하고 있다. 더 근본적으로는 좋은 사회와 좋은 삶이 무엇이며, 복지를 통해 어떻게 삶의 질을 고르게 바꿔낼 수 있는지에 대한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예산과 정책 내용 모두 소극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 국가가 각자도생이란 대중의 정서를 핑계 삼고 있는 것일까. 그러기에는 이 전환기가 너무나 중요하다. 우리가 한배를 타고 있으며 국가가 그 배를 제대로 이끌 수 있음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다가올 폭풍우를 헤쳐나가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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